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출애굽기 2장 히브리어 설교말씀 중에서 르우엘과 이드로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출애굽기를 읽다 보면 인물은 한 명인데 이름은 두 개로 나오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모세의 장인 르우엘과 이드로입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미디안으로 들어갔을 때 십보라의 아버지는 르우엘이라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이 지나고 나서 호렙산에 있을 때에는 이드로의 양을 쳤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사람의 이름을 통해서 모세의 미디안 광야 40년 생활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것을 세세하게 기록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기록했다면 성경 한 권이 나올 수도 없는 분량입니다. 그래서 구속사 관점으로 성경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서 하나님의 농축되어 있는 하나님의 의도를 발견해 보려고 합니다. 유대인들의 이름 속에는 하나님의 의도가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르우엘과 이드로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도를 발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르우엘과 이드로”(출 2:18; 3:1)
출 2:18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버지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
출 3: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우리는 모세의 장인 르우엘의 이름과 이드로의 이름을 통해서 모세의 광야 40년 삶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성경에서는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 들어가 하나님이 부르기까지 40년의 생활은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모세가 어떻게 생활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이드로의 양을 쳤다고 말씀합니다.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모세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생애와 공생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르우엘과 이드로의 이름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르우엘과 이드로의 이름을 통해서 나의 신앙생활을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간 나의 신앙은 르우엘과 같은 신앙인지 아니면 이드로와 같은 신앙인지를 깨닫기 바랍니다. 그럼 모세가 르우엘을 만났던 시간으로 가보겠습니다.
모세가 르우엘을 만났던 시기는 모세가 애굽에서 승승장구하고 애굽 사람을 쳐 죽임으로 도망자 신세가 되어 미디안 광야로 도망쳤을 때입니다. 모세는 현재 애굽 왕의 신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왕의 신분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려고 합니다. 세상의 직분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구원시키려고 하니 결국은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11절 바예히 바야밈 하헴 바이게달 모쎄 바예체 엘 에하이브 바야르 베시벨로탐 바야르 이쉬 미츠리 마케 이쉬 이브리 메에하이브
출 2: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 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모세가 장성한 후에 밖에 나갔더니 자기 형제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자기 형제를 때리고 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마음에 분노가 올라왔습니다. 자신의 형제를 애굽 사람이 때리는 것을 보니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자신의 신분을 가지고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애굽 사람을 죽였습니다.
12절 바이펜 코 바코 바야르 키 에인 이쉬 바야크 에트 하미츠리 바이테므네후 바홀
출 2:12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모세는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이고 모래 속에 감추었습니다. 모세가 혈기를 부렸던 이유는 왕족이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 죽인 사실이 바로에게 보고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구원시키려고 하는 것은 결국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모세는 세상의 왕족의 힘으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구원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인간이 지었던 원죄를 인간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가 세상의 왕족이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절대 구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15절 바이쉐마 파르오 에트 하다바르 하제 바예바케쉬 라하로그 에트 모쎄 바이베라흐 모쎄 미페네 파르오 바예쎄브 베에레츠 미드얀 바예쎄브 알 하베에르
출 2:15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인 사건이 바로 왕이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는 모세를 죽이려고 찾았고 모세는 바로의 얼굴을 피하여 미디안 광야로 도망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당시 바로는 모세의 적수인 투트모세 3세였습니다. 이 왕은 핫셉슈트의 양자인 모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실세를 가졌던 사람이 핫셉슈트였고 모세가 자신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죽이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모세를 죽일 기회라고 생각하여 찾았던 것입니다. 모세는 어쩔 수 없이 미디안 광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도 이 땅에 탄생되었을 때 유대 땅에 있지 못하고 애굽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모세의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가 됩니다.
14절 호 데 에게르데이스 파렐라벤 토 파이디온 카이 텐 메테라 아우투 뉘크토스 카이 아네코레센 에이스 아이귀프톤
마 2:14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니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도록 지시했습니다. 모세가 어쩔 수 없이 도망친 것처럼 주님도 애굽으로 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5절 카이 엔 에케이 헤오스 테스 텔류테스 헤로두 히나 플레로데 토 레덴 휘포 투 퀴리우 디아 투 프로페투 레곤토스 엑스 아이귀프투 에칼레사 톤 휘온 무
마 2: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헤롯이 죽기까지 애굽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예언인데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플레로오 4137 동사를 사용합니다. 문법은 동사 가정법 과거 수동태 단수 3인칭입니다. 가정법을 사용한 것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것이 성취될 수도 있고 성취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과거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해서 완전히 이루어졌다는 말입니다. 수동태는 구약의 예언자들이 한 예언은 예수님을 통해서 반드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구약의 예언은 신약에서 예수님을 통해서 모두 성취가 되었습니다.
