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히브리어 강해설교

[출애굽기 히브리어 설교말씀] 홍해 세례의 기적 체험(출 14:21-25)

르호봇 2021. 6. 30.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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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출애굽기 히브리어 설교말씀 중에서 홍해 세례의 기적 체험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주고 있습니다. 유월절을 통해서 어린양의 피로 구속함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와서 광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이 마음이 바뀌어 이스라엘 백성을 잡으려고 군사를 보냈습니다. 이스라엘 앞에는 홍해 바다가 있고 뒤에는 애굽 군사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광야에서 모두 죽게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때 모세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어떻게 구원하시는지를 보라고 했습니다. 홍해 바다를 건넌 것을 바울은 세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을 통해서 구원의 은혜를 받았으니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면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구약에서는 홍해 바다를 건넌 것을 물세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원죄에서 해방되었다면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도 홍해 세례의 기적을 체험함으로 구원의 확신을 갖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홍해 세례의 기적 체험(출 14:21-25)

 

우리가 홍해의 기적을 말할 때에 외형적인 구원에 관해서만 말을 합니다. 애굽 백성들로부터 구원하여 홍해 바다가 갈라진 사건만을 말하게 됩니다. 하지만 홍해가 갈라져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길을 걸어간 사건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기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단지 바다를 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가게 하신 것만은 아닙니다. 이 시대 구원받은 백성들이 체험해야 할 세례에 대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애굽에서 노예로 430년 동안 살았습니다. 이런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모세를 하나님이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의 손에서 해방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유월절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주셨습니다. 어린양의 피가 아니면 절대 진노를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열 가지 재앙 중에 마지막 장자 재앙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들은 깨달을 것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생활을 했던 것은 인간의 원죄를 상징합니다. 창세전에 선택받았지만 아담의 후손으로 오게 되어 원죄 가운데 죽어있었습니다. 사망이 왕 노릇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유월절에 어린양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속함을 받은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주님의 피 값으로 원죄에서 해방을 받았습니다. 유월절은 성도가 교회에 들어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처음에 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만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원죄에서 해방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난 후에 세례를 받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지도 않고 고백하지 않는데 세례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교회에서 받는 세례는 물세례입니다. 하지만 구원받은 세례는 성령세례입니다. 우리가 물세례를 받지 않아도 성령세례는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은 구원의 확신을 얻었기 때문에 교회에서 물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구원의 표로 물세례를 받게 됩니다.

성령세례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면 절대 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에 성령세례를 받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기적의 체험이 성령세례의 체험의 예표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반드시 성령세례의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이때에 원죄가 완전히 사라지는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언제 이런 체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들을 때에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교회에 들어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성령세례를 받지 않으면 이 믿음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의 은혜를 받았지만 홍해 앞에서 두려워 떨었습니다. 애굽 백성들이 전차와 마병을 이끌고 쳐들어 왔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두려워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면서 불평했습니다.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원죄에서 해방되었다고 하지만 성령세례를 받지 않으면 완전히 해방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 이유가 환경의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언제라도 세상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가 교회에서 중직을 맡아 일을 할 때에 성령세례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얻고 홍해의 기적을 체험하게 되면 내가 하나님께 하는 일들을 기쁨으로 하게 됩니다. 교회에서 맡은 일들이 나를 위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일이 됩니다. 성령세례를 체험했다는 것은 거듭났다는 의미입니다. 하늘로부터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내가 거듭나지 못한 상태에서 교회의 중직을 맡아서 일을 하면 나도 모르게 불평이 나오게 되고 교회 일을 하면서 짜증 내게 됩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들이 홍해의 기적을 체험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성령세례를 통해서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구원의 확신을 주십니다.

