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성도는 교회에서 복음의 떡을 먹어야 합니다. 복음을 먹지 않으면 영혼은 죽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을 먹음으로 항상 영혼에 은혜가 충만하고 배고픔이 사라져야 하겠습니다.
복음의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눅 14:15-24)
시대가 흘러가면서 복음이 점점 쇠퇴해져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영적인 것보다는 육적인 것에 관심을 더 갖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에 관심을 더 갖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육체를 가지고 살지만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과연 나는 복음의 떡을 먹고 있는지 생각해야 하며 과연 나는 무엇으로 구원을 받았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15절 아쿠사스 데 티스 톤 쉬나나케이메논 타우타 에이펜 아우토 마카리오스 호에 파게타이 아르톤 엔 테 바실레이아 투 데우
눅14:15 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예수님과 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주님이 구제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듣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와 복음의 떡을 먹는 복된 사람입니까?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온 구원받은 백성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16절 호 데 에이펜 아우토 안드로포스 티스 에포이에센 데이프논 메가 카이 에칼레센 폴루스
눅14:16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주님은 어떤 사람의 말을 들으시고 바로 비유의 말씀을 합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했다고 말합니다. 마태도 이와 비슷한 비유의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어떤 임금이 혼인 잔치를 베풀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는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청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천국 잔치를 베풀고 이스라엘 백성을 초청한 것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도 지금 초청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 잔치에 들어오라고 말씀으로 초청하고 있고 사람을 통해서 초청하고 있습니다.
17절 카이 아페스테일렌 톤 둘론 아우투 테 호라 투 데이프누 에이페인 토이스 케클레메노이스 에르케스데 호티 에데 헤토이마 에스틴 판타
눅14:17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잔치를 배설하는 주인은 종을 보내어 많은 사람을 초청하고 있습니다. 잔치가 시작할 즈음에 초청했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모든 잔치가 준비되었으니 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구원으로의 초청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서 많은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불렀습니다. 잔치에 참여하라고 초청했습니다. 현재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초청하고 있습니다. 천국 잔치를 배설하고 나에게 이 잔치에 들어와 먹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천국 잔치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초청된 사람은 아무나 초청된 것이 아닙니다. 주인과 연관이 있는 사람이 초청을 받았습니다. 연관이 없는 사람은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이스라엘 백성을 불렀습니다. 이방인은 하나님과 연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잔치를 배설하고 종을 보내 초청한 사람을 불렀는데 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모두 거절했습니다.
18절 카이 에륵산토 아포 미아스 파라이테이스다이 판테스 호 프로토스 에이펜 아우토 아그론 에고라사 카이 에코 아낭켄 엑셀데인 카이 이데인 아우톤 에로토 세 에케 메 파레테메논
눅14:18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주인에게 초청을 받은 사람은 모두 일치하여 사양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말하기를 나는 밭을 샀기 때문에 잔치에 참석하지 못하고 나가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나를 양해하여 달라고 합니다. 밭을 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 세상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땅보다 이 세상의 땅이 더 소중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복음을 저버리고 세상의 땅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양해하도록 하라고 했는데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는 (나카 5352) 비우다, 깨끗하다, 무죄로 하다.라는 뜻입니다. 이 사람은 주인이 보낸 종에게 말합니다. 나는 밭을 샀기 때문에 당신의 주인의 잔치에 갈 수 없으니 주인에게 돌아가서 나는 원래부터 갈 생각이 없었는데 당신의 주인이 나를 일방적으로 초청한 것이니 내가 잔치에 참석하지 않아도 나는 죄가 없고 깨끗하니 나에 대한 미련을 비워달라고 말해 줄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많은 선지자를 통해서 천국 잔치에 초청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은 무죄하며 깨끗하다고 주장하면서 잔치에 가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 이런 신앙을 하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유대인과 같은 율법주의자입니다. 이들은 구원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쌍방적으로 인간의 의가 있어야 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율법의 의를 주장합니다. 하나님이 준비한 천국 잔치에 오지 않고는 무죄가 성립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를 준비해 놓고 우리를 초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밭을 사고 준비하는데 열심을 가지면 안 됩니다. 이 세상의 재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19절 카이 헤테로스 에이펜 쥬게 보온 에고라사 펜테 카이 포류오마이 도키마사이 아우타 에로토 세 에케 메 파레테메논
눅14:19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한 사람은 말하기를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기 때문에 시험하러 가야 해서 주인의 잔치에 가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소 다섯 겨리는 다섯 쌍을 말합니다. 소 다섯 겨리를 샀다는 것은 그 당시 농경사회에서 큰 부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를 시험하기 위해서 잔치에 못 간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동산(動産)을 지키기 위해서 못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밭을 산 사람은 자신의 부동산(不動産) 때문에 천국 잔치에 가지 못하는 것이고 소 다섯 겨리를 산 사람은 동산(動産) 때문에 천국 잔치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 재산이 많으면 그것을 관리하기 위해서 복음을 거부하고 소홀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복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복음으로 천국 잔치에 들어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20절 카이 헤테로스 에이펜 귀나이카 에게마 카이 디아 투토 우 뒤나마이 엘데인
눅14:20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나는 장가 들었으니 주인의 잔치에 가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장가들어가지 못하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육체의 쾌락에 빠져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혼 생활에 흠뻑 빠져 재미가 있습니다. 육체의 쾌락에 빠져 있으면 복음을 거부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는 것보다 지금 육체의 쾌락이 더 커 보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아내의 마음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주인의 잔치에 갈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주인이 배설한 잔치보다 나의 지금 생활이 더 크기 때문에 갈 수 없음을 말합니다. 하나님도 나를 불렀는데 육체의 쾌락에 빠져 복음을 거부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복음을 버리고 세상의 향락에 빠져 살고 있다면 회개하고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해야 합니다.
