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원문 설교강해 자료

[마태복음 산상수훈 헬라어 주석 강해] 구제에 대한 가르침(마 6:1-4절)

르호봇 2021. 4. 25. 16:26
반응형

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산상수훈 헬라어 주석 강해 중에서 구제에 대한 가르침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 말씀을 통해서 사람이 어떻게 구제를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 앞에서 잘 보이려고 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잘 보여야지 사람에게 잘 보이면 하나님께 받을 상급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들처럼 자신이 영광을 받기 위해서 하는 것처럼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런 자들은 이미 사람에게 모든 상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받을 것이 없습니다. 너희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갚아 주신다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도 교회에서 헌금하는 것이나 봉사하는 것을 할 때에 사람을 의식하면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해야 하겠습니다.

구제에 대한 가르침(마 6:1-4절)

 

1절 프로세케테 텐 엘레에모쉬넨 휘몬 메 포이에인 엠프로스덴 톤 안드로폰 프로스 토 데아데나이 아우토이스 에이 데 메 게 미스돈 우크 에케테 파라 토 파트리 휘몬 토 엔 토이스 우라노이스

마 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6:1

사람에게 보이려고 - 이 구절은 1-18절까지의 서론에 해당된다. 이 단락에는 그 당시 유대인들이 지켜오던 세 가지 종교적 의무, 즉 의(, 2-4), 기도(5-15), 그리고 금식(16-18) 등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이 제시되고 있다. 즉 5장에서 예수께서는 율법의 직접적인 내용에 대한 올바른 정신과 해석을 설명하시고도 높은 경지의 의()를 가르치신 후 이곳에서부터는 율법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은 유전(inheritance)과 관습에 관한 바른 지침 및 그들이 당면할 종교적 위선의 위험성을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예수께서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외식(外飾)적으로 이 같은 종교적 관행을 하고 있음을 비난한다. 여기서 '보이려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아데나이'는 어떤 구체적인 '목적'을 강조하는 제1 부정 과거 수동태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사람에게 보이려고''그 행동의 궁극적인 목적'바로 사람에게 과시하고, 인정받으려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제시한다. 이처럼 전적으로 인간을 의식하고 그의 판단을 고려하면서 취하는 행동은 항상 위선의 위험성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연약성을 익히 아시고, 또 그것을 능히 극복케 하시는 하나님을 먼저 고려하고 날마다 신전(神前, Coram Deo) 의식을 지닐 때 인간의 오류와 위선은 최소화될 수 있다.

너희 의를 - 어떤 사본에는 이 말이 '너희 구제를'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 까닭은 아마 ''란 말이 히브리어로 '체다카'로서 70인 역(LXX)에 따르면 간혹 구제를 위한 의를 가리키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6:25).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구제'란 의미로 직접 변형하여 사용한 적이 없고, 또 다음 절에는 '구제'말이 따로 쓰이기 때문에 이를 구제란 말로 사용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따라서 바리새인과 구별되는 '너희'라는 말과 더불어 이 ''(디카이오쉬)는 예수의 제자들이 지켜나가야 할 의로운 생활 방식의 배후에 있는 거룩한 동기를 뜻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D.A. Carson).

행치 않도록 - 의를 행한다고 하는 것은 율법의 요구 사항을 실천하고 율법의 규정에 따라 바른 행위를 함을 가리킨다. 그러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또 사람들로부터 경건한 자로 인정받기 위해 고의적(故意的)으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만 이를 행하였다. 이에 주께서는 이러한 위선적 행위를 규탄하고 하나님의 실존을 의식하고 그분이 미구(未久)에 내려주실 온전한 보상만을 기대하며 몸과 마음을 일치시켜 하나님께 진정으로 헌신해야 할 것을 요구하신 것이다.

주의하라(프로세케테) - 이는 주로 고대 헬라어에서 종종 발견될 뿐 성경 문학에서는 좀처럼 사용되지 않는 단어로서(LXX, 7:17), 특히 성경에 도입된 이 단어는 '마음'을 뜻하는 ''이란 말이 생략된 형태이다. 따라서 이 말의 원의(原意)를 살펴보면 '이것을 항상(생각)하라', '오직 이 일에 마음을 집중시키라'라는 뜻이 된다.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 바리새인들은 하나님보다는 사람들의 눈을 더 염려했으며, 또 그들에게서 이미 위대하며 경건하다는 칭찬을 상()으로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사람의 행위 전체를 바라보고 계셨던 하나님께는 받을 상이 없는 것이다.

