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1장에서는 아브라함의 번영과 아비멜렉과의 브엘세바 동맹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비멜렉과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말합니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여호와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고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주님이 나와 동행하고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이 시간 브엘세바의 에셀나무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성경의 식물 속에는 구속사적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브엘세바의 에셀 나무(창 21:22-34)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아비멜렉과 아브라함의 만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 아브라함의 삶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자신의 땅도 없고, 나라도 없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비멜렉은 그 당시 블레셋의 왕이었으며 권세와 능력이 있던 사람입니다. 아비멜렉은 ‘아버지는 왕이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블레셋의 왕을 명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비멜렉이 이름이 아니라 블레셋의 왕을 나타내는 권세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과 개인인 아브라함이 만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의 왕이 아브라함에게 말하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일입니다. 블레셋의 왕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야 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나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계신 임마누엘 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고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보여주었던 행동들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들도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살아서 세상으로부터 지탄받지 않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나타내 주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생활을 우리가 보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아브라함이 했던 행동들을 보면서 깊은 영적인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행동을 통하여 우리들도 이와 같은 믿음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향해했던 행동들은 무엇일까요?
첫째, 아비멜렉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합니다.
23절 비아타 히샤비아 리 벨로힘 헨나 임 티쉬코르 리 우리니니 우리네키디 카헤세드 아셰르 아시티 임미카 타아세 임마디 비임 하아레츠 아셰르 가리타 바흐
24절 바요메르 아브라함 아노키 이샤베아
창21:23-24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맹세하리라 하고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아들과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않기를 하나님께 맹세하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러면 자신이 통치하는 땅에서 같이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거짓되이 행동하지 않겠다고 아비멜렉에게 맹세하고 있습니다.
‘내게 맹세하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샤바 7650 VNMMYS.Ch 동사 니팔(수동태) 명령법 남성 2인칭 단수. 연장형) 맹약하다, 맹세하다, 서원하다, 라는 뜻입니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향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너는 우리 가족과 자손들에게 거짓되게 행동하지 말며 말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맹세를 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네가 섬기는 하나님께 서원하라는 것입니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깨달았기 때문에 맹세를 시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가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를 취하였을 때에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 사라를 돌려주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3절 바야보 엘로힘 엘 아비멜렉크 바할롬 하라옐라 바요메르 로 힌네카 메트 알 하이샤 아셰르 라카히타 비히 비일라트 바알
창20:3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아비멜렉은 아브라함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여 맹세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기가 직접 아브라함에게 권고하면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때 아브라함도 아비멜렉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를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세상의 왕에게도 이제부터 거짓된 행동을 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삶을 살겠다고 맹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섬기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상 사람들 앞에서 아브라함처럼 주님의 뜻을 위해 사는 자가 되기를 맹세해야 합니다. 나의 삶에 거짓된 행동을 하지 않으며 거짓된 증거를 하지도 않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내가 이제부터 주님의 뜻을 따라 살면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거짓된 일 때문에 지탄받지 않는 삶을 살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 아비멜렉의 종들이 잘못한 것을 왕에게 책망합니다.
