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히브리어강해 설교

[창세기 히브리어 설교문] 이삭이 젖 뗀 날에 숨겨진 구속사 비밀(창 21:8-9)

르호봇 2021. 8. 1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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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히브리어 설교문 중에서 이삭이 젖 뗀 날에 숨겨진 구속사 비밀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삭이 젖을 뗀 날에 아브라함은 일가친척을 모아 놓고 잔치를 벌이게 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위해서 잔치를 베푼 사건을 통해서 구속사 비밀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삭이 젖을 뗀 것은 복음에 눈이 열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율법적인 생활에서 복음적인 생활을 바뀐 것을 상징합니다. 성도는 복음에 눈이 열린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복음에 눈이 열려 구원받았습니다. 율법적인 신앙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도 이삭이 젖을 뗀 것처럼 어린아이 신앙을 버리고 성숙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삭이 젖 뗀 날에 숨겨진 구속사 비밀(창 21:8-9)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우르에 있는 아브람을 불러서 하란으로 인도하시고 하란에서 다시 불러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아브람의 후손을 통하여 구속사의 맥을 이어가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왔지만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래는 자신의 여종인 하갈을 아브람에게 주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씨가 탄생된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13년 동안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스마엘을 86세에 낳았고 다시 아브람에게 나타나신 때가 99세입니다. 그러면서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시고 아내인 사래도 사라로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름이 바뀐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하나님은 이삭이라는 약속의 씨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시고 이삭을 주셨습니다. 사라는 가나안 땅에 들어와 25년 만에 아이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나이 75세에 부르셔서 약속의 자손인 이삭을 주신 것입니다. 그 사이에 사라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하나님께 저주받은 여인으로 인식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고대 근동에서는 아이를 낳지 못하면 신에게 저주받은 여인이라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말도 아이를 갖기 위하여 유다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스마엘은 인간의 욕심으로 탄생된 사람이라면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주어진 아들입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은 율법을 상징하는 인물이고 이삭은 복음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이스마엘ישמעאל(이스마엘 3458) 이스마엘, 이라는 뜻이며 שמע(샤마 8085) 듣다, 라는 뜻과 אל(410) 하나님, 이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마엘은 하갈의 자녀로서 천국을 기업으로 받지 못하는 자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의로 하나님께 나가려는 자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의 이름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의로 나가도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나의 의를 받아주시고 들어주신다,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22절 게그랍타이 가르 호티 아브라암 뒤오 휘우스 에스켄 헤나 에크 테스 파이디스케스 카이 헤나 에크 테스 엘류데라스

23절 알르 호 멘 에크 테스 파이디스케스 카타 사르카 게겐네타이 호 데 에크 테스 엘류데라스 디아 테스 에팡겔리아스

4:22-23 기록된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는데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하는 여자에게서 났다는 것입니다. 여종인 하갈의 자녀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인 사라의 자녀인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탄생이 된 것입니다. 이스마엘의 신앙은 무조건 자신의 의로 하나님 앞에 나가도 하나님이 들어주셔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신앙입니다. 이것이 율법주의 신앙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삭’이라는 단어는 יצהק(이츠하크 3327) 이삭, 이라는 뜻이며 צחק(차하크 6711) 웃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이라는 이름은 그가 웃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지금까지 웃을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육적으로는 이스마엘을 낳아서 열정적으로 자신의 아들이라고 신경을 쓸 때에 영적으로는 13년 동안 하나님과 단절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갈의 아들을 보면서 자신의 씨에서 나왔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겠다고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약속하시고 주신 아들이 이삭입니다. 이삭을 통해서 이제부터는 웃을 일이 많아진 것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나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로 구원을 받은 복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마엘과 같은 율법 안에 있을 때에는 웃을 일들이 없지만 이삭과 같은 복음 안에 있을 때에는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웃을 일들이 많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갈의 자녀인 이스마엘의 신앙이 아니라 사라의 자녀인 이삭의 신앙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약속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내 힘으로 애써서 이스마엘과 같이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약속의 때가 되어 주시는 이삭과 같은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은 현재 누구의 자손인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여 탄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삭이 점점 자라나게 됩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성장해야 합니다. 만약에 성장하지 않으면 부모의 근심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내가 구원을 받았다면 성화의 삶을 살아가면서 믿음과 신앙이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만약에 인격적으로 영적으로 믿음으로 성장하지 않고 옛날의 율법적인 모습에 머물러 있다면 하나님 아버지의 근심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가 되지 않으려면 열심히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이삭은 열심히 자라서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있습니다.