 

그럼 우리가 홍해 사건을 통해서 세례의 체험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성부 하나님은 애굽 백성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19절 바이사 말아크 하엘로힘 하홀레크 리프네 마하네 이스라엘 바옐레크 메아하레헴 바이사 암무드 헤아난 미프네헴 바야아모드 메아하레헴

14:19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가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뒤로 옮겨가고 구름 기둥도 뒤로 옮겨가게 됩니다. 이 사역은 성부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애굽 백성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잡아두었던 자들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사탄의 존재를 말합니다. 원죄 가운데 사망이 왕 노릇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홍해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가게 할 때에 애굽 군사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넘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자들의 원죄를 성부 하나님께서 담당하셔서 더 이상 원죄가 성도들에게 왕 노릇하지 못하도록 막아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이 지옥에 떨어져 죽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원죄가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령세례를 받았을 때에 모든 원죄는 성부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세례를 받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고백한 자들은 더 이상 원죄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한 번에 모두 원죄가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용서를 성부 하나님께서 해주셨습니다.

20절 바야보 베인 마하네 미츠라임 우베인 마하네 이스라엘 바예히 헤아난 베하호쎄크 바야에르 에트 하랄옐라 베로 카라브 제 엘 제 콜 하라옐라

14:20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쪽에는 밤이 밝으므로 밤새도록 저쪽이 이쪽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성부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서서 계십니다. 애굽 진영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스라엘 진영에는 밤인데도 밝게 빛이 빛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애굽 병사들이 이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애굽 병사들이 가까이 오지 못한다는 것은 성부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모든 원죄가 임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은 자들에게 성부 하나님은 다시 원죄가 임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세례를 받고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더 이상 원죄 가운데 돌아가지 않습니다.

24절 바예히 베아쉐모레트 하보케르 바야쉐케프 아도나이 엘 마하네 미츠라임 베암무드 에쉬 베아난 바야함 에트 마하네 미츠라임

14:24 새벽에 여호와에서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애굽 병사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기 위해서 홍해 바다에 들어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뒤를 쫓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부 하나님께서 새벽에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셨습니다.

 

새벽’이라는 단어는 (보케르 1242) 새벽, 아침, 이라는 뜻이며 בקר(바카르 1239) 쪼개다, 처벌하다, 살피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벽에 애굽 군대들을 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려고 하니 군대들을 어지럽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심히 애굽 군대들을 살피면서 마지막 때에 처벌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애굽 병사들이 전차를 몰고 갈라진 홍해에 들어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애굽 백성들을 새벽에 쪼개어 나누셨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를 무사히 건너갈 때까지 지키시고 함께 하시며 애굽 병사들은 저주하여 멸망시켜버렸습니다.

 

어지럽게 하시며’라는 단어는 (하맘 2000 CW.VQIMZS 와우접속사. 동사, 칼(능동태),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요란하게 움직이다. 패주시키다, 멸망시키다, 라는 뜻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밤새 지키시고 애굽 백성들의 마음을 분주하게 만들고 요란하게 만들어서 멸망시켜버렸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애굽 병사들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모두 처단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손도 대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에 하나님은 선택한 백성들은 끝까지 지키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성령세례를 받은 자들은 더 이상 원죄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막아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5절 바야사르 에트 오판 마르케보타이브 바예나하게후 비케베두트 바요메르 미츠라임 아누사 미프네 이스라엘 키 아도나이 니르함 라헴 베미츠라임

14:25 그들의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가 어렵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성부 하나님은 애굽 병사들의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그때서야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치자고 말합니다. 성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싸워서 애굽 사람을 친다고 말합니다.

