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히브리어 강해설교

[출애굽기 히브리어 주일설교] 유대인 산파 십브라와 부아(출 1:15-22)

르호봇 2021. 2. 2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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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출애굽기 히브리어 주일설교 중에서 유대인 산파 십브라와 부아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고 있는데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나오면서 노예로 전락되어 버렸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은 유대인 산파에게 명령하기를 유대인 여자면 생명을 살려주고 남자아이면 죽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 말살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번성하면 애굽에 위협이 될까 봐 남자아이를 죽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면서 예수님 당시를 떠올리게 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헤롯이 남자아이를 죽였습니다. 히브리 산파 중에 십브라와 부아라는 여인이 있습니다.

 

이 여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의 바로 왕의 말을 듣지 않고 남자아이를 살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였기 때문입니다. 이 두 사람은 그 당시 히브리 산파들의 대표들입니다. 그 당시 히브리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목숨 걸고 히브리 남자아이를 살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을 가지고 행동에 옮겼더니 하나님은 이 여인들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마지막을 살아가는 우리도 십브라와 부아의 신앙을 본받아 세상의 통치권자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먼저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따르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유대인 산파 십브라와 부아”(출 1:15-22)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애굽으로 먼저 보내셔서 하나님의 민족을 만들기 위하여 준비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야곱의 가족들이 애굽의 고센 땅에서 거주하면서 선민으로서의 삶을 준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름지고 비옥한 고센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풍요롭게 하시고 번성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요셉이 죽고 나서 시간이 흘러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나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을 핍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8절은 바야콤 멜렉크 하다쉬 알 미츠라임 아쎄르 로 야다 에트 요세프입니다.

 

1: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요셉을 전혀 알지 못하는 왕이 나왔습니다. 새왕인데 하다쉬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하다쉬는 전혀 새로운 이라는 의미입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전혀 새로운 왕이 나타났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요셉이 통치하고 있을 때는 애굽의 왕들이 요셉에게 모든 통치권을 넘겨주었는데 요셉이 죽고 난 이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면서 핍박을 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역사적으로 보면 요셉이 통치하고 있던 때는 셈 계통의 애굽의 17 왕조인 힉소스 왕조시대이기 때문입니다. 힉소스 왕조는 강력한 힘으로 애굽을 점령하여 약 150년 동안 애굽을 통치했던 왕입니다. 셈계통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셈족인 요셉에게도 우호적으로 대하여 애굽을 통치할 수 있는 총리대신으로 세운 것입니다. 셈족이 아니었다면 요셉은 애굽의 총리대신까지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던 것을 우리가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요셉을 지지하던 힉소스 왕조가 오래가지 못하고 애굽의 18 왕조의 첫 번째 왕인 아모세 1세에게 정복당하여 힉소스 왕조는 무너지고 셈족들은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아모세의 뒤를 이은 왕이 투트모세 1세입니다. 이 사람은 왕족이 아닌 군인 출신으로서 아모세 1세의 딸과 결혼함으로 왕족에 편승되게 됩니다. 이 왕이 애굽의 바로로서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며 히브리 모든 남자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했던 왕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놀랍게도 고난과 핍박을 받을 때에 더 왕성하고 번성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통을 받는 가운데서도 더욱 번성하여 많은 히브리인들이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가장 악독한 시기에 항상 구원자가 나타나게 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십브라와 부아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할 자인 모세의 탄생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도 가장 어둡고 악할 때에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십브라와 부아의 신앙을 통해서 메시아가 오시는 길을 예배하고 준비하는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15절은 바요메르 멜렉크 미츠라임 라메얄레도트 하이브리요트 아쎄르 솀 하아하트 쉬프라 베솀 하셰니트 푸아입니다.

16절은 바요메르 베얄레데켄 에트 하이브리요트 우레이텐 알 하오브나임 임 벤 후 바하미텐 오토 베임 바트 히 바하야입니다.

