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서 18장에서는 24개의 금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인의 독선과 권력 남용의 위험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미련한 자의 입에서 나오는 것으로 자신이 패망할 것에 대해서 주의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바른 마음을 가져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말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게으름, 겸손, 신중함, 아내(잠 18:1-24)
1-4절, 스스로 나뉨, 미련함, 악함, 지혜
[1절]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 . . .
본문은,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고 말한다.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뉜다’는 말은 ‘진리 문제로 나뉘는 일 외에’라는 단서가 있다고 본다. 성경은 진리 문제에 관해서는 상대방과 교제를 끊으라고 교훈한다. 로마서 16:17,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디도서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데살로니가후서 3:6,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그러나 진리 문제가 아니고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 즉 상대방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화목하고 일치단합하고 협동하지 않고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이다. 그는 교만한 마음과 명예욕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겸손한 사람은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고 협동하고 화합을 이루지만, 교만한 사람은 남을 무시하고 시기 질투하며 화평과 질서를 깨뜨리고 다투고 분열한다.
본문은 “[그는]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한다”고 말한다. 자기 욕심을 따르는 자는 모든 지혜를 대항해 싸운다. 지혜의 말은 성결과 화평, 양선과 온유를 권장한다. 야고보서 3:17-18,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그러나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는 지혜의 말을 듣지 않고 대적하고 배척한다.
[2절]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 . . .
본문은,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고 말한다. 명철은 하나님의 지혜이며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 곧 성경 교훈이다. 그것은 경건과 선에 대한 가르침과 깨달음이다. 그런데 미련한 자는 그러한 명철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러나 복 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한다. 시편 1:2, “[복 있는 자는]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그러므로 시편 119편 저자는 하나님 말씀을 금은보다 더 귀히 여겼고(시 119:72) 꿀보다 더 달게 여겼다(시 119:103). 솔로몬은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이라”(잠 5:1)고 말했는데, 그의 지혜는 경건함과 선함에 대한 깨달음이다.
본문은 또, 미련한 자는 자기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한다고 말한다.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며(잠 12:15) 자기 미련한 것을 나타내며(잠 13:16) 그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는다(잠 15:2).
성도는 성경에 명확히 계시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자기 의사만 주장치 말아야 한다. 그런 주장은 교만과 독선일 수 있다. 사람의 의견은 바를 수도 있으나 잘못될 경우도 있다. 우리는 이성과 양심에 비추어 잘못된 생각은 언제든지 고치거나 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다른 이의 의견을 존중하며 들어야 한다. 그것이 겸손과 사랑이다. 특히, 경건한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이므로 그의 의견은 바르고 좋은 것이 많을 것이다.
독선과 확신은 서로 다르며 확실히 구별되어야 한다. 독선은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채 자기의 의견만 계속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지만, 확신은 성경 교훈을 바르게 이해하고 굳게 붙들고 충성하는 것이다.
[3절] 악한 자가 이를 때에는 멸시도 따라오고 부끄러운 것이 . . . .
본문은, “악한 자가 이를 때에는 멸시도 따라오고 부끄러운 것이 이를 때에는 능욕도 함께 오느니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비록 하나님 앞에서 죄악된 존재이지만, 양심이 있기 때문에 악한 자를 멸시하고 비난한다. 더더욱,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재판자로서 악인들에 대해 공의의 징벌을 내리심으로 그들로 수치를 당케 하신다.
이런 일들은 인간 사회에서 얼마든지 있으나 성경에도 많은 예들이 있다. 예를 들어,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아버지를 대항하여 반역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하는 듯하였으나 마침내 상수리나무에 그 머리털이 감겨 매달렸고 요압의 창날에 비참히 죽임을 당하였다(삼하 18장).
다윗의 모사 아히도벨도 반역자 압살롬과 힘을 합쳐 다윗을 대적하였으나(삼하 15:31), 그의 모략이 시행되지 못하자 판세를 예견하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는 가련한 최후를 맞았다(삼하 17:23).
유다 왕 여호람은 이스라엘 왕 아합의 집의 길로 행하며 악을 행하였고 자기의 모든 아우들과 이스라엘 백성 몇 사람을 칼로 죽였는데, 그때 에돔이 배반하였고 립나도 배반하였으며, 그의 몸에는 창자에 고치지 못하는 중병이 들었고 2년 만에 그 창자가 빠져나와 죽었고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다고 성경에 기록되었다(대하 21장).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은 30을 받고 주님을 배신하였으나, 예수께서 정죄되심을 보고 그 일을 후회하여 그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마 27:3-5).
[4절] 명철한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샘은 . . . .
본문은, “명철한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샘은 솟쳐 흐르는 내와 같으니라”고 말한다. ‘명철한’이라는 말은 원문에 없는 것을 번역자들이 보충한 것이므로 우리 말 성경에 작은 글씨로 되어 있다. 명철한 자의 입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의 말을 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우리는 때때로 사람의 말에 담긴 뜻을 다 알기 어렵다. 의인의 말도, 악인의 말도 그러하다. 그것은 또 사람의 말이 풍성하다는 뜻도 가질 것이다. 말은 하여도 하여도 끝없이 나온다.
