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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부활주일 헬라어 설교말씀] “예수 그리스도 별세 은혜”(눅 9:31)

르호봇 2021. 4. 26.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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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부활주일 헬라어 설교말씀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별세 은혜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실 것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성도에게 부활의 소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곳에 모세와 엘리야도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반드시 부활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이 나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가져가시고 나는 부활의 소망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이 죽지 않으면 부활도 없습니다. 우리의 썩어질 몸이 썩어지고 나면 썩지 않은 몸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이 몸은 신령한 몸으로서 영원히 죄가 없는 몸입니다. 이 몸으로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이 시간 우리도 주님의 별세의 은혜를 받고 죄악 가운데서 살아나고 부활의 소망을 갖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별세 은혜”(눅 9:31)

 

오늘 본문의 말씀이 나오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신앙의 고백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누구라고 묻느냐는 것입니다. 그때에 제자들이 어떤 사람은 세례 요한이라고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고 하고 어떤 이는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고 말하면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나신 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나를 어떤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느냐!라고 질문하시는 것입니다. 그때에 제자의 대표로 베드로가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제자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 것을 경고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삼일 만에 살아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하나님께서 부활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제자들에게 미리 예고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는 자는 잃게 될 것이고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잃는 자는 구원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주님과 함께 변화 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예고하신 후에 직접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의아해했을 것입니다. 현재 주님과 함께 있는데 주님이 돌아가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다는 조차도 믿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을 직접 제자들에게 체험하게 해 주시고 죽음에 동참할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럼 현재 우리는 어떠한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누구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엘리야로 알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례 요한으로 알고 있습니까? 이런 자들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러 온 자들입니다. 구원자가 아닙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만 알고 있다면 구원의 역사는 없습니다. 주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고난당하셔서 구속의 완성을 이루신 메시아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원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고백할 때에 구원의 은혜가 나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주님과 함께 별세해야 합니다. 내가 주님과 죽지 않으면 부활의 역사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별세의 은혜를 깨닫고 부활의 은혜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28절 에게네토 데 메타 투스 로구스 투투스 호세이 헤메라이 오크토 카이 파랄라본 톤 페트론 카이 이오안넨 카이 이아코본 아네베 에이스 토 오로스 프로슈크사스다이

눅 9: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예수님께서 앞에 있는 죽으심과 부활의 예고를 하시고 난 후 팔 일이 되었습니다. 이때에 12 제자 중에 특별히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게 될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 변화 산에 올라가고 있습니다. 현재 이 산은 다볼 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 예수님은 다볼 산으로 기도하러 가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12절 바야기두 레시세라 키 알라 바라크 벤 아비노암 하르 타보르

삿 4:12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다볼 산에 오른 것을 사람들이 시스라에게 알리매 

다볼 산은 바락이 시스라 군대와 싸울 때 올랐던 산입니다. 

‘다볼’이라는 단어는 (타보르 8396) 다볼, 채석장, 이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תבר(테바르 8406) 깨뜨리다, 부수다, 파멸되다, 찢다, 상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산은 갈릴리 근처에 있는 산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산에 제자들과 올라가셔서 기도하신 이유는 채석장에서 석공들이 돌을 깨어 아름다운 조형물을 만들 듯이 주님이 자신의 몸이 깨지고 찢어져 파멸되실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바로 선택받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몸이 깨어지신 것입니다. 영원히 원죄 때문에 파멸된 나를 위해 주님은 몸소 자신의 몸이 상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부활의 몸으로 채석장에서 새롭게 태어난 조형물처럼 하나님께서 부활시켜 주신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다볼 산에 올라가셨던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시고 8일이 되어 올라가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숫자 8의 의미는 새로운 언약, 거듭남, 새로운 출발, 첫 번째, 부활, 이라는 의미를 가진 숫자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도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다볼 산에 올라가는 것은 새로운 언약을 세우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새 언약을 받은 자들은 하늘로부터 거듭나서 구원을 받고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게 되며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첫 번째 부활의 열매가 되실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정확하게 날짜까지도 맞추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볼 때에 정확하게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두루뭉술하게 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도를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 성경은 정확한 유기적 영감이며 단어마다 축자 된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책이라는 것을 이런 숫자를 통해서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때에 정확하게 분별하여 하나님의 의도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29절 카이 에게네토 엔 토 프로슈케스다이 아우톤 토 에이도스 투 프로소푸 아우투 헤테론 카이 호 히마티스모스 아우투 류코스 엑사스트라프톤

눅 9: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예수님께서 변화 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모습으로 변화된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으로만 하셨던 것을 실체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광채가 나더라’라는 단어는 (엑사스트랍토 1823 VPPANMS 동사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남성 단수) 밝게 빛나다, 번쩍이다, 광채가 나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εκ(에크 1537) ~로부터, ~에게서, 라는 뜻과 αστραπτω(아스트랍토 797) 번쩍이다, 찬란하다, 빛나다,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변화 산에서 주님의 모습이 광채가 났다는 것은 번개처럼 강렬한 빛이 나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너무나 찬란하여 태양의 빛이 무색하게 될 정도로 빛났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빛은 바로 예수님으로부터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입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천국을 죽기 전에 본 것입니다. 현재 시제를 사용함으로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이 다볼산에 주님의 광채를 직접 보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23절 카이 헤 폴리스 우 크레이안 에케이 투 헬리우 우데 테스 셀레네스 히나 파이노신 엔 아우테 헤 가르 독사 투 데우 에포티센 아우텐 카이 호 뤼크노스 아우테스 토 아르니온

21: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천국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너무나 강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어린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등불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입니다.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국을 현재 보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한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변화 산에서 광채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현재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부활의 몸을 제자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구원받았으니 지금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의 모습으로 바뀌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30절 카이 이두 안드레스 뒤오 쉬넬랄룬 아우토 호이티네스 에산 모세스 카이 헬리아스

눅 9: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이때 제자들은 두 사람이 서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사람은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변화 산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말씀일까요?

