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히브리어강해 설교

[창세기 히브리어 설교] 모리아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사건(창 22:13)

르호봇 2021. 6. 1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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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히브리어 설교 중에서 모리아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사건이라는 성경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해서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바칠 것을 명령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 가서 이삭을 바치려고 합니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할 때 하나님은 손을 대지 말라고 했습니다. 대신 숫양을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숫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이삭 대신 숫양이 죽고 이삭이 살아나게 됩니다. 이것은 구속사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죽고 내가 살아난 것을 의미합니다. 이 시간 모리아 산은 골고다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던 골고다를 발견할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열려야 하겠습니다.

모리아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사건(창 22:1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기 전에 약속을 주셨습니다. 큰 민족을 이루어주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약속의 말씀을 따라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자신에게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아브라함의 마음에는 조급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대 근동의 법에 의하여 엘리에셀을 자신의 양자로 삼아 자신의 후손을 보기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엘리에셀이 너의 후사가 아니라고 말씀하시고 너에게 씨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이 있은 후에 아브라함은 하갈과 동침하여 이스마엘을 낳게 됩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86세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아이가 하나님의 씨인 줄 알고 애지중지하면서 키웠습니다. 엘리에셀을 양자로 삼아 자신의 후사로 하려고 했던 상황인데 자신의 씨에서 나왔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이렇게 이스마엘에게 아브라함은 전심을 다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라를 통하여 약속의 씨를 주시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 대하여 마음이 섭섭하셨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약속의 씨를 주실 것인데 자신의 생각대로 하갈과 동침하여 이스마엘을 낳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13년 동안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때가 바로 아브라함에게는 영적 암흑기입니다. 육적으로 이스마엘에게 빠져있을 때에 영적으로는 침체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영적으로 얼마나 답답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혹시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과 판단이 옳다고 해서 육적인 이스마엘을 낳아 정신이 팔려있지는 않습니까? 온 정신을 세상의 사업과 명예와 재력에 쏟아붓고 있는 동안에 영적으로는 쇠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응답도 없고 예배를 드려도 마음에 평안함이 없으며 영적으로 답답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때가 바로 영적 암흑기입니다. 세상 적으로 잘 풀린다고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나의 신앙생활에 이스마엘이 아닌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때가 되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99세에 나타나시고 100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삭을 낳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구속의 대를 이을 약속의 씨를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입니다. 75세에 가나안 땅에 들어오기 전에 약속하셨던 그 약속을 25년 만에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주시는 분입니다. 인간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자신의 생각대로 풀어서 이스마엘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주시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때가 이루어질 때까지 말씀을 붙잡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는 항상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삭을 낳아서 좋기는 한데 문제는 이삭을 볼 때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이스마엘을 낳은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죄책감이 있습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다가도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에 죄책감이 들어오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계속해서 이런 죄책감에 쌓여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하나님은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죄책감을 모두 씻어주시기 위하여 시험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이스마엘을 낳았던 이런 죄책감을 완전히 하나님께서 씻어주시기 위하여 시험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들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여 내 마음대로 하다가 생긴 일 때문에 마음에 죄책감이 들었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모두 씻겨주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마음에 죄책감이 있는 일들이 있다면 오늘 말씀이 나를 시험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시험하시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씨인 이삭을 모리아의 한 산에 데리고 가서 죽여서 번제로 드리라는 시험 문제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가장 힘들고 어려운 문제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씨를 주시고 잡아 죽이라고 하시니 이런 하나님이 어디에 있냐고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시험은 놀랐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을 함께 시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시험은 죄책감에 쌓여있는 신앙에서 회복시키는 시험이고 이삭은 죽어야 할 죄인인데 이 죄인을 살리려는 시험입니다.