2절 호탄 운 포이에스 엘레에모쉬넨 메 살피세스 엠프로스덴 수 호스페르 호이 휘포크리타이 포이우신 엔 타이스 쉬나고가이스 카이 엔 타이스 흐뤼마이스 호포스 독사스도신 휘포 톤 안드로폰 아멘 레고 휘민 아페쿠신 톤 미스돈 아우톤

마 6: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2

그러므로 - 이 말의 원어 ''은 여기서 앞 구절에 대한 결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보충적 설명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따라서 이는 '예를 들자', '이에 대한 구체적 사례를 들자면'의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구제할 때에 - 이 어구가 '구제한다면'이라는 조건문으로 기록되었으면 구제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고 볼 수 있겠으나, 이 어구는 단순히 직설적으로 '구제할 때에'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주께서는 구제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말씀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구제가 공적(功績)을 쌓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방편 중의 하나로 생각할 정도로 구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었다(구약 외경 토비트 12:8, 9). 어쨌든 여기서는 공적에 대한 신학적 논쟁을 하거나 그들의 구원관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함에 있어서 과시나 보이기 위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제시되었다.

외식하는 자(호이 휘포크리노마이) - 이는 '가면을 쓰', '위선적 태도를 취하다', '...인 체하다'는 등의 뜻인 '휘포크리노마이'에서 유래한 말로서 '타인의 흉내를 내는 사람', '배우'등으로 이해된다. 한편 이 용어는 주로 겉과 속이 판이하게 다른 바리새인들의 거짓되고 위선적인 형태와 연관되어 본서에 자주 사용되고 있다(5, 16; 7:5; 15:7; 23:13-15; 24:51).

여하'외식'은 타인과 자신을 동시에 속이는 악행으로서 전지(全知)하신 하나님 앞에 반드시 단죄될 것이다(고후 5:10).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 의와 기도 그리고 금식으로 삼대별(三大別)되는 유대인의 종교적 의무 중에서 아마 ''의 일부에 속한 이 구제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셨던 것 같다. 그러나 외식자들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는 동기(動機)에서 사람들의 눈에 띄기 쉬운 회당과 거리에서 이러한 종교 의무를 했던 것이다. 실로 그들은 인간의 본분인 하나님께 '오직 영광'(Sola Gratia, 12:13; 11:36)을 돌리는 데는 전혀 무신경했던 것이다.

나팔을 불지 말라 - 이에 대해 많은 주석가들은 예루살렘 성전 내에서 궁핍한 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성금을 모을 때 나팔을 불던 것을 가리킨다고 해석하고 있다(Hill, Bonnard). 그리고 칼빈(Calvin)은 구제자들이 성금을 내면서 이 사실을 알리고자 나팔을 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어떤 학자는 헌금궤(눅 21:1)의 모양이 뿔피리 모양으로 생긴 데에 이 말의 근원이 있다고 주장한다(Edersheim, Jeremias). 그러나 이러한 견해들은 이를 뒷받침할만한 확정적 자료가 없다는 점에서 그렇게 단정 지을 수가 없.

따라서 우리는 이를 실제로 나팔을 부는 것을 가리킨다기보다는 '자랑하지 말라'라는 뜻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이와 더불어 '뷔흘러'(A. Buchler, St. Matthew V:1-6)의 다음과 같은 견해를 재고해 보아야 한다.

'공적인 금식 기도는 나팔소리에 의해 선포되었다. 그런 때에는 사람들이 비오기를 탄원하는 기도 등을 길거리에서 드리곤 하였다(5). 그런데 당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구제 행위가 자신들의 그러한 금식과 기도의 효과를 한층 더 보장해 준다고 생각했다(Sanhedrin 35a; P. Tannith 2:6).

그리하여 사람들은 구제를 하게 되었는데, 이런 구제 행위가 자기 과시(誇示)적인 행동을 낳는 기회가 되었다'라는 것이다.

상을... 받았느니라 - 바리새인들이 원하던 것은 하나님의 상이 아니라 대중의 칭찬이었으므로 그들은 헛된 영광의 상을 이미 받은 것이다. 여기서 '받다'에 해당되는 원어 '아페쿠신'은 상업 용어로써 자주 쓰이는데, 거기서 이 말은 전액을 영수(receipt)했다는 뜻이다.