모세도 투트모세 3세가 죽기까지 미디안 광야에서 머물렀습니다. 이것이 모세의 사생애 기간입니다. 사람에게는 항상 사생애 기간이 있습니다. 나의 생각과 뜻대로 살았던 기간이 있습니다. 모세도 세상에서 승승장구하면서 핫셉슈트 공주의 양자로 들어가 왕족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미디안 광야에서 처절하게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자신의 지위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니 문제가 생깁니다. 인간의 힘으로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교만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버리지 않고 미디안 광야에서 사람을 붙여주십니다.
18절 바타보나 엘 레우엘 아비헨 바요메르 마두아 미하르덴 보 하욤
출 2:18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버지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
르우엘에게는 일곱 명의 딸이 있습니다. 딸들이 양을 치러 나갔다가 모세를 만나게 되었고 모세의 도움으로 목자들로부터 봉변당하지 않고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모세를 데리고 자신의 아버지 르우엘에게 왔습니다. 현재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 아무것도 없이 혈혈단신 몸 하나 빠져나왔습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가 가장 낮은 자리로 왔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가장 높으신 하나님께서 가장 낮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6절 호스 엔 모르페 데우 휘파르콘 우크 하르파그몬 헤게사토 토 에이나이 이사 데오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동등함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사생애의 기간을 보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지만 성육신 하셔서 인간의 죄악 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7절 알르 헤아우톤 에케노센 모르펜 둘루 라본 엔 호모이오마티 안드로폰 게노메노스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주님은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비하입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 오셨습니다. 모세가 애굽의 가장 높은 왕족으로 살다가 미디안 광야로 쫓겨나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온 것의 그림자입니다.
8절 카이 스케마티 휴레데이스 호스 안드로포스 에타페이노센 헤아우톤 게노메노스 휘페코오스 메크리 다나투 다나투 데 스타우루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는데 곧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셔서 나의 원죄를 모두 청산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모세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낮아지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현재 모세가 미디안의 제사장 르우엘을 대면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사생애가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르우엘의 이름을 통해서 우리가 더 면밀하게 하나님의 의도를 살펴보겠습니다.
‘르우엘’이라는 단어는 (르우엘 7467) 르우엘이며 이 뜻은 ‘하나님의 친구’ 또는 ‘전능자의 친구’라는 의미입니다. 모세는 지금 아무것도 없습니다. 미디안 광야로 몰려서 혼자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를 버리지 않고 미디안 제사장 르우엘을 보내주셨습니다. 르우엘은 하나님의 대신자로서 모세를 하나님의 친구처럼 보살펴 주게 됩니다. 모세는 르우엘을 만남으로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항상 자신과 함께하는 친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인생에서 절망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친구가 되어 주셔서 인생에서 교육시켜 주십니다. 르우엘은 미디안의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르우엘의 조상을 따라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2절 바텔레드 로 에트 지므란 베에트 요크솬 베에트 메단 베에트 미드얀 베에트 이쉐바크 베에트 쓔아흐
창 25:2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고
미디안은 아브라함과 그두라의 사이에서 탄생된 사람입니다. 미디안 족속의 조상이 되는 인물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서 미디안에게도 아브라함이 조상이 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조상이 되는 인물입니다. 르우엘은 미디안 족속으로서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그렇다면 르우엘은 미디안 광야에서 모세를 영적으로 훈련시켰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보낸 자로서 모세의 곁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가르치고 훈련시켜서 애굽에서 배우지 못했던 하나님에 관하여 배우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르우엘의 양만 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관하여 배우게 됨으로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시키는데 준비하는 과정으로 미디안 광야가 훈련의 과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도 하나님이 나의 친구가 되어 사생애 기간의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내가 세상에서 나의 힘으로 사업을 하고, 학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신앙생활을 하지만 나의 의만 드러내려고 했고 나의 힘으로만 하려고 했던 때가 있습니다. 애굽에 있었던 모세의 삶처럼 자신의 힘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혈기왕성한 때가 있었습니다. 이런 힘으로 나의 인생을 살아왔는데 하나님은 그 높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미디안과 같은 장소로 나를 내려놓게 하시고 르우엘과 같은 자를 붙여주셔서 하나님이 나의 친구가 되어 인생을 다시 훈련시키시고 주님에 관하여 깨닫게 해주는 광야의 훈련 기간이 있습니다. 현재 내가 광야의 훈련 기간이라면 하나님은 반드시 나를 사용하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고 나의 친구가 되어 주셔서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함께 걷고 있습니다. 우리는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14절 휘메이스 필로이 무 에스테 에안 포이에테 호사 에고 엔텔로마이 휘민
요 15: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주님도 말씀합니다.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했습니다. 포이에오 4160 동사입니다. 문법은 동사 가정법 현재 능동태 복수 2인칭입니다. 가정법은 주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을 지키는 자가 있고 지키지 않는 자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현재 시제는 지금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지키면 주님의 친구가 되고 지키지 않으면 친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지키면서 행동에 옮기게 됩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미디안 광야로 도망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행할 수 있도록 르우엘을 통해서 교육받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자신의 환경과 능력이 좋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따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바닥을 치면 그때서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이제 우리가 미디안과 같은 광야에 있다면 주님의 친구가 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는 삶을 살면서 주님의 친구가 됩니다. 주님은 지금도 나의 친구가 되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이드로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도를 알아보겠습니다.