말은 사람의 마음의 표현인데, 사람은 자기 마음을 다 표현하지 않고 일부만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은 그의 말로 일부분 표현되고 어느 정도 드러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더욱이, 악인들은 자기 마음을 정반대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들은 마음으로는 상대를 미워하면서도 말로는 위하는 것처럼 한다. 그것은 물론 거짓이요 위선이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다.
본문은 “지혜의 샘은 솟쳐 흐르는 내와 같다”고 말한다. ‘지혜의 샘’은 지혜가 물처럼 나오는 샘을 묘사한다. ‘솟쳐 흐르는 냇물’은 그 샘이 흘러 넘쳐 시내가 되어 메마름이 없고 다함이 없고 그침이 없이 풍성하게 흘러 내려감을 나타낸다. 그 샘과 시내는 성경말씀과 성령을 가리킨다. 주께서는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성령을 가리켰다(요 7:37-39). 성도는 성경말씀과 성령의 감동으로 풍성한 지혜를 누린다.
우리는 겸손한 자가 되고 명예욕을 포함하여 세상의 헛된 욕심들을 다 버리고 진리 안에서 형제들과 화목하며 선한 일에 협력하자.
우리는 성경적 지혜의 교훈을 기뻐하고, 성경에 근거치 않는 문제에 대해서는 자기 의견만 주장치 말고 다른 이의 의견도 존중하자.
인간의 가치는 경건과 도덕성에 있으며, 경건하고 선하게 사는 자는 존귀와 영광을 얻고, 악하게 사는 자는 멸시와 수치를 당할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성령 충만함으로써 풍성한 지혜의 물을 길어내고 그 지혜로 자신을 가르치고 남에게 유익을 끼치자.
5-8절, 공정, 미련한 말, 남의 말
[5절] 악인을 두호하는 것과 재판할 때에 의인을 억울하게 하는 것이 선하지 아니하니라.
본문은 잘못된 판단을 정죄한다. 악인을 악인으로 평가하지 않고 두호하는 것, 즉 자신과의 친분 관계나 이해 관계 등의 이유로 악인을 용납하고 옹호하는 것은 선한 일이 아니고 악한 일이다.
또 재판할 때에 의인을 억울하게 하는 것도 선하지 않고 악한 일이다. ‘억울하게 하는 것’이라는 원어(레핫토스)는 ‘옆으로 밀치는 것, 밀어 제치는 것’을 뜻한다. 의인을 인정하는 대신 그를 억울하게 만들며 공의를 왜곡시키는 것은 선하지 않고 악한 일이다.
이사야 5:23, “[화 있을진저,] 그들은 뇌물로 인하여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의를 빼앗는도다.” 잠언 17:15, “악인을 의롭다 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자는 다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느니라.” 잠언 24:23-25, “재판할 때에 낯을 보아주는 것이 옳지 못하니라. 무릇 악인더러 옳다 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요 국민에게 미움을 받으려니와 오직 그를 견책하는 자는 기쁨을 얻을 것이요 또 좋은 복을 받으리라.” 잠언 28:4,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
우리는 선악을 바르게 분별하고 판단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무엇보다 우리의 양심이 깨끗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양심이 때가 끼듯이 더러워지거나 무디어지거나 심지어 마비되지 않고, 깨끗하고 선한 상태로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또 그러려면 우리는 물질욕이나 명예욕이 없어야 한다. 우리는 특히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만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의 발걸음에 빛이 되며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기준이 된다.
[6절]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미련한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경외하지 않고 섬길 줄 모르며 그의 뜻을 행하지 않는 자이다. 그는 흔히 죄 가운데 살며 불경건하고 교만하며 사랑이 없고 남을 미워하고 거짓되고 또 게으르고 자기 일에 충실치 않으며 남의 일에 참견하며 남을 논단한다.
미련한 자의 입술의 말은 교만하고 악하며 욕심이 있고 거짓되며 무례하고 무질서하고 불평하고 거역하는 말이다. 거기에서는 싸움과 다툼과 분쟁이 생긴다. 반면에, 지혜로운 자의 말은 겸손하고 선하며 사랑이 있고 남을 배려하고 예절이 있고 감사하며 진실하고 질서를 지키는 말이다. 거기에는 화목이 있고 덕을 세우고 일치단합이 있다.
본문은 미련한 자의 입이 매를 자청한다고 말한다. 잠언에는 비슷한 구절이 몇 개 더 있다. 잠언 10:13, “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어도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 잠언 19:29, “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니라.” 잠언 26:3,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자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
미련한 자녀에게는 부모의 매가 있고 미련한 학생에게는 선생의 매가 있으며 미련한 종에게는 주인의 매가 있다. 그러므로 잠언 22:15는,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고 말한다. 이런 인간의 매뿐 아니라, 하나님의 매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미련한 자의 악행에 대해 공의롭고 공평한 징벌을 내리신다. 미련한 자의 미련한 행위는 매를 불러온다.