3절 수 데 포이운토스 엘레에ㅔ모쉬넨 메 그노토 헤 아리스테라 수 티 포이에이 헤 덱시아 수

마 6: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6:3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 왼손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도와주며 이 둘은 항상 함께 일한다. 따라서 '왼손이 알지 못하게 하라'는 말은 자신이 베푼 자선을 도무지 기억지 말고 의식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즉 그 선행이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듯이 하라는 당부인 것이다.

이 구절에 대한 몇 가지 설명을 들자면, (1) 겸손하고 은밀하게 그리고 말없이 주는 것을 상징한다(Chrysostom). (2) 오른손으로 일을 해 놓고 왼손으로 그 결과를 거두려고 하지 말라(Luther). (3) 선을 행하고는 그것을 바다에 던지라 고기들은 모른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아시리라(동양 격언) 등을 열거할 수 있다.

4절 호포스 에 수 헤 엘레에모쉬네 엔 토 크륍토 카이 호 파테르 수 호 블레폰 엔 토 크륍토 아우토스 아포도세이 소이 엔 토 파네로

마 6: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6:4

은밀하게 하라 - 이는 아무도 모르게 하라는 명령이기도 하고 또한, 사람의 상을 기대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 이 어구는 이곳 외에 6절과 18에 다시 반복된다. 그런데 KJVTextus Receptus의 자의적 해석에 의하면 본절과 6'은밀히'와 대구를 이루는 '드러내 놓고'(openly, 토 파네로)란 말이 첨가되어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공개적으로 갚으시리라'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친 의역이라고 생각된다. 예수께서는 보상의 내용에 대해서는 그저 침묵하실 뿐이다. 여하튼 우리가 우리의 자선을 잊게 되면 잊게 되는 만큼 하나님이 주목해 보실 것이다. 반면에 우리가 그것을 높이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한 만큼 하나님은 그것을 무시하실 것이다.

너의 아버지 - 하나님은 외식하는 자들에게는 은밀한 중에 그 위선의 속 깊은 내면을 보고 계시는 심판주로 다가오시기 때문에 매우 두려운 존재로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자기 의()를 드러내지 않는 주의 제자들에게는 자신의 선한 행위를 조용하고 따뜻한 눈길로 다 하나하나 보시고 기억해 두시는 '아버지'로 다가오실 것이며, 따라서 그 같은 사실 자체가 크나큰 기쁨과 위로가 될 수 있다.

갚으시리라(아포도세이 소이) - 직역하면 '그에 합당한 양을 어김없이 되돌려 준다'는 뜻이다. 그런데 주께서는 여기서 하나님이 어떻게 갚아주실 것인지 또는 그 보상의 성격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치 않고 있다. 러나 신약성경들이 계시하고 있는 여러 증거들을 참고할 때 우리는 그 보답이 현세와 내세에서의 지고(至高)한 기쁨과 원숙한 인격의 완성으로 주어질 것임을 짐작할 수 있(Broadus).

문법은 직설법 미래 시제 능동태를 사용하고 있다. 직설법은 실제로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신다는 것을 말한다. 미래 시제를 사용했다는 것은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갚아주시는 것도 되겠지만 마지막 내세에서 갚아주실 것을 암시하고 있다. 능동태는 하늘 아버지께서 직접 이 세상에서 구제한 것을 갚아주시겠다는 것을 말한다.

[사무엘상 히브리어 설교] “사울과 모르드개의 신앙 비교”(삼상 10:20-21, 에 2:5)

 

[사무엘상 히브리어 설교] “사울과 모르드개의 신앙 비교”(삼상 10:20-21, 에 2:5)

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무엘상 히브리어 설교 중에서 사울과 모르드개의 신앙 비교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사울 왕과 모르드개는 같은 베냐민 지파입니다. 사울은 왕이 되기

rhb-bible.tistory.com

[신약성경지명 주일설교말씀] 가이사랴 빌립보(마16:13-15)

 

[신약성경지명 주일설교말씀] 가이사랴 빌립보(마16:13-15)

안녕하세요. 오늘은 신약성경 지명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이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에 가셨을 때에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사

rhb-bible.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