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26장 히브리어 주일설교 중에서 그 해에 백배의 복을 받았더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브라함 때에 흉년이 들었는데 이삭 때에 흉년이 또 왔습니다. 이삭은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지시하는 땅에 머물라고 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그랄 땅에 머물러 그 해에 백배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그의 대가를 지불해 주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처럼 백배의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 해에 백배의 복을 받았더라”(창 26:1-4)
오늘 말씀을 보면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팔고 난 후에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성경에서 무엇을 말씀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야곱은 하나님의 기업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장막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던 사람입니다. 반면에 에서는 들사람으로 사냥을 좋아하던 사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에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장자 권을 팥죽 한 그릇에 동생인 야곱에게 팔아넘겼습니다. 자신의 배고픔으로 인하여 보이지 않는 육적인 장자 권은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영적 장자 권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장자 권을 받은 자가 하늘의 기업을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영적 장자 권을 가져야 합니다. 천국을 소유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내용이 나온 후에 이삭이 그랄에서 거주하게 되고 이곳에서 100배의 복을 받는 내용이 나오며 하나님께서 그랄에 거주하면 이 땅을 받을 수 있다고 허락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에서와 같은 자들은 인생의 가뭄에 육적인 것을 바라보고 가다가 영적인 하나님의 기업을 받지 못한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인생의 가뭄 속에서도 육적인 것을 버리고 영적인 하늘의 기업을 받아 누리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재 저와 여러분들은 어떠한 신앙을 하고 있습니까? 에서의 신앙입니까? 아니면 야곱의 신앙입니까? 야곱의 신앙이 될 때에 그랄 땅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에서와 같은 자들은 결국 축복을 받지 못하고 하늘의 기업도 받지 못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삭의 아들인 야곱도 함께 복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에서와 같은 자들은 가뭄에 애굽으로 가지만 야곱과 같은 자들은 아버지인 이삭과 함께 그랄에 머물러 있게 됩니다.
1절은 바예히 라아브 바아레츠 미르바드 하라아브 하리숀 아쎄르 하야 비메 아브라함 바옐레크 이츠하크 엘 아비멜렉크 멜렉크 펠리쉐팀 게라라입니다.
창 26:1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점점 남방으로 가뭄을 피하여 내려가다가 애굽까지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바로 왕에게 수치를 당하고 다시 가나안 땅으로 올라오게 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육적인 가뭄을 피하여 세상으로 내려가면 결국 세상에서 수치를 당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비록 그곳에 가뭄이 왔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믿고 기다리고 있으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십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다시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때에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삭의 마음은 갈팡질팡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아버지인 아브라함도 심한 흉년에 애굽으로 내려갔던 전적이 있기 때문에 자신도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애굽으로 내려가고 싶은 생각이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는 이런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요? 물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결정을 해야 합니다.
‘그랄로 가서’라는 단어가 게라르 1642입니다. 그랄, 이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가라르 1641 톱으로 자르다, 치다, 켜다, 새김질, 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삭이 그랄에 머물렀던 장소는 아버지가 70년 전에 이곳에서 머물렀던 장소에 갔던 것입니다. 이곳에서 흉년을 이겨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랄은 영적으로 어떠한 장소입니까? 그랄의 이름에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제물이 톱으로 켜짐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여 제물이 되어 흉년을 이겨내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해 주는 지역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랄은 새김질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3절은 콜 마페레세트 파르사 베쇼사아트 쎄사 페라소트 마알라트 게라 바베헴마 오타흐 토켈루입니다.
레 11:3 모든 짐승 중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은 너희가 먹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을 수 있는 짐승을 구별하실 때에 굽이 갈라지고 쪽발이 되며 새김질하는 것은 너희가 먹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분하기 위해서 음식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을 구분하여 먹을 수 있고 먹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하니 우리도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거짓 복음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서 새김질이라는 단어는 게라 1625 새김질, 이라는 뜻이며 이 단어가 가라르 1641 톱으로 자르다, 치다, 켜다, 새김질, 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러면 정결한 짐승은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동물인데 이런 동물들은 양, 염소, 소입니다. 이것들은 모두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 사용하던 제물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정결하기 때문에 먹으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이런 동물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물입니다. 죄를 지은 죄인이 번제를 드리거나 속죄제나 속건제나 화목제를 드릴 때 제물로 가지고 왔습니다. 신약에서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화목 제물로 죽은 것을 상징합니다.