 

1:15-16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애굽의 왕인 투트모세 1세는 히브리인들이 번성하는 꼴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 산파들을 불러다가 해산을 도울 때에 아들이 나오면 죽이고 딸이면 살려두라고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생명의 씨를 말려버리겠다는 의도입니다. 악한 자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들이 번성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헤롯왕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십브라와 부아의 이름을 통하여 이들의 신앙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해산을 하는데 얄라드 3205라는 동사입니다. 피엘 강조 능동태를 사용합니다. 해산할 시기가 완전히 찼을 때를 말합니다. 산모가 완전히 아이를 낳을 시기가 되었을 때 남자는 죽이고 여자 아이면 살리라고 바로 왕이 명령을 내립니다.

 

‘십브라’라는 단어는 쉬프라 8236입니다. 십브라, 라는 뜻이며 샤파르 8231이라는 동사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빛나게 되다, 아름답게 되다, 기쁘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십브라는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히브리 남자아이들을 살려주게 됩니다.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하는 일입니다. 군인 출신인 악한 왕의 명령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을 더 경외하고 더 두려워했기 때문에 나온 행동입니다. 이런 십브라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십브라의 신앙과 믿음을 빛나게 하셔서 지금까지 이름이 전승되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그의 인생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주셔서 큰 축복을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십브라는 애굽의 바로 왕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이것은 경외했다는 말씀입니다. 두려워했다는 야레 3372라는 동사는 경외하다는 뜻입니다. 십브라와 부아가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에 남자아이를 살렸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십브라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런 신앙을 가질 때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빛나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의 왕들을 의지하면서 살다 보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신앙으로 세상을 이겨나가야 하겠습니다. 사탄의 세력과 맞서 싸우면서 복음의 말씀으로 승리해야 하겠습니다.

 

부아’라는 단어는 푸아 6326입니다. 부아,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야파 3313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빛나다, 번쩍이다, 빛을 주다, 빛을 비추다, 라는 뜻입니다. 부아라는 인물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애굽의 바로 왕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의 빛으로 올 모세를 준비하게 만들었습니다. 만백성에게 구원의 빛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부아의 인생을 빛나게 하심으로 지금까지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산파의 인생이 영원히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는 영광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고 주님의 빛을 받은 자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름이 지워지지 않는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16절은 토데 헤로데스 이돈 호티 에네파이크데 휘포 톤 마곤 에뒤모데 리안 카이 아포스테일라스 아네일렌 판타스 투스 파이다스 투스 엔 베들레엠 카이 엔 파신 토이스 호리오이스 아우테스 아포 디에투스 카이 카토테로 카타 톤 크로논 혼 에크리보센 파라 톤 마곤입니다.

 

2: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때에도 헤롯이라는 교활한 인물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에게 메시아가 태어난 곳이 어디인지를 물어보고 자신에게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은 헤롯을 만나지 않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고 이 사실을 안 헤롯이 화가 나서 두 살 아래로부터 다 죽이는 참혹한 사태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때에 예수님을 보호하고 애굽으로 피신했던 사람이 마리아와 요셉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십브라와 부아처럼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준비하고 보호했던 것입니다.

죽이니라는 단어가 아나아이레오 337입니다. 직설법 과거 능동태 단수 3인칭입니다. 헤롯은 동방박사가 자신을 속이고 자신의 고국으로 갔다는 것을 알고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모두 죽였습니다. 직설법은 실제로 그 당시에 사내아이를 죽였다는 말입니다. 과거는 이렇게 헤롯은 사내아이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탄은 메시아가 이 땅에 탄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은 남자이거든 죽이고 딸이면 살려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번역본에는 없지만 원문에는 있는 단어입니다.

 

알 에벤 68 , 반석, 보석, 이라는 뜻입니다. 헬라어로는 틱토 5088 낳다, 해산하다, 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을까요? 돌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반석이며 보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면 죽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탄생하면 죽일 것을 이미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벤은 히브리어 알파벳 상형으로 보면 알레프와 벤이라는 아들의 뜻이 합성되어 있습니다. 알레프는 황소에서 왔으며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에벤 돌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에서도 모퉁잇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텍세타이 데 휘온 카이 칼레세이스 토 오노마 아우투 이에순 아우토스 가르 소세이 톤 라온 아우투 아포 톤 하마르티온 아우톤입니다.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하나님께서 예언하셨는데 아들을 낳으면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낳으리니’ 라는 단어가 틱토입니다. 투트모세 1세가 남자아이들을 죽이라는 것은 앞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일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사라지면 더 이상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예수님이 사라지고 없다면 더 이상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기 때문에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탄은 모세 시대나 헤롯 시대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를 죽이려고 합니다. 구약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지 못하도록 역사하였고 에덴동산에서는 죄를 짓게 만들어 하나님께 진노받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악한 사탄의 존재들과 복음을 싸워서 승리해야 합니다.

