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원문 설교강해 자료

[에스겔 37장 히브리어 주석강해] 에스겔 선지자 마른 뼈 환상(겔 37:1-10)

르호봇 2021. 5. 3.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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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에스겔 37장 히브리어 주석 강해 중에서 에스겔 선지자가 본 마른 뼈 환상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적으로 마른 뼈처럼 죽어있는 상태입니다. 이들에게 복음의 말씀이 들어가지 않으면 죽어있는 상태로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복음의 말씀을 주셔서 생기가 들어가고 그들은 살아나게 됩니다. 우리도 이렇게 죄악 가운데 죽어 있었던 상태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면 모두 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주셔서 영혼이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살아났으니 십자가 복음을 선포해야 하겠습니다.

에스겔 선지자 마른 뼈 환상(겔 37:1-10)

 

1절 하예타 알라이 야드 아도나이 바요치에니 베루아흐 아도나이 바예니헤니 베토크 하비크아 베히 멜레아 아차모트

겔 37:1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 하더라 

======37:1

여기에는 부활의 환상이 나온다. 그것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행되는 영화로운 부활이다. 이것은 자연계에는 전혀 생소하고 자연법칙과는 상반되는 일이다. 즉 박탈에서 소유까지에는 희귀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여호와의 말씀에 의하지 않고는 그것을 생각할 수 없다. 혹자는 이 환상에서 유추하여 죽은 자의 전체적 부활이 있을 것은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메시아의 도래가 이전 해방과 관련하여 그들의 신앙을 확증하기 위해 언급되듯(사 7:14) 만일 전체적 부활이 없다면 이것은 바벨론 해방의 약속에 대한 그들의 신앙을 확증하는 데 적당한 표적이 못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진 예루살렘의 멸망 소식은 그들의 처한 상황과 더불어 신앙적 절망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그러한 시기에 선포된 에스겔 선지자의 이스라엘 회복 예고는 그 백성들에게 극히 회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본장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회복의 확고한 성취적 면모를 주지시키기 위한 의도로 마른 뼈의 환상(1-14)과 두 막대기를 통한 상징적 행위(15-28)를 제시한다.

한편 마른 뼈의 환상은 일반적으로 육체의 부활이나 영적 중생의 의미로 이해되고 있으나 그보다는 전장과의 문맥적 연결상 마른 뼈와 같은 절망적 상태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복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확고한 예정 속에 그들이 포함되어 있음을 확신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에스겔 선지자가 성령을 통해 입신 상태에서 환상을 보게 된 사실을 가리킨다(Delitzsch).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 여기서 '골짜기'(비크아)는 3:22''과 동일한 말로 에스겔 선지자가 예루살렘과 그 백성들의 심판을 처음으로 계시받은 곳을 가리킨다(Delitzsch, Schroder). 이제 하나님께서는 심판이 선포된 바로 그곳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환상을 통해 다시 계시하신다. 한편 ''는 포로 된 땅에서 절망에 빠져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상징이다(11).

2절 베헤에비라니 알레헴 사비브 사비브 베힌네 라보트 메오드 알 페네 하비크아 베힌네 예베쇼트 메오드

겔 37:2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37:2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 '말랐더라'(야베쉬)는 일차적으로 그 죽음의 상태가 매우 오래된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며, 이차적으로 이 말이 '실망되다', '시들다', '수치를 당하다'란 뜻의 어근에서 유래되었다는 점에서 작은 생명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극단적인 절망과 죽음의 상태를 암시한다. 이는 당시 포로 된 자들의 내적 정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해골의 비탄스러운 상태에서 선지자는 해골을 자세히 관찰하게 되었다. 그는 환상 중에서 예언자적 충동과 신적 능력에 의해 골짜기 가운데로 나가게 되었다. 이 골짜기는 아마 하나님과 말씀을 나눈 (3:22)들 근처였을 것이다. 그곳에는 뼈 곧 죽은 자의 해골이 가득하였다. 그 뼈들은 납골당에 쌓인 것처럼 무더기로 쌓여 있지 않고 마치 처절한 전투가 벌어져 살육당한 자들이 매장되지 못한 채 있다가 살이 썩어 뼈만 남고 서로 탈골되어 흩어진 것처럼 지면에 이리저리 널려 있었다.