그랄은 바로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자신이 직접 제물이 되어 주신 장소라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이삭이 들어갔는데 육적인 흉년이 찾아온 것입니다. 이삭은 육적인 고통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때에 고민하고 있던 이삭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그럼 그랄에서 무엇을 하라는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정한 동물이 되새김질하듯이 계속해서 묵상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되새김질할 때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2절은 바예라 엘라이브 아도나이 바요메르 알 테레드 미츠라예마 쉐콘 바아레츠 아쎄르 오마르 엘레이카입니다.
창 26: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너에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서 거주하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 애굽은 먹을 것이 풍부했습니다. 요셉 때만 보아도 나일강이 풍부했기 때문에 농사를 지으면 풍년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할 때 하나님은 나타났습니다.
‘나타나’의 단어가 라아 7200 와우접속사, 동사, 닢알, 수동태,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입니다. 감찰하다, 택하다, 주목하다, 드러내다, 라는 뜻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났는데 이삭이 그랄에서 고민하고 있는 모습을 하나님은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목하여 보시다가 하나님의 때에 이삭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들을 이삭에게 드러내어 보여주시기 위하여 나타나셨습니다. 수동태를 사용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나타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말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부르짖어도 하나님의 때가 아니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이삭처럼 세상의 흉년에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빠질 수 있습니다. 경제의 가뭄에 고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에 내가 원한다고 하나님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에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해 주십니다. 아직도 나에게 응답이 없다면 하나님의 뜻이 나타날 때까지 인내하면서 기다리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경거망동하게 내 생각대로 애굽으로 내려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내려가지 말고’라는 단어가 알 408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이 부정 부사 단어는 지금부터 ~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이 떨어짐과 동시에 지금부터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세상적인 눈으로 현재의 어려움을 바라보고 세상인 애굽으로 내려갈 수가 있습니다. 애굽에 가면 나일 강에서 나오는 많은 수확물을 먹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지 않고 세상의 방법대로 흉년을 이기려고 하다가 낭패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 말씀하신 순간부터 세상인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으니 나도 절대 세상으로 눈을 바라보거나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럼 어디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그랄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 있을 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했습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 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땅에 거주하라’는 단어는 샤칸 7931 동사 칼 능동태 명령법 남성 2인칭 단수입니다. 정착하다, 계시다, 덮이다, 세우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에 거주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칼형은 능동태로서 하나님이 직접 이삭에게 명령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명령법을 사용하고 있으니 반드시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이 땅에 정착하여 거주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가 이삭 위에 머물러 덮을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세운 언약을 이삭인 너에게도 세워주겠다는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땅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땅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땅이 어디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땅입니다. 성도는 주님과 연합되어야 합니다. 하나가 되지 않으면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구원받은 나의 심령 가운데 거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이 영광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주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영광이 바로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신약 히브리어 성경으로 보면 더 확실합니다.
‘거하시매’라는 단어가 샤칸 7931 와우접속사 동사 칼 능동태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입니다. 거주하다, 살다, 쉬다, 라는 뜻입니다. 나의 독생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거주하여 살게 되니 나는 영원한 안식의 쉼을 얻게 되었습니다. 와우접속사 문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항상 존재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미완료이니 완료로 해석해야 합니다. 한 번 내 안에 계신 주님은 나를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장막을 치듯이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거주한 것은 바로 장막을 쳤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땅에 머물러 있을 것을 말씀합니다. 세상으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심령에 장막을 치듯이 모셔드릴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5절은 베아시타 에트 하케라쉼 라미쉐칸 아체 쉬팀 오메딤입니다.
출 26:15 너는 조각 목으로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어 세우되
하나님께서 조각 목으로 성막을 만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막을 지으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죄인들을 만나시기 위함입니다. 죄인들을 만나 죄를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성막을 통해서 하나님은 죄인을 만나 주시고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죄인은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됩니다.