8절 바이게달 하옐레드 바이가말 바야아스 아브라함 미쉐테 가돌 베욤 히가멜 에트 이츠하크

21:8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

 

이삭이 점점 자라나서 젖을 떼고 있습니다. 이삭이 젖을 데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고대 근동의 히브리인들은 아이가 젖을 떼면 종교의식과 더불어 이웃을 초청하여 기쁨으로 큰 잔치를 배설하여 즐거워했습니다. 이렇게 아이가 젖을 떼는 것이 부모에게는 기쁨이고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즐거움이었던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이삭이 젖을 떼는 사건을 통해서 영적 비밀들을 파헤쳐 보아야 합니다.

 

젖을 떼고’라는 단어는 (가말 1580 CW.VNIMZS 와우접속사. 동사, 닢알(수동태),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젖을 떼다, 은덕을 베풀다, 열리다, 상주다, 라는 뜻입니다. 이삭이 자라면서 젖을 떼고 있습니다. 이 젖을 떼게 됨으로 이삭은 이제부터 밥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할 때에 이삭이 때가 되매 스스로 젖을 뗀 것처럼 보여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보통 아이들이 자라면서 계속해서 엄마의 젖을 먹으려고 합니다. 자신들 스스로 젖을 떼는 아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엄마가 아이의 젖을 떼기 위하여 별별 수단을 동원하여 아이의 젖을 떼는 것입니다. 이삭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 스스로 젖을 뗀 것이 아니라 부모에 의하여 젖이 떼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닢알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젖을 떼기 싫어서 계속해서 젖을 먹으면 한 가지밖에 먹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젖을 떼게 되면 앞으로는 더 맛있는 음식들을 먹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상급입니다. 사람들은 현재의 것을 붙잡고 계속해서 가기를 원합니다. 이것을 놓으면 죽는 줄 알고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젖을 떼라고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젖을 떼면 그때부터 신세계가 열리게 되어 많은 것들을 체험하게 되고 더 맛있는 음식들을 경험하면서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의 신앙에서 벗어나 영적인 복음의 신앙으로 들어오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젖을 떼는 것은 스스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만이 가능합니다. 그럼 이제 우리가 젖 먹는 신앙이 무엇인지를 더 깊이 있게 말씀을 듣겠습니다.

12절 카이 가르 오페일론테스 에이나이 디다스칼로이 디아 톤 크로논 팔린 크레이안 에케테 투 디다스케인 휘마스 티나 타 스토이케이아 테스 아르케스 톤 로기온 투 데우 카이 게고나테 크레이안 에콘테스 갈라크토스 카이 우 스테레아스 트로페스

5:12 때가 오래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젖을 먹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있는 자들입니다. 아직도 율법에 빠져 사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단단한 음식은 먹지 못하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런 자들은 아직도 치아가 나오지 않은 자들입니다. 치아가 없기 때문에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치아가 있어야 음식을 씹을 수가 있는데 치아가 없기 때문에 부드러운 젖만 찾고 먹게 됩니다. 이런 자에게 단단한 음식을 주니 화를 내고 울고 보채는 것입니다.

13절 파스 가르 호 메테콘 갈라크토스 아페이로스 로구 디카이오쉬네스 네피오스 가르 에스틴

5: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젖을 먹는 자들은 어린아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자들은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들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하고 먹어보지 못한 자들이 젖을 먹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젖을 먹는 신앙을 계속해서 유지하려고 하면 하나님께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이삭의 젖을 끊어버리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율법의 신앙을 끊어주시는 것입니다. 이 율법의 신앙이 끊어져야 만이 더 많은 것들을 체험하고 먹고 즐기면서 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율법의 젖을 떼면 죽는 줄 알고 이것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쉽지만 내가 성장했다면 이 젖을 빨리 떼어야 합니다. 젖을 빨리 떼면 뗄수록 나에게 더 유익이 됩니다.

