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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헬라어 예수님 말씀] 일만 달란트와 백 데나리온 빚진 자(마 18:21-35)

르호봇 2021. 11. 14.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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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용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나와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형제가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를 해 주어야 합니까라고 하니 그에 대답으로 일만 달란트 빚진 자와 백 데나리온 빚진 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다고 말합니다. 일만 달란트는 구속사 관점에서 원죄를 상징하고 백 데나리온은 자 범죄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원죄를 해결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형제의 자 범죄를 용서해 주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일만 달란트와 백 데나리온 빚진 자(마 18:21-35)

 

예수님께서 용서하지 못하는 종의 비유를 말씀하시는 이유는 베드로가 예수님께 질문을 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에게 형제가 죄를 지으면 몇 번을 용서해 주어야 할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일곱 번까지 용서해 주면 됩니까? 라고 질문을 했는데 예수님은 일곱 번이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해 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의 용서하지 못하는 종의 비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비유를 통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에게 죄를 지은 자를 용서해 준다고 하는 것은 자 범죄를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비유를 통하여 천국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원죄와 자 범죄의 해결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갈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이 시간 우리는 용서하지 못한 자의 행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종은 바로 나를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으로부터 원죄를 해결 받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죄를 짓는 자들의 자 범죄를 용서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3절 디아 투토 호모이오데 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 안드로포 바실레이 호스 에델레센 쉬나라이 로곤 메타 톤 둘론 아우투

마18:23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천국은 종들과 마지막 결산하려고 하는 어떤 임금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비유의 말씀은 천국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 히브리어에 결산하려는 단어 앞에 육체와 피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신약 히브리어 성경에는

 

육체’라는 단어는 (바사르 1320) , 육체,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바사르 1319) 기쁜 소식을 가져오다, 선포하다, 공포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천국은 마지막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의 복음을 가지고 결산하는 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나오는 종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 앞에서 복음의 결산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라는 단어는 (1818) , 살육, 죄 값, 피 흘린 자,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다맘 1826) 침묵을 지키다, 조용하다, 멸절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결산한다고 하셨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와 피를 가지고 결산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날에 대한 심판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을 믿는 자들은 주님이 대신 죄 값을 치르고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온 자들은 절대 구원을 얻을 수 없고 하나님 앞에서 침묵을 지키며 조용히 있게 됩니다.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은 결국 영원한 지옥의 불 못으로 떨어져 멸망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현재 우리에게도 이렇게 마지막 심판대 앞에 섰을 때에 주님의 육체와 피를 믿었는지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이런 결산의 때가 반드시 우리에게도 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24절 아륵사메누 데 아우투 쉬나이레인 프로세네크데 아우토 헤이스 오페일레테스 뮈리온 탈란톤

마18:24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임금 앞에 결산을 하려고 종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만 달란트의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무수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때에’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할랄 2490 VHAMZS) 수치 당하다, 더럽힘을 받다, 상하다, 구멍이 나다, 라는 뜻입니다. 마지막 하나님 앞에 나갔을 때에 만 달란트의 빚진 자를 결산하는데 십자가에 고난당하시고 더럽힘을 받아 주님의 육체가 상하여지고 대 못에 손과 발과 구멍이 나고 창에 의해 옆구리에 구멍이 나는 결산을 하나님께서 하시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것을 갚을 능력이 없으면 결국 영원한 지옥의 불 못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케사프 3702) ,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카사프 3700) 치욕당하다, 창피당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일만 달란트의 빚을 지고 있는 종은 현재 원죄에 대한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 스스로 이 죄를 해결해 보려고 했지만 절대 해결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바로 율법주의자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으로 일만 달란트의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은 유대인들은 속전 세를 하나님 앞에 내야 합니다. 속전 세를 은으로 하나님 앞에 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치욕당하시고 창피당하여 죽으신 것을 믿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속전 세를 하나님 앞에 낸 것입니다. 하지만 원죄를 자신들이 해결하려고 자신의 의를 가지고 나온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는 절대 원죄의 해결이 되지 않고 자신이 치욕당하며 창피를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서 결산하는 종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에게도 연관이 있습니다. 내가 내 힘으로 원죄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일만 달란트의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고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자들은 주님께서 나의 일만 달란트의 빚을 가져가신 것입니다.

