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신약성경 말씀

[어버이주일 설교말씀] 베드로가 가이사랴 고넬료 심방함(행 10:1~48)

르호봇 2022. 5. 3.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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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버이 주일을 통해서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부모님을 생각할 때마다 자식으로서 못 해 드린 것만 생각나게 됩니다. 부모님이 항상 옆에 있는 것이 아니니 살아계실 때 효도할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제목: “베드로가 가이사랴 고넬료 심방함” (행 10장)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사도행전 10:1~48

요절: “이에 베드로가 말하기를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신님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침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주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행 10:47-48)

주제: 베드로 사도가 주님의 환상을 본 후 고넬료 집을 심방하여 세례를 주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오늘 5월 8일은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어버이날(Parents’ Day)로 지킵니다.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어머니의 사랑, 아버지의 교육을 기억하며 사랑하고 존경하는 날로 지냅니다.

첫째로 자녀들은 부모님에게 효도를 다해야 합니다. 잠 23:22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진리, 지혜, 명철, 훈계는 많은 값을 치루어서라도 사고는 절대 팔지 말라고 했습니다. 소중한 교훈을 값지게 간직하라는 것입니다. 효도가 그러합니다. 믿음의 부모를 잘 순종한 자의 어버이들은 기뻐할 뿐입니다. 우리 부모님을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는 길은 우리가 신앙생활 잘하는 것입니다. 잠 20:20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 등불이 유암중에 꺼짐을 당하리라”고 경고하십니다.

둘째로 우리는 존경받는 어버이가 되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효자, 효녀가 되도록 모든 일에 존경과 신뢰를 받는 어버이가 되어야 합니다.

1) 원칙이 분명해야 합니다. 가르친대로 어버이가 본을 보여야 합니다. 하라, 하지 말라가 분명해야 자녀들이 신뢰하고 따르게 됩니다.

2) 중요한 기본은 반복해서 완전 세뇌시켜야 합니다. 쉐마말씀은 계속 반복(읊조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암기하고 반복해야 합니다.

3) 자녀 교육은 확실하게 시켜야 합니다. 매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잠 13:24  “초달(채찍질)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잠 20:30 “상하게 때리는 것이 악을 없이 하나니 매는 사람의 속에 깊이 들어가느니라”

잠 23:13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14)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

물론 자식에게 매를 대지 않고 양육하면 제일 좋습니다. 그러나 자식이 잘못하고 고치지 않으면 엄하게 키워야 합니다. 자식을 진정 사랑합니까? 매로 다스리며 가르치세요. 옛날 조선시대때 서당에서 훈장선생님은 반복교육, 암기, 매를 때리며 훈계한 정신이 오늘날 유대인의 가정에서 하는 교육법입니다. 아미쉬(Amish)와 메노나이트(Mennonite)도 잠 13:24의 정신으로 매질을 하며 자녀 교육을 합니다. 훈계와 정도의 길로 가도록 해야 합니다. 랍비들의 해석을 보면 아침마다 매를 들어 자녀들에게 바른 습관을 가지게 합니다.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어머님, 아버님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효성을 다해야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역사를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 (신 32:7)

자녀들에게 신앙 전수하며 역사 교육을 하시는 부모님을 존경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자녀들을 노엽게 하고 마음에 상처를 준 것 회개해야 합니다. 대신 그들에게 주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사랑하며 기도해주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인성교육, 지성교육, 신앙교육을 잘 시켜 지정의가 건강하게 자라도록 환경을 설정해 주어야 합니다.

