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식물 중에서 백향목 나무가 있습니다. 백향목 나무는 나무 중에서 왕이라고 불리는 나무입니다. 구속사 관점에서 백향목 나무는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도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백향목 나무처럼 기품 있고 멋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백향목 나무 (에레즈 730)
성경에서 백향목 하면 자태가 뛰어나면서 품위 있게 보이기 때문에 나무의 왕으로 유대인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백향목을 생각할 때에 권세와 힘과 교만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백향목은 귀한 나무 중의 하나입니다. 보통 건축을 할 때에는 백향목을 사용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돌무화과나무로 지붕을 만들어 집을 지었습니다. 백향목은 레바논 산지에서 자라는 나무이며 군집적으로 자라는 나무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백향목으로 집을 지으려면 수입을 해다가 지어야 합니다.
우리가 백향목을 통해서 영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만왕의 왕이신 예수그리스도는 영적인 권세와 능력이 있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백성들은 예수그리스도의 권세를 가지고 세상에서 왕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자녀들은 절대 외적으로 자만하거나 교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은사를 받고 능력이 나와도 자만하거나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는 내가 잘나서 된 것도 아니고 은사의 능력을 받은 것도 내가 열심히 해서 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시나무에 비유되고 있는 아비멜렉은 스스로 교만하여 결국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구원받았다면 겸손해야 합니다. 백향목처럼 외적인 자태가 풍기고 재물의 영광이 나타나도 자신을 드러내지 말고 축복을 주신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자멸하게 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백향목을 말할 때에 솔로몬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백향목은 솔로몬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솔로몬의 영광이 백향목처럼 뛰어나고 권세와 영광이 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반면에 솔로몬의 통치시대에 자만하고 교만했다는 것을 말하려는 의도입니다.
27절 바이텐 하멜렉크 에트 하케세프 비루샬람 카아바님 베에트 하아라짐 나탄 카쉬키밈 아쎄르 바쉬펠라 라로브
왕상10:27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 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 같이 많게 하였더라
솔로몬 시대에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 같이 흔하게 여기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 같이 많게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솔로몬 시대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축복하신 것입니다. 은이 얼마나 많으면 돌처럼 흔하게 여겼습니까? 또한 집을 건축하는데 보통은 뽕나무인 돌무화과나무로 짓는데 귀한 백향목이 얼마나 많으면 뽕나무처럼 흔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귀한 것이 너무나 많으니 귀한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백향목’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에레즈 730) 백향목이며 이 단어는 (아라즈 729) 단단하다, 견고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백향목은 귀한 건축 재료이며 나무의 질이 단단하고 견고하여 벌레가 잘 먹지 않습니다. 나무의 품질이 좋아서 집을 건축해 놓으면 멋있게 보이는 것입니다. 뽕나무로 집을 건축한 것과는 확연히 다르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적으로 우리는 어떠한 재료로 구원의 집을 지어야 합니까? 만왕의 왕이신 백향목과 같은 주님으로 구원의 집을 건축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보혈로 집을 지을 때에 원죄의 벌레들이 좀먹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럽고 추악한 비 진리의 벌레들이 침투하여 구원의 집을 썩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럼 내가 구원의 확신을 얻었다는 것은 백향목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의 집을 지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9절 바이벤 에트 하바이트 바이칼레후 바이시폰 에트 하바이트 게빔 우시데로트 베아라짐
10절 바이벤 에트 하야초아 하야치아 알 콜 하바이트 하메쉬 암모트 코마토 바예에호즈 에트 하바이트 바아체 아라짐
왕상6:9-10 성전의 건축을 마치니라 그 성전은 백향목 서까래와 널판으로 덮었고 또 온 성전으로 돌아가며 높이가 다섯 규빗 되는 다락방을 건축하되 백향목 들보로 성전에 연접하게 하였더라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는데 백향목 서까래와 널판으로 덮었습니다. 또한 백향목 들보로 성전에 연결을 하였습니다. 백향목은 그 자태에서 부귀와 영광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부귀와 영광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을 백향목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건축을 마치니라’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칼라 3615 CW.VPIMZS.MZS 와우계속, 동사, 피엘(강조능동),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남성 3인칭, 단수) 완성하다, 끝내다, 마치다, 라는 뜻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데 7년의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이렇게 열심히 성전을 짓고 완성하여 끝을 맺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열심히 자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재물과 사람들을 쏟아부어서 성전을 지었습니다. 피엘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전을 짓는데 즉시 시작하여 이제 마지막 완성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성전에 사용한 나무는 최고의 건축 재료인 백향목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내 심령에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위해서는 최고의 건축 재료인 예수 그리스도로 집을 지어야 합니다. 이 보다 더 좋은 건축 재료는 없습니다. 십자가의 보혈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구원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내 심령에 항상 주님이 함께 하시고 있다면 나는 백향목 재료로 집을 지은 것입니다. 그것도 열심히 찾을 수 없는 중에 재료를 찾아서 최선을 다해 집을 지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백향목을 구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레바논에서 수입하다가 성전을 솔로몬이 건축한 것입니다.
