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갈라디아서 2장 하나님 말씀 중에서 십자가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다라는 설교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십자가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다”(갈 2:20)
♣명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으면 구원과는 상관없는 자이다.
♣목적: 내가 주님과 십자가에서 죽었다면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신다.
사도바울은 율법에 철저한 사람입니다.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율법을 철저하게 공부했으며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율법주의자가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신앙이 바뀌는 계기가 됩니다. 율법으로는 절대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직 주님의 의로만이 구원을 얻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신득의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만이 의롭게 된다는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절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될 만한 육체가 없습니다. 우리가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율법의 의를 주장하는 자들은 주님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시간 우리는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들도 함께 주님과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신득의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은혜를 받은 자만이 구원의 반열에 올라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믿는다고 무조건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역사 가운데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이신득의의 역사가 나에게 일어나고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는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사도바울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철저한 율법주의자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감옥에 가두어 고통을 주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십자가에 함께 죽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나의 고백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도 구원을 얻기 전에는 철저한 죄악의 율법 가운데 살았던 존재입니다. 그런데 바울처럼 예수님을 만나고 신앙이 달라진 것입니다. 행위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고 나니 오직 자신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살고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십자가의 죽음과 함께 부활의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새로운 생명의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먼저는 주님과 함께 죽어야 합니다. 죽고 난 후에는 주님과 함께 살아나는 것입니다. 현재 내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시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이 이신득의가 된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자신이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사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셨고 이 죽음이 나의 죽음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들도 사도바울의 신앙고백이 나의 신앙고백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συσταυροω(쉬스타우로오 4957) 십자가에 못 박히다, 함께 못 박히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συν(쉰 4862) ~와 함께, ~와 더불어, 라는 뜻과 σταυροω(스타우로오 4717) 십자가에 매달다, 못 박히다,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주님과 함께 못 박혔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아무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 함께 더불어 선택받은 자들이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바로 주님의 옆에 서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주님과 함께 옆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곁에 서있는 것이 이미 확정된 사람이 서 있을 수가 있습니다. 내가 주님의 십자가 옆에 서 있고 싶다고 해서 서 있을 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이 확정된 자들이 주님의 십자가에 서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중에 바로 내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놀라운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미 만세전에 주님의 십자가에 함께 죽도록 옆에 서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자들은 이미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놀라운 일이 현재 나에게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내가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못 박힌 사실은 완전한 행동으로 끝이 났습니다. 매일 같이 내가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단 한 번의 행동으로 끝이 났는데 나 또한 함께 끝이 났습니다. 이렇게 행동이 끝이 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신 행동이 완전하게 끝났고 그것이 나에게 현재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속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내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싶어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죽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내가 구원을 얻으려고 해도 하나님이 선택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려고 해도 하나님은 나를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못 박았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이것을 피하려고 해도 절대 피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내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은 것이 내 의지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의지이며 하나님의 주관하심에 의하여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인정하지 못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언제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었냐고 질문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 구원의 확신이 있는 자는 모두가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내 의지로는 절대 십자가에 달릴 수가 없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수동태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하심이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구원받은 백성이라면 십자가에 주님과 함께 죽은 것입니다.
‘사시는 것이라’ ζαω(자오 2198) 살다, 살아계시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으면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율법에 속한 것들은 모두 죽은 것입니다. 옛 언약에 있던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이제는 새 언약의 복음이 내 안에 살아있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아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하면서도 아직도 율법주의 신앙에 머무르고 있다면 이것은 아직도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구원을 얻었다고 말로만 하면서도 행동은 율법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잘못된 신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신득의 신앙 안에 들어오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면 나의 율법은 모두 죽고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이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인정을 하든 안 하든 새 언약에 있는 자들은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아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내가 인정하지 않아도 성경이 확실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직설법을 사용하여 구원받은 백성들의 심령 속에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이 실제로 내 안에 일어났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 이런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현재 일어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나와 함께 살아계시고 있습니다. 내 안에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확신을 주시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사’ αγαπαω(아가파오 25) 사랑하다, 기뻐하다, 사도바울이 고백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육체 가운데 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삶이 죽어야 할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덤으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의 신앙 안에서는 영원히 죽어야 할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있을 때에 주님을 믿음으로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육체로 내가 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덤으로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달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하나님의 확증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달게 하신 것은 나를 살리시는데 기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만세전에 선택해 주시고 주님을 통하여 살리시는 것이 기쁘고 즐거웠던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언제 나를 사랑하셨습니까? 만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미 나를 예정하시고 부르시고 영화롭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사랑이 언제 나타났습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신 사건을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주님이 죽으셨다는 것을 믿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 스스로 나를 사랑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는 무엇이 소유되어 있습니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이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가장 사랑하는 독자를 죽이신 것입니다. 이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버리신’ παραδιδωμι(파라디도미 3860) 내어주다, 넘겨주다, 버려두다, 방임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내어주셨습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의 대속 물로 예수님을 넘겨주시고 십자가에서 버리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간절한 기도에도 외면하여 방임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선택받은 나를 살리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런데도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자입니까? 혹시 여러분들 중에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소외되신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 시간 이 말씀을 통하여 그 생각을 완전히 머릿속에서 지워버리시기 바랍니다.
나를 사랑하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절대 예수님을 십자가에 버려두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외면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이 죽지 않으면 내가 살아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주님을 죽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버려지신 곳이 어디입니까? 갈보리 언덕 골고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의 예정과 작정 속에서 버려지시기로 계획이 되신 분입니다. 그리고 골고다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럼 예수님이 버려지실 때에 소유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내가 소유되어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내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못 박히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고난 주간을 맞이하여 주님과 함께 십자가 고난에 동참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내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아직도 율법의 신앙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통하여 내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신다는 것이 믿어진다면 새 언약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나는 죽었습니다.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이제 내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십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히 함께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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