 

모세’ משה(모쎄 4872) 모세이며 이 단어는 משה(마샤 4871) 끌어당기다, 끌어내다, 건져내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모세는 율법의 대표자입니다. 구약에서 모세 하면 율법이 떠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런 예언자를 기다렸습니다.

18절 나비 아킴 라헴 미케레브 아헤헴 카모카 베나타티 데바라이 베피브 베디베르 알레헴 에트 콜 아쎄르 아차베누

18: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일으키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을 그 입에 두며 그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다 말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모세가 변화 산에 나타난 것은 바로 율법의 대표자이며 구속의 완성을 이루신 예수님을 증거 하기 위하여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영혼들을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영원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건져내주실 것을 모세는 제자들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엘리야אליה(엘리야 452) 엘리야이며 이 단어는 אל(410) 하나님이라는 뜻과 יה(야흐 3050) 여호와,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이시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름입니다. 엘리야는 예언자의 대표로 변화 산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죽음을 보지 않고 불 말과 불 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사람입니다. 엘리야가 변화 산에 나타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름 속에 있는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부활시켜 주신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이제 모세와 엘리야가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율법에 빠져 죽었던 자들을 살리실 분이 예수님이며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몸으로 부활될 분이라는 것을 증거 해 주는 것입니다.

31절 호이 오프덴테스 엔 독세 엘레곤 텐 엑소돈 아우투 헨 에멜렌 플레룬 엔 히에루살렘

눅 9: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이들이 제자들에게 증거 한 말씀이 무엇입니까?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별세하실’이라는 단어는 (엑소도스 1841 NAFS 명사 목적격 여성 단수) 별세하실 것, 떠날 것, 떠남,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εκ(에크 1537) ~로부터, ~에게서, 라는 뜻과 οδος(호도스 3598) , 여행, 교훈, 행사,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우리의 성경 중에 출애굽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애굽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직접 가나안 땅으로 건져내주시는 이야기가 기록된 성경입니다. 이 성경의 제목이 영어로는 Exodus입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별세하여 죽으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건져내 짐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없이는 절대 선택된 백성들이 죽음에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별세하실 것을 모세와 엘리야가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애굽과 같은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별세하시고 영원한 죽음에서 이탈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의 길로 인도하시고 그곳에서 여행의 가이드가 되어 주셔서 말씀의 훈련을 통해 교훈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나도 세상에서 건져내주시고 광야 교회에서 훈련을 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절대 애굽의 바로 왕에게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이며 주권이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 기적이 무엇입니까? 유월절의 어린양이 죽은 것입니다.

21절 바이크라 모쎄 레콜 지크네 이스라엘 바요메르 알레헴 미쉐쿠 우케후 라켐 촌 레미쉐프호테켐 베샤하투 하파사흐

22절 우레카흐템 아구다트 에조브 우테발르템 바담 아쎄르 바사프 베히가에템 엘 하마쉐코프 베엘 쉐테 하메주조트 민 하담 아쎄르 마사프 베아템 로 테체우 이쉬 미페타흐 베이토 아드 보케르

12:21-22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의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을 선포하시고 있습니다. 유월절은 어린양을 선택하여 죽이고 그 피를 우슬초에 적시어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려야 합니다. 어린양이 죽어야 만이 애굽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습니다.

 

유월절’이라는 단어는 (페싸흐 6453 NMS 명사 남성 단수) 유월절이며 이 단어는 פסח(파싸흐 6452) 지나가다, 넘어가다, 통과하다, 인정을 베 풀다, 뛰 놀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날입니다. 이 날은 반드시 어린양의 피가 있어야 합니다. 어린양을 죽이지 않으면 유월절이 아닙니다. 이 피를 문설주에 바른 집은 반드시 죽음이 지나가게 되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반면에 애굽의 백성들의 집에는 통곡의 소리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린양의 피를 보시고 인정을 베풀어 주셔서 죽음이 넘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을 얻은 백성들은 기뻐서 뛰 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애굽 백성들은 고통의 날이 되었습니다.

 

이 유월절이 바로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날의 예표입니다. 예수님은 골고다에서 별세하셨습니다. 어린양이 되어주셔서 직접 죽으신 것입니다. 이 죽음을 통하여 영원한 원죄에 빠졌던 나를 건져내주셨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약은 어린양의 짐승의 피로 구원을 얻었다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나도 이와 같이 주님과 함께 별세할 때에 이런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과 별세하지 않으면 나는 절대 원죄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20절 크리스토 쉬네스타우로마이 조 데 우케티 에고 제 데 엔 에모이 크리스토스 호 데 뉜 조 엔 사르키 엔 피스테이 조 테 투 휘우 투 데우 투 아가페산토스 메 카이 파라돈토스 헤아우톤 휘페르 에무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유월절의 주인이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별세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주님께서 살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별세의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살고자 한다면 나는 죽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별세하면 나는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들은 십자가에 달려 별세하신 주님의 은혜를 받아 살아났습니다. 그렇다면 내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몸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죽고 나니 새로운 몸으로 부활되는 것입니다. 부활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내 안에 있습니다. 이제부터 나를 위해 별세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시고 믿음으로 나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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