14절 텔레이온 데 에스틴 헤 스테레아 트로페 톤 디아 텐 헥신 타 아이스데테리아 게귐나스메나 에콘톤 프로스 디아크리신 칼루 테 카이 카쿠

5: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가 먹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은 지각을 사용하게 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담이 아직 성장하지 못하고 젖을 먹는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성장하기도 전에 선악과를 따먹게 됨으로 죄를 짓고 죽게 된 것입니다. 단단한 음식도 먹을 수 없는 자들이 단단한 음식을 먹고 체하여 죽은 것입니다. 이것이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사탄들은 지금도 젖을 먹는 자들에게 갑자기 단단한 음식을 먹게 하여 체하여 죽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매 자연스럽게 젖을 떼게 하시고 단단한 음식을 먹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연단입니다. 아이들도 젖을 떼었다고 바로 밥을 주지는 않습니다. 엄마가 미음을 먹이고 죽을 먹이면서 소화를 할 수 있는 연단 기간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연단을 받으면 단단한 음식인 밥도 주고 매운 것도 주고 짠 것도 주어서 먹을 수가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된 상태가 장성한 어른이 된 상태입니다. 그렇게 되면 선악을 분별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담은 장성한 자의 분량까지 가지 못하고 젖을 먹는 수준인데 갑자기 짜고 매운 음식을 먹게 됨으로 죽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전략입니다. 소화능력도 없는 아이에게 분별하지도 못하는데 매운 음식을 주었더니 아이는 이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입으로 집어넣어 먹어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분별할 능력이 되지 않아 죽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원죄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경험하고 알고 있는 자이기 때문에 분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과 같은 존재들이 우리에게 음식을 갖다 주어도 이것이 내가 먹어도 되는 것인지 먹지 말아야 할 것인지를 인지하고 먹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별의 능력을 얻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장성한 자의 신앙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젖을 떼니 많은 사람들을 불러서 큰 잔치를 베풀고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젖을 떼는 것이 이렇게 부모에게는 큰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것을 보면서 무엇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까?

7절 레고 휘민 호티 후토스 카라 에스타이 엔 토 우라노 에피 헤니 하마르톨로 메타노운티 에 에피 엔네네콘타엔네아 디카이오이스 호이티네스 우 크레이안 에쿠신 메타노이아스

눅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리면서 말합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을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시고 양 백 마리의 비유를 하시는 것입니다. 양 백 마리 중에 한 마리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한 마리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신나서 어깨에 찾은 양을 메고 돌아와서 이웃을 불러서 잔치를 베풀고 함께 먹고 즐기자는 것입니다. 자신의 잃어버린 양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도 잃어버린 죄인 한 명이 회개하고 젖을 떼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율법의 젖을 떼고 복음의 의를 경험하는 것이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기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들은 십자가 복음을 선포하여 많은 사람들이 율법의 젖을 떼고 주님의 십자가의 의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복음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절대 율법의 젖은 떼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를 놓으면 죽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것을 버리고 포기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때부터 역사하셔서 더 많은 의의 음식들을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많은 음식이 있는 뷔페에 가면 기분이 좋아지지 않습니까? 많은 음식들의 맛을 경험하고 배부름의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 것을 계속해서 버리지 못하고 붙잡으려고 하면 이런 축복들이 많이 있어도 내 것으로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버리게 하실 때에 빨리 순종하여 버리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젖을 먹겠다고 우겨대면 그때는 부모의 징계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젖을 떼라고 할 때에 빨리 순종하여 떼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즐거워하시면서 순종의 복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율법의 젖을 고집하면 평생 젖만 먹다가 끝나게 됩니다. 너무나 맛이 있는 음식들은 경험하지도 못하고 끝나는 것입니다. 천국의 엄청난 의의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런 음식들을 경험하면서 누리라고 율법의 젖을 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고집 피우지 마시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음식들을 먹고 음미하고 체험하시면서 즐겁게 누리시는 신앙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9절 바테레 사라 에트 벤 하가르 하미츠리트 아쎄르 얄르다 레아브라함 메차헤크