 

히스기야왕은 신앙개혁으로 하나님의 눈에 선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녀의 신앙교육은 실패했습니다. 므낫세가 왕이 될 때 나이가 12세였습니다(왕하 21:1, 대하 33:1). 이 말은 선왕 히스기야기 죽을 병에 걸려 하나님께 목숨을 건 기도를 하니 15년간 생명을 연장시켜 주실 때 낳은 아들입니다. 그가 생명 연장을 받고 3년만에 낳은 아들입니다.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겠습니까? 그래서 아들의 신앙교육에 실패하지 않았나 봅니다. 므낫세가 55년간 통치하면서 대부분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서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우며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행위를 따라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이 일월성신을 경배하여 섬겼습니다(왕하 21:2-3).

 

스위스의 교육사상가 페스탈로찌(Johann Heinrich Pestalozzi, 1746~1827년)는 말하기를 “여성에게는 본능적으로 모성애가 있다. 어린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에는 아름답고 위대한 것이 있다. 그러나 본능적인 사랑만으로는 자녀를 잘 키울 수 없다. 의지의 힘이 감정과 합쳐저서 모성애를 다듬어 넓은 폭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어머니 자신의 마음이 맑지 않고서는 올바르게 자녀를 인도할 수 없다. 어머니 자신이 총명하고 어질고 굳센 의지를 지니며 용감히 활동하는 힘을 나타낸다면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자연히 좋은 감화를 줄 수 있다." 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하나님의 최고 선물입니다.

 

영국의 크리스토퍼 목사는 큰 고민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방탕한 삶에 빠져들어 헤어날 줄을 몰랐습니다. 그 어떤 충고와 사랑도 아들의 삶을 되돌려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크리스토퍼 목사는 오랜 기도 끝에 한 가지 묘안을 짜냈습니다. 아들이 살고있는 마을의 뒷산에 올라가 밤마다 피리로 찬송을 연주했습니다. 그것도 아들이 교회학교 시절에 가장 즐겨 부르던 찬송이었습니다. 고요한 밤의 적막을 깨고 들려오는 찬송은 아들의 마음을 완전히 녹이고 말았습니다. 아들은 찬송을 듣고 회심해 부모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부모의 기도와 지혜가 한 영혼을 구한 것입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행1: 14)

“어머니의 기도” (이해인, 1945~  )

밝은 기도서와 가족들의 빛 바랜 사진

타다 남은 초가 있는 어머니의 방에 오면

철없던 시절의 내 목소리 그대로 살아 있고

동생과 소꿉놀이하며 키웠던 석류빛 꿈도 그대로 살아 있네

 

어둡고 고달픈 세월에도 항상 희망을 키웠던

어머니의 조각보와 사랑을 틀질했던

어머니의 손재봉틀을 만져보며

이제 다시 보석으로 주워 담는

어머니의 눈물

그 눈물의 세월이

나에겐 웃음으로 열매 맺었음을

늦게야 깨닫고 슬퍼하는

어머니의 빈방에서

이젠 나도 어머니로 태어나려네

 

양주동 선생님(1903-1977)은 1930년대에 “어머니 마음”을 작사하신 것을 이흥렬 선생님이 곡을 붙여 널리 불려지고 있습니다.

1절.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2절. 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 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마음

    앓을사 그릇될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3절. 사람의 마음 속엔 온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 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이 땅에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부모가 자녀를 위해 기도하며 신앙의 본을 보이면 자녀들은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고 효자, 효녀가 될 것입니다. 눈물과 기도로 키운 자식은 결코 잘못되지 않습니다. 말씀으로 자녀를 키우며, 살아계신 부모님께 효도하고, 자녀들에게 존경받고 사랑받는 부모가 되십시다. 프로스트는 말하기를 "어머니는 자식을 한 사람의 청년으로 만드는데 20년 이상이 걸린다. 그런데 어떤 다른 여성은 자기 아들을 단 30분 동안에 바보로 만든다." 고 했습니다. 늘 자녀들에게 귀감(본이 되는 사람)이 되어 효자, 효녀를 만드시는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십시다. 임마누엘의 복된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사도행전 10장을 강해합니다. 9장에서 사울(즉 바울)이 부활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과 동료가 되고 동족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전도하게 되어 살해의 위험까지 받았습니다. 또 베드로가 전도하는 중 룻다에서 애니아의 중풍병을 고치고, 욥바에서는 다비다(도르가)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살리는 이적과 기적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을 행하던 베드로가 욥바 해변가에 있는 구두수선하던 시몬이라는 유대인의 집에 유숙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로마의 총독 사무실이 있는 가이사랴에서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가 기도하던 중 환상 중 천사의 방문을 받고 욥바에서 기도하는 베드로를 가정에 초청하라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복음이 점차 이방인에게 전파되고 있습니다.

