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구약성경 말씀

[욥기 42장 주일설교말씀] 감사는 신앙의 결말(욥 42:1-17)

르호봇 2021. 7. 12.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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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욥기 42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감사는 신앙의 결말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욥이 율법주의 신앙을 하다가 사탄의 시험을 받고 깨닫게 됩니다. 사람은 어려움이 오면 생각하게 됩니다. 욥 자신이 거룩하고 깨끗한 줄 알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의롭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의만 드러냈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지는 못했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하나님이 나타났을 때 욥은 하나님께 한 마디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욥은 지금까지의 신앙이 귀로만 듣는 신앙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이제는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체험적인 신앙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갑절의 복을 욥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도 율법주의 신앙에서 바뀌어야 합니다. 복음을 깨닫고 주님을 믿음으로 구원받고 나서 하나님을 체험하는 신앙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감사는 신앙의 결말(욥 42:1-17)

 

신앙생활은 반드시 '행복'으로 끝을 맺습니다. 물론 신앙을 지킨다는 것이 반드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신앙의 결말은 승리와 행복으로 귀결 지어집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 15:19)고 바울 사도는 말씀했는데 신앙으로 일관한 사람의 일생은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보상과 상급이 있다는 것을 강하게 주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꾸준히 신앙을 지켜 온 사람을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하였고 그들에게는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의로운 삶에는 최후의 승리가 약속되는 것이요 선한 싸움에는 면류관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성실히 노력하고 꾸준히 믿음을 지켜온 모든 사람들의 생애는 다 행복한 결과가 약속됩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욥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욥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많은 고난을 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셨다'라고 하였으며 그것은 그가 받은 고난과 시련을 충분히 위로하고 보상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야고보서에는 보라 인내하는 자들을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5:11)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주신 결말은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요, 또한 복되고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감사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신앙생활의 결말이요, 또 신앙은 반드시 감사할 수 있는 결말을 이루게 할 것입니다. 만일 욥이 그러한 곤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말았다면 얼마나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었겠습니까? 그의 생이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면 그야말로 그가 낳은 날이 저주요, 욥의 생애는 우리에게 아무런 덕도,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하는 것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주신 결말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가 나중에 받게 된 복은 그가 잃은 모든 것을 다 만회하고도 남음이 있었고, 그가 당한 모든 것을 다 상쇄하고도 그것을 능가하였으며, 그가 겪은 모든 상처와 아픔을 다 회복하고도 모자라지 않았으며, 그가 경험한 모든 슬픔을 다 위로하고도 오히려 풍성하였습니다. 이것이 주께서 주신 결말인데 주님은 지극히 자비하시고 긍휼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3:17)라고 노래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 하심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자기가 알고, 그 하나님을 만난 일, 그리고 그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일, 그것이 곧 기쁨이요 놀라운 축복이라고 하는 고백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자체가 곧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로 받게 된 큰 구원 그보다 더 좋은 축복이 무엇이겠습니까? 건강이나 재물. 명예. 권력 그리고 세속적인 기쁨과 행복은 다 구원의 축복 때문에 오는 부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윗은 이 은혜를 깨닫고, 자기는 하나님 때문에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으며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때문에 평생토록 행복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으로 인한 행복, 하나님을 믿음으로 갖는 즐거움, 하나님을 인하여 소유하는 기쁨, 그것이 가장 위대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자비하시고 긍휼 하신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때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철두철미한 '신뢰'입니다.

 

욥이 그 많은 시련 가운데에서 끝까지 견디고 참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건강과 재산과 명예와 가정을 일시에 다 잃어버렸지만 하나님을 원망하고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비록 욥이 가련한 처지가 되었지만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니이다'(1:21)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자신의 모든 재산과 재물을 다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자녀 열 남매를 일시에 잃어버리고, 건강과 명예와 자존심마저 다 잃어버린, 저 우스의 큰 재벌 욥의 고백입니다.

 