[7절]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미련한 자는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하나님의 뜻을 행치 않는 자이다. 미련한 자의 입의 말은 교만한 말, 불신앙적인 말, 부정적인 말, 불평하는 말, 거역하는 말, 미워하는 말, 무례한 말, 훼방하는 말, 더러운 말, 거짓된 말 등 죄악된 말이다.
미련한 자의 입의 말은 그의 멸망이 된다. 미련한 자의 말은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고 그 죄는 그를 죽게 만들고 멸망시키는 것이다. 시편 1: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누가복음 13: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항상 원망하고 불평하며 하나님과 모세를 거역했다. 그들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열두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냈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명의 정탐꾼들은 부정적 보고를 하였다. 백성은 그 보고를 듣고 소리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통곡하였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려 하였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셔서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40년 동안 유리하는 자가 되고 마침내 다 죽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민 14:1-4, 30-33).
본문은 또 그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된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자는 의롭고 선한 말을 하며 마귀의 올무에 걸리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막아주시고 그를 지켜 주신다. 그러나 미련한 자의 말, 곧 그 말의 실수와 범죄는 죄의 올무, 마귀의 올무, 멸망의 올무가 되어 더 큰 죄를 짓게 하고 마침내 멸망에 이른다.
[8절]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성경에서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라는 말은 나쁜 뜻으로 쓰인다. 잠언 20:19는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라고 말한다. 사람이 두루 다니며 한담하다 보면 남의 말도 하게 되고, 쓸데없이 남의 말을 하다 보면 그의 흠을 말하고 흉이나 보고 심지어 그의 비밀까지 말하게 된다. 그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간다. 그런 말은 선하고 유익한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그런 말을 잘 잊어버리지도 않고 잘 기억한다. 이것은 인간 본성의 부패성과 연약성을 잘 나타낸다. 우리는 차라리 성경 읽기와 연구하기, 그리고 성경 암송에 힘쓰고, 또 전도와 봉사에 힘써야 할 것이다.
성도의 삶은 각자 자기 일에 충실하고 또 하나님의 일, 곧 전도와 봉사에 힘쓰는 것이다. 자기 일에 충실하고 하나님의 일, 곧 전도와 봉사에 힘쓰는 성도는 남의 일에 간섭하고 참견할 시간이 없다.
우리는 남의 말을 하지 말고 특히 남을 비방하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모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출 23:1). 잠언 20:19는,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고 말한다. 베드로전서 2:1은,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모든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선하고 깨끗한 양심을 지키고 항상 선악을 바르게 분별하고 판단하여, 악인을 두호하거나 의인을 억울케 하는 악한 일을 하지 말자.
우리는 교만하고 악하고 거역하고 불평하는 미련한 자가 되지 말고, 겸손하고 사랑하고 감사하고 덕스러운 말을 하는 지혜자가 되자.
우리는 멸망에 이르는 말을 하거나 죄의 올무, 마귀의 올무, 죽음과 패망의 올무에 걸리게 하는 말을 하는 미련한 자가 되지 말자.
우리는 각자 자기의 일에 충실하고 하나님의 일, 즉 전도와 봉사의 일에 힘쓰고,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지 말고 듣기도 좋아하지 말자.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거나 듣기를 좋아하는 것은 좋은 행위가 아니다.
9-12절, 나태, 하나님의 이름, 재물, 겸손
[9절] 자기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게을러서는 안 된다. 학생은 자기의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직장인은 자기의 일을 부지런히 하지 않고 윗사람의 눈가림만 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결혼한 여인들은 자기 남편을 잘 돕지 않고 아이들을 잘 키우지 않고 집안 살림의 일을 잘 하지 않고 밖으로 나도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자기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패가(敗家)하는 자이다. ‘패가하는 자’라는 원어(바알 마쉬키스)는 ‘멸망하는 자’라는 뜻이다(BDB, NASB, NIV). 게으른 학생은 진학에 실패할 것이고, 게으른 직장인은 해고될 것이다. 게으른 부인은 가정 경제를 파탄시켜 부부가 이혼하고 아이들이 고아원으로 보내지기도 할 것이다.
성도는 자기의 일을 부지런히 행해야 한다. 야곱은 하란에서 20년간 외삼촌 라반의 밑에서 일하면서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다고 고백하였다(창 31:40).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가 일할 때 주인이 그를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맡길 정도로 정직하고 부지런한 자이었다(창 39:3, 6). 다윗은 아비의 양을 지킬 때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다고 고백할 정도로 충성된 목동이었다(삼상 17:34-35).
현숙한 여인은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그 집 사람에게 식물을 나눠주며 여종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 그 집안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않는 자라고 잠언 31장에 묘사되어 있다(잠 31:13, 15, 27).