25절 비호키아흐 아브라함 에트 아비멜렉크 알 오도트 비에르 하마임 아셰르 가질루 아비데 아비멜렉크
창21:25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종들이 자신의 우물을 빼앗은 것에 대하여 아비멜렉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비멜렉의 종들이 잘못한 것이지만 책임은 지도자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개인으로서 블레셋의 왕에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이 당시의 우물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광야에서 우물은 생명과 같습니다. 그런데 부당하게 자신의 우물을 빼앗았기 때문에 왕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책망하매’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야카흐 3198 VHAMZS 동사 히필(사역능동) 완료 남성 3인칭 단수) 변론하다, 꾸짖다, 증언하다, 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관하여 변론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종들이 잘못한 것이니 당신도 잘못이 있다는 것을 꾸짖고 있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제대로 교육을 시키지 못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우물이 빼앗긴 것에 대하여 아비멜렉 앞에서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잘못하면 블레셋 땅에서 쫓겨날 수도 있고 왕의 명령으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자신의 마음에 아비멜렉의 종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고 아비멜렉이 깨달을 수 있도록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2절 힌네 엘 이슈아티 에비타 비로 에피하드 키 아지 비지미라트 야흐 아도나이 바이히 리 리슈아
3절 우쉬아비템 마임 비사숀 미마아이네 하이슈아
사12:2-3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며 힘이시며 노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기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이 우물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은 바로 구원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었던 우물을 빼앗겼던 것은 세상의 사람들에게 십자가 복음을 빼앗긴 것을 의미합니다. 이 우물은 영원히 솟아나는 샘과 같은 것이며 우물곁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주님을 만나 영원한 십자가 복음으로 생명을 얻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종들이 우물을 빼앗아 갔다는 것은 십자가 복음을 통하여 고통당하며 고난당한 것을 의미하는 반면에 아비멜렉에게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이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우물을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복음을 지켜야 합니다. 또한 세상의 사람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우물에서 솟아나는 십자가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광야에서 우물이 없으면 죽는 것입니다. 이 시대도 생수가 없어서 영혼이 갈증 하는 심령들이 많이 있습니다.
38절 호 피스튜온 에이스 에메 카도스 에이펜 헤 그라페 포타모이 에크 테스 콜일리아스 아우투 류수신 휘다토스 존토스
요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런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선포하여 메마른 광야에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게 해야 합니다. 메마른 영혼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수가 선포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현재 이것을 아비멜렉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수를 선포하여 책망하고 징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으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26절 바요메르 아비멜렉크 로 야다이티 미 아사 에트 하다바르 하제 비감 아타 로 히가디타 리 비감 아노키 로 샤마이티 빌티 하욤
창21:26 아비멜렉이 이르되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에야 들었노라
아비멜렉은 전에 종들이 우물을 빼앗은 것에 대하여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에게 너도 나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듣지 못하였다고 말하면서 오늘에야 들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복음에 대하여 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누군가가 전하지 않으면 절대 복음은 들을 수가 없습니다.
13절 파스 가르 호스 안 에피칼레세타이 토 오노마 퀴리우 소데세타이
14절 파스 운 에피칼레손타이 에이스 혼 우크 에피스튜산 포스 데 피스튜수신 후 우크 에쿠산 포스 데 아쿠수신 코리스 케륏손토스
15절 포스 데 케뤽수신 에안 메 아포스탈로신 카도스 게그랍타이 호스 호라이오이 호이 포데스 톤 유양겔리조메논 에이레넨 톤 유양겔리조메논 타 아가다
롬10:13-15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믿지 못하는 이를 어떻게 부르며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겠으며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떻게 들을 수 있느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떻게 전파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주님으로부터 아비멜렉에게 보냄을 받은 자로서 생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금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절대 듣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아비멜렉은 우물을 빼앗은 사건에 대하여 알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습니다. 오늘에서야 우물의 사건에 대하여 듣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입술을 통하여 우물의 생수에 대하여 아비멜렉이 듣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블레셋의 왕인 아비멜렉에게 전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세상의 왕들과 같은 권력자들과 권세 자들에게 전해야 할 것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셋째, 아브라함은 아비멜렉과 함께 양과 소의 제물을 가지고 언약을 하게 됩니다.
27절 바이카흐 아브라함 촌 우바카르 바이텐 라아비멜렉크 바이키리투 쉬네헴 베리트
창21:27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가져다가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아브라함은 블레셋 왕인 아비멜렉과 양과 소를 가지고 언약을 세우게 됩니다. 여기에서 양과 소는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동물입니다.