 

어렵게 하시니’라는 단어는 (케베두트 3517) 무거움, 힘겨움, 어려움, 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애굽 병사들의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려갈 때에 힘겹게 하셨습니다. 한 바퀴도 돌아가지 못하도록 성부 하나님은 애굽 병사들의 전차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자들에게 원죄의 사망이 죽이려고 달려와도 성부 하나님이 무겁고 어렵게 만들어 성도들에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세례를 받고 구원의 확신을 얻었으니 애굽 병사와 같은 원죄의 사망은 더 이상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부 하나님께서 싸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싸워 치는도다’라는 단어는 (라함 3898 VNAMZS 동사, 닢알(수동태), 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싸우다, 전쟁하다, 라는 뜻입니다. 애굽 병사들은 자신들이 타고 온 전차의 바퀴가 아무 이상이 없는데도 벗겨지고 무거워서 달리지 못하는 것을 보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병사들에게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애굽 병사들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부 하나님께서 애굽 병사들과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에게 다시는 원죄가 임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원죄를 폐쇄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죄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싸워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닢알, 수동태를 사용했다는 것은 애굽 병사들이 볼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께서 대신 싸워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세례를 받을 때에 성부 하나님의 사역은 애굽 병사들과 같은 사망이 왕 노릇하던 원죄를 완전히 멸해주시는 사역입니다. 성령세례가 임하여 구원의 확신이 들어오면 성부 하나님께서 원죄를 해결해 주셨기 때문에 다시는 원죄 가운데 돌아가지 않습니다. 영원한 해방을 얻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사람들을 영원히 보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13절 바요메르 모쎄 엘 하암 알 티라우 히트야체부 우레우 에트 예슈아트 아도나이 아쎄르 야아세 라켐 하욤 키 아쎄르 레이템 에트 미츠라임 하욤 로 토시푸 리르오탐 오드 아드 올람

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모세는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말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홍해를 건너 성령세례의 기적을 체험한 성도들은 다시는 영원히 원죄를 보지 않습니다. 내가 구원받은 것은 나의 힘으로 받은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원죄를 무찔러 주셔서 구원받았기 때문에 성령세례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야 가능합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널 때에 성부 하나님의 사역을 보았다면 이제는 성령 하나님의 사역을 보겠습니다.

21절 바예트 모쎄 에트 야도 알 하얌 바욜레드 아도나이 에트 하얌 베루아흐 카딤 아자 콜 하라옐라 바야셈 에트 하얌 레하라바 바이보크우 하마임

14: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 밀었더니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그때에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땅이 되었습니다.

동풍’이라는 단어는 (루아흐 7307) 바람, , 이라는 뜻입니다. 동풍이 밤새도록 불어서 바닷물이 물러가게 했다는 것은 성령의 사역을 의미합니다. 성령세례를 받을 때에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육지처럼 걸어갔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없이는 절대 홍해를 건너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홍해가 갈라져서 마른땅이 될 정도로의 바람이 불어오려면 어느 정도 바람이 불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람이 불어 물이 서 있을 정도의 바람세기가 되려면 시속 241Km-322Km의 세기로 불어야 합니다. 엄청난 세기의 바람이 불어야 만이 홍해가 서로 갈라져 벽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200만 명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가축들을 포함하면 엄청난 사람들이 홍해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홍해를 한 번에 건너려면 1Km의 길이 열려야 만이 한 번에 건널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바람을 이용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번에 홍해를 건널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렇게 성령세례를 받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인간의 의지는 전혀 없습니다.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시는 사역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바람이 없으면 절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인정하지 못합니다.

 