25절 메 에콘토스 데 아우투 아포뒤나이 에켈류센 아우톤 호 퀴리오스 아우투 프라데나이 카이 텐 귀나이카 아우투 카이 타 테크나 카이 판타 호사 에이켄 카이 아포도데나이

마18: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임금 앞에 나온 종은 일만 달란트의 빚을 갚을 능력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명령하여 너의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팔아 갚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임금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이고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 여기에서의 종은 바로 나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나도 주님 앞에 일만 달란트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갚으려고 해도 갚을 능력은 하나도 없습니다. 내 힘으로 원죄를 해결하여 빚에서 나오려고 허덕이지만 나올 방법이 없습니다. 나의 모든 재산을 팔아도 이 빚을 갚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26절 페손 운 호 둘로스 프로세퀴네이 아우토 레곤 퀴리에 마크포뒤메손 에프 에모이 카이 판타 소이 아포도소

27절 스플랑크니스데이스 데 호 퀴리오스 투 둘루 에케이누 아펠뤼센 아우톤 카이 토 다네이온 아페켄 아우토

마18:26-27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빚진 종이 주인 앞에 엎드려 절하고 화를 내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모두 빚을 갚게 다고 말하지만 주인이 볼 때는 이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종을 불쌍히 여겨 빚을 탕감하여 주었습니다.

 

탕감하여’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2342 CW.VQIMZS 와우접속사 동사 칼(능동태)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근심하다, 중상을 입다, 아파하다, 춤추다, 라는 뜻입니다. 주인이 종을 보고 너무 불쌍히 본 것입니다. 이 종은 일만 달란트를 갚을 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에 마음에 근심하고 이미 자신의 몸과 마음도 중상을 입을 정도로 쇠약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지 이 빚을 갚아야 하는데 갚을 능력이 없기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이 종의 마음을 아시고 더 이상 갚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이 종은 기뻐서 춤을 추듯이 날아갈 것 같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주인은 즉시로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하여 주었고 더 이상 이 빚은 갚지 않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빚은 주인이 갚아주지 않으면 절대 갚을 수도 없는 빚입니다.

 

이것을 볼 때 우리의 원죄도 주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갚아주시지 않으면 절대 갚을 길이 없습니다. 우리도 원죄 때문에 고민하고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여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주님이 아시고 직접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대속하셔서 우리의 일만 달란트의 원죄를 갚아주신 것입니다.

28절 엑셀돈 데 호 둘로스 에케이노스 휴렌 헤나 톤 쉰둘론 아우투 호스 오페일렌 아우토 헤카톤 데나리아 카이 크라테사스 아우톤 에프니겐 레곤 아포도스 모이 호 티 오페일레이스

29절 페손 운 호 쉰둘로스 아우투 에이스 투스 포다스 아우투 파레칼레이 아우톤 레곤 마크로뒤메손 에프 에모이 카이 판타 아포도소 소이

30절 호 데 우크 에델렌 알라 아펠돈 에발렌 아우톤 에이스 퓔라켄 헤오스 우 아포도 토 오페일로메논

마18:28-30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종이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고 나서 자기에게 빚진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이 사람은 백 데나리온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목을 잡고 빚을 당장 갚으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전과 똑같은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자신이 주인에게 한 것처럼 참아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그것을 참지 못하고 자신에게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어 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깊은 영적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현재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자가 하는 행동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이 사람은 원죄에 대한 탕감을 기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잠시 잠깐 기뻐하며 춤을 추었지 그 시간이 아주 짧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원죄에 대하여 회개하고 주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은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자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죄는 반드시 용서가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받은 은혜가 더 크기 때문에 작은 죄는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종은 자신의 받은 은혜는 자신이 잘 나서 받은 것처럼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율법주의자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은혜는 모래 위에 기록해 놓고 자신에게 죄를 지은 사람들의 죄는 돌에 새기는 자들입니다.

