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성경지명 설교자료

[디도서 성경지명 설교] 그레데-그레데인들과 성도(딛 1:11-14)

르호봇 2022. 8. 4. 09:08
반응형

그레데 Crete-그레데인들과 성도

 

바울은 그레데에서 목회하는 디도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장로의 자격과 감독의 자격에 대해서 편지를 썼습니다. 또한 거짓 교사에 대해서 경계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성도들이 이단으로부터 멀어지고 참 복음을 따라가야 할 것을 권면합니다.

딛1:11 그들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리는도다

딛1:12 그레데인 중의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 하니

딛1:13 이 증언이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 이는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하게 하고

딛1:14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려 함이라

 

성도로서 겪는 가장 곤혹스러운 일 가운데 하나는 이웃들이 찾아와 성도의 부도덕을 비판할 때일 것입니다. 결코 흔치 않게 경험하게 되는 이 일은 그들의 비난에 무작정 외면만 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사실일 경우가 많으며 또 나 자신이 그러한 비난의 대상이 되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믿음의 아들 디도가 목회했던 그레데 섬은 바로 이런 경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레데인들은 매우 부도덕한 이들로 널리 정평이 나 있었고 그레데 교회 성도들도 크게 다를 바 없었습니다.

1. 그레데는 은혜의 풍성함을 보여줍니다

1) 하나님의 구원은 행위보다 은혜임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쟁이라"(12절)는 바로 그 그레데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졌다는 일입니다. 이것은 구원이 우리의 성품이나 행위와는 전혀 상관없이 주어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성격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선행이나 성품에 따라 구원받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 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다"라고 했습니다(딛 3:5). 우리는 이 사실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도덕의 잣대로 잴 때 어떤 성도라도 도덕적 비난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칫 도덕주의와 율법주의로 다시금 돌아가는 것이 될 수 있으므로 매우 주의하고 조심해야 할 사항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도덕적으로는 비록 비난받을 것이 많을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는 공간을 초월함

그레데에 누가 교회를 세웠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바울이 디도를 이곳에 목회자로 남겨 둔 것으로 보아 그가 세우지 않았겠는가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누가 세웠건 이 교회의 설립자는 성령님이십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고 대륙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이 타락한 도시에 주님은 당신의 종을 보내셔서 그곳에 교회를 세우시고 죽어가는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입니다. 사람은 허물을 보고 정죄하거나, 비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외면하고 소외된 지역 사람들을 찾아가시고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레데는 하나님 은혜의 무한성을 우리에게 확실히 증거 합니다.

2. 그레데는 성도의 허물을 보여줍니다

1) 성도는 여전히 허물 많은 자임

우리는 사도 바울이 그레데인과 그레데 교인들의 허물을 구분 없이 꾸짖고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를 믿고 중생했다고 해서 우리의 행위가 완전해졌다고 착각해서는 안됨을 의미합니다. 그레데 교인들은 여전히 그레데 사람과 함께 살며 그들에게 영향을 받습니다. 성도들은 간혹 자기의 행위나 성품이 완전히 거룩하게 바뀐 것으로 착각합니다. 장로님과 같이 봉사를 하면 장로의 반열에 서 있는 듯 착각하고 목사님과 같이 봉사하면 목사님 수준에 올라선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품의 변화는 비례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봉사할 때는 성품에도 상당히 변화가 온 것 같으나 방심하면 순간에 예전의 기질이 바로 드러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2) 끝없이 변화해야 함

우리가 천사처럼 한번 마음먹거나 행동했다고 우리의 성품이 천사처럼 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 악마처럼 한번 생각했다고 해서 즉시 지옥의 자식으로 전락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꾸준히 변화해 갑니다. 우리는 모두 변화의 도상에 있는 존재들임을 먼저 자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옛 기질이 살아나서 마귀의 자식처럼 행동하지 않기 위해서 늘 근신하며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 바울의 권면대로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빌 2:12). 물론 이러한 변화가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보혜사가 되시고 인도자가 되시는 성령님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의지할 때, 진정으로 변화되고 성숙한 인격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3. 그레데는 믿음이 성장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1) 책망을 받아들여야 함

사도 바울은 디도로 하여금 그레데인들을 향하여 엄히 책망하도록 권면했습니다(13절). 이것은 에베소에서 목회하던 디모데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딤후 4:2). 참으로 이 세대는 책망을 싫어하는 세대입니다(딤후 4:3,4). 아니 이 세대뿐 아니라 과거 이스라엘 세대도 마찬가지여서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향해 오히려 돌을 들었습니다(마 23:29-3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여러분의 믿음이 온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옛사람의 흠을 소유하고 있는 불완전한 존재들입니다. 때로는 목회자를 통해, 때로는 이웃을 통해, 또는 양심을 통해 많은 책망을 듣습니다. 그 책망을 듣고 회개하는 성도가 더욱 성숙한 자리로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2) 믿음의 진보가 필요함

믿음이라고 다 같은 믿음은 아닙니다. 권사님이나 장로님이 어린아이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이 있는가 하면 권사님, 장로님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의 분량이 있습니다. 잘못된 믿음에 있으면서 왜 우리를 책망하느냐고 하면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하면 그것이야말로 책망받을 믿음입니다. 그레데 교인들이 책망받은 것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믿지 않는 이들과 같은 생활 수준에 그 믿음이 머물러서 더 이상 진보할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심전력하며 믿음의 진보를 보여야 합니다(딤전 4:15).

우리들도 그레데인들처럼 전에는 내 욕심만 채우고 불의를 추구하던 죄인이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모두 같은 죄인이었던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의를 입어 '성도'가 된 것입니다. 그 은혜 속에서 주를 닮고자 노력하는 성도가 됩시다.

[사무엘하 히브리어 설교말씀] 다말에게 수치를 주는 암논(삼하 13:7-14)

 

[사무엘하 히브리어 설교말씀] 다말에게 수치를 주는 암논(삼하 13:7-14)

다말에게 수치를 주는 암논(삼하 13:7-14) 다윗이 밧세바를 취하게 됨으로 하나님은 다윗 가문에 징계를 내리게 됩니다.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도 전쟁터에서 죽도록 했습니다. 살인 죄도 다윗은

rhb-bible.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