물이 갈라져’라는 단어는 (바카 1234 CW.VNIMZP 와우접속사. 동사, 닢알(수동태), 미완료, 남성, 3인칭, 복수) 쪼개다, 갈라지다, 부서뜨리다, 뚫다, 라는 뜻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밤이 새도록 동풍을 불게 하셔서 홍해 바다가 쪼개져 갈라지게 하셨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마른땅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갈 수 없습니다. 홍해가 갈라진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적으로 성령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그 이유가 닢알, 수동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물이 갈라진 것은 인간의 의는 전혀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의이며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입니다. 내가 성령세례를 받고 구원받은 것은 나의 의는 없습니다.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이며 주권입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와 주님을 구주로 믿고 시인하게 된 것은 성령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나의 완악한 마음을 깨뜨리고 부서뜨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나는 완악한 원죄의 죄인이었습니다. 주님도 몰랐고 사망이 왕 노릇하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 하나님께서 완악하고 간사한 나의 심령을 뚫고 들어와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어주셨습니다. 율법적인 인생을 살아가던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주심으로 복음의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교회생활을 많이 했다고 해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세례를 받고 하늘로부터 거듭나서 오직 복음으로 돌아서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싶다고 해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간 성령 하나님께서 나의 심령을 뚫고 들어와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것처럼 한 줄기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들어와 어두운 나의 심령에 주님을 알게 해 주시고 거듭난 자의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26절 바요메르 아도나이 엘 모쎄 네테 에트 야드카 알 하얌 베야슈부 하마임 알 미츠라임 알 리크보 베알 파라솨이브

14:2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들의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성령 하나님은 자신의 의지로 홍해를 건너려고 하는 자들을 심판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들의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사탄의 앞잡이들도 상징하지만 율법주의자들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홍해를 건너는 자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없이 자신의 의로 세례를 받으려고 하거나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은 철저하게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의를 드러내어 애굽 병사들처럼 홍해를 건너려고 하면 하나님은 철저하게 짓밟아 버립니다. 내가 구원받은 것은 나의 행위도 아니고 나의 의는 전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고 시인하여 구원을 얻었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 없이 자신의 의로 율법을 지켜 구원 얻으려고 한다면 하나님은 철저하게 심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없이는 하늘로부터 절대 거듭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알았으니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22절 바야보우 베네 이스라엘 베토크 하얌 바야바솨 베하마임 라헴 호마 미미남 우미세모람

14:22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성령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서 홍해 바다가 마른땅이 되었습니다. 홍해 바다는 좌우에 벽이 만들어졌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갔습니다.

 

육지로’라는 단어는 (얍바사 3003) 마른 땅, 이라는 뜻이며 יבש(야베쉬 3001) 수치를 당하다, 부끄러워하다, 마르다, 시들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홍해 바다가 육지로 변한 것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홍해 바다가 마른땅이 된 것처럼 십자가에서 선택받은 나를 위해서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무 죄도 없는데 나의 원죄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하셨고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채로 주님은 목이 메마르고 육신이 뜨거운 고통 속에서 6시간 동안 시들어 가셨습니다. 이렇게 고통을 당하신 것은 나의 원죄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른땅을 직접 발로 밟으면서 걸어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수치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의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가받으면서 홍해 바다를 건너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살아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구원의 역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28절 바야슈부 하마임 바예카수 에트 하레케브 베에트 하파라쉼 레콜 헬 파르오 하바임 아하레헴 바얌 로 니쉐아르 바헴 아드 에하드

14:28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따라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으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홍해 바다가 다시 흘러넘쳐서 애굽의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뒤를 따라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어서 하나도 남기지 않고 죽였습니다. 똑같이 홍해에 들어갔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명도 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애굽 병사들은 한 명도 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면서 영적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인간의 의로 홍해를 건너려고 하면 죽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의지로 세례를 받고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율법의 의로 구원을 얻었다고 한다면 진정한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런 자들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성부 하나님의 역사와 성령 하나님의 역사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를 체험한 자들은 한 명도 죽지 않았습니다.

29절 우베네 이스라엘 홀르쿠 바야바솨 베토크 하얌 베하마임 라헴 호마 미미남 우미세모람

14:29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더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앞서 갈 때에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물이 좌우에 벽이 되어 덮지 않았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가 있으면 죽지 않습니다. 영원한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가 있을 때에 일어나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나의 의로 세례를 받고 구원을 받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역사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로 시인하여 성령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신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의 기적을 체험한 사건을 세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홍해를 건넌 것은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1절 우 델로 데 휘마스 아그노에인 아델포이 호티 호이 파테레스 헤몬 판테스 휘포 텐 네펠렌 에산 카이 판테스 디아 테스 달랏세스 디엘돈

2절 카이 판테스 에이스 톤 모센 에바프티산토 엔 테 네펠레 카이 엔 테 달랏세

고전 10:1-2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바울은 말씀하기를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홍해의 기적은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구원의 표입니다.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는 것은 구원을 확증하는 것이며 원죄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표시입니다. 그럼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복음을 들으면 됩니다.