[10절]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사람의 이름은 그의 인격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인격 곧 하나님 자신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이다. 다윗은 시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를 건지시는 자, 나의 하나님, 나의 피할 바위, 나의 방패, 나의 구원의 뿔, 나의 산성이시라고 고백하였다(시 18:2).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원수들이 결코 정복할 수 없는 망대이시다. 하나님보다 힘센 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 하나님을 이길 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
본문은 의인이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견고한 망대 안으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는다고 표현한다.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며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가리킨다. 의인은 시시때때로 하나님의 품 안으로 달려간다. ‘달려간다’는 말은 의지하고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특히 어렵고 위험한 일을 만났을 때, 사탄과 악령들과 악인들의 공격이 있을 때, 또는 무서운 질병이나 경제적 어려움, 예기치 못한 큰 사고 등을 당했을 때 그렇게 한다. 다윗은,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심이니이다”고 고백하였다(시 61:3).
의인은 하나님 안에 피할 때 안전함을 얻는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시다. 그는 모든 원수들을 막아주시고 물리쳐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켜 주신다. 시편 91:1-7은 말하기를,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라고 하였다.
[11절]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같이 여기느니라.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나 높은 성벽과 같다. 부자는 재물을 그의 견고한 성이나 높은 성벽같이 의지한다. 사람은 무지하므로 하나님 대신에 재물을 의지하기 쉬우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구원받기 어렵다. 재물은 경건에 장애물이 된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고 말씀하셨다(마 19:23-24).
실상, 재물은 사람에게 견고한 성과 높은 성벽이 되지 못한다. 재물은 환난 날에 무익하다. 재물은 사람에게 갑자기 닥치는 무서운 질병이나 전쟁이나 기근이나 대형사고를 막을 수 없다. 잠언 11:4,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스바냐 1:18은,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였고, 에스겔 7:19는, “그들이 그 은을 거리에 던지며 그 금을 오예물같이 여기리니 이는 여호와 내가 진노를 베푸는 날에 그 은과 금이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하며 능히 그 심령을 족하게 하거나 그 창자를 채우지 못하고 오직 죄악에 빠치는 것이 됨이로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성도는 재물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재물을 사랑하는 자는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가 자라지 못함과 같다(눅 8:14). 디모데전서 6:10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말한다. 차라리 가난한 자가 하나님께 대해 부요하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고 말하였다(약 2:5). 성도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견고한 망대이시다(잠 18:10).
[12절]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마음의 교만은 자신을 높게 평가하는 마음이다. 사람은 왜 자신을 높게 평가하는가? 그것은 자신이 세상의 것, 즉 돈이나 미모나 학력이나 사회적 신분이나 권세 등을 남보다 더 가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자신이 남보다 하나님을 더 잘 믿고 남들보다 더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영적 교만 때문에도 그러하다고 본다. 교만은 마귀의 죄이며 마귀적인 죄이다. 사람의 마음의 병, 인격의 병 중에 가장 중한 병은 교만한 마음이라는 병이다.
사람은 마음이 교만하면 멸망한다. 잠언 16:18도,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말한다. 왜 교만하면 멸망하는가? 하나님께서 그를 물리치시고 넘어뜨리시기 때문이다. 교만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6, 7가지의 죄악들 중 첫 번째 죄악이다(잠 6:16-17). 그러므로 베드로전서 5:5는,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이 겸손하면 존귀케 된다. 잠언 15:33도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말한다. 주께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고(마 20:26-27), 또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셨다(마 23:12). 베드로전서 5:6에도,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들어 쓰시며 영광을 받으신다.
우리는 자기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 곧 패망하는 자의 형제가 되지 말고, 각자 자기의 일을 부지런하게 열심히 하는 좋은 인격자가 되자. 우리는 경건과 교회 봉사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가정이나 직업의 일에 있어서도 게으른 자가 되지 말고 부지런한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견고한 망대이심을 알고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에게 달려가 기도하며 의탁하자.
우리는 재물을 의지하지 말고 부자 되기를 원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믿고 실천하자.
우리는 범사에 교만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행하고,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 줄 알고 항상 감사하자.
13-16절, 대답, 병, 지식, 선물
[13절]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것은 미련한 일이다.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것은 성급하고 경솔한 일이다. 사람은 자신의 일방적 생각과 판단으로 상대방을 오해하기 쉽고 잘못 판단하기 쉽고 잘못 말하고 잘못 정죄하기 쉽다. 그러므로 잠언 18:17은 “송사에 원고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 피고가 와서 밝히느니라”고 말하였다.
남에 대한 잘못된 판단과 말은 남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큰 잘못이다. 사람이 그런 잘못을 범하면 피해를 입은 자들에게 수치와 욕을 당하게 될 것이다. 성급한 말은 자기에게 해가 되는 참으로 미련한 일이다. 그러므로 잠언 29:20은, “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고 말하였다.
지혜자는 다르게 처신해야 한다. 지혜자는 우선 남의 말을 듣는 것부터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좋은 말, 바른 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나쁜 말, 잘못된 말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악을 잘 분별해야 한다. 우리는 평소에 상대방의 인격의 됨됨이를 잘 살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가 시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좋은 사람의 말은 들어도, 나쁜 사람의 말은 듣지 않는 것이 좋다.
또 우리는 남의 말을 들어도 다 믿지 말아야 한다. 잠언 14:15는,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그 행동을 삼가느니라”고 말한다. 특히, 우리는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해야 한다. 야고보서 1:19는,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고 말한다. 잠언 15:28도,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고 말한다.