성서는 욥에 대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2:10)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부귀영화를 누렸으니 또한 이런 때도 있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오히려 그의 마음은 그지없이 평안하였습니다. 욥을 찾아온 그의 절친한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욥이 처한 환경을 보고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욥기 기자는 '칠일칠야를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곤고함이 심함을 보는 고로 그에게 한 말도 하는 자가 없었더라'(2:13)고 그 참상을 전하고 있는데 그러나 욥은 그러한 시련 중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심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었습니다. 신앙'신뢰'입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순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2:3)라하였는데 그는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과정에 있어서 욥이 당한 것과 같은 고난이나 시련이 없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의 원인은 아무리 캐고 따져봐야 확실한 대답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결말은 은혜와 기쁨과 승리와 감사라는 것입니다. 성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하였습니다.(8:28) 그러므로 신앙이란 절대자 하나님만을 용기 있게 믿고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가졌건 못 가졌건, 되었건 안 되었건, 있건 없건, 그런 것에 집착하고 매달리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지나온 삶의 과정들은 각각 다르시겠지만 한 가지 공통된 점은 하나님을 믿고 산 것입니다. 다른 것을 의지하거나 신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건강이나 재산이나 명예 등에 손상이 왔을 때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그것을 극복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긴 이김은 곧 이 믿음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또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유혹이나 환란으로 신앙이 도전을 받고 하나님께 대한 신의와 경외심이 흔들리게 될 때 믿음을 굳게 지킴으로 유혹이나 환란을 물리쳐 버립니다. 욥의 아내는 욥에게 이렇게 악담을 했습니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2:9) 보다 더 큰 저주의 말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어보아야 얻은 게 무엇이고 되는 게 무엇이냐?' 그런 말입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께 대한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신앙은 하나님과의 신의를 지키는 것입니다. 아무리 나쁜 상황에서도 배신하지 않는 것입니다. 욥의 마음속에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존경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참고 견뎠습니다. 욥의 세 친구가 그에게 와서 여러 가지 말들을 했습니다. 책망도 하고 규탄도 하고 권면도 하고 설득도 하였습니다. 깨닫고 반성하고 살펴보라고도 하였으며, 혹은 은밀히 숨긴 죄를 회개하라고도 하였습니다. 그러한 말들은 욥을 더욱 괴롭히는 것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는 그러한 고통도 끝까지 참고 인내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이 겪은 그 모든 일들을 다 알고, 다 보고 계셨습니다. 그 신앙은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 순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그러한 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욥에게 위로를 내려 주셨습니다. 그 위로는 환란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시는 참된 하나님의 위로였습니다. 친구들의 위로는 오히려 욥의 마음에 상처만 더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참으로 위로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십니다. 하나님은 욥의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상처가 회복되고 명예가 회복되고 건강이 회복되고 또한 그의 가정이 회복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일을 아름답게 회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욥은 그가 잃었던 모든 재물과 재산의 배나 더한 것을 다시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주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결말입니다. 신앙의 사람 욥의 생애의 결말, 그것은 참으로 복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좋은 결말은 반드시 의롭고 진실한 신앙의 길에서 얻어집니다.

 

사람들은 늙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의로운 삶을 살아온 사람의 늙음은 그 자체가 영광이요 승리입니다. 그래서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인데 그것은 '의로운 길'에서 얻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합니. 그러나 '무릇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자는 복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결말은 영생이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그 후에 욥이 일백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았고 나이 늙어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42:17)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욥이 죽었다는데 대하여 아무런 거부감이 없습니다. 그의 결말이 행복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행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한 때 권력을 휘두르던 독재자들의 최후가 어떡하였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권력의 자리에서 이름을 크게 떨쳤지만 그 결말은 왜 한결같이 그렇게 비참합니까? 하나님 없는 삶은 다 그러합니. 사람은 그 결말이 좋아야 합니다. 마지막까지 잘 달려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관 뚜껑이 덮일 때까지 잘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 욥의 생애는 그 마지막이 너무나도 덕스럽고 아름답고 행복합니다. 이것은 신앙을 끝까지 잘 지킨 욥에게 하나님이 내리신 축복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욥에게 주신 결말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주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주 없이는 나 홀로 설 수 없습니다. 님이 안 계시면 밤이 맞도록 수고하여도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 함께 하시면 '그 시작은 미약하나 그 나중은 심히 창대하게'(8:7)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욥에게 주신 그 결말을 생각해 보면서 몇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좋은 결말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욥은 의인으로서 회개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회개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잘못 인식한 죄였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귀로 듣기만 했는데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철없는 주장에 대하여 회개하였습니다. 그것이 주제넘은 일인 것을 깨달았습니. 그는 지금까지 죄가 없다고 주장한 일에 대하여 부끄러움과 혐오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욥은 윤리나 도덕상의 죄는 없었지만 그도 하나님 앞에서는 여전히 죄인이란 것을 겸손히 깨닫고 이것을 회개하였습니다. 그는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종교적인 각성이요 신앙의 성숙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참된 길입니다. 베드로는 밤새 고기잡이에 열중했으나 얻은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서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을 때 그는 기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그는 무릎을 꿇고 '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신앙의 깊이를 가진 사람들에게 좋은 결말을 주실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끝까지 참는 자에게 아름다운 결말을 주십니다. 욥은 인내의 대표자입니다. 그는 인간의 한계점에 이르기까지 참은 사람이요, 그러한 극한 상황에서도 마음으로나 입으로 하나님께 범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끝까지 지킨 것이며,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신의를 지켰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라고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과의 신의를 버리지 않고 참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아름다운 결말을 주십니다. 그런 이들에게 아름다운 보상이 있을 것은 당연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들에게 풍성한 결말을 이루게 하여 주십니. 욥은 자신의 감사뿐 아니라 그의 벗들을 위해서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빌었습니다. 모든 것을 용서하고 화해했습니다. 매였던 것을 다 풀었습니다. 그 결과 그에게 평화와 감사가 차고 넘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동안 나를 얽어매었던 여러 가지 속박. 부자유. 억압 감정. 마음에 맺힌 원한...... 그런 것을 다 풀어 버려야 합니다. 내가 우선 나 자신을 용서해야 하고 남을 용서해야 하고 주변 상황, 주위 환경, 주어진 시간, 걸머진 운명들과 화해해야 합니다. 그 모든 것들과 화목을 이루어야 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상황들이 나에게 원수가 되지 않고 친구가 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참된 감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욥은 이 일을 해냈습니다. 하나님을 굳게 믿는 믿음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감사하는 사람에게 무엇보다 풍성한 은혜를 허락하여 주십니다. 욥이 모년에 받은 그 결말은 확실히 복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그렇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런데 오직 신앙만이 그러한 결말을 이루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이러한 축복과 감사가 차고 넘치게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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