21절 카이 파라게노메노스 호 둘로스 에케이노스 아펭게일렌 토 퀴리오 아우투 타우타 토테 오르기스데이스 호 오이코데스포테스 에이펜 토 둘로 아우투 엑셀데 타케오스 에이스 타스 플라테이아스 카이 뤼마스 테스 폴레오스 카이 투스 프토쿠스 카이 아나페루스 카이 콜루스 카이 튀퓔루스 에이사가게 호데
눅14: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주인의 종이 돌아와서 그들이 말한 그대로 보고합니다. 주인은 그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종에게 다시 명령합니다.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합니다. 주인이 생각하여 친분이 있는 사람을 초청했는데 그들은 주인의 성의를 무시했습니다. 자신의 일에 몰두하여 주인에게 수치를 주었습니다. 이런 자들이 바로 대제사장들, 제사장들, 사두개인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입니다. 하나님이 잔치를 배설하고 이런 자들을 불렀더니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무시하고 십자가에서 죽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심판하시고 이제는 복음을 힘없고 수치당하던 자들에게로 돌립니다. 가난한 자들과 몸이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에 천국 잔치를 배설하고 복음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능력 있고 세상에서 권력이 있고 잘난 사람들은 복음을 무시하고 거절했습니다. 율법주의자는 자신의 의로 깨끗해지고 죄가 사라질 수 있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버렸습니다. 행위의 의를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은 화가 나서 힘없고 능력 없는 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의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22절 카이 에이펜 호 둘로스 퀴리에 게고넨 호스 에페탁사스 카이 에티 토포스 에스틴
눅14:22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종이 주인의 명령을 받고 거리로 나가 사람들을 불렀는데도 아직도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주님이 더디 오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직도 구원받을 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준비한 잔치에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자리를 채우라고 말씀합니다.
23절 카이 에이펜 호 퀴리오스 프로스 톤 둘론 엑셀데 에이스 타스 호두스 카이 프라그무스 카이 아낭카손 에이셀데인 히나 게미스데 호 오이코스 무
눅14: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주인이 종에게 말합니다.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나의 집을 채우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채우라고 하는 단어는 히브리어로는 (말레 4390) 채우다, 가득차다, 충만하다, 라는 뜻입니다. 주인은 종에게 아직 채워지지 않은 자리를 길과 산울타리로 가서 강권하여 데리고 와서 가득 채우라고 지시합니다. 주인의 잔치를 풍성하게 만들라는 말입니다. 주인의 잔치에 들어오는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밖으로 나가면 이 잔치에 초청받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리고 오라고 말합니다. 수동태를 사용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천국 잔치에 들어올 사람들은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직 복음을 모르기 때문에 잔치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복음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천국 잔치에 감사함으로 들어와서 잔치를 즐기게 됩니다.
24절 레고 가르 후민 호티 우데이스 톤 안드론 에케이논 톤 케클레메논 규세타이 무 투 데이프누
눅14: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주님은 자리에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은 구원받았다고 생각했고 거룩하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반대로 말씀합니다. 너희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 지금 교회에서 떡을 먹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율법주의 신앙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은 자신들은 구원받았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받았다고 착각할 뿐입니다.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살지만 하나님의 초청에는 응답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밭과 같은 부동산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소를 샀던 것처럼 동산에 관심이 더 큽니다. 장가간 것처럼 세상의 쾌락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잔치를 맛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것보다 하나님 나라의 떡을 더 귀하게 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능력과 권세와 재물이 없지만 때가 되매 하나님의 복음을 더 귀하게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복음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복입니다. 십자가의 의의 복음을 먹고 영혼이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복음을 먹음으로 항상 주님께 감사하면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헬라어 성경 설교말씀]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마 6: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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