 

그럼 한 단계 더 깊이 있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원죄에서 해방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할례 언약을 맺어 영원한 원죄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이 할례 언약은 영원한 구원의 표징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평생 몸에 지녀야 하는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이렇게 원죄의 해방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표를 통하여 평생 마음에 새겨진 구원의 확신의 언약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이것을 약속받고 믿어서 원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약속의 씨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믿지 못하고 이스마엘을 낳은 것에 대한 자 범죄의 죄책감이 계속해서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삭을 바치게 함으로 인하여 아브라함의 자 범죄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의 씨로 태어나서 8일 만에 할례를 받았지만 아직 하나님을 만난 체험은 없습니다. 이삭도 하나님을 만나 죄 사함을 받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이삭은 아직 원죄 가운데 있는 죄인이라는 것을 의미해 주는 것입니다. 이삭도 아브라함처럼 1:1로 하나님을 만나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 범죄를 해결해 주시는 것이고 이삭의 원죄를 해결해 주시려고 시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시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 나오신 저와 여러분들은 아브라함과 이삭처럼 원죄와 자 범죄가 있는 죄인입니다. 이런 죄인에게 하나님은 시험을 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을 바치라는 시험이고 이삭은 자신이 번제 단에 올라가야 할 시험입니다. 이것처럼 우리가 자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던 이삭과 같은 것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마음에 죄책감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마음을 주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삭은 자신이 번제물이 되어 죽어야 합니다. 이런 신앙과 믿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와서 원죄의 시험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을 시험하신 장소가 어디입니까? 바로 모리아 산입니다.

2절 바요메르 카흐 나 에트 빈카 에트 예히드카 아쎄르 아하브타 에트 이츠하크 베레크 레카 엘 에레츠 하모리야 베하알레후 솸 레올라 알 아하드 헤하림 아쎄르 오마르 엘레이카

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네 아들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한 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모리아’라는 단어는 (모리야 4179) 모리아, 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ראה(라아 7200) 보다, 감찰하다, 택하다, 준비되다, 라는 뜻과 יה(야흐 3050) 여호와,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그렇다면 모리아 산은 하나님께서 쳐다보시고 아브라함과 이삭의 시험을 감찰하시면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준비하신 산입니다. 이곳에 아브라함과 이삭을 시험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선택하신 산입니다. 그럼 모리아의 산은 어떤 산입니까?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진 산입니다.

1절 바야헬 쉘로모 리브노트 에트 베이트 아도나이 비루솰람 베하르 하모리야 아쎄르 니르아 레다비드 아비후 아쎄르 헤킨 비메콤 다비드 베고렌 오르난 하예부시

대하 3: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현재 아브라함과 이삭의 시험을 하는 산은 장차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이곳에 죄인들이 만날 수 있도록 하시는 성전을 짓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성전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모형이 바로 성전입니다. 이곳에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주시하시고 보시면서 죄인들을 위해 선택하신 예수님을 준비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도 하나님의 시험을 받아서 이 시간 모리아와 같은 장소에 올라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장소가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이 시험을 받았던 영적 장소인 교회입니다. 이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기초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럼 아브라함과 이삭이 어떻게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여 죄 씻음을 받았는지를 깨달아 보겠습니다.

9절 바야보우 엘 하마콤 아쎄르 아마르 로 하엘로힘 바이벤 솸 아브라함 에트 하미즈베아흐 바야아로크 에트 하에침 바야아코드 에트 이츠하크 베노 바야셈 오토 알 하미즈베아흐 미마알 라에침

