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룻기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베들레헴을 떠나는 나오미와 엘리멜렉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사사가 치리 하던 때에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가게 됩니다.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흉년을 피하여 모압 땅으로 갔습니다. 문제는 모압 땅에 가서 엘리멜렉은 죽었고 두 아들도 함께 죽었습니다. 나오미와 두 며느리만 남게 됩니다. 구속사 관점에서 베들레헴은 교회를 상징합니다. 흉년이 있다고 해서 우리가 주님을 믿는 신앙을 버리고 세상의 모압과 같은 곳으로 간다면 결국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베들레헴에 남아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신앙을 끝까지 지키면서 주님이 오실 날을 기다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베들레헴을 떠나는 나오미와 엘리멜렉(룻 1:1-5)
1절은 바예히 비메 쉐포트 하쑈페팀 바예히 라아브 바아레츠 바옐레크 이쉬 미베이트 레헴 예후다 라구르 비세데 모아브 후 베이쉐토 우쉐네 바나이브입니다.
룻 1: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1:1
사사들의 치리 하던 때에 - 여호수아서 저자가 그 책의 기록 배경을 밝히기 위해 책의 서두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수 1:1)라는 구절을 기록하여 역사 서술을 했던 것처럼, 그리고 사사기 저자 역시 책의 서두에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삿 1:1)라고 기록함으로써 그 역사적 배경을 밝혔던 것처럼, 본서의 저자도 이와 같은 역사 서술의 전형적인 형태를 좇아 본 구절을 삽입시켰다.
이처럼 룻기의 저자가 본 구절을 서두에 기록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역사적 의미를 일깨워 준다. (1) 저자는 본서가 확실한 역사적 사실성을 지니고 있음을 명백히 했다. (2) 저자는 본서의 역사적 기록 배경을 제공했다.
이로써 본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단순히 도덕적이거나 종교적인 교훈만을 주기 위한 허구의 소설(fiction)이 아니라, 엄연히 역사적 사실(fact) 위에 근거하고 있는 구속사적 기록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사사(私事)들의 치리 하던 때' 곧 '사사 시대'란 일반적으로 여호수아 사후(死後), 첫 사사 옷니엘이 등장할 때(삿 3:9, B.C. 1367년)로부터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 왕이 등장할 때(삼상 10:1, B.C. 1025년)까지 대략 342년 간의 기간을 말한다(J.P. Free, Archaeolgy and Bible History).
그중에서도 특별히 룻기의 배경이 되던 때는 드보라와 바락이 활약상에 힘입어 이스라엘이 누린 40년간의 평화기(삿 5:31)가 끝나고, 미디안 족속의 압제를 받던 12세기 후반 경의 사사 기드온의 시대로 추정된다(Keil), 이러한 연대 추정은 B.C. 1010년에 헤브론에서 통치를 시작한 다윗이 바로 룻의 증손(曾孫)이라는 사실(4:17)에 근거한다(L. wood, A Survey of Israels History).
한편, 본 구절을 문자적으로 옮기면 '사사들의 재판하던 날들에'란 의미가 된다. 당시 '사사'(쇼페트)들의 직무란 문자 그대로 주로 백성들의 소송을 '재판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왕이 '다스린다'란 의미를 지닌 '말라크'대신 '재판하다'에 해당하는 '솨파트'란 용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아울러 사사들은 전시에는 군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의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는데, 이런 점에서 그들은 이스라엘의 구원자이기도 했다(삿 2:16, 18).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 특히 고대의 농사는 자연적인 요인에 의해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흉년이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성격에 나타나는 흉년은 대부분 하나님의 징벌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언약의 땅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살기만 한다면 풍성한 소출이 약속된 반면(레 26:3-5, 10; 신 28:1-14).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타락하여 우상을 섬긴다면 온갖 재앙과 아울러 기근과 흉년이 또한 임할 것이라고 경고되어 있기 때문이다(레 26:19, 20; 신 28:23, 24). 이런 맥락에서 여기의 흉년도 사사 시대의 타락상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특히 이때의 흉년은 당시 이스라엘의 소산물을 약탈해 갔을 뿐 아니라 토지를 황폐화시켰던 미디안 족속의 침략(삿 6:2-4)과도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는 듯하다(Schmidt, Patrick).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 - 모압 지방은 요단 동편에 위치하며, 사사 시대에는 아르논 강을 경계로 르우벤 지파와 인접해 있었다. 유다 지파의 베들레헴에서 이 지방까지는 그렇게 멀리 않았으므로, 엘리멜렉 가족들이 흉년을 피해 이곳으로 이주해가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특히 '모압 지방'(세데 모압)이란 단어는 문자적으로 '모압 들판'(field of Moab)이라는 의미를 지니는데, 이 들판은 바로 아르논 강을 중심으로 펼쳐진 들판이며 초지였음에 틀림없다. 따라서 이들이 모압 땅에 우거하기는 했으나 자기 동족들인 르우벤 지파가 살고 있는 곳에 인접해서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의 땅을 떠난 것은 분명히 잘못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은 반드시 지켜져야 했기 때문이다(민 36:6-9). 뿐만 아니라 이들이 모압 평지에 10년 동안 우거 했던 것으로 보아(4절). 흉년으로 인해 모압으로 간 것은 단순히 일시적 이동이 아니었다. 결국 이러한 불신앙적 행위로 말미암아 이들 가족은 그곳 모압 땅에서 큰 고초를 겪게 된다(3-5, 20절).
