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3장에서는 예수님이 천국에 대해서 비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청중들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려고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때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 뿌리고 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게 되었습니다. 지금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곡식이 있고 가라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해서 가야 합니다. 마지막 종말에 주님이 추수꾼을 시켜서 곡식은 추수하여 천국 창고에 넣고 가라지는 불을 태워버리기 때문입니다.
곡식과 가라지 천국 비유(마 13:24-30, 36-43)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나는 가라지입니까? 알곡입니까?”라는 말씀으로 우리가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곡식에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가 쭉정이입니다. 이것은 아무 열매를 맺지 않은 전혀 쓸모없는 열매입니다. 이것은 결국 아궁이에 들어가 불에 태워지고 마는 것입니다. 둘째는 반 쭉정이가 있습니다. 반은 열매가 있고 반은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도 온전하게 곡식으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결국 소나, 가축의 양식으로 들어갑니다. 마지막으로 완전한 알곡이 있습니다. 이것은 가을날에 노랗게 물들인 황금벌판에서 통통하게 벼이삭이 익은 완전한 알곡입니다. 이 알곡만이 농부가 추수하여 곡간에 가득 채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인생에도 세 가지 종류의 인생이 있습니다. 첫째로 쭉정이 인생입니다. 이 인생은 어디를 가든지 간에 소출이 없는 인생입니다. 남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하고 항상 피해만 입히는 인생입니다. 이런 사람은 가정이나, 직장에서나, 쓸모가 없는 인생으로 전락한 사람입니다. 절대 사람들이 찾지 않는 사람입니다. 더 이상 꿈도 없고, 비전도 없고 하루 벌어 하루 살려고 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오늘만 어떻게 살면 되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도전하는 정신도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피해를 주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결국 공동체 생활을 할 수가 없어서 낙오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에 아무 소출도 내지 못하는 쭉정이 인생입니다.
둘째로 반 쭉정이 인생이 있습니다. 이런 인생은 가정이나, 직장에서 어떠한 공동체에서 있으나 마나 한 인생을 사는 자들입니다. 별반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주지도 않습니다. 있으면 피곤하고 그래서 차라리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만하고 자기만 잘 낫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업무를 주어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남의 일에 사사건건 참견하여 방해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일은 못하고 남의 일에만 신경을 쓰고 자신의 앞가림은 못하면서 오지랖은 넓어서 남의 일에 콩 나오라 팥 나오라 참견하는 사람들입니다. 결국 이런 사람들도 자신의 계발이 없기 때문에 비전이 없고 인생에 낙오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알곡인생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충실합니다.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가정이나, 직장이나, 공동체 생활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맡은 직분에 충실하여 꼭 필요한 존재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꼭 쓰임을 받게 되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람을 필요에 의해서 꼭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을 자신보다 높게 여기고 깔보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꾸준히 자신을 계발하여 꿈과 비전과 도전을 갖고 미래를 계획하고 앞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알곡과 같은 인생을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믿음과 신앙도 알곡과 같은 믿음과 신앙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에 대해서 예수님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주식은 밀이 주식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와 달리 밀은 3월과 4월경에 추수를 하게 됩니다. 이런 모습을 보시면서 예수님은 천국에 대해서 비유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 13:24-26)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 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뿌린’ (스페이로 4687 VPPADMS 동사 분사 현재 능동태 여격 남성 단수) 심다, 뿌리다, 덧뿌리다, 라는 뜻입니다. 농부는 좋은 씨를 자신의 밭에 덧 뿌렸습니다. 이 씨는 뿌려진 시간이 있고 장소가 있습니다. 또한 씨앗은 햇빛과 땅의 영양분을 먹고 좋은 씨가 되기 위해 자라게 됩니다. 그런데 뿌려진 시간이 현재입니다. 주인은 자발적으로 씨를 뿌리면서 잘 자라주기를 소망하면서 뿌렸습니다.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덧뿌리고’ (에피스페이로 4687 VIIAS3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단수 3인칭) 뿌리다, 심다, 라는 뜻입니다. 원수가 밭에 가라지를 뿌린 사건이 실제적으로 있었으며 이것은 계속적으로 일어날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잠잘 때에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 뿌리고 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원수로 생각했던 사람의 밭에 밤에 몰래 가서 가라지를 뿌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일 무서운 말이 당신의 밭에 가라지를 뿌린다고 하는 말이 제일 무서운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수가 가라지를 뿌려서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인 것입니다. 가라지의 특성을 보면 길이는 60Cm이고 풀 같으며 검은색 이삭을 가지고 있고 크기는 이삭보다 조금 작습니다. 또한 가라지를 먹었을 경우 역겨움과 경련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심하면 생명까지도 잃을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가라지에 독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예수님의 해석을 보겠습니다.
(마 13:37-39)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예수님은 비유를 말씀하시고 곧 이어 풀어주셨습니다. 좋은 씨를 뿌린 사람은 인자라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좋은 씨를 뿌린 것입니다.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의 씨를 뿌리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이 직접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심으로 인해 좋은 씨를 뿌린 것입니다. 밭은 세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밭은 이 세상의 모든 곳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이것을 믿는 자마다 구원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알곡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원주로 믿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가라지는 무엇입니까? 악한 자의 아들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자들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알곡이 되지 못하고 가라지가 된 것입니다. 똑같은 신앙생활을 하고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겉으로는 믿음의 능력이 있는 것 같지만 속은 그렇지 못한 믿음과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구원의 확신도 없이 세상의 부와 명예를 위해서 이생의 정욕과 안목에 치우쳐서 교회를 다니는 이런 종교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가라지인 것입니다. 그리고 악한 자의 아들들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누구입니까? 바로 마귀입니다. 마귀가 결국 가라지를 뿌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라지들은 마귀의 조종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알곡은 성령의 도움을 받아 구원의 확신을 얻는 자들인데 가라지는 마귀의 꼬임에 빠져 구원도 받지 못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교묘하게 가라지를 뿌리게 됩니다. 농부가 아무리 좋은 씨를 뿌려도 논에는 항상 가라지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도, 세상도,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좋은 사람만 있으면 좋은데 가라지와 같은 나쁜 사람도 존재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귀의 존재를 의식하고 예수님의 말씀으로 몰아내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마음속에도 가라지를 뿌려서 결국 우리가 구원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럼 추수 때는 언제입니까? 세상 종말 때입니다. 이때가 되면 추수꾼이 와서 추수를 하는 것입니다. 그 추수를 하는 자들이 천사들이라고 합니다.