17절은 바티레난 하메얄레도트 에트 하엘로힘 베로 아슈 카아쎄르 디베르 엘레헨 멜렉크 미츠라임 바테하예난 에트 하옐라딤입니다.

 

1: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히브리 산파들은 애굽의 왕의 명령을 거역하게 됩니다. 자신들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남자아이를 살렸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살렸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살린지라’라는 단어는 하야 2421 와우접속사. 동사, 피엘 강조 능동, 미완료, 여성, 3인칭, 복수입니다. 살게 하다, 보존되다, 구원하다, 라는 뜻입니다. 히브리 산파들이 남자아이들을 살린 것은 바로 앞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맥을 이어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와우접속사 문법은 시제를 바꾸어서 해석하는 문법입니다. 미완료이니 완료로 해석하면 남자아이를 완전히 살렸다는 의미입니다. 피엘 강조 능동으로 살렸으니 생명을 내걸고 십브라와 부아가 남자아이를 애굽의 바로 왕 모르게 살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들의 헌신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자신들의 유익만을 위하여 남자아이들을 죽였다면 모세도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구속의 맥은 끊어지게 되고 결국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원받지 못하고 죽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믿음과 헌신으로 생명이 보존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십브라와 부아의 신앙을 통해서 지금도 사탄의 무리들은 선택받은 백성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여 영혼들을 살려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능력이 많으신 분이지만 사람들을 통하여 일을 하시고 있다는 것을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십브라와 부아와 같은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섬기면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십자가 복음이 세상으로 퍼져나가기를 주님은 원하고 있습니다. 애굽과 같은 세상에서 복음의 빛이 나가서 이스라엘 백성처럼 사탄의 종노릇 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해야 하겠습니다.

20절은 바예이테브 엘로힘 라메얄레도트 바이레브 하암 바야아체무입니다.

 

1: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하나님이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번성하고 매우 강성해지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십브라와 부아의 헌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번성하게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은혜를 베푸시니’라는 단어가 야타브 3190 와우접속사, 동사, 히필 사역 능동,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입니다. 훌륭하다, 아름답다, 마음에 들다, 좋게 여기다, 복을 내리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아주 훌륭한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들었고 하나님의 눈에 좋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큰 축복으로 보답해 주신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까지도 복을 받는 통로가 된 것입니다. 사역 능동은 하나님께서 직접 즉시로 히브리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을 말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을 하면 이렇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럼 우리는 어떠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까? 나의 믿음과 신앙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산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아무도 할 수 없는 것을 이들은 했기 때문에 십자가 복음을 선포할 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을 때에 놓치지 않고 기회를 잡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도 이렇게 사명의 기회를 주실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에 어떤 사람들은 환경을 탓하고 물질을 탓하고 지식을 탓하면서 하나님의 사명을 회피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미 마음 가운데 외적인 손해가 있을 것 같아서 포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사명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십브라와 부아는 외형적인 것을 보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신앙을 가지고 주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여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환경적인 것 지식적인 것 걱정하지 않습니다. 먼저는 내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겠다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부족한 것들은 하나님께서 채워 가십니다. 하지만 마음에 포기하고 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혹시 저와 여러분들 중에 하나님께서 사명을 맡겨주셨는데 나의 생각으로 아니면 육적인 불이익이 올까 봐! 회피하거나 회피한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회개하여 기도하시고 다시 한번 나에게 기회를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회라는 놈은 앞에서는 여자의 긴 머리털과 같아서 앞에 있을 때는 확실하게 잡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나를 지나치는 순간부터는 민머리기 때문에 잡으려고 해도 절대 잡히지 않는 것이 기회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시려고 주신 기회들을 내 앞에 왔을 때에 확실히 잡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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