3절 바이쉴라흐 쉴로모 엘 후람 멜렉크 초르 레모르 카아쎄르 아시타 임 다비드 아비 바티쉴라흐 로 아라짐 리베노트 로 바이트 라셰베트 보
대하2:3 솔로몬이 사절을 두로 왕 후람에게 보내어 이르되 당신이 전에 내 아버지 다윗에게 백향목을 보내어 그가 거주하실 궁궐을 건축하게 한 것 같이 내게도 그리 하소서
솔로몬은 자신의 나라에서 백향목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두로 왕 후람(히람)에게 사절단을 보내 백향목을 보내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이렇게 구하기 어려운 중에도 열심히 찾아서 성전을 건축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백향목과 같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교회를 지어야 합니다. 다른 것으로 교회를 지으면 좀 벌레들이 득실거려 썩게 됩니다. 하지만 주님의 십자가 보혈은 방부제 역할을 하여 영혼을 좀먹게 하는 벌레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백향목으로 심령의 전을 건축한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이 땅에서도 번성하는 복을 받게 됩니다.
12절 차디크 카타마르 이피라흐 키에레즈 발리바노트 이시게
13절 쉬툴림 비베이트 아도나이 비하치로트 엘로헤누 야피리후
시92:12-13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시편 기자는 의인은 종려나무와 같이 번성하고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정원에서 보호함을 받기 때문입니다.
‘심겼음이여’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샤탈 8362 VQPPMP 동사, 칼(능동태), 분사수동, 남성, 복수) 심다, 옮겨 심다, 라는 뜻입니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구원을 받은 자들은 의인입니다. 이런 자들은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성장을 하는데 그 이유가 여호와의 집에 하나님께서 옮겨 심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나는 영원히 세상의 산에서 원죄에 빠져 큰 나무들에게 치여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인생입니다. 더 이상 성장하지도 못하고 큰 나무 밑에서 햇빛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영양분도 먹지 못하며 살다가 끝날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님이 나를 찾아오셔서 너무나 불쌍히 생각하여 큰 나무에 밑에 있는 나를 선택하여 캐다가 자신의 정원에다 심어주셨습니다. 천국의 집에 심어 놓으시고 계속해서 물을 주시고 모난 부분은 전지가위로 잘라주시고 나를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뜨거운 햇빛에 걱정할 필요도 없고 큰 나무들 밑에서 치일 필요도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가 나에게 임한 것입니다. 그리고 최고의 백향목 나무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세상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셨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해 주셔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하나님 앞에서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본성이 죽을 자를 살려주면 하나님께 대적하고 불평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것은 백향목이 교만해진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 나가고 능력이 생기고 재물이 들어오면 자신의 힘으로 된 줄 알고 교만하거나 자만에 빠지게 되고 사람을 무시하고 더 나가서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상황까지 가게 됩니다. 이런 신앙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백성들인 백향목이 교만하거나 자만에 빠지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교만과 자만을 꺾으시는 것입니다.
5절 콜 아도나이 쇼베르 아라짐 바이샤베르 아도나이 에트 아리제 하레바논
시29:5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이 최고로 좋은 건축 재료인데 이 나무가 교만해지니 하나님께서는 꺾어서 부수시는 것입니다.