[14절]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병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첫째, 자연적 원인이 있다. 사람이 일을 너무 많이 하면 몸살이 나기 쉽고, 추우면 감기 걸리기 쉽다. 불결한 곳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면, 병균에 감염되기 쉽고, 나이가 들면 심신이 자연히 약해진다. 둘째, 징벌적 원인이 있다. 신명기 28장은,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징벌로 여러 가지 병들을 주실 것을 경고하였다(20-29절). 셋째, 인격훈련적 원인이 있다. 욥기의 진리가 그것이다. 사람은 고난을 통해 믿음이 강해지고 겸손해지며 거룩하고 깨끗해진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다(롬 8:28).
병을 이기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도 여러 요소가 있다. 첫째, 신체 단련이 한 가지 요소이다. 그것을 위해 적절한 노동이나 규칙적 운동이나 보약도 유익하다. 둘째, 병균을 죽이거나 그것의 활동을 억제하는 약을 복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약은 몸의 다른 부분에 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많이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심령의 평안과 강건이 중요한 방법이다. “사람은 심령으로 그 병을 견디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누가 그것을 일으키겠느냐?” 슬픔과 분노와 불안 등의 감정은 몸에 병이 되므로 가급적 버려야 한다. 장수비결의 상식은, ① 규칙적 식사와 소식(小食), ② 적당한 노동이나 운동, ③ 마음의 평안이다. 심령의 평안과 강건은 병을 이기는 한 중요한 방법이다. 넷째,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병을 이기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15절]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얻고 지혜로운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하느니라.
어리석은 사람은 지식을 거절하지만, 지혜로운 자와 명철한 자는 지식을 구하며 얻는다. 참 지혜와 지식은 성경 안에 있다. 어리석은 자는 참 지혜와 지식의 창고인 성경말씀 듣기를 거절한다. 그는 교만과 물욕(物慾)과 명예욕 등의 욕심들에 사로잡혀 있다. 그는 세상적인 가치관, 즉 경건한 삶에 대해 무지하고 도덕성을 중시하지 않고 돈이 최고이며 돈이면 다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어리석음은 무지(無知)로 나타나고 그것이 불경건과 불의의 죄로 나타나고 하나님의 심판에 이르는 것이다. 호세아는 이스라엘 땅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고 지적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호 4:1, 6). 성경은 악인들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라고 표현한다(고전 15:34; 갈 4:8; 살전 4:5).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실 것이다(살후 1:7-8).
그러나 지혜로운 자와 명철한 자는 지식을 사모하며 얻는다. 그는 지식의 창고인 성경책을 주야로 읽고 듣기를 사모하며 배우며 묵상하기를 힘쓴다. 지혜와 명철은 지식으로 나타나고 그것은 경건과 의로 나타나고 마침내 평안과 형통과 영생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호세아는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말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나는 . . .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말씀하셨다(호 6:3, 6).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다(요 17:3). 또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한다(벧후 3:18).
[16절] 선물은 그 사람의 길을 너그럽게 하며 또 존귀한 자의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
본문은 다시 번역하면, “사람의 선물은 그를 위해 길을 넓게 열며 대인(大人)들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 선물(맛탄)은 사랑과 관심의 표시이거나 존경과 감사의 표시이다. 선물은 남을 대접하는 것이며 좋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기적인 사람은 남에게 선물을 주지 않을 것이다. 나쁜 사람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뇌물을 줄지 모르나, 대가 없는 선물은 주지 않을 것이다.
남을 대접하는 것은 성경에 교훈된 삶이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은 신명기 15장 같은 구약 율법에 강조된 하나님의 뜻이며 명령이다. 사도 바울도,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교훈하였다(롬 12:13). 또 그는 감독의 자격에 대해 말하면서 감독은 ‘나그네를 대접하는 자’이어야 한다고 말하였다(딤전 3:2).
선물의 효과는 크다. 사람의 선물은 그를 위해 길을 넓게 열 것이다. 그래서 잠언 17:8은 “뇌물(쇼카드)[혹은 ‘선물’]은 임자의 보기에 보석 같은즉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케 하느니라”고 말하며, 잠언 19:6은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을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고 말한다. 사람이 선물을 잘 하는 것은 그의 좋은 성품을 증거하는 것이고 그는 마침내 대인(大人)들 앞으로 인도함을 받을 것이다.
특히 구제의 선물 주기를 좋아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풍성한 복을 받을 것이다. 잠언 11:25는,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고 말하였다. 주께서는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고 말씀하셨다(마 6:4). 바울은 자신을 위해 선물을 보낸 빌립보 교인들에게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말했다(빌 4:19).
우리는 무슨 일이나 사연을 듣기 전에 성급하게, 경솔하게 대답하지 말고 사연을 들은 후에 좀 생각하고 신중하게 대답하는 습관을 기르자.
우리는 가급적으로 슬픔이나 분노를 품지 말고, 혹 품어도 오래 품지 말고(엡 4:26), 오직 하나님께 간구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평안하며 심령의 강건함을 유지함으로 건강하게 생활하자.