그는 그 뼈 사방으로 지나다가 그 뼈들이 무수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망자의 희중에는 무수한 자들이 가기에) 오래도록 비바람에 노출되어 아주 말랐다는 것도 관찰했다. 골수가 윤택하던(욥 21:24) 뼈도 일단 죽으면 말라서 티끌처럼 된다. 현재는 몸이 뼈로 구성되어 있지만 죽으면 무방비 상태가 된다. 바벨론의 유대인들은 죽어서 마른 뼈와 같았다. 그들은 함께 모일 수도 없는 해골 같았다. 더욱이 그들은 몸(무리)을 형성할 수도 없었고 생체가 될 수도 없었다.

그들은 골짜기 지면에 매장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 이것은 두 증인의 경우처럼(계 11:8, 9) 그들의 부활의 희망을 고무했다. 곡과 마곡의 뼈는 매장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멸망은 최종적이기 때문이다(겔 39:12, 15). 그러나 이스라엘의 뼈는 하늘의 시선 하에 골짜기 지면에 있다. 이것은 그들의 중국에는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3절 바요메르 엘라이 벤 아담 하티흐예이나 하아차모트 하엘레 바오마르 아도나이 아도나이 아타 야다에타

겔 37: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37:3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 하나님의 이적 시행이 전제된 질문으로 인간적인 안목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불가능한 사건임을 반어법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칼 미완료 시제를 사용했다.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묻기를 이 뼈들이 계속해서 살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죽은 뼈들이 스스로는 절대 살아날 수가 없다.

주께서 아시나이다 - 선지자는 상반 절의 답변을 전적으로 하나님과 연관시킨다(7:14). 이는 곧 인간적인 안목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면 가능한 것이며 또한 오직 하나님만이 그 일을 가능케 하실 유일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묵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Delitzsch, Schroder).

선지자는 그들이 비참한 사정을 자인하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구조받지 못할 경우였다(3절).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그것이 가능한 일이냐? 그 일이 성립되는 방법을 네가 궁리할 수 있느냐? 네 철학이 해골에 생명을 넣을 수 있으며 네 정치가 포로 된 민족을 복원시킬 수 있느냐?" 선지자는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일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만 주께서는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한다. 그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제한하지 않기 위해 "그들은 능히 살 수 없나이다"라고 말하진 않는다.

그는 "주 여호와여, 주께서는 그들이 살 수 있는지 없는지, 살 것인지 못 살 것인지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만일 생기를 넣어 주시지 않으신다면 그들이 살 수 없다는 것을 확실하나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자기 능력과 목적을 완전히 아시며 우리로 하여금 모든 것을 그의 능력과 의도에 돌리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놀라우신 일들이다. 그의 계획과 능력에 의하지 않고는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을 보고 인정하게 하실 것이다.

4절 바요메르 엘라이 히나베 알 하아차모트 하엘레 베아마르타 알레헴 하아차모트 하예베쇼트 쉬므우 데바르 아도나이

겔 37: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37:4

너희 마른 뼈들아...들을지어다 - 선지자의 예언이 생명의 흔적조차 없는 마른 뼈에게 직접 행해진 이유는 곧 하나님 예언의 선재적 성취를 예시하는 것으로 그 마른 뼈들이 앞으로 되어질 이적 시행의 직접적인 대상이기 때문이다(Schroder). 들으라고 했는데 칼 명령법을 사용하고 있다. 마른 뼈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반드시 들어야 한다. 듣지 않으면 살아날 수가 없다. 