‘세우니라’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카라트 3772 CW.VQIMZP 와우접속사 동사 칼(능동태) 미완료 남성 3인칭 복수) 세우다, 파괴하다, 찍다, 계약하다, 멸망하다, 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에게 우물의 사건을 말한 뒤에 양과 소를 가지고 아비멜렉과 언약을 세우고 있습니다. 우물의 생수가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양과 소를 죽여서 언약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제물을 죽이고 철저하게 파괴시켜 찍어버려야 만이 언약이 세워지고 더 이상 멸망당하지 않는 계약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아비멜렉에게 아브라함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이 제물이 되어 양과 소처럼 죽이심을 당함으로 당신의 죄가 없어지고 멸망당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즉시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언약을 세운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을 개인적인 구원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아비멜렉도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30절 바요메르 키 에트 쉐바 키바사트 티카흐 미야디 바아부르 티히예 리 리에다 키 하파리티 에트 하비에르 하조트
창21:30 아브라함이 이르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아브라함은 양과 소의 제물에서 암양 새끼 일곱 마리를 아비멜렉에게 주는 것입니다. 이 암양 새끼로 자신이 우물을 판 증거를 삼으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우물을 판 것은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일곱’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셰바 7651) 칠, 일곱,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샤바 7650) 맹약하다, 맹세시키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어린양 일곱 마리를 주는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일곱은 완전한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어린양을 줌으로 인해 우물에서 나오는 영원한 생수를 증명해 주는 것이며 이 증거로 어린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께 맹세시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어린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절대 살 수가 없습니다. 이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으며 우물을 판 증거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명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오전 9시에 달리시고 오후 3시에 운명하시기까지 선택받은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완전을 의미하는 가상칠언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말씀하신 일곱 마디의 말씀이 죄악 된 인간들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신 곳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가상칠언은 이와 같습니다.
첫째말-"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이것은 용서의 기도였습니다.
둘째말-"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이것은 낙원의 약속이었습니다.
셋째말-"어머니 보십시오, 당신의 아들입니다." "보라, 네 어머니다"(요19:26-27). 이것은 아들로서의 효도였습니다.
넷째말-"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마27:46). 이것은 영적인 고민이었습니다.
다섯째말-"목 마르다"(요19:28). 이것은 육신적인 고통이었습니다.
여섯째말-"다 이루었다"(요19:30). 이것은 승리의 선언이었습니다.
일곱째말-"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눅23:46), 이것은 최후의 신앙고백 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주고 있는 우물을 판 증거의 몫으로 어린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주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에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33절 바이타 에셀 비비에르 샤바 바이크라 샴 비솀 아도나이 엘 올람
창21: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아브라함은 아비멜렉과 서로 맹세를 하고 그곳 이름을 브엘세바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브엘세바는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이곳에 아브라함은 에셀 나무를 심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은 깊은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에셀나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에쎌 815 NMS 명사 남성 단수) 에셀나무, 라는 뜻입니다. 이 나무는 광야에서 많은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나무입니다. 뿌리가 땅속으로 30m나 파고 들어가기 때문에 더위가 심한 광야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잎이 짜기 때문에 이 짠 성분이 공기 중에 있는 수분을 흡수하여 새벽에는 많은 이슬을 맺게 됩니다. 그래서 낮에는 이슬 때문에 한낮에도 다른 곳보다 10도 정도 온도가 내려가 서늘하게 만들어 주는 나무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나무를 심고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이 나무는 바로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는 나무입니다. ‘에쎌’의 히브리적 의미는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희생하셔서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고 삶을 통제한다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은 에셀 나무 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복음을 전파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바로 이곳은 맹세의 우물이 있는 곳이며 영원한 생수가 터져 나오는 곳에 에셀 나무를 심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영원한 생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믿음 생활을 해야 합니까? 아브라함이 아비멜렉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십자가 복음을 담대히 전한 것처럼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세상의 권세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브엘세바에서 에셀 나무를 심은 것처럼 우리의 심령에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가는 삶을 살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아브라함이 했던 행동들을 따라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창세기 히브리어 성경 설교말씀] 술 관원장이 받은 복음(창 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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