우리는 교만, 물욕, 명예심 등의 세상 것들을 버리고, 지혜와 지식의 창고인 성경을 날마다 읽고 묵상함으로 지혜와 지식을 사모하며 얻자.
우리는 남을 대접하고 남에게 선물을 줄 줄 아는 성도가 되자. 우리는 특히 우리 주위의 어려운 성도들과 이웃들을 대접하기를 힘쓰자.
17-20절, 송사, 제비 뽑기, 노, 말
[17절] 송사에 원고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 피고가 와서 밝히느니라.
‘그 피고’라는 원어(레에후)는 ‘그 이웃’이라는 말이다.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서로 이해관계가 얽힌 다툼이 있다. 그런 다툼은 때때로 법정에까지 나아간다. 우리가 간혹 뉴스에서 보는 대로 서로 간의 법정 다툼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그것은 사람들이 모든 일을 진실하게 말하지 않고 속이기 때문이다.
이런 다툼에서 원고의 말, 즉 첫 번째 사람(원문) 혹은 한 쪽 사람의 주장만 들으면 그가 바른 것 같다. 그러나 그 피고 혹은 그 이웃이 와서 모든 문제를 밝힌다. ‘그 이웃’이라는 표현은 그 이웃이 피고의 자격으로나 혹은 증인의 자격으로 와서 밝힌다는 뜻일 것이다. ‘밝힌다’는 말은 그가 원고의 주장에 거짓된 부분이나 불확실하고 근거 없고 추측적인 부분, 또 과장된 부분이나 자기의 치명적 잘못 같은 중요한 내용을 빠뜨린 부분을 지적함으로써 밝힌다는 뜻이다.
무슨 일을 판단할 때, 한쪽 말만 들어서는 부족하다. 무슨 일이든지 두 사람의 말, 즉 양쪽 말을 다 듣고 그 둘을 비교해보면, 그 문제에 대한 바른 판단을 더 쉽고 분명하게 내릴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판단할 때, 한쪽 말만 듣고 속단하지 말고 최종적 판단을 보류하고, 다른 한쪽의 말을 들은 후 최종적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부족함이 없는 바르고 온전한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일에 있어서 바른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바른 판단은 첫째로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둘째로, 그것은 이성과 양심에 근거해야 한다. 셋째로, 그것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에 근거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바른 판단의 기준이 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18절] 제비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케 하느니라.
무슨 일에서 아무 때나 제비뽑기를 해서는 안 되겠지만, 제비뽑기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잘잘못이 분명할 때는 이성과 양심과 하나님의 법에 의거하여 판단해야지 제비뽑기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선악의 문제가 아닐 때, 특히 두 개 이상의 주장들이 다 선하고 그것들을 주장하는 자들의 태도가 다 확고하고 강경할 때, 그래서 그것들 중 하나를 택하기 어려울 때, 제비뽑기가 필요할 것이다.
제비뽑기는 유익이 많다. 본문의 말씀과 같이, 제비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고 강한 자들 사이에 문제를 해결케 할 것이다. 그것은 다툼이 되는 두 생각과 의견들 중 하나를 택하는 방법이 된다. 성경에는 제비뽑기의 예들이 많다. 선지자 요나가 탔던 다시스로 가는 배의 선장은 선원들과 승객들 중에서 제비를 뽑게 함으로써 풍랑의 원인을 찾았다(욘 1:7). 에스더서에 보면, 악한 신하 하만의 동료들은 유대인들을 죽일 날을 정할 때에 제비를 뽑았다(에 3:7). 아마 몇 개의 날들 중 하나를 택하는 방법으로 제비뽑기가 사용되었을 것이다. 마태복음 27:35에 보면,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아 나눠가졌다.
제비뽑기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방법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며 그의 선택을 구하는 방법이다. 잠언 16:33은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말한다. 속죄일에 두 염소 중 아사셀 염소를 택할 때 제비뽑기를 하였다(레 16:8). 여호수아는 범죄한 아간을 찾아낼 때 그리고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 제비뽑기를 하였다(수 7:14; 18:10). 또 신약시대에도 사도들은 가룟 유다 대신 한 명의 사도를 보선할 때 제비뽑기를 하였다(행 1:26).
[19절]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
노엽게 한 형제란 성이 나고 감정이 상한 형제라는 뜻이다. 한글성경에 ‘화목하기가’라는 작은 글씨는 원문에 없는 말을 보충한다. 그것은 노엽게 한 형제의 생각이나 마음을 얻기나 설득하기가, 그래서 그와 화목하기가 심히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사람의 이성의 확고한 판단이나 굳어진 감정은 변경시키기가 매우 어렵다. 물론 정당성을 가진 경우도 있겠으나, 때로는 생각의 편협함과 잘못 때문에, 그의 감정도, 그의 행위도 그렇게 된다고 본다. 나는, 화나면 열쇠나 물건을 집어던지는 아내의 잘못된 습관 때문에 그녀가 간청함에도 불구하고 이혼한 한 청년이 1년 후 그 이혼을 후회하고 다시 아내와 재결합하기를 소원했으나 그 아내의 생각과 감정이 이미 굳어져서 화합되지 못함을 보았다. 사람의 감정과 마음이 그러하다.