흩어진 뼈를 함께 모으고 해골을 소생시키기 위해 사용된 수단. 그것은 예언에 의해 시행되어야 했다. 선지자는 이들 뼈와 생기(원의 바람)에 대해 예언하라는 명령을 받는다(4,9절). 그래서 그는 명을 좇아 예언했다(7,10절). 그는 선포해야 했고 따라서 그렇게 선포했다. 해골은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살아나게 되었다. 생기가 그 속에 들어갔던 때문이다. 말씀과 기도가 효능을 주목하며 죽은 영혼을 소생시키는데 말씀과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관찰하자. 하나님은 마른 뼈에게 대언하라고 자기의 사역자들에게 명하신다. 하나님은 "너희가 살리라" (5,6절)고 외치도록 목사들에게 명령하신다.

그들은 명령받는 대로 행하여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재삼재사 촉구한다. 그러나 그 침은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으며 그들은 여전히 죽어 있으며 여전히 아주 메말라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과 함께 성령도 역사해 주시기 바라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기야! 사방에서 오너라. 와서 이 메마른 자들에게 들어가 호흡하라."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설교 없이도 영혼들을 구원하실 수 있으나 우리의 설교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영혼들을 구원할 수가 없으며 그 은혜는 기도로써 간구되지 않으면 안 된다.

목사들은 거의 가망이 보이지 않는 자들에게도 신실하게 그리고 부지런히 은혜의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는 데 주목하자. 마른 뼈에 예언한다는 것은 마른 지팡이에 물을 주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간에 우리는 맡겨진 임무를 다 해야 하며 받은 명령대로 대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때 우리는 죽은 자를 살리시며 생명의 원천이신 분의 이름으로 대언한다.

5절 코 아마르 아도나이 아도나이 라아차모트 하엘레 힌네 아니 메비 바켐 루아흐 비헤이템

겔 37: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37:5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 여기서 '생기'(루아흐)는 인간 창조 시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불어넣으셨던 '생기'(네솨마, 창 2:7)와 동일한 의미로 생명의 동인이 되는 '', '호흡'등을(Breath, KJV, NIV, LB) 가리키는 말이다(6:17; 7:17). 이는 본 사건이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강조해 준다. 한편 성령이 창세로부터 모든 생명의 근간이 된다는 사실과(1:26) 36:27 과의 내용적 연결상 본절의 '생기''성령'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Havernick, Schroder).

이들 수단의 놀라운 효과. 명령받고 위탁받은 대로 행하는 자들은 극히 큰 실망에 당면해 있더라도 성공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시인하시며 자신의 임명을 풍부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에스겔은 골짜기의 해골들을 내려다보며 그들에게 대언했고 그들은 인간의 몸이 되었다.

첫째, 그가 대언해야 했던 것은 하나님이 틀림없이 그들을 소생시키신다는 것이었다(5,6절). 말씀을 하시는 분은 그대로 행하실 것이다. 그들이 살 것이라고 말씀하신 분은 그들을 살리실 것이다. 그는 처음 행하신 대로 그들에게 살과 가죽을 입히실 것이다(욥 10:11). 우리를 그토록 두렵고도 놀랍게 만드시며 기묘하게 지으신 분은 마찬가지 방법으로 우리를 새로 만드실 수 있으시다. 그의 팔은 짧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 그들에게 즉시 시행된 것은 새로운 형태로의 조성이었다. 우리는 이 일이 너무나 생동적으로 활기 있게 진행되었으므로 선지자는 특히 자기 말이 효력을 나타내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예언했다고 상상할 수 있다. 약속의 보증과 적용은 우리를 새로운 신적 속성에 참여케 하는 보통 수단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에스겔이 환상에서 예언할 때 소리가 났다. 이 소리는 그가 한 말을 후원하는 하늘에서 내린 명령의 소리였다. 또는 그것은 신적 섭리의 사역자로 유대인의 구원에 동원된 천사들의 움직임을 의미한다. 우리는 천사들의 날개 소리(겔 1:24)와 걸음 걷는 소리 (삼하 5:24)그러나 읽었다. 그리고 뼈들 사이에서 움직임 또는 동요가 있었다. 죽어 마른 해골조차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요구받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고레스가 해방을 선포했을 때 성취되었다. 