 

1. 고넬료의 환상(행 10:1-8)

(1)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탈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2)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3)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부르니 ‘고넬료야’ 하니(4)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대답하기를 ‘주님,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말하기를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5)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6)그는 구두수선공 시몬의 집에 거주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하더라.(7)이에 말하던 천사가 떠나니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들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8) 이 일을 다 고하고 욥바로 보내니라.

1절. 지중해변에 있는 가이사랴에 고넬료(Cornelius, ‘뿔’이란 뜻)라 하는 백부장(로마의 100명 군인을 지휘한 사람)이 있었숩니다. 요즘으로 ‘중대장’의 직위로 로마 시대에 지방 유지에 해당하는 인물입니다. 가이사랴는 욥바에서 지중해 해안을 따라 약 50킬로미터 북쪽에 위치한 중요한 항구 도시입니다. 그 도시는 헤롯 왕과 로마 총독들의 관공서가 있는 수도였습니다. 가이사랴라는 도시 이름도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의 이름을 따른 것입니다. 이곳에는 황제숭배 사상이 발달되어 있으며, 갖은 우상들이 많은 곳입니다. 빌립 집사의 집이 있었던 곳입니다(행 21:8-14).

2절. 고넬료는 경건하여 온 집안 식구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자기 혼자만 하나님을 경외하여도 경건하고 귀한 일인데, 온 집안 식구들을 권면해서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니 얼마나 더 경건하고 귀한 일인가요? 모범적인 가정인데 이제 예수님만 믿으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된 우리만 하나님을 섬길 것이 아니고 우리의 자녀들도 잘 가르쳐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신명기 6:6-7은,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베소서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십니다. 고넬료는 또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였습니다. 그의 선행과 구제는 그가 하나님을 진실히 섬기고 있다는 증거요 그가 형제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에게 자신을 의탁하는 믿음입니다. 기도하는 삶은 경건함의 표시입니다.

3-8절. 하루는 제9시, 즉 오늘날 시간개념으로 6시간을 더해야 하니, 오후 3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니 하나님의 천사가 방에 들어와 “고넬료야” 하고 불렀습니다. 환상은 신약성경이 완성되기 전 시대에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방법들 중 하나이었습니다(민 12:6). 고넬료는 쳐다보며 두려워 말했습니다. “주님,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말합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초청하라. 그는 피장(tanner 가죽수선공,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거주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자 고넬료는 집안 하인 둘과 종들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이 일을 다 고하고 욥바로 보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진심으로 그를 경외하고 기도하고 그의 뜻을 따라 구제와 선행을 실천하는 자들을 받으시고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며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그들에게 좋은 것을 주십니다.

2. 베드로가 욥바에서 본 환상(Peter’s vision, 행 10:9-22)

(9)이튿날 그들이 실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시더라.(10)시장하여 먹고자 하니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11)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12)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13)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14)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하니(15)또 두번째 소리 있으니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16)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17)베드로가 본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더니 마침 고넬료의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밖에 서서(18) 부르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께서 여기에 거주하나요?’ 하니(19)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신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두 사람들이 너를 찾으니 (20)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21)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말하기를 ‘내가 곧 너희의 찾는 사람이니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22)그들이 대답하기를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그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하니