본문은, 감정이 상한 사람과 화목하기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렵고 산성 문빗장을 여는 것같이 어렵다고 말한다. 물론 견고한 성을 정복할 수는 있을 것이다. 또 산성의 문빗장을 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희생을 치루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나이 든 노인이 열쇠를 잃어버린 집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열쇠만 있으면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자기 집이라도 열쇠가 없으면 문 앞에서 여러 시간을 서성이며 열쇠전문가가 오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열쇠전문가가 와서도 한참 만에야 겨우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20절]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입에서 나오는 열매나 그 입술에서 나는 것은 그의 말을 가리킨다. 사람의 입에서는 불신앙, 불평, 미움, 비방, 희롱, 음란, 상스러운 농담, 거짓말 등 악한 말도 나오지만, 이런 것은 입술의 선한 열매가 아니다. 입의 열매는 바르고 선한 말을 가리킨다. 그것은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고 덕을 세우는 선하고 은혜로운 말이며(엡 4:29) 감사하는 말이며(엡 5:4) 서로를 권면하며 조언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이다(살전 5:11, 14). 이런 말은 입에서 나오는 선한 열매이다.
본문은 입에서 나오는 이런 선한 열매들로 인해 배가 부르고 만족하게 된다고 표현한다. 말은 힘이 있다. 말은 남에게 유익을 끼치는 동시에 자신에게도 기쁨과 평안과 유익을 준다. 옛말에,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은 말의 유익을 두고 한 말이다.
바르고 선한 말은 말의 내용이 그래야 한다. 주께서 사람들 앞에서 바르고 은혜로운 말씀을 하셨고(눅 4:22) 그에게 은혜와 진리가 넘쳐흘렀듯이(요 1:16),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에 맞는 바르고 선한 말을 할 때 자신에게도 기쁨이 있고 남에게도 유익을 줄 것이다.
또 바르고 선한 말을 듣는 사람의 마음가짐도 좋아야 한다. 우리는 바른 말을 들을 귀(마 13:9), 할례받은 귀와 마음(신 29:4)이 있어야 하며, 또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이라도 어떤 이들은 흠 잡을 거리만 찾았으나 많은 사람들은 그의 말씀을 즐거이 들었다(막 12:37). 그러므로 잠언 27:7은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하고 주린 자에게는 쓴 것이라도 다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한쪽 말만 듣고 성급하게 판단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양쪽의 말을 다 들은 후에 신중하고 바르게 판단하자.
우리는 분명한 문제에 대해서는 이성과 양심과 성경의 법으로 판단해야 하며 그런 경우 예, 아니오가 분명해야 하지만, 선택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고, 그럴 경우, 제비뽑기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 한 방법이다.
우리는 상대의 상한 감정이 굳어지기 전에 푸는 지혜가 있어야 하고, 그러나 감정이 상해 화목하기 어려운 사람에 대해서는, 오직 하나님께서 그를 변화시켜 주실 때까지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남에게 상함과 낙망을 주는 악한 말을 하지 말고, 남에게 유익을 주는 바른 말, 선한 말, 덕스러운 말,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하는 자가 되자. 또 우리는 남의 바른 충고를 듣는 겸손한 마음도 가지자.
21-24절, 혀의 권세, 아내, 가난, 친구
[21절]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사람의 혀는 권세가 있다. 사람의 말은 다른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사람의 말은 때때로 다른 사람을 살린다. 위로와 격려의 말은 낙심한 사람에게 힘이 나게 하며, 충고의 말은 그의 잘못을 반성하고 고치게 한다. 좋은 소문을 내는 것은 그 소문의 내용이 되는 사람이나 단체의 이름에 영광이 되고 부흥 발전에 도움이 된다. 사무엘상 25장에 보면, 완고하고 미련했던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은 노한 다윗이 그의 집을 치려 한 것을 지혜롭고 겸손한 말로 막았다.
그러나 사람의 말은 때때로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독한 비난의 말은 남의 마음을 몹시 상하게 하고 그의 명예를 크게 훼손시킨다. 그것은 상대방을 죽이는 말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에는 실제로 그런 말로 인해 상대방이 마음이 크게 상하여 진짜 자기 목숨을 끊는 일도 있다. 또 악한 비방은 무고한 사람을 매장시키기도 한다.
사람의 악한 말은 상대를 죽일 뿐 아니라, 자신도 멸망으로 이끈다. 주께서는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2:37). 사도 바울은,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말하였다(롬 10:9-10). 그러나 반대로 우리의 입으로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자는 자신의 멸망을 예상한 셈이 된다. 이와 같이, 사람은 자기의 혀의 열매, 즉 자신의 말의 열매를 먹는다. 선한 말은 자신을 복되게 하지만, 악한 말은 자신과 남들을 멸망시킨다.