2절은 베솀 하이쉬 엘리멜렉크 베솀 이쉐토 나오미 베솀 쉐네 바나이브 마흘론 베킬룐 에프라팀 미베이트 레헴 예후다 바야보우 세데 모아브 바이헤이우 솸입니다.
룻 1: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1:2
엘리멜렉(Elimelech) - '하나님은 왕이시라'란 의미로서, 곧 이 이름은 그의 부모의 신앙을 반영하는 이름이다. 한편 엘리멜렉의 처(妻)나오미가 고향 베들레헴으로 귀환했을 때 온 성읍의 화제가 되었던 일(19절)이나, 그의 친척 보아스의 지위(2:1; 4:1) 등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 엘리멜렉은 성내의 유력인사였던 것 같다(P. Cassel).
나오미(Naomi) - '감미로운 자', '은혜스러운 자', '사랑스러운 자'등의 의미인데, 이 이름은 특히 자부 룻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고, 말년에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말론과 기룐 - 각각 '병약한(연약한)자'와 '사모(열망)하는 자'란 뜻으로 순수한 히브리식 이름이다(Keil)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 - '에브랏'또는 '에브라다'는 베들레헴의 옛 이름(창 48:7)으로, 족장 야곱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죽은 곳이기도 하다(창 35:16-19: 48:7).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곳은 후일 미가 선지자의 입을 통해 메시아가 태어날 장소로 예언된 곳으로서(미 5:2), 구속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아마 본서의 저자도 이러한 구속사적 통찰에 의해 이곳의 지명을 이처럼 자세하게 설명했을 것이다.
즉 본절은 엘리멜렉 가족의 고향이 '유다 베들레헴'이라고 분명히 밝힘으로써, 스불론 지파의 베들레헴(수 19:15; 삿 12:8)과 분명히 구별했고, 또한 '에브랏 사람들'(Ephrathites)이라고 밝혀줌으로써, 그들이 베들레헴 본토인들이란 사실을 분명히 했다(P.Cassel).
한편 허비(A.C. Hervery)는 여기 '에브랏 사람'과 '에브라임 사람'을 동일시했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 두 가지 사실에 근거하여 볼 때 잘못된 주장임을 알 수 있다. 즉 (1) 성경 어느 곳에서도 에브랏과 에브라임을 동일시하지 않았다. (2) 에브라임은 예루살렘 북쪽 20km 지점에 위치한 산악 지대인 반면,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남쪽 7km 지점의 유다 산지에 속해 있다.
3절은 바야마트 엘리멜렉크 이쉬 나오미 바티솨에르 히 우쉐네 바네이하입니다.
룻 1: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1: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 엘리멜렉은 가족을 이끌고 모압 땅으로 들어와 그곳에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고 말았다. 물론 이때는 그의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장가들기 전이었다. 아마도 나오미는 장성한 두 아들이 있었기 때문에, 남편이 사후(死後)에도 계속 모압 땅에 머문 것 같다.
4절은 바이세우 라헴 나쉼 모아비요트 솀 하아하트 오르파 베솀 하셰니트 루트 바예쉐부 솸 케에세르 솨님입니다.
룻 1: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1: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 페쉬타 역본(the Syriac Peshitta)과 탈굼 역본(the Targums)은 본절에 덧붙여 '그들이 이방인 아내를 취한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것이다'라는 내용을 삽입시켰다. 그리고 몇몇 학자들은 이 번역에 동의하여 그들의 결혼을 정죄했다(Matthew Henry. Thomas Fuller).
그러나 혹자는 주장하기를, 모세 율법은 가나안 여인과의 결혼만을 금지했지(신 7:3), 모압 여인과의 결혼까지 금지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굳이 결혼 자체를 정죄시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Keil, Hervey).