 

현재 우리가 이와 같이 일만 달란트의 원죄를 해결 받고도 형제의 작은 자 범죄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면 나는 진정으로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백성인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형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원죄를 해결 받았는데 이 세상에서 영생과는 관련이 없는 자 범죄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면 나는 하나님 앞에 진정 구원받은 백성인가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린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은 영혼의 문제를 해결 받고 이 세상의 육체의 일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32절 토테 프로스칼레사메노스 아우톤 호 퀴리오스 아우투 레게이 아우토 둘레 포네레 파산 텐 오페일렌 에케이넨 아페카 소이 에페이 파레칼레사스 메

33절 우크 에데이 카이 세 엘레사이 톤 쉰둘론 수 호스 카이 에고 세 엘레에사

34절 카이 오르기스데이스 호 퀴리오스 아우투 파레도켄 아우톤 토이스 바사니스타이스 헤오스 후 아포도 판 토 오페일로메논 아우토

마18:32-34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이 종의 소식을 들은 주인이 다시 종을 불렀습니다. 그러면서 악한 종이라고 말하면서 네가 갚을 능력이 없는 것을 보고 사정하여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는데 너는 너의 동료의 작은 빚을 갚지 않는다고 옥에 가두었느냐고 하시면서 옥에 가두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이 종은 완전하게 빚을 탕감 받지 못한 것입니다. 주인에 대한 은혜를 수치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은혜를 주인으로부터 받았다면 많은 종들이 알고 있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종의 행동을 보면 완전한 은혜를 받은 것에 자신의 율법을 적용하여 수치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율법을 앞세워 자신에게 죄를 지은 사람을 정죄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자신의 의를 주장하고 자신에게 작은 죄라도 지으면 절대 용서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원죄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잠시 멈추고 있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일만 달란트의 빚을 갚아주시고 구속시켜 주셨는데 이 종과 같은 사람들은 이런 은혜에 자신의 의를 합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구속의 은혜를 온전하게 믿지 못하고 있는 자들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35절 후토스 카이 호 파테르 무 호 에푸라니오스 포이에세이 휘민 에안 메 아페테 헤카스토스 토 아델포 아우투 아포 톤 카르디온 휘몬 타 파라프토마타 아우톤

마18: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도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우리에게 이와 같이 하신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도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원죄를 해결 받았다면 형제의 자 범죄를 용서해주라는 말씀입니다. 더 나아가 자 범죄를 용서해 주지 않는다면 주님으로부터 받은 원죄의 용서에 수치를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행위로는 절대 원죄의 빚을 갚을 능력이 없습니다. 이것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갚아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형제가 나에게 죄를 지은 자 범죄를 용서해 주는 것은 원죄를 용서해 주신 하나님께 대한 보답이며 은혜를 갚는 것입니다. 원죄는 내가 갚을 능력이 없어서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자 범죄는 내가 얼마든지 용서하고 갚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의 핵심은 원죄를 해결 받은 자들은 형제에 대한 자 범죄를 갚아주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으로 나의 일만 달란트의 빚을 갚아주신 것처럼 나에게 죄를 지어 갚을 수 없는 자들을 위해 주님처럼 나를 헌신하여 갚아주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진정 구원받은 백성이라는 것을 오늘 비유의 말씀을 통하여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영생을 얻었으니 이 세상을 살면서 자 범죄를 지은 자들을 위해 헌신하며 용서하는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태복음 헬라어 예수님 말씀] 선택자와 불택자의 차이점(마 21:2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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