22: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모리아의 산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그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았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에게는 자 범죄를 씻겨내는 믿음이고 이삭은 원죄를 씻을 수 있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제단을’이라는 단어는 (미즈베아흐 4196 D.NMS 관사, 명사, 남성, 단수) 번제단, 제단, 이라는 뜻이며 זבח(자바흐 2076) 살육하다, 잡아드리다, 희생을 드리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살육하여 희생을 드릴 제단을 만들고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이스마엘을 낳은 것에 대하여 죄책감 속에 살았지만 이제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순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회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삭을 바치라고 했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자 범죄를 회개하는 반복적인 회개가 아브라함에게 일어났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반면에 이삭은 자신이 직접 제물이 되어 죽어야 합니다. 원죄에 있던 자들은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직접 이삭처럼 결박을 당하여 제단에 올라가 죽어야 합니다. 살육당하고 도륙당하여 죽어야 할 인생들입니다. 이삭은 아직 원죄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며 이와 같은 죄인은 하나님 앞에서 제단에 올라가 직접 죽어야 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아브라함처럼 원죄에서 해방되어 구원의 은혜는 받았지만 아직도 세상에서 내 마음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자 범죄의 삶을 살아가는 죄인은 아닙니까? 구원의 확신은 있다고 하지만 마음에는 항상 아브라함처럼 죄책감에 쌓여 우울증에 시달리고 괴로워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시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하듯이 나를 시험하여 완전히 자 범죄의 죄책감을 마음에서 씻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럼 죄책감이 들어올 때가 언제입니까? 내가 기도를 많이 못했고, 성경도 많이 읽지 못했고, 예배에 많이 출석하지 못했고, 헌금도 많이 내지 못했고, 세상에서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죄를 지은 것에 대하여 죄책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것을 주님께서 담당하시고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죄책감이 사라졌다고 해서 똑같은 죄를 계속 짓고 살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죄책감의 마음을 해방시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삭과 같은 사람은 교회에 들어왔지만 아직도 구원의 확신이 없이 주님을 만난 체험이 없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예배 생활은 하고 있지만 구원을 받았는지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이 시간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이삭처럼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생각을 내려놓고 내 행위를 내려놓고 결박되어 제단에 묶여서 죽기를 기다리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원죄를 해결 받는 것입니다. 제단에 묶인 이삭은 자신이 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원죄에 죽은 죄인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 범죄와 이삭의 원죄를 해결하시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숫양을 준비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리아의 산에다 숫양을 준비하시고 아브라함과 이삭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13절 바이사 아브라함 에트 에나이브 바야르 베힌네 아일 아하르 네에하즈 바세바크 베카르나이브 바옐레크 아브라함 바이카흐 에트 하아일 바야알레후 레올라 타하트 베노

22: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은 눈을 들어 주위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숫양이 뒤에 있는 것입니다. 이 숫양이 계속해서 뿔이 수풀에 걸려 있었는데도 아브라함과 이삭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시험이 끝나고 나니 이 숫양이 보인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 숫양은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 보여주셔야 만이 볼 수 있는 양이기 때문입니다. 이 숫양을 이삭 대신 번제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 숫양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때에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숫양은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걸려있는지라’라는 단어는 (아하즈 270 VNPPMS 동사, 닢알, 분사수동, 남성, 단수) 잡히다, 붙잡다, 연합하다, 기업을 얻다, 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숫양을 보았을 때에 이 숫양은 수풀에 뿔이 걸려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 숫양이 수풀에 뿔이 걸려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을까요? 양은 털이 많은 짐승입니다. 그리고 양의 뿔은 구부러져있습니다. 이것이 수풀에 걸려있습니다. 이 수풀은 가시가 서로 엮어져 있는 가시 잡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숫양의 뿔이 가시 잡목에 걸려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자 가시들이 양의 털에 엉켜버린 것입니다. 양은 나오려고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고통이 가해지고 더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숫양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대신하여 준비하신 양입니다. 자신 스스로 나오려고 해도 절대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닢알 분사수동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가시면류관을 쓰시기로 작정된 분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하나님께서 준비하셨습니다. 이삭과 같이 원죄에 빠져 십자가에 달릴 인생들을 위하여 대신하셔서 십자가의 제단에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원죄에 빠졌던 나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처럼 자 범죄에 빠져 죄책감에 사는 자들의 죄를 모두 십자가의 예수님께서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모리아의 한 산에서 이삭이 바쳐졌던 그 똑같은 장소인 골고다입니다.

 

골고다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나의 모든 원죄와 자 범죄를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숫양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이 숫양은 가시 잡목에 걸려 옴짝달싹하지 못하면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가시에 찔리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가 아브라함의 눈에 띄어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밤새 채찍에 맞음으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모리아의 산에 걸려있는 숫양은 아브라함의 자 범죄와 이삭의 원죄를 해결해주시기 위한 방편으로 준비하신 제물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모리아에 세워진 십자가의 예수님은 내가 죽어야 할 원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나의 자 범죄까지 해결해 주신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직접 준비하셔서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제 구원받았으니 아브라함처럼 자 범죄를 씻기 위하여 모리아 산에 올라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매일같이 예배에 나와 하나님께 자 범죄를 씻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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