9절. 이튿날 고넬료에게서 보냄을 받은 자들이 욥바 성에 가까이 갔을 때에 베드로는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갔습니다. 시간은 제6시 즉 정오입니다. 옛날 유대 땅의 집들의 지붕은 들보 위에 나무 가지들을 놓고 그 위에 갈대 매트를 놓고 그 위에 두꺼운 흙을 발라서 만들었는데 집 안의 추가적 공간으로서 여름에는 잠을 자는 곳으로도 쓰였고 거실이나 창고로도 쓰였습니다. 베드로는 그곳을 기도 장소로 사용했습니다. 그는 기도하기 위해 지붕에 올라갔습니다.

10-11절. 점심식사 시간이 되어 배가 고팠고 사람들이 음식을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 간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먹는 음식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환상으로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환경과 상황을 적절히 사용하십니다. ‘비몽사몽 간에’라는 말은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환상을 가리킵니다(17, 19절).

12-14절. 베드로는 그 그릇 안에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새들이 있는 것을 보았고 또한 “베드로야, 일어나 그것들을 잡아 먹으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경건한 삶을 살고 있는 전형적인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는 율법의 규례대로(레 11장; 신 14장) 언제나 정결한 생물만 먹고 부정한 것을 먹지 않았습니다.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에 대한 규례는 위생적인 의미나 상징적 의미뿐 아니라, 거룩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는 뜻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법을 통해 유대인들을 이방인들과 구별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규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다 완성되었고 따라서 신약 아래서는 폐지되었습니다. 도덕법은 영속적이지만, 의식법은 폐지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2:16-17에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15-16절. 또 두 번째 소리가 있기를,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갔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깨끗케 하셨으므로 그들을 속되게 여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 중 모든 택한 자들을 깨끗케 하셨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간에 모든 택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모든 죄의 깨끗케 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속되다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하늘로 올리워 간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분명한 뜻임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전도 대상을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방이 복음을 받든지 안 받든지 간에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17-18절.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궁금해 할 때에 마침 고넬료의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불러 묻기를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거주합니까?”고 합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정확합니다. 베드로가 속으로 환상의 뜻이 무엇일까 생각하던 바로 그때에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그가 거주한 집에 도착하였던 것입니다.

19-21절.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신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두 사람들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성신님께서는 단순히 어떤 기운이나 힘이 아니고 인격적 하나님이십니다. 그분께서 오늘날도 모든 성도들 속에 거하시며(롬 8:9) 그들을 친히 인도하십니다. 롬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이에 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말하기를 “내가 곧 너희의 찾는 사람이니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22절. 그들이 대답하기를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분입니다. 유대인들도 칭찬하는데, 그분이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그 집으로 초청하는 말을 전하러 왔습니다.”

 

3. 베드로가 백부장 고넬료 집을 심방하다(행 10:23-33)

(23)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이튿날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갈니 욥바에 있는 두어 형제도 함께 가니라(24)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25)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26)베드로가 일으켜 말하기를 ‘일어서세요, 저도 사람일 뿐입니다’ 하고(27)함께 대화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의 모인 것을 보고(28)말하기를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여러분도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29)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습니다. 묻겠으니 무슨 일로 저를 불렀습니까?’(30)고넬료가 대답하기를 ‘나흘 전 이맘때까지 제가 금식하며[전통사본] 저의 집에서 제 구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제 앞에 서서(31)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께서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32)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피장 시몬의 집에 거주하느니라. 그가 와서 네게 말하리라[전통사본]”고 하시기로(33) 제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전통사본]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23절. 베드로는 그들을 영접하여 하룻밤을 유숙하게 하였고, 이튿날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이사랴로 출발하니, 욥바에 살던 두어 형제도 함께 동행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지시에 즉시 그리고 즐거이 순종하였습니다. ‘두어 형제’라는 원어(티네스 tines)는 ‘몇 명’이라는 뜻입니다. 행11:12에 보면, 욥바에서 베드로와 함께 간 자들은 여섯 명이었다고 보고합니다. 그 여섯 명의 욥바 형제들이 베드로와 동행한 것은 베드로를 존경해서이기도 했겠지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후에 이방인 고넬료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 사건에 대해 증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24절.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갔습니다. 가이사랴까지 가는 약 50킬로미터(약 120리)의 길은 10명의 일행이 하루에 이동하기에는 멀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튿날에 가이사랴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놓고 베드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고넬료는 하나님의 말씀 받는 일을 매우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또 그는 친척들과 친구들을 사랑해 그들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를 가지게 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더 복된 일이 없으며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는 것보다 더 큰사랑이 없습니다.

