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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식물 헬라어 설교말씀] 겨자 나무(마태복음 13:31-32)

르호봇 2022. 2. 2.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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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3장에는 겨자씨의 비유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천국은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다고 했습니다. 씨는 작은 데 성장하면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든다고 했습니다. 겨자 나무를 통해서 예수님이 하신 천국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겨자 나무 (하르달 라반), (시나피 4615)

 

성경에서 겨자는 아주 작은 씨앗을 말합니다. 이것이 땅에 떨어져 발아가 되어 나무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연 겨자는 나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 정서로는 겨자를 나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나무를 보지 못하는 유대인들의 개념으로는 겨자가 나무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풀과 나무를 말할 때에 땅에서 바로 나와서 잎사귀가 되면 이것은 풀입니다. 하지만 땅에서 줄기가 올라와 가지가 생기고 가지에 잎이 붙어 있으면 이것은 나무(에츠)로 보았습니다.

겨자나무는 다 자라면 대략 1.8~2m까지 자라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식물과 같은 겨자 나무에 새가 깃들일 수가 있을까요? 겨자나무는 군집 식물이기 때문에 모여서 자라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새들이 와서 겨자 나무에 앉을 수가 있습니다. 겨자나무는 갈릴리 주변에서 3월 중순과 4월 중순이 되면 노란 꽃들이 피게 되고 쉽게 발견되는 꽃입니다. 이 꽃은 밭에 심은 꽃이 아니라 잡초처럼 들에 자라면서 피는 꽃입니다.

 

그럼 우리가 겨자 나무를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영적 진리가 무엇일까요? 예수그리스도는 이 땅에 잡초와 같은 별 볼일 없는 나를 위해 오셔서 겨자씨와 같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주신 분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전혀 소망이 없는 겨자씨와 같은 나를 좋은 땅에 심어 놓으시고 겨자씨가 썩어서 발아가 되어 나무가 될 때까지 인내하시면서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배울 수가 있는 것이 겨자 나무입니다.

 

유대인들은 좋은 밭에는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 같은 것들을 심게 됩니다. 유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포도주와 올리브기름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품목들입니다. 그런데 아무 볼품도 없고 쓸모도 없고 도움도 되지 않는 이런 풀과 같은 나무를 밭에 심는다는 것은 엄청난 은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들에 나가면 흔해빠진 것이 겨자인데 이것을 좋은 밭에 심었다는 것은 선택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세상에는 포도나무나 올리브나무처럼 멋있고, 능력 있고, 재력 있고, 권세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하찮고 별 볼일 없는 나에게 주님이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나라에 나를 심어 놓으시고 변화되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좋은 밭에 심어 놓으시고 물도 주시면서 잘 자랄 수 있도록 보호하시고 경작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정말 좋은 나무들도 많이 있는데 나를 선택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나를 데려다 놓으신 것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절대 자신의 능력으로는 들어올 수 없는 존재들이 바로 겨자씨와 같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겨자씨를 통해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늘 감사하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31절 알렌 파라볼렌 파레데켄 아우토이스 레곤 호모이아 에스틴 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 코크코 시나페오스 혼 라본 안드로포스 에스페이렌 엔 토 아그로 아우투

32절 호 미크로테론 멘 에스틴 판톤 톤 스페르마톤 호탄 데 아욱세데 메이존 톤 라카논 에스틴 카이 기네타이 덴드론 호스테 엘데인 타 페테이나 투 우라누 카이 카타스케눈 엔 토이스 클라도이스 아우투

마13:31-32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 겨자씨는 작지만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져서 나무가 되고 공중의 새들이 와서 가지에 깃들이게 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시는 것은 어떤 의도가 있을까요? 겨자씨 한 알은 하찮은 씨입니다. 이 씨를 농부는 자신의 밭에 한 알을 심게 됩니다. 겨자나무는 군집 식물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씨를 뿌려야 만이 나중에 커서 공중의 새가 와서 가지에 앉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 알의 겨자씨를 심는다는 것은 절대 자라나지 못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농부는 이 겨자씨를 보면서 자라날 수 있도록 보호하고 가꾸면서 인내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천국이 이와 같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율법적인 의로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자신의 의를 나타내는 잘난 사람들은 절대 못 들어갑니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로는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겨자씨와 같은 기생과, 어부와, 세리들의 친구가 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와 같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최고의 가치는 명예와 수치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명예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할 정도로 최고의 가치로 생각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수치를 당하면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종교인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기도를 잘한다는 말을 듣는 것이 최고의 명예입니다. 어부는 고기 잡는 능력이 뛰어나며, 그물을 손질하는 기술이 뛰어나면 이것이 최고의 명예입니다. 농부는 농사를 잘 지어 많은 소출을 내면 이것이 최고의 가치입니다.

