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라(눅 6:39-42)
예수님께서는 비유의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비유를 쓰신 이유는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주님이 사용했습니다. 비유의 말씀을 들었을 때 깨닫는 자가 있는 반면에 깨닫지 못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고 난 후에 오늘의 비유 말씀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 당시 율법주의자들이 남들을 많이 비판했습니다. 자신들은 거룩한 신앙생활을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부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비판을 쏟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 앞에서 부정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시켜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존재는 없습니다.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사두개인들과 대제사장들도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부정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을 비판했습니다.
주님은 이런 율법주의 신앙자들을 향하여 말씀합니다. 먼저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들도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고 부정하면서 다른 사람을 비판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을 비판한 권리가 없습니다. 판단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내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 점검하면 됩니다. 우리가 율법주의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비판을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은혜받은 자로서 다른 형제를 비판할 것이 아니라 용서하고 그 사람을 올바른 진리로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서 있는지를 점검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눅6:39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39절 에이펜 데 파라볼렌 아우토이스 메티 뒤나타이 튀플로스 튀플론 호데게인 우키 암포테로이 에이스 보뒤논 페순타이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합니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만약에 맹인이 인도하게 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주님은 그 당시 맹인을 보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산악지대이기 때문에 많은 돌과 낭떠러지가 많았습니다. 만약 양들이 목자의 인도를 받지 못하면 산의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지형적인 것들을 놓고 주님은 비유로 말씀했습니다. (빠지지: 핍토 4098) 떨어지다, 넘어지다, 잃다라는 뜻입니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게 되면 결국 구덩이에 떨어져 둘 다 죽는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육적 맹인만 생각할 수 있지만 영적인 맹인이 영적인 맹인을 인도하게 되면 모두가 죽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모두가 지옥의 불 못에 던져지게 됩니다. 율법주의 신앙을 하는 자들은 율법의 행위로 인도하기 때문에 마지막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고전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12절 호스테 호 도콘 헤스타나이 블레페토 메 페세
하나님은 너희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넘어질까라는 단어가 (핍토)입니다. 우리는 항상 구덩이와 같은 곳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율법주의 신앙을 하다 보면 마귀가 파 놓은 구덩이에 빠지게 됩니다. 이곳에 한 번 빠지면 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거짓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영원히 죽는 지옥의 불 구덩이로 인도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항상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서 있다고 나의 신앙에 자만하거나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만에 빠지면 구덩이와 같은 거짓 복음에 빠져 죽게 됩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도 주님의 음성을 듣고 오직 복음을 따라 목자가 인도하는 데로 가야 합니다.
눅6: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40절 우크 에스틴 마데테스 휘페르 톤 디다스칼론 아우투 카테르티스메노스 데 파스 에스타이 호스 호 디다스칼로스 아우투
주님은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지만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다고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이 율법에 빠져 있기 때문에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율법에 묶여 선생을 뛰어넘을 수가 없습니다. (온전하게 된: 카타르티조 2675) 회복하다, 완전하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럼 온전하게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율법주의 신앙에서 복음의 신앙으로 회복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율법에 빠져 있었는데 주님의 복음을 듣고 돌아선 것을 말합니다. 율법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으니 복음으로 돌아서서 완전해진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율법을 고수하는 유대교에서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교로 옮긴다는 것은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이렇게 온전하게 되었을 때 다시 율법주의 신앙으로 돌아가지 않게 됩니다. 헬라어 문법에 완료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온전하게 된 것은 인간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율법주의에 빠져 있다가 복음으로 돌아선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온전하게 된 사람은 선생과 같아진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게 되면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주님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복음으로 완전하게 되었으니 다시는 율법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되는 것이고 성화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시 구원이 취소되거나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눅6: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1절 티 데 블레페이스 토 카르포스 토 엔 토 오프달모 투 아델푸 수 텐 데 도콘 텐 엔 토 이디오 오프달모 우 카타노에이스
주님은 말합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냐고 했습니다. 우리가 온전하게 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율법의 흠만 보려고 합니다. 자신은 아직도 율법주의 신앙을 하면서 구원의 은혜는 받지 못했으면서 다른 형제의 율법의 흠을 보면서 정죄하게 됩니다.
롬2: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3절 호스 엔 노모 카우카사이 디아 테스 파라바세오스 투 노무 톤 데온 아티마제이스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을 자랑하면서도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완전해지지 않으면 율법에 속한 자가 되어 다른 형제를 정제하게 됩니다. 율법을 열심히 자랑하면서 정작 자신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가 되어 하나님을 욕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으면 율법만 보이게 됩니다. 우리는 복음의 눈이 열려야 합니다. 율법은 정죄의 신앙을 하지만 복음은 용서의 신앙을 합니다. 내가 복음에 눈이 열려 있으면 다른 사람의 티를 보지 않습니다. 정작 티를 보았다 하더라도 반면교사로 삼아 나의 신앙을 점검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온전하게 되었으니 다른 형제의 율법의 티를 보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보고 정죄할 필요가 없습니다. 판단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눅6: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42절 에 포스 뒤나사이 레게인 토 아델포 수 아델페 아페스 아크발로 토 카르포스 토 엔 토 오프달모 수 아우토스 텐 엔 토 오프달모 수 도콘 우 블레폰 휘포크리타 에크발레 프로톤 텐 도콘 에크 투 오프달무 수 카이 토테 디아블렙세이스 에크발레인 토 카르포스 토 엔 토 오프달모 투 아델푸 수
주님은 말합니다.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율법과 형식주의의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다른 형제에게 말하기를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고 할 수 있느냐고 합니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고 난 후에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라고 말할 것을 주님이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율법주의에 빠져 있으면 다른 사람의 잘못된 것만 보이고 그런 것들을 지적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의 공통점은 다른 사람을 지적하는 데는 열심히 하면서 정작 자신이 잘못된 것에 대하여 지적당하면 불쾌감을 드러냅니다. 자신은 정죄를 하면서 자신의 잘못된 것을 지적받으면 싫어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율법주의 신앙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율법주의 신앙에서 빠져나오려면 복음으로 온전해져야 합니다. 복음을 듣지 않으면 온전해질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을 때 비로소 온전하게 됩니다. 내 눈에 있는 율법의 들보를 빼낸 것입니다. 이 율법의 들보가 빠졌을 때 다른 사람의 티도 빼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율법의 들보를 빼내면 그때서 예수 그리스도가 밝히 보이고 천국을 보게 됩니다. 주님의 빛이 내 안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적 맹인으로 있을 때는 빛이 있어도 보지 못합니다. 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빛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의 영적인 눈을 열어주시니 빛을 보지 않으려고 해도 자연스럽게 빛이 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빛이 눈으로 들어오면 사물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맹인은 사물을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 보지 못하기 때문에 물체가 앞에 있어도 알 수 없습니다. 영적 맹인은 하나님이 천국을 바로 눈앞에 두어도 보지 못합니다.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눈이 열리고 진리의 빛이 영혼의 눈으로 들어오니 천국을 볼 수 있고 구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구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일에만 찌들어 살게 되면 영혼이 답답하고 곤핍해집니다. 우리의 속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살 수 있습니다. 복음을 듣지 않으면 영혼은 항상 곤핍하여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영적 맹인이 되지 말라고 하시니 우리가 진리의 복음을 통해서 맹인에서 주님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렸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의 삶 가운데 다른 형제의 티를 볼 것이 아니라 나의 율법의 들보를 빼내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킴으로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어느 곳에 있든지 주님이 기뻐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항상 주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출애굽기 3장 원어성경 설교말씀] 떨기나무에 선 모세(출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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