[25절]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는 그를 정중하게 맞으며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절하다’는 원어(프로스퀴네오 proskuneo)는 ‘경배하다’는 뜻도 포함합니다. 비록 그의 행위는 지나쳤지만, 그것은 고넬료의 겸손한 인품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의 사모함과 말씀 전달자에 대한 그의 존경심을 나타냅니다. 살전 5:12-13은,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님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그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라”고 했고, 또 딤전 5:17은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목회자]들을 더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26절. 베드로는 고넬료의 절 받기를 거절합니다. 그는 그를 일으키며 말하기를 “일어서세요. 저도 사람일 뿐입니다.” 사람 앞에 엎드려 절하는 것은 신적 숭배와 같아서 사양했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훌륭한 자라도 사람이며 신이 아닙니다. 사람은 사람 이상으로 높임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부당하게 높이는 것을 용납지 않았습니다. 그의 태도는 바른 것입니다.

27-29절. 베드로는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힙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여러분도 아시지만 하나님께서 제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습니다. 묻겠으니 무슨 일로 저를 불렀습니까?” 유대인이 이방인과 접촉하고 그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 율법이 금하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은 단지 유대인이 이방인과 결혼하는 것을 금하였습니다(신 7:3-4). 그것은 그들이 이방인의 종교에 영향을 받을 것을 방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후대 유대인들은 그들 나름대로 율법을 해석하여 이방인들과 전혀 접촉하지 않는 것을 유대인의 전통으로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위법’이라는 말은 이런 전통과 관습을 어기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의 전통과 관습에 따르면,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의 초청을 받아 이방인의 집을 방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주신 환상에서 ‘아무것도 속되다거나 깨끗지 않다고 말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여 그 초청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그곳에 왔습니다. 그 외의 다른 일들은 그에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고 실상 그의 관심 밖에 있었습니다.

30-32절. 고넬료는 설명하기를, “나흘 전 이맘때까지 [제가 금식하며](전통사본) 저의 집에서 제9시 기도[오후3시]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제 앞에 서서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피장 시몬의 집에 거주하느니라. [그가 와서 네게 말하리라고](전통사본) 하시리라”고 들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와 접촉하게 되고 그에게 전도하여 그를 구원하는 일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비상한 섭리로 이루어졌습니다. 고넬료가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금식은 육신의 즐거움을 중단하고 육신의 생명의 쇠약함을 각오하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성도가 지극히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할 수 있는 간절한 기도가 금식 기도입니다.

33절. 고넬료는 또 말했습니다. “제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고넬료는 가난한 심령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경건하며 금식을 자주하면서 기도하는 자입니다. 그는 단지 인간 베드로 앞에 있지 않았고 하나님 앞에 살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경건(piety)입니다. 경건은 항상 하나님 앞에 사는 태도입니다. 고넬료는 이런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모든 진리의 말씀 듣기를 원하였습니다. 자기 뿐만 아니라 온 가족과 친척들도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고 싶었습니다.

