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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족보 히브리어 설교말씀] 구약성경의 족보에 나타난 가인 족보(창4:16-24)

르호봇 2022. 2. 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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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많은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족보는 육적 족보와 영적 족보가 있습니다. 육적 족보는 선택받지 못한 자들이 기록되어 있고 영적 족보는 하나님께 선택받아 구원받은 자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생명 책에는 선택받은 자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육적 족보인 가인의 족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구약성경의 족보에 나타난 가인 족보(창4:16-24)

 

성경에는 육적 계보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족보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족보를 기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죄의 책과 생명 책에 이름들을 기록해 놓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육적 계보에 들어간 족보의 사람들은 죄의 책에 기록된 사람들의 예표입니다. 그리고 영적 계보에 들어간 사람들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생명 책에 이름이 기록된 것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16절 바예체 카인 밀리페네 아도나이 바예쎄브 베에레츠 노드 키드마트 에덴

창4:16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하나님께서는 세월이 지난 후에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에 아벨의 제사는 받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가인이 아벨을 쳐 죽이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았다고 자신의 친동생을 쳐 죽였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제사를 드리라고 했는데 준비가 되지 않아서 하나님이 받지 않았다면 다음의 제사 때에 열심히 준비하여 드리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시간 자신의 동생인 아벨의 제사만 받았다고 화가 나서 아벨을 죽인 것입니다. 성경은 가인이 아벨을 왜 죽였는지를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인 이유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3절 바예히 미케츠 야밈 바야베 카인 미페리 하아다마 민하 라아도나이

창4: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지난’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케츠 7093) , 종말, 마지막,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카차츠 7112) 파괴하다, 잘라내다, 찍어버리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세월이 지난 후에 라는 것은 마지막 종말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는 마지막 때의 제사를 나타내고 있으며 이 제사를 하나님이 받지 않았다는 것은 마지막 날의 심판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인이 피의 제사를 드리지 않아서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 것이 아닙니다. 가인의 삶에는 마지막 종말을 준비하지 않았고 세상에 빠져 자신의 뜻대로 살았던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아벨은 주님과 동행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마지막 끝 날의 심판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벨은 구원을 받은 백성을 말씀하는 것이고 가인은 저주받은 인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인이 열심히 준비하여 다시 하나님께 나온다 할지라도 기회는 끝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심판 때에 하나님께서는 가인과 같은 자들을 철저하게 파괴하여 구원의 자리에서 잘라내시고 그의 영혼을 찍어버려 지옥의 불 못으로 던져 넣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벨처럼 구원을 받고 마지막 종말을 준비하여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5절 에코 에이미 헤 암펠로스 휘메이스 타 클레마타 호 메논 엔 에모이 카고 엔 아우토 후토스 페레이 카르폰 폴륀 호티 코리스 에무 우 뒤나스데 포이에인 우덴

6절 에안 메 티스 메이네 엔 에모이 에블레데 엑소 호스 토 클레마 카이 엑세란데 카이 쉬나구신 아우타 카이 에이스 퓌르 발루신 카이 카이에타이

요15:5-6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주님께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며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주님 안에 거하지 않으면 가지처럼 마지막 때에 잘라져 불에 던져지게 되는 것입니다. 가인과 같은 인생들은 마지막 날에 불에 던져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벨의 삶은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심판 날에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가인과 같은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아니면 아벨과 같은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가인처럼 예배를 드리고 세상에 힘을 쏟고 사는 사람들은 반드시 마지막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지 못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제사를 원하고 있을 때에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을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벨의 신앙은 항상 주님과 함께 하고 있고 주님의 뜻에 따라 예배드리는 삶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지막 주님의 재림을 준비한 자들은 반드시 천국에 들어가 주님의 영광 안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23절 아우토스 데 호 데오스 테스 에이레네스 하기아사이 휘마스 홀로텔레이스 카이 홀로클레론 휘몬 토 프뉴마 카이 헤 프쉬케 카이 토 소마 아멤프토스 엔 테 파루시아 투 퀴리우 헤몬 이에수 크리스투 테레데이에

살전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그럼 이제부터 우리는 아벨의 삶을 본받아 살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거룩하게 하시고 영과 혼과 몸을 깨끗하게 해 주셨으니 주님의 강림하시는 마지막 날까지 우리가 흠 없이 보전하여 아벨과 같은 제사가 주님께 드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아벨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흠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자 화가 나서 자신의 동생을 죽이고 취했던 행동이 무엇입니까? 가인은 질투심에 아벨을 쳐 죽이고 여호와 앞을 떠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한 자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앞을’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파님 6440) , 얼굴, 인도, 진설병,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파나 6437) 권고하다, 떠나다, 거스르다, 쫓아내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가인이 여호와 하나님의 앞을 떠났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얼굴을 져버리고 주님의 인도를 받지 않겠다는 의도입니다. 가인은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았다는 것에 화가 많이 났습니다. 그래서 진설병이라는 뜻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떡을 먹지 않고 떠나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라는 것을 가인을 통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산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은 없습니다.