하나님은 포로들의 심령을 불러일으키셨고 그들은 자유의 활용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고 돌아갈 준비를 했던 것이다. 소리가 날 때 움직임이 있었다. 다윗은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은 소리가 들리자 동작했다. 그때에는 움직임이 있었다. 바울이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는 음성을 들었을 때 마른 뼈의 움직임이 있었다. 그는 떨며 놀랐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뼈들은 하나님의 지시 하에 이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서로 연락하였다. 

인체에는 비록 많은 뼈가 있고, 피살된 자들도 무수했지만 그 모든 뼈 중에서도 하나도 없어지지 않고 길과 자리를 잃지 않았다. 그 뼈들은 본능에 의해 서로 알고 제짝을 찾았다. 흩어진 뼈들은 서로 들어맞았고 이탈했던 뼈들이 교합되었다. 하나님의 능력은 생체 속에서 각 마디가 연락하듯 이 마른 뼈들을 연결시키셨다. 죽은 자의 부활시에도 이와 같을 것이다. 흩어졌던 원자들이 원래의 자리와 순서대로 배열되고 정돈될 것이며 아이 밴 여인의 배속에서 뼈를 맨 처음 생성시킨 바로 그 지혜와 능력에 의해 모든 뼈가 서로 연락될 것이다. 

유대인의 귀화 시에도 이와 같을 것이다. 바벨론 각지에 이산 되었던 자들이 각기 자기 가족들에게 와서 마치 전부가 귀환을 위한 전체적 회집에 동의한 것처럼 행동한다. 이들 뼈에는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올랐으며 가죽이 덮였다(8절). 이것은 포로들이 주위 사람들을 감복시키어 그곳 사람들이 은이나 금이나 그들의 이전에 필요한 것으로 도와주었을 때 (스 1:4) 성취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 속에 생기는 없었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렵고 위험한 일이었고 그들에게는 아직 그런 큰 일에 필요한 정신과 용기가 부족하였다.

6절 베나타티 알레켐 기딤 베하알레티 알레켐 바사르 베카라므티 알레켐 오르 베나타티 바켐 루아흐 비헤이템 비다에템 키 아니 아도나이

겔 37:6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37:6

힘줄을 두고...생기를 두리니 - 그 뼈들의 소생 방법을 구체적으로 기술한다. 특별히 여기서 그 소생의 과정이 생명의 외적 형태가 완성된 후에 하나님의 생기가 주어졌다는 점에서 인간 창조의 순서와 유사하다(2:7). 한편 ''(바사르)''(오르)이 구별되어 쓰였는데, ''이 원어상 ''이란 뜻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육체의 구조와 전체적인 형태(Flesh), '가죽'은 그 육체를 덮고 있는 피부(skin)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7절 베니베티 카아쎄르 추베티 바예히 콜 케히나베이 베힌네 라아쉬 바티크레부 아차모트 에쳄 엘 아체모

겔 37:7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37:7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 혹자는 본절의 소리를 그 이적에 수반된 현상으로서의 '지진'(27:51)이나(Hitzig), 초자연적 현상을 드러내는 장대한 울림(Havernick), '나팔 소리'(Kliefoth) 등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움직이더니'(라아쉬)가 원어상 '소음', '덜거덕거리는 소리'란 뜻을 가진다는 점에서 이는 그 뼈들이 제 위치를 찾는 와중에서 생긴 소리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Delitzsch, Schroder).