 

4. 베드로가 가정집회에서 복음을 전하다(행 10:34-48)

(34)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씀을 전하기를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35)각 나라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줄 깨달았도다.(36)만유의 주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37)곧 요한이 그 세례[침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여러분도 알거니와(38)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님에게 성신님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니 그분께서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39)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분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분을 여러분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40)하나님께서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41)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42)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께서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분 곧 이분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43)그분에 대하여 모든 대언자도 증거하되 그분을 믿는 사람들이 다 그분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44)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신님께서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45)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신님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46)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47)이에 베드로가 말하기를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신님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48)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주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34-35절.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씀을 전했습니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하나님께서는 과연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얼굴이나 학력이나 사회적 신분이나 재산을 따라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분은 우상을 버리고 참 하나님을 경외하며 계명대로 의롭게 살고자 하는 자들을 받으십니다.

36-38절.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화평의 소식에 대해 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히 사람이 아니고 만유의 주, 곧 신적 인물이십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화평이 오고 그 화평과 더불어 죄인들에게 마음의 평안도 찾아옵니다. 이 소식은 세례 요한의 사역을 이어 갈릴리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공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하였고 또 온 유대에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39-41절,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은 그분의 부활입니다. 부활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마지막 증거이었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제자들과 여러 사람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의 부활은 육체적 부활이었고 그 부활체는 영광스럽게 변화된 몸이었습니다. 십자가에 상하신 그 몸은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42-43절.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만백성에게 복음을 전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 복음의 중심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심판 권세를 아들에게 맡기셨습니다(요 5:22). 사람은 죽음으로 모든 일이 끝나지 않고 죽음 후에 심판이 있습니다(히 9:27). 여기에 구원의 절대 필요성이 있습니다. 모든 대언자들이 증거한 바와 같이, 그분을 믿는 자들이 그 이름을 통해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바대로, 죄 문제가 인생의 가장 근본적 문제이므로 죄사함의 문제는 또한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셨습니다. 죄사함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다른 길은 없고 다른 방법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44-46절.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신님께서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즉각적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을 때 하나님의 구원이 그들에게 임하였습니다. 성신님의 강림은 구원의 표이었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욥바에서 온 할례받은 성도들은 이방인들에게도 성신 부어주심을 인해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후에 베드로는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다”고 증거합니다(행 11:17). 사람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성신님을 받습니다. 유대인 성도들이 놀랍니다.

47-48절. 이에 베드로는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신님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침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말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받으라(전통원문)”고 명하였습니다. 성신님 받은 그들이 물세례[침례]를 받음은 합당하였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여 그렇게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들과 죽음과 부활의 증인들에 의해 확립된 진리입니다. 2천년의 긴 시간이 흘렀으나 그들의 진실한 증언들은 오늘날도 우리에게 진실하게 다가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전한 내용은 오늘날 우리가 믿고 전할 내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 세상의 심판자이십니다. 또 우리는 그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얻었습니다. 죄 문제가 인류의 근본 문제이며, 죄사함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종교통합이니 비교종교학이니 모두 이단사이비입니다. 복음외에 예수님 외에 다른 구원방법은 없습니다. 아멘.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어버이주일에 사도행전 10장을 통하여 복음이 이방인 가정인 고넬료 가정에 전파되어 구원받게 한 내용을 읽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우리 가정도 구원받게 하옵소서. 고넬료처럼 평소에 금식기도에 힘쓰며 구제하며 경건한 생활을 한 것을 주님께서 보시고 베드로를 이 가정에 보내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온 가족이 성신님 받고 세례[침례] 받은 것 같이 임마누엘의 가정이 되게 하옵소서. 온 가족이 구원받게 하는 것이 어버이의 책임이며, 자녀들은 어버이의 믿음을 본받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가서 원어성경 강해설교문]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향한 사랑의 노래(아 1:8-11)

 

[아가서 원어성경 강해설교문]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향한 사랑의 노래(아 1:8-11)

아가서 1장에서 솔로몬 왕은 술람미 여인을 위하여 사랑의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술람미 여인의 외모를 보면서 사랑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과 성도와의 관계를 상징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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