‘꺾어 부수시도다’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샤바르 7665 CW.VPIMZS 와우계속, 동사, 피엘(강조능동),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꺾어버리다, 허물어지다, 근심하게 하다, 약탈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꺾어버리듯이 인생의 하는 일을 꺾어버리시는 것입니다. 사업을 하다가 잘 나갈 때에 하나님은 허물어지게 하시고 평안하다 할 때에 근심거리가 생기게 하셔서 뼈를 마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겸손해지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즉시로 모든 사업을 꺾어버려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잘되는 것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손대시면 멸망당하는 것이고 주셨던 모든 축복을 약탈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꺾어버리시는데 절대 꺾이지 않으려고 해도 꺾일 수밖에 없는 강력한 힘으로 부러지게 하는 것입니다. 피엘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완전히 부러져 다시는 소생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권세를 주셔도 자랑하지 말고 주님을 높이고 십자가만 자랑해야 합니다.
23절 요샤비티 요샤비티 바레바논 미킨나니티 바아라짐 마 나하니티 비보 레크 하발림 힐 카욜레다
렘22:23 레바논에 살면서 백향목에 깃들이는 자여 여인이 해산하는 고통 같은 고통이 네게 임할 때에 너의 가련함이 얼마나 심하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외치고 있습니다. 레바논에 살면서 백향목에 깃들이는 자여 여인이 해산하는 고통 같은 고통이 너에게 임할 때에 가련함이 얼마나 심하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우상을 따라가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탄식하시는 말씀입니다. 레바논에 살면서 백향목에 깃들여서 권세를 누리는 자들은 결국 멸망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가지고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솔로몬도 하나님께서 부귀영화를 주셨는데 마지막에는 이 권세를 가지고 우상의 신전을 만들어 영적으로 타락하게 만들었습니다. 현재의 영적 지도자들은 백향목과 같은 교만과 자만으로 나가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교세가 크다고 교만하게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결국은 멸망당하는 것입니다.
‘너의 가련함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하난 2603 VNAFYS 동사, 닢알(수동태), 완료, 여성, 2인칭, 단수) 불쌍히 여기다, 긍휼히 여기다, 애걸하다, 라는 뜻입니다. 남 유다가 교만해지자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통해서 포로로 끌려가게 합니다. 결국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나님께 애걸하면서 매달렸지만 하나님은 이들을 포로로 끌려가게 하셨습니다. 교만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회개할 기회를 주셨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더 타락하여 교만해지고 자만해졌던 것입니다. 이런 일 때문에 결국 이들은 비천하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가련하게 된 것이 스스로 회복할 수 없도록 완전하게 포로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닢알형과 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22절 코 아마르 아도나이 아도나이 비라카히티 아니 미차메레트 하에레즈 하라마 비나타티 메로쉬 요니코타이브 라크 에키토프 비샤탈리티 아니 알 하르 가보아 비탈룰
23절 비하르 메롬 이스라엘 에쉬탈레누 비나사 아나프 비아사 페리 비하야 리에레즈 아디르 비샤키누 타히타이브 콜 치포르 콜 카나프 비첼 달리요타이브 티쉬코나
24절 비야디우 콜 에체 하사데 키 아니 아도나이 히쉬팔리티 에츠 가보아 히기바히티 에츠 샤팔 호바쉬티 에츠 라흐 비히피라히티 에츠 야베쉬 아니 아도나이 디바리티 비아시티
겔17:22-24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꺾어다가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우뚝 솟은 산에 심되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요 각종 새가 그 아래에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살리라 들의 모든 나무가 나 여호와는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푸른 나무를 말리고 마른 나무를 무성하게 하는 줄 알리라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하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꺾어다가 심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교만한 자들을 겸손하게 낮추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우뚝 솟은 산에 심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백향목과 같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연한 가지가 되어 이 땅에 비하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부활하셔서 우뚝 솟은 자가 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도 이스라엘의 높은 산에 심으시는 것입니다.
이 가지가 백향목이 되어 각종 새가 그 아래에 깃들이고 그늘에 살게 되며 여호와는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푸른 나무를 말리고 마른나무를 무성하게 하시는 분임을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교만한 자들은 낮추시고 미련한 자들은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백향목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늘에서 쉼과 안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백향목을 통해서 깨달은 것은 무엇입니까?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왕이 되셨습니다. 구원받은 자들을 위해 죽으심으로 왕이 되셨고 구원받은 백성들은 왕과 같은 족속이 되어 세상에서 권세를 얻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물질을 번 것도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교만하거나 자만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은 꺾어버리시는 것입니다. 백향목을 통하여 외형적으로 멋있고 세상에서 권세가 있어도 없는 듯 감사하시면서 겸손히 오직 백향목과 같으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섬기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식물 히브리어 설교문] 소돔 사과나무(타푸아흐 쎄돔), (아르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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