이 뼈, 저 뼈가...서로 연락하더라 - 이는 뼈가 서로 제 위치를 찾아 연결되어 골격을 이루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서 슈미더(Schmieder)는 본절이 하나님께서 각처에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 들이는 것을 가리킨다는 상징적 의미로 해석한다.

8절 베라이티 베힌네 알레헴 기딤 우바사르 알라 바이크람 알레헴 오르 밀마엘라 베루아흐 에인 바헴

겔 37: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37:8

에스겔은 위로 쳐다보며 바람 또는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생기야 ,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고 했다. 생명이 없는 몸은 죽은 해골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그의 일이 완전하다. 그는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시다. 이런 요청에 의하여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갔다(10절). 생기는 하나님께로서 온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는 태초의 창조 시에도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셨다. 마찬가지로 그는 최후의 부활시에도 그러실 것이다.

낙심하고 자포자기하던 포로들이 놀랍게도 귀로에 산재한 고난을 극복하겠다는 결의 활기를 되찾았으며 더 이상 기운찰 수 없을 만치 준비에 열중했다. 그리고 그때 그들은 일어나서 섰는데 그것은 극히 큰 군대였다. 그들은 산 자였을 뿐만 아니라 효능적인 사람들이었다. 전쟁에 알맞은 자들이었고 모든 반대자에게 두려움을 주는 자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는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으시며 죽은 해골에서 그의 싸움을 대항하고 그의 주장을 대신해 줄 심히 큰 군대도 만들어 내실 수 있다.

9절 바요메르 엘라이 히나베 엘 하루아흐 히나베 벤 아담 베아마르타 엘 하루아흐 코 아마르 아도나이 아도나이 메아르바 루호트 보이 하루아흐 우페히 바하루김 하엘레 베이헤이우

겔 37: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37:9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 일부 역본과 학자들은 본절의 '생기''바람'(KJV, LB) 이나 '성령의 자연적 상징'(Schroder)으로 해석하나 그러한 것들이 생명의 원천이 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여기서의 '생기'는 신적 기원을 갖는 생명의 본질을 가리킴에 틀림없다(Delitzsch).

따라서 본 구절은 문자 그대로 생기를 향해 대언함으로써 그 생기를 불러온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외적 형태만 갖춘 뼈들에게 생명을 주는 신적 본질로서의 생기가 하나님의 창조적 사역 속에서 그 말씀을 통해 발원되는 것임을 암시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듯하다.

사망을 당한 자(하루김) - 이는 원어상 '살해당한 자'라는 뜻으로 본장의 뼈들이 단순히 죽은 자들의 것이 아니라 살해당한 자들의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해 주는 바, 이 환상이 모든 죽은 자의 육체 부활을 교훈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멸망당한(살해당한) 이스라엘의 회복을 지시하는 것임을 알게 한다(Delitzsch).

10절 베히나베티 카아쎄르 치바니 바타보 바헴 하루아흐 바이헤이우 바야아메두 알 라겔레헴 하일 가돌 메오드 메오드

겔 37:10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37:10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 여기서 '일어나서 서는데'(바야아메두 알 라겔레헴)는 문자적으로 '그들의 발로 일어서서'란 뜻이다. 이는 곧 그들에게 주어진 생명이 그들 스스로 전인격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온전한 것이었음을 암시한다.

이 환상은 포로 중에 있는 유대인의 비참한 상태에 적용된다.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이것은 열 지파와 두 지파를 다 포함한다. 여기서 그들의 나태했던 모습과 미래 모습을 살펴보자.

그들은 깊은 절망으로 떨어져 있었다(11절). 그들은 자포자기하고 있다. 그들은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 힘이 진했으며 우리 심령이 낙담하며 우리의 소망은 전부 없어졌다. 우리가 구원과 원조를 기대하던 모든 것이 우리를 실망시킨다.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누가 희망을 소중히 하든지 간에 우리는 희망을 가질 근거가 없다"라고 한다.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과 섭리에 대한 능동적 신앙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그들을 사멸에서 구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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