1절 우모쎄 하야 로에 에트 촌 이트로 호트노 코헨 미드얀 바이네하그 에트 하촌 아하르 하미드바르 바야보 엘 하르 하엘로힘 호레바
출 3: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지금은 시간이 흘러 미디안에서 4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40년 전의 똑같은 사람의 이름을 르우엘로 기록하고 40년이 흐른 지금은 이드로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의도가 있습니다. 40년이 흐른 지금은 모세의 공생애 기간이 시작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사생애의 기간이 끝나고 이제는 하나님의 전적인 사역을 해야 하는 시점에 왔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도 요셉의 아들로 살았을 때는 사생애의 기간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은 후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공생애의 기간을 살게 됩니다.
‘이드로’라는 단어는 (이트로 3503) 이드로이며 이 단어는 יתר(야타르 3498) 초과하다, 남다, 탁월하다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모세는 40년 후에는 이드로의 양 떼를 쳤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모세의 미디안 광야 40년 생활은 하나님이 만족하리만큼 탁월하게 시험에 통과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초과하여 남겼습니다. 다른 사람은 겨우겨우 통과했다면 모세는 월등히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떻습니까? 모세처럼 하나님의 시험을 탁월하게 통과했습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월등하게 준비를 잘하고 점수도 초과하여 남기니 이제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부르게 됩니다. 모세도 모든 준비가 끝나니 하나님이 호렙산에서 불러서 공생애의 사역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사생애의 기간이 끝나니 하나님의 아들로서 공생애 사역을 통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완수하셨습니다. 우리의 사생애 기간은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서 나의 의를 나타내는 삶을 살았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거듭나는 것이 공생애 기간입니다.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은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이게 됩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이 불러서 하나님이 원하는 사역을 맡겨 주십니다.
지금 현재 나의 신앙은 어떤 신앙입니까? 모세처럼 미디안 광야로 혈혈단신 쫓겨나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살고 있습니까? 아직도 세상에서 나의 힘으로 어떤 일을 하려고 도모하면서 일이 안 되면 낙심하고 있습니까? 이럴 때 하나님은 친구가 되어 주셔서 르우엘과 같은 사람의 도움의 손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를 만나서 나의 의는 사라지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바뀔 수 있도록 훈련시킵니다. 모세도 처음에는 자신의 힘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40년이 흐른 후에는 자신은 절대 하지 못한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에 관하여 깨닫고 알고 나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전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열정을 다해서 하고 있다면 나는 사생애 기간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르우엘과 같은 자로부터 신앙훈련을 받고 40년이 흘러 이드로와 같은 자를 만나면 모든 훈련이 끝났고 하나님이 불러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때는 나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하는 공생애 기간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거듭난 자의 삶입니다. 현재 나는 르우엘과 같은 자 안에 있는지 아니면 이드로와 같은 자 안에 있는지를 깨닫고 아직도 내가 교회에는 나왔지만 이드로와 같은 시험을 초과하여 통과하지 못했다면 나의 모든 의를 주님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의 의를 기다리면서 주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는 신앙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태복음 22장 히브리어 설교말씀] “천국의 혼인잔치비유”(마 2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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