아가서 8장에서는 술람미 여인의 오빠들이 동생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이 기록되었습니다. 술람미 여인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주님의 신부가 될 수 있도록 보호해 주셨습니다. 항상 신앙과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술람미 여인의 어린 시절(아 8:8-9)
술람미 신부는 솔로몬 왕과 함께 자신의 고향에 왔습니다. 이곳에서 신랑과 신부만의 은밀한 사랑을 나누면서 기쁨과 즐거움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술람미 신부는 솔로몬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마음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술람미 신부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자신의 어렸던 때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솔로몬 신랑을 만나기 전의 삶을 기억하면서 자신의 오라비들이 술람미 신부에게 말했던 것들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들도 주님의 신부가 되기 전에 내 멋대로 인생을 산 것 같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술람미 신부도 자신의 뜻대로 살아온 것 같지만 오라비들의 보호함이 있었기 때문에 잘 성장하여 솔로몬 왕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신부들이 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주님을 알기 전부터 교회에 나오기 전부터 이미 나를 선택하여 주시고 보호하시면서 말씀받을 준비를 시켰던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매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아8:8 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 그가 청혼을 받는 날에는 우리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까
술람미 신부의 오라비들은 술람미 신부와 함께 살면서 작은 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누이가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 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아직 술람미 여인이 성숙하지 않은 상태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동생이 청혼을 받는 날에는 오라비들이 여동생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까?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없구나’ (아인 369) 현재 아무것도 없다, 라는 의미입니다. 술람미 여인의 오라비들은 자신의 동생의 유방을 말하면서 현재 성숙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혼 적령기가 오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여동생이 결혼 적령기가 찰 때까지 오라비들이 잘 보호하고 지켜주겠다는 굳은 의지가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고대근동에는 여자 혼자 밖에 돌아다닐 수가 없습니다. 남자들이 여자들을 보호하지 않으면 밖에서 강간당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여자들이 혼자 들판에 나갔다가 강간당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었습니다.
창34:1-2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더니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의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레아가 낳은 딸 중에 디나가 혼자 들판에 나갔다가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이 더럽혀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항상 남자들이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술람미 신부의 오라비들도 자신의 여동생이 잘 자라서 좋은 신랑감을 만날 수 있도록 보호해 주겠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신앙이 어린 자들을 잘 보호하여 사탄의 공격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믿음이 작은 자들에게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가르쳐서 올바르게 교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은 작은 일에도 쉽게 실족하여 넘어질 수가 있습니다.
‘청혼을 받는’ (다바르 1696 VUIMZS 동사 푸알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언약하다, 선언하다, 약속하다, 라는 뜻입니다. 술람미 신부가 잘 커서 신랑으로부터 청혼을 받는 그날이 오면 신랑이 신부를 데려가기 위하여 언약을 맺어 약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평생 술람미 신부를 자신의 반려자로 삼아서 끝까지 사랑하면서 살겠다는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술람미 신부는 반드시 신랑에게 청혼을 받는 날이 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도 청혼을 받으면 계속해서 신랑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늘 술람미 신부를 사랑해주고 함께 있는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들도 술람미 신부처럼 예수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청혼함을 받는 날이 오게 됩니다. 이 청혼을 신부가 피한다고해서 피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만세전에 주님의 신부로 선택하여 주셨기 때문에 주님이 나에게 청혼하러 반드시 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구원받기로 작정이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구원받은 백성들은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인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요14:2-3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시려고 하늘나라로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신랑 되신 주님이 다시 오셔서 나를 예수님께로 영접하여 주님이 있는 곳에 나도 있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실 때에 주님 곁에 나를 두시겠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청혼하러 나에게 오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모든 거처가 마련이 되었기 때문에 나에게 청혼하러 오셔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나를 데리고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주님과 영원히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아8:9 그가 성벽이라면 우리는 은 망대를 그 위에 세울 것이요 그라 문이라면 우리는 백향목 판자로 두르리라
술람미 신부의 오라비들은 자신의 여동생이 성벽이라면 자신들은 은 망대를 술람미 여인 위에 세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술람미 신부가 문이라면 자신들은 백향목 판자로 두를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벽이라면’ (호마 2346) 성벽, 이중벽,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하마) 수호하다, 성벽으로 에워싸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술람미 신부가 성벽이라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을까요? 이제는 자신 스스로 몸을 보호할 수 있고 지킬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벽은 적들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이중으로 벽을 쳐서 만든 성벽입니다. 적들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자신을 수호하고 지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술람미 신부의 오라비들이 술람미 신부가 성벽이라면 은 망대를 그 위에 세울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주님의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 스스로 몸을 관리해야 합니다. 타락의 길로 가지 않도록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풍조를 따라가지 않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유혹당하지 않고 비 복음에 미혹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으로 이중벽을 쳐서 세상의 타락한 문화가 내 마음에 침입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자신을 십자가 복음의 말씀으로 지켜나가야 합니다.