[22절]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고대 번역들(LXX, Syr, Vg, Targmss)은 ‘아내’를 ‘좋은 아내’라고 번역하였다. 좋은 아내가 복이다. 어떤 아내가 좋은 아내인가? 남편을 잘 돕는 아내가 좋은 아내이다.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만드실 때 남자를 돕는 자로 만드셨다. 그는 “사람의 독처하는[혼자 지내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돕는 자]을 지으리라”고 말씀하셨다(창 2:18).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본래의 의도대로 남편을 잘 돕는 아내가 좋은 아내다. 또 어진 아내가 좋은 아내이다. 잠언 12:4,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로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어진’이라는 원어(카일)는 ‘힘이 있는, 덕스러운(virtuous), 훌륭한’이라는 뜻이다. 어진 아내란 지혜와 능력이 있는 덕스러운 아내를 가리킨다. 또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인이 좋은 아내이다. 잠언 31:30은,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순종하는 여인이 좋은 아내이다. 에베소서 5:22는,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고 말한다.
좋은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복이다. 잠언 31:10,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왜냐하면 좋은 아내는 남편을 잘 도우며 그에게 선을 행하며(잠 31:12) 그를 위해 기도하고 그를 위로 격려하며 필요할 때 그에게 조언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아내는 남자의 분복이기도 하다. 잠언 19:14,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23절] 가난한 자는 간절한 말로 구하여도 부자는 엄한 말로(앗조스)[사납게, 거칠게](BDB, KJV, NASB, NIV) 대답하느니라.
가난한 자는 슬프다. 우리는 가급적 가난한 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 잠언 30:8에 보면, 아굴은 성령의 감동 가운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라고 기도하였다. 가난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복 주셔서 그로 가난하지 않게 하신다. 신명기 28:12,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寶庫)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치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의지하는 양식을 끊으실 것이며 먹어도 배부르지 않게 하실 것이지만(레 26:26),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일용할 양식을 주시며 의식주의 필요를 넉넉히 주신다(마 6:33).
그러나 우리는 물질적 부요가 있을 때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잠언 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 욥은 부자이었지만 자기의 종들의 사정을 멸시치 않았고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지 않았으며 고아를 기르고 과부를 인도하였고 의복 없는 자에게 덮을 것을 주었고 나그네를 대접하고 자기 집에 머물게 했다고 말했다(욥 31:13-23).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부자들에게 명하기를,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 . .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고 교훈하였다(딤전 6:17-18).
[24절]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옛날 영어성경(KJV)은 고대역본들(Syr, Targ, Vg)을 따라서 “친구들을 가진 자는 친절해야 하나니”라고 번역하지만, 한글개역성경은 히브리어 전통본문을 따른다(NASB, NIV). 본문은 친구가 많은 것이 유익이 없고 도리어 해를 당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뜻 같다.
친구는 두 종류가 있다. 나쁜 친구와 좋은 친구이다. 나쁜 친구는 해를 끼치는 친구이다. 예를 들면, 자기 이익만 구하다가 어려울 때, 위급할 때 떠나가는 이기적인 친구나, 죄 짓게 하는 친구가 그렇다. 사무엘하 13장에 보면, 다윗 왕의 아들 암논에게 요나답이라는 심히 간교한 친구가 있었다. 그는 암논이 압살롬의 여동생, 곧 자기의 이복누이 다말을 연애하는 것을 알고 그에게 좋지 않은 조언을 하였다. 암논은 결국 다말을 강간하게 되고 그 일로 압살롬은 암논을 살해하게 되었고 다윗의 집에는 큰 불행이 되었다. 고린도전서 15: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그러나 좋은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다. 신앙의 친구는 좋은 친구이다. 소년 다윗이 목숨을 내놓고 골리앗과 대결하여 이기자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였다. 사무엘상 18:1,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 요나단은 피신 다니는 다윗을 만나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도록 위로하고 격려했다(삼상 23:16). 또 사랑이 있는 친구도 좋은 친구이다. 잠언 17:17,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 예수님의 말씀처럼,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줄 정도의 사랑을 가진 자는 참 좋은 친구이다(요 15:13-14). 그런 친구는 상대에게 바른 충고도 할 것이다(잠 27:6).
우리는 우리의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고 우리 입술의 문을 지키고(시 141:3), 사람을 살리고 유익케 하는 바르고 선하고 덕스러운 말만 하자.
결혼과 가정의 복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자. 또 여인들은 좋은 아내가 되고, 또 그들의 딸들을 좋은 아내가 되도록 교훈하고 양육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 주심으로 가난하지 않은 자가 되자. 그러나 우리가 물질적 여유가 있을 때 가난하고 어려운 형제나 친구나 이웃 사람들에게 사납고 거칠게 말하는 자가 되지 말고 너그러운 자가 되자.
우리는 우리에게 해를 끼치거나 죄 짓게 하는 친구를 멀리하고, 참된 신앙과 사랑이 있는 친구를 사귀고, 또 형제보다 더 친밀한 친구가 되자.
[신명기 히브리어 강해] 모압과 전쟁하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신 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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