35절 아노익사스 데 호 필리프포스 토 스토마 아우투 카이 아륵사메노스 아포 테스 그라페스 타우테스 유엥겔리사토 아우토 톤 이에순

36절 에포류온토 카타 텐 호돈 엘돈 에피 티 휘도르 카이 페신 호 유누코스 이두 휘도르 티 콜뤼에이 메 밥티스데나이

8:35-36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빌립이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를 만나게 됩니다. 이 사람이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는데 깨닫지 못했습니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이사야서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내시가 성령세례를 받고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내시는 성령세례를 받고 구원받은 후에 물세례를 받는 것이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고 하면서 빌립을 통해서 물세례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물세례를 받는 것은 성령세례를 받고 구원받은 표식입니다.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지 못하면 자신의 의를 들어내는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로 시인했다고 하더라도 흔들리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세례를 주시는 목적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더 이상 원죄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3절 아그노운테스 가르 텐 투 데우 다카이오쉬넨 카이 텐 이디안 디카이오쉬넨 제툰테스 스테사이 테 디카이오쉬네 투 데우 우크 휘페타게산

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못하게 됩니다. 성령세례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구원의 확신도 없이 신앙생활을 하면 교회에서 열심히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열심을 내게 됩니다. 하지만 성령세례를 받고 난 후에는 하나님의 의를 알기 때문에 내가 하는 모든 봉사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나의 의는 사라지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의만 나타나게 됩니다. 그럼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성령으로부터 심령에 인침을 받은 사람입니다.

13절 엔 호 카이 휘메이스 아쿠산테스 톤 로곤 테스 알레데이아스 토 유앙겔리온 테스 소테리아스 휘몬 엔 호 카이 피스튜산테스 에스프라기스데테 토 프뉴마티 테스 에팡겔리아스 토 하기오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자가 성령세례를 받은 자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로 인을 쳐주셨는데 도장을 찍어주셨습니다. 나의 자녀라고 도장을 찍어주신 것이 인치심입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교회생활을 하면서 성령세례를 받음으로 영원히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절대 구원이 취소되지 않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홍해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홍해의 기적은 성령의 세례를 체험한 것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된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고 구원을 받았으니 교회에서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상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구원받고 끝난 사람은 마지막 때에 받을 상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상을 받을 기회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아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상을 받을 기회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 직분을 준다고 하면 더 기뻐해야 합니다. 나에게 상을 줄 기회를 주셨구나 생각하시면 됩니다. 홍해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은 직분을 맡아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가정에서도 충실하고 교회에서도 충실하고 직장에서도 충실한 삶을 살게 됩니다. 모든 것이 새로워졌기 때문입니다.

20절 조 데 우케티 에고 제 데 엔 에모이 크리스토스 호 데 뉜 조 엔 사르키 엔 피스테이 조 테 투 휘우 투 데우 투 아가페산토스 메 카이 파라돈토스 헤아우톤 휘페르 에무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홍해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일에 불평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나를 사랑하신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야 말로 홍해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홍해의 기적을 체험했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확신하시고 이제부터 부름의 상을 좇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세는 추르 반석 위에 서라(출 33:17-23)

 

[출애굽기 히브리어 설교말씀] 모세는 추르 반석 위에 서라(출 33:17-23)

안녕하세요. 오늘은 출애굽기 히브리어 설교말씀 중에서 모세는 추르 반석 위에 서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을 밝히려고 합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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