‘은’ (케쎄프 3701) 은, 충분한 대가, 속전, 이라는 뜻입니다. 술람미 여인의 오라비들이 자신의 동생에게 은 망대를 세우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까? 술람미 신부가 잘 성장하여 좋은 신랑을 만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은 망대와 같은 신랑을 만나 술람미 신부가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주님의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원죄에 빠진 나를 위해 예수님께서 속전해 주신 것입니다. 이 속전은 충분한 대가가 되어 나의 모든 원죄를 대속해 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은 망대가 되어 주셔서 세상의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감시자가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고대근동에서 망대는 적들을 감시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망대에서 몸을 숨기면 안식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시61:3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심이니이다
예수님은 나의 피난처가 되어 주시고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가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모든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해 주시고 견고한 망대가 되어주셔서 내가 원수를 피할 때에 주님께로 피하여 안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나의 영원한 망대가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그가 문이라면’ (델레트 1817) 문,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달라 1802) 끌어내다, 자유롭게 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술람미 신부의 오라비들은 술람미 신부가 문이라면 그 문을 백향목으로 만들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까? 문은 사람들이 안과 밖으로 통과할 때에 사용하는 기구입니다. 그리고 집을 지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만약에 문이 없다면 도둑들이 집에 들어와 모든 귀중품을 훔쳐가고 잘못하면 생명도 빼앗아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이 있음으로 도둑들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것은 우리들에게 적용한다면 구원받은 주님의 신부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자유 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복음을 선포하여 내가 죄에서 끌어내짐을 받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죄에서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서 예수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하는 문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문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많은 생명들을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부터 내가 주님의 거룩한 신부라면 십자가 복음의 문이 되어 주님을 세상에 선포하는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백향목’ (에레즈 730) 백향목,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아라즈 729) 단단하다, 견고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백향목은 침엽수로서 나무 중의 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백향목의 자태는 가히 다른 나무들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멋있고 늠름하게 뻗어 있습니다. 나무의 크기는 약 40m 정도로 자라고 나무 굵기는 보통 2.5m 크기가 됩니다. 유대인들은 백향목을 볼 때마다 권세와 권위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술람미 신부의 오라비들이 자신의 동생이 문이라면 백향목 널판을 두른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백향목과 같은 신랑을 만나면 좋겠다는 소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백향목은 예수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것입니다. 나무들의 왕으로서 권세와 권위가 있는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나의 신랑이신 예수님께서도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백향목은 단단하여 성전을 지을 때에 사용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십자가에서 사역을 마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의 백향목이 되어 주셔서 믿음을 견고하게 해 주시고 세상에 내가 있다 하더라도 무르지 않게 하셔서 세상의 문화와 풍조가 스며들지 못하도록 신앙을 단단하게 해 주셨습니다.
내가 문이라고 하면서 세상의 세속적인 문화에 물들어 버리면 많은 사람들을 예수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백향목과 같은 예수그리스도가 나를 둘러주실 때에 내가 세상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예수님을 선포하여 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없으면 신부들은 문의 사명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만나 구원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해 거처를 준비하러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모든 거처가 준비되면 다시 이 땅에 나를 데리러 오시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나는 신앙과 믿음을 열심히 준비하여 주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주님이 나에게 청혼하러 오시기 때문입니다. 만세전에 선택받은 우리는 반드시 주님이 나를 찾아오셔서 청혼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하나님의 나라로 데리고 가실 것입니다. 그러니 열심히 신부의 거룩한 삶을 살면서 주님을 맞이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 성경 용어 원어 설교문] 겸손(謙遜)에 관한 히브리어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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