그런데 천국의 밭에 한 알의 겨자씨를 심은 농부는 하나님입니다. 그때 당시의 유대인들의 개념에 이 말씀을 들으면 웃기는 것입니다. 들에 나가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흔한 겨자씨를 좋은 밭에 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농부는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현재 나와 같은 흔한 겨자씨 한 알을 천국의 밭에 심으시고 수치를 당하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사탄들은 하나님을 비웃고 조롱하면서 나와 같은 존재가 무슨 하나님의 밭에서 자라나서 나무가 되겠냐고 비웃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비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지켜보시고 힘을 주시고 때가 되면 물을 주셔서 나무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입니다. 천국은 오직 십자가 예수그리스도의 의로만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잘난 자신의 의로는 절대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갖다’라는 헬라어 단어는 (람바노 2983 VPAANMS 동사, 분사, 과거, 능동, 주격, 남성, 단수) 취하다, 가져오다, 기다리다, 라는 뜻입니다. 천국은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은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람은 하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자기 밭은 교회와 천국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겨자씨는 세상에 널려있는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중에 한 명인 나를 선택하여 취하시고 가져오셔서 교회와 천국에 심어 놓으시고 잘 자랄 수 있도록 기다리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겨자씨를 농부가 자신의 밭에 심기 위하여 들에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온 것은 이미 과거에 자신의 밭에 포도나무나 올리브나무를 심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겨자씨를 심으려고 계획하고 지금 갖다가 심은 것입니다. 그 이유는 과거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만세전에 선택하여 주시고 교회에 심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하여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인내하시면서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내가 하나님 안에서 전혀 성화의 삶이 되지 않을 것 같지만 하나님은 기다려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끈기 있게 기다려주신 결과 내가 구원의 은혜를 받고 주님 안에서 성화가 되어 하나님께 기쁨이 되어가는 것, 바로 이것이 천국입니다. 천국은 전혀 변화되지 않을 것만 같은 자들이 변화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자들이 나타나는 것, 하찮은 겨자씨와 같은 존재들이 자라나서 나무가 되는, 이것이 바로 천국입니다.

 

심은’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스페이로 4687 VIAAS3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 단수, 3인칭) 심다, 심기다, 라는 뜻입니다. 농부는 들에서 겨자씨 한 알을 가지고 와서 자신의 좋은 밭에 심어놓는 것입니다. 별 볼일 없는 씨였으며 누구 하나 찾아주지 않았던 씨입니다. 그런데 이 농부는 겨자씨 한 알을 애지중지하면서 밭에 심어 놓은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셔서 천국에 심어 놓으시고 애지중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관심이 겨자씨와 같은 나에게 쏠려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겨자씨가 실제로 밭에 심겨져 있는 것처럼 구원받은 나도 실제로 천국에 심겨져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직설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겨자씨를 아무 계획도 없이 심은 것이 아니라 좋은 밭에 겨자씨 한 알을 심기 위하여 준비하고 땅을 일구고 기경하여 이 겨자씨를 심기로 농부가 작심한 것입니다. 과거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도 나를 만세전에 선택하셔서 미리 천국을 준비해 놓으시고 하나님 나라에 심어 놓으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죄를 사해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에 심어 놓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너무나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다.