‘성막’이라는 단어가 미쉐칸 4908 성막이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샤칸 7931 거주하다, 살다, 쉬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성막에서 하나님이 만나주시는 것처럼 마음에 장막을 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장막을 친 것입니다. 현재 그랄 땅에 거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이며 심령에 예수 그리스도와 성막을 친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진리와 은혜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그랄 땅을 떠나지 말고 거주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6절은 바예쎄브 이츠하크 비게라르입니다.
창 26:6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랄에 거주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확실히 심령에 믿고 현재 이 땅은 흉년이 들어 먹고살 수 없는 상황이지만 영적인 눈으로 하나님의 큰 기업을 보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영적인 눈이 열려 천국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보다도 천국의 삶을 소망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거주하였더니’라는 단어가 야샤브 3427 와우접속사 동사 칼 능동태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입니다. 머물다, 동거하다, 숨다, 맞이하다, 세우다, 라는 뜻입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즉시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그랄에 머물게 됩니다. 와우접속사 문법은 즉시 이삭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그랄 땅에 거주했다는 의미입니다. 미완료이니 완료로 해석하면 그 땅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거주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럼 이 말씀이 나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이삭처럼 믿음으로 세상에 가뭄이 있다 하더라도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 기다릴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동거하면서 정착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은 예수님과 동거하는 신앙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언약의 말씀을 세우고 하늘의 기업을 바라보면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럼 이삭이 그랄 땅에 거주했다는 것이 나에게는 무슨 의미입니까?
6절은 아크 토브 바헤세드 이르데푸니 콜 예메 하야이 베샤베티 베베이트 아도나이 레오레크 야밈입니다.
시 23: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자신의 평생에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자신을 따르며 자신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집은 천국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산다고 하는데 거주한다는 의미입니다.
‘살리로다’라는 단어가 야샤브 3427 와우접속사 동사 칼 능동태 완료 공성 1인칭 단수입니다. 머물다, 동거하다, 숨다, 맞이하다, 세우다, 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에서 주님과 동거하고 거주하는 삶을 살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와우접속사는 다윗이 여호와의 집에 계속해서 영원히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산다라고 말합니다. 완료를 미완료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나라에서 구원받고 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예수님과 영원히 동거하고 머물면서 이 땅에서도 천국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은 바로 그랄에 고통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고 있을 때에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에 예수 그리스도가 임재해야 합니다. 내가 주님을 영접할 때 주님은 내 안에 장막을 치게 됩니다.
이삭은 그랄 땅에 역사하시고 있는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 고통당하시고 수치를 당하신 주님을 만남으로 그랄 땅에서 100배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이삭의 저주를 주님이 가져가셨다는 것을 예표 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12절은 바이제라 이츠하크 바아레츠 하히 바이메차 바샤나 하히 메아 쉐아림 바예바라케후 아도나이입니다.
창 26: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이삭이 그랄 땅에서 농사하여 한 해에 100배의 축복을 여호와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숫자 100의 의미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그랄에 머물렀더니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한 해에 다른 블레셋 민족들보다 100배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삭’이라는 단어는 이츠하크 3327 이삭이며 이 단어는 차하크 6711 웃다, 뛰 놀다, 재주를 부리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삭이 그랄에 있으면서 하나님께 복을 받으니 이삭의 삶에 기쁨이 떠나지 않고 항상 얼굴에는 웃음만 짓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하나님께 감사하여 기뻐 뛰면서 주님만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재주를 가지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이삭의 이름을 통해서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럼 현재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삭처럼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땅에 거주하고 있습니까? 고난당하신 주님과 함께 동거하고 있습니까? 그러면 이 땅에 흉년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나의 얼굴에 슬픔은 사라지고 웃음만 넘치는 인생으로 바꾸어주시는 것입니다. 기쁨으로 춤을 추면서 주님께만 감사하는 인생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들은 오직 나의 구원자이신 주님만을 높이고 주님만을 섬기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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