21:9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의 씨로 말미암아 탄생이 되었고 이스마엘은 육체로 인하여 나왔습니다. 이스마엘의 나이가 17세가량입니다. 이때에 약속의 씨인 이삭을 놀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장난기 있는 놀림이 아니라 율법을 예표하고 있는 이스마엘이 복음을 예표하고 있는 이삭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율법주의자들은 복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핍박함으로 정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의를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받을 상속권을 적자인 이삭이 빼앗아 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삭을 놀리는지라’라는 단어는 (차하크 6711 VPPAMS 동사, 피엘(강조능동), 분사능동, 남성, 단수) 희롱하다, 농담하다, 비웃다, 라는 뜻입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는 것은 육적으로는 이스마엘이 형이고 나이도 더 많습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을 가지고 이삭을 희롱하고 놀리면서 농담을 하는 것입니다. צחק(차하크)라는 단어는 이삭의 이름에 나타나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마엘은 이삭에게 너의 이름이 웃는다는 이름이지 정말 웃기는 이름이다. 어떻게 이름이 웃는 이라는 이름이냐! 그럼 너도 한 번 웃어봐라 내 앞에서 웃어봐 웃지도 못하는 것이 무슨 이삭이라고 말하느냐! 이렇게 비웃어댔던 것입니다. 이삭의 기를 완전히 꺾어 놓았고 이스마엘 앞에서 설설 기도록 괴롭혔던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피엘 강조능동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현재 이스마엘과 같은 율법주의자들도 나이가 많은 것으로, 재력이 있는 것으로, 신앙의 연륜이 더 많은 것으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여 이삭과 같이 하늘의 기업을 맛보고 십자가의 의를 경험한 이삭과 같은 자들을 비웃고 희롱하고 농담하면서 괴롭히는 것입니다. 네가 구원받고 천국의 기업을 받았다고 하면서 이 땅에서는 돈도 없고, 능력도 없고, 자식도 잘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지위가 높은 것도 아니면서 무슨 구원만 받았다고 말하느냐는 것입니다. 나는 세상에서 지위도 높고, 능력도 있고, 재력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자라고 자기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받지 못한 자들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의 기업을 상속받지 못함으로 마지막 날에 지옥의 불 못으로 던져짐을 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고 놀리는 것을 사라가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을 쫓아버리라고 말합니다. 약속의 씨인 이삭과 함께 기업을 나누어 받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고민을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을 쫓아버릴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그럼 우리가 젖을 뗀 날이 언제입니까? 바로 오늘입니다. 모든 사고체계가 율법적인 생각의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모든 일들을 해도 내 중심의 사고였다면 이 말씀을 통해서 주님이 중심이 되는 사고체계로 바뀌는 것이 바로 젖을 뗀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나가서 의롭게 된다고 생각했던 사고체계가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바뀌는 것이 바로 젖을 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젖을 떼게 만들어 준 것처럼 이 시간 하나님께서도 나의 율법의 생각의 젖을 떼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내가 하려고 했던 생각들을 이제는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의를 경험하게 하셔서 주님이 주인이 되시고 주님이 시작하시고 끝도 주님이 하시는 시스템으로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젖을 떼는 순간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까? 많은 하나님의 축복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뷔페 집에 이미 맛있는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는 것처럼 내가 평생 누려야 할 축복들이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내가 힘들고 괴롭게 살았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직도 신앙적으로 내가 무엇을 하려고 열심히 뛰어다님으로 젖 먹는 율법의 신앙에 갇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젖만 먹고 일을 하려니 얼마나 허기지고 힘이 들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젖을 떼는 신앙에서 단단한 음식을 먹는 신앙이 되기 위해서는 치아가 나와야 합니다. 치아가 없는데 어떻게 맛있는 음식들과 맵고, 달고, 짜고, , 음식들을 먹으면서 음미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을 먹기 위해서는 연단을 받아야 합니다. 신앙의 연단을 받으면 혀가 단련이 되고 치아가 나와서 모든 음식들을 먹어도 맛있고 또한 음식을 분별하면서, 음미하면서, 즐기면서, 먹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주시는 불 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쁨과 즐거움에 참여하게 하시려고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12절 아가페토이 메 크세니제스데 테 엔 휘민 퓌로세이 프로스 페이라스몬 휘민 기노메네 호스 크세누 휘민 쉼바이논토스

벧전 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젖을 떼게 만들어 주시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혀를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처음에 짠 소금을 먹으면 맛이 없습니다. 다시는 먹기 싫어집니다. 그러나 이것이 짠맛이라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매운맛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신 맛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 시험으로 연단을 받으면서 치아도 튼튼하게 자라나게 됩니다. 이 상태가 되면 이제는 입안에서 살살 녹는 맛있는 음식들을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자들이 누려야 할 축복들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젖을 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주님 안에서 성장하면서 복을 누리시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골로새서 2장 헬라어 설교말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승리(골 2: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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