3절 베하야 케에츠 솨툴 알 팔레게 마임 아쎄르 피르요 이텐 베이토 베알레후 로 이볼 베콜 아쎄르 야아세 야첼리아흐

시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복 있는 사람도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듯이 잎사귀가 마르지 않고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심은’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샤탈 8362 VQPP 동사, 칼(능동태), 분사수동) 옮겨 심다, 심기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복을 받은 사람들은 시냇가에 나무가 있는 것처럼 뜨거운 태양 아래에 있어도 두렵지 않습니다. 시냇물이 옆에서 흘러가고 주인이 항상 보호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나무는 주인이 산에 있는 작은 나무를 이식하여 자신의 정원에 옮겨 심은 것입니다. 주인은 정원의 시냇가에 나무를 심어서 철 따라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이 나무는 절대 자신의 힘으로는 시냇가 옆에서 자랄 수가 없습니다. 분사 수동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심어 놓아야 만이 시냇가에서 물을 빨아먹을 수가 있습니다.

 

자란 후에는’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아욱사노 837 VSAPS3 동사, 가정법, 과거, 수동태, 단수, 3인칭) 번성하다, 왕성하다, 자라나게 되다, 라는 뜻입니다. 농부가 밭에 심은 겨자씨가 왕성하게 자란 후에는 많은 공중의 새들이 모여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라지 못하면 새들이 모여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겨자씨가 주인의 보호를 잘 받으면 잘 자랄 수가 있지만 주인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 잘 자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가정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겨자씨는 잘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의 보호함을 반드시 받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가 과거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도 나를 교회에 심어 놓으시고 반드시 보호하시고 은혜를 주셔서 신앙이 잘 자라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겨자씨가 잘 자라서 나무가 되는 것처럼 나의 신앙도 잘 자라서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로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절대 자라지 못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에게 임하여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깃들이느니라’라는 헬라어 단어는 (카타스케노오 2681 VNPA 동사, 부정사, 현재, 능동) 거주하다, 장막을 치다, 살다, 라는 뜻입니다. 농부가 심어 놓은 작은 겨자씨 한 알이 자라서 나무가 되면 많은 공중의 새들이 가지에 앉아 거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장막을 치듯이 새들이 모여들어 떠나지 않고 앉아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이 성장하여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자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함께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신앙이 성장하면 다른 사람들이 찾아와서 옆에 거하게 됩니다. 이것은 성격이 말씀으로 변화가 되고 말투가 변하면 사람들이 모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자들이 십자가 복음의 말씀으로 변화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모여들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저와 여러분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까?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겨자 나무에 새들이 모여들 듯이 모여들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만족하실 만한 분량만큼 믿음이 성장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겨자씨를 통해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겨자씨는 세상에서 가장 흔한 씨이며 하찮은 씨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겨자 나무는 갈릴리 주변에 많이 피는 꽃입니다.

1절 헤칼 아르차 제불룬 베아르차 나프탈리 베하아하론 히케비드 데레크 하얌 에베르 하야르덴 겔릴 하고임

사9:1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갈릴리 주변에 겨자 나무가 많은 것을 통해서 우리가 영적으로 깨달을 것이 무엇입니까? 갈릴리 지역은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었습니다. 이곳은 고통받던 자들이 있었던 흑암의 땅입니다. 이 땅의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겨자씨처럼 짓밟히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빛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가심으로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바로 겨자 나무가 많은 장소가 갈릴리 땅입니다. 고통받고 흑암에 갇혀 있던 자들이 많았던 곳입니다. 겨자씨처럼 하찮고 죄악 가운데 있던 자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을 주님께서는 자신의 천국의 밭에 심어 놓으시고 영화롭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더 이상 고통당하지 않게 하시고 흑암에 괴로워하지 않게 하시며 멸시당하지 않는 삶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십자가에서 자신이 겨자씨와 같은 존재들의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도 이와 같이 갈릴리에서 고통당하던 겨자씨와 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의 은혜를 받고 영화로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겨자 나무를 통해서 영적으로 깨닫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한 알의 겨자씨와 같은 밀알이 썩어 많은 구원의 열매를 맺은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천국의 밭에 나를 심어 놓으시고 노심초사(勞心焦思)하시면서 자라나서 나무가 되기를 기다려주셨습니다. 주님의 기다림 때문에 내가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게 나갈 수 있는 신앙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들은 나도 세상에서 겨자씨처럼 하찮은 인생을 무시하지 마시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와 믿음의 겨자 나무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기다려주신 것처럼 그들의 믿음이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누가복음 헬라어 성경 설교말씀] 복음의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눅 14: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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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성도는 교회에서 복음의 떡을 먹어야 합니다. 복음을 먹지 않으면 영혼은 죽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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