(마 13:27-29)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 하노라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주인의 종들이 와서 밭에 좋은 씨를 뿌렸는데 가라지가 생긴 것이 궁금했습니다. 자신들은 좋은 씨를 뿌렸는데 가라지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가라지를 뽑기를 원하십니까? 라고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뽑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가 된 것입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쉴레고 4816 VPPANMP2 동사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남성 복수 2인칭) 모으다, 수집하다, 끌어 모으다, 라는 뜻입니다. 가라지를 주워 모으려고 하다가 곡식도 뽑게 되는 것입니다. 가라지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인데 가라지를 뽑을 때가 있습니다. 이 가라지는 방향이 불 구덩이로 들어가게 됩니다. 가라지를 뽑을 때는 현재에 뽑게 됩니다. 능동적으로 뽑아서 심판받고 불 못에 던져지게 됩니다. 이런 가라지들이 이 세상에 많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곡식까지 뽑다가’ (에크리조오 1610 VSAAP2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태 복수 2인칭) 뿌리 뽑다, 뽑히다, 라는 뜻입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을 뿌리째 뽑아 곡식이 익기 전에 뽑힐까 봐 주인은 종들에게 가라지를 뽑지 말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그런데 곡식은 반드시 가을에 익어야 합니다. 충실한 곡식이 될 때에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이 곡식은 이미 충실하게 익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만약에 충실하지 못하면 가을에 창고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것은 곡식하나라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주인의 마음입니다. 가라지는 곡식과 아주 똑같습니다. 그래서 다 자랄 때까지 구분을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만약에 가라지인 줄 알고 뽑았는데 그것이 곡식이라면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 자란 후에는 가라지는 열매가 없고 곡식은 열매가 있기 때문에 확실하게 표시가 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한 영혼이라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온전한 곡식을 거두기 위하여 끝까지 심판을 보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때에 확실한 주님을 구세주로 믿고 영원토록 구원의 확신을 갖고 믿음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이런 구원의 확신이 없는 자들이 가라지가 되어 결국 뽑힘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보면 아는 것입니다.
시골에 가면 과거에 ‘풍구’라고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바람을 만들어 가라지와 알곡을 가르는 기계입니다. 가라지와 알곡이 섞여서 도저히 구별을 할 수가 없을 때에 이 ‘풍구’를 사용했습니다. 열심히 돌리면 바람이 나와서 곡식은 무거워서 밑으로 떨어지고 가라지는 가벼워서 멀리 날아 가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고 가라지는 아궁이에 태워버렸습니다. 알곡은 모아 곡간에 넣었습니다.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 내가 가라지인지 알곡인지는 언제 알 수가 있습니까? 환란의 풍구에 들어가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모두가 섞여서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환란이라고 하는 풍구에 넣으시면 가라지는 결국 믿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시험에 걸려 넘어지고 날아가 버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알곡의 신앙은 환란의 바람을 맞아도 믿음과 신앙이 더 견고해져서 주님을 더욱더 신뢰하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의 창고 곡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신앙은 알곡의 신앙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 13: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지막에 가면 곡식과 가라지는 구별되는 것입니다. 추수 꾼에게 말하여 곡식은 단으로 묶고 가라지는 불에 타버리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정말 무서운 말씀입니다. 내가 가라지 같은 신앙생활을 한다면 결국 불에 타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두려워 할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이 시간 예수님의 피의 공로를 믿음으로 구원의 확신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천국에서 하나님과 영원토록 사는 것입니다.
(마 13:41-42)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주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마지막 때에 신앙을 떨어지게 하는 자들과 또 불법적으로 행하는 자들은 거두어 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법적으로 예수님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율법으로 예수님의 피의 공로를 업신여기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결국 자신의 공로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믿음을 실족하게 하는 자들은 결국 풀무 불에 던져 넣은 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공로로 구원받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온전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1%의 나의 공로가 있다면 그것은 구원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완전한 100%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을 얻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마 13:43)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바로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을 얻은 알곡과 같은 신앙 자들이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인이라서 의인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의 공로를 믿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부르는 자가 의인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죄가 많은 인생인데 우리 스스로 어떻게 의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도저히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지금은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믿는 자들은 의인이 되어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축복이 있습니다. 이것을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귀가 없습니까? 아닙니다. 영적인 귀로 듣고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심도 우리는 알곡과 같은 신앙과 믿음을 가지고 영원토록 변함없이 주님을 나의 주로 고백하시라는 것입니다. 겸손한 자세로 구원의 확신을 매일 같이 되새기면서 주님만을 높이고,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신앙과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을 굳건히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을 바라보면 가라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에 참 알곡이 되는 것입니다. 면류관교회 성도 여러분! 참 알곡이 되었습니까? 그러면 주님은 영원히 당신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창세기 아브라함 히브리어 설교] 헤브론에 장막을 치는 아브라함(창 13: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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