35절 에이펜 데 아우토이스 호 이에수스 에고 에이미 호 아르토스 테스 조에스 호 에르코메노스 프로스 메 우 메 페이나세 카이 호 피스튜온 에이스 에메 우 메 딥세세 포포테

36절 알르 에이폰 휘민 호티 카이 헤오라카테 메 카이 우 피스튜에테

요6:35-3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나오는 자들은 절대 주리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님께서 말씀하셨는데도 사람들이 주님을 믿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바로 가인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을 치고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권면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가인은 고집 피고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슬렀으며 이렇게 하나님을 떠난 것은 자신이 떠난 것 같지만 결국은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남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도 가인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이 잘났다고 하여 교만하고 자만하여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죄를 짓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서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무시하는 자들입니다.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았다고 화를 낸 가인처럼 자신의 의의 행동을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았다고 주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자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의로 나와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은 가인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럼 가인이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에덴’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에덴 5731) 에덴동산,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에덴 5730) 좋은 음식, 즐거움, 복락, 이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아단 5727) 즐기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가인이 에덴 동쪽의 땅에 거주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천국과 같은 삶을 저버린 것을 의미합니다. 에덴동산은 천국을 상징하고 있는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아담과 함께 살았던 곳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이곳을 져버리고 자신의 왕국을 만들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좋은 복음의 음식을 버리고 즐거움과 축복된 삶을 버린 것을 의미합니다.

 

가인은 자신의 힘으로 즐거움을 찾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자신의 힘으로 나가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율법적인 의로 하나님께 나가려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인과 같은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을 버리고 자신의 땅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의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율법주의자들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들어 주신 에덴동산에 들어가야 합니다. 또한 이곳을 떠나서도 안 됩니다.

20절 디오티 엑스 에르곤 노무 우 디카이오데세타이 파사 사르크스 에노피온 아우투 디아 가르 노무 에피그노시스 하마르티아스

21절 뉘니 데 코리스 노무 디카이오쉬네 데우 페파네로타이 마르튀루메네 휘포 투 노무 카이 톤 프로페톤

22절 디카이오쉬네 데 데우 디아 피스테오스 이에수 크리스투 에이스 판타스 카이 에피 판타스 투스 피스튜온타스 우 가르 에스틴 디아스톨레

롬3:20-22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게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했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가인과 같은 사람들은 자신의 율법으로 의롭게 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에덴을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 기쁨과 즐거움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의 의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는데 바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차별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천국을 상징하고 있는 에덴동산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이 세상의 삶도 천국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백성을 예표하고 있는 가인이 에덴의 동쪽에 자신의 왕국을 만들고 있습니다.

 

동쪽’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키드마 6926) 동쪽, 동편,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카담 6923) 대항하다, 도망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가인이 동쪽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간 것은 하나님께 대항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아니하시고 아벨의 제사만 받았기 때문에 마음에 화가 많이 났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하나님의 간섭이 싫었고 또한 하나님께 화풀이를 하기 위해 떠났으며 이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쳤다는 것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가인이 동쪽으로 갔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하나님께 반항하는 태도이며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지 않으신 것에 대한 화풀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구원받지 못한 백성들도 자신이 거룩하고 깨끗하다고 생각하여 하나님께 나아갔는데 하나님께서는 너는 부정하며 더러우니 내가 준비한 예복을 입고 들어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예복은 입지 않고 자신의 율법의 의로 들어오다가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니 화가 나서 신앙을 포기하여 버리고 교만하게 하나님께 화를 내는 자들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11절 에이셀돈 데 호 바실류스 데아사스다이 투스 아나케이마누스 에이덴 에케이 안드로폰 우크 엔데뒤메논 엔뒤마 가무

12절 카이 레게이 아우토 헤타이레 포스 에이셀데스 호데 메 에콘 엔뒤마 가무 호 데 에피모데

13절 포테 에이펜 호 바실류스 토이스 디아코노이스 데산테스 아우투 포다스 카이 케이라스 아라테 아우톤 카이 에크발레테 에이스 토 스코토스 토 엑소테론 에케이 에스타이 호 클라우드모스 카이 호 브뤼그모스 톤 오돈톤

마22:11-13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주님께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임금이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풀어 놓고 혼인 예복을 준비하여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초청을 받았는데도 한 사람은 혼인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왔습니다. 즐겁고 기쁜 날 임금의 명령을 거부한 것입니다. 자신은 혼인예복을 입지 않아도 깨끗하고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임금의 눈에 띄어 손과 발이 묶여서 어두운 곳에 던져지게 된 것입니다. 가인과 같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의를 거부하여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것입니다. 반항하여 하나님께 화를 내고 자신 스스로도 얼마든지 깨끗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마지막 날에 반드시 지옥의 어두운 곳으로 던져지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인이 에덴 동쪽 놋 땅에 자신의 왕국을 만들어 거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가인이 놋 땅에 자신의 왕국을 만든 것에 대한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가인은 하나님께 대한 반항심으로 에덴의 동쪽인 놋 땅에 거주하게 됩니다.

 

은 히브리어 단어로 (노드 5113) ,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누드 5110) 도망하다, 탄식하다, 애곡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가인이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치듯이 에덴의 동쪽 땅인 놋에 정착하게 된 것은 앞으로의 삶이 한숨만 나오는 삶이 될 것이며 애곡 하며 통곡하게 되는 인생이 될 것을 암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는 삶은 결국 죽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을 상징하는 에덴을 떠나면 인생 자체가 고통스럽고 어려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안식이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가인의 삶은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에덴에서 주님과 함께 사는 인생을 버리고 그의 삶은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지고 인생이 애곡 하는 인생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살아가는 인생은 결국 가인과 같은 삶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통치를 받지 않고 자신 스스로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가인이 놋 땅에 정착하고 나서 자녀들을 낳게 됩니다. 구속사의 계보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가인의 후손을 성경에 기록하고 있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렇게 죄의 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그림자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기록들을 통하여 구속사의 계보 안에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며 감사한지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성경식물 히브리어 설교말씀] 예수님이 쓰신 가시 면류관(요 19:2)

 

[성경식물 히브리어 설교말씀] 예수님이 쓰신 가시 면류관(요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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