물론 이들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모압 족속에 대한 신명기의 규례(신 23:3-6)를 자세히 살펴볼 때 그들의 결혼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화란의 신학자 고스링가(Goslinga)의 말대로, 이들의 결혼이 율법을 문자적으로 범한 것은 아니지만 율법의 정신을 범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율법에서 가나안 여인과의 결혼을 금지시키신 것은 그곳의 우상 숭배(왕상 11:1, 2)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모압 여인과의 결혼도 결국은 우상 숭배의 위험성이 내재해 있으므로, 그들은 율법의 정신을 범한 것이다.
사실 당시 모압과 암몬 족속의 우상 그모스와 몰렉은 다른 여타 우상들보다 더욱 가증스러웠다. 따라서 나오미의 두 아들의 결혼은 잘못된 것인데, 이는 무엇보다도 결혼 후 가정에 임한 환난을 두고 나오미가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다'(13절)라고 고백한 것으로 보아서도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Atkinson).
이처럼 언약의 백성은 실패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그러한 실패를 통해서도 당신의 오묘하신 구속사를 이끌어 나가셨으니, 곧 이때 결혼한 모압 여인 룻을 통해 다윗의 가계를 형성하신 점이다(4:17).
오르바...룻 - 각각 나오미의 두 아들 기룐과 말론의 아내가 된 이 두 여인의 이름은 전형적인 모압식 이름이다. 그런데 이 두 여인의 이름 뜻이 무엇이냐는 문제를 놓고 학자들 간에 이견이 분분하다.
혹자는 '오르바'(Orpah)는 '돌아가는 자', '룻(Ruth)은 '친구'를 뜻한다고 주장하나, 이것은 이후 전개되는 이야기에서 추론했을 뿐 근거는 없다(Pulpit Commentary). 이에 비해 카젤(P. Cassel)의 추론은 흥미롭다. 즉 그에 따르면, 소녀들의 이름은 흔히 꽃이나 동물의 이름 따위에서 따온다는 전제하에 고대 셈어로부터 그 어근을 유출하여 '오르바'는 '암사슴'을, '룻'은 '붉은 꽃'(장미)를 각각 의미한다고 보았다(J.P. Lange, Commentary on the Holy Scripture). 그러나 이러한 견해 역시 하나의 흥미 있는 추정일 뿐, 그 언어학적 근거는 희박하다.
5절은 바야무투 감 쉐네헴 마흘론 베킬룐 바티솨에르 하이솨 미쉐네 옐라데이하 우메이솨흐입니다.
룻 1: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1: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 혹자는 엘리멜렉에 이어 그의 두 아들까지 일찍 죽은 것은 (1) 언약의 땅 가나안을 떠난 죄와 (2)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죄 때문이라고 보기도 한다(G.Gerleman).
물론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만은 없지만, 향후 전개되는 구속사적 위치상 나오미 가정이 점하는 비중을 놓고 볼 때 결코 우연의 일만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는 이방의 신실한 여인 룻(Ruth)을 '여호와의 날개 아래'(2:12)로 불러들이기 위한 하나님의 적극적인 섭리의 결과로 봄이 타당하다.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 '뒤에 남았더라'에 해당하는 기본 동사 '솨아르'는 '부지하다', '연명하다' 등의 뜻으로,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홀로 뒤에 쳐져 남아있는 나오미의 모질고 비참한 모습을 풀러(Thomas Fuller)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여자는 남자보다 연약한 존재이다. 여자 중에서도 노년기의 여자는 더욱 약하다. 그중에서도 과부는 더 불쌍하며, 거기에 가난한 과부는 더더욱 측은하다. 나아가 가난한 노년기의 과부 중에서도 자식이 없는 사람은 더욱 처량하며, 그것도 먼 타국에서 객이 된 자식 없는 가난한 노년기의 과부는 실로 가련하며 불쌍하다.
진정 욥이 남자 중 가장 많은 고난을 겪었다면, 나오미는 여자 중 가장 처량한 지경에 빠진 여자이다"(Pulpit Commentary). 한편 이처럼 나오미는 낯선 이국 땅에서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애써 키운 두 아들마저 잃고 말았지만, 그러나 그녀는 다행스럽게도 깊이 좌절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은 듯하다.
즉 나오미는 언약의 땅을 쉽게 떠나온 것을 깊이 뉘우치고, 오직 위로자요 구원자 되시는 여호와만을 더욱 의지 하고자 한 듯하다(6절). 이러한 나오미의 신앙이 마침내는 기쁨의 결실을 보게 된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4: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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