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히브리어강해 설교

[창세기 히브리어 설교말씀] “레아의 합환채를 빼앗은 라헬”(창 30:22-24)

르호봇 2021. 5. 14.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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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히브리어 설교말씀 중에서 레아의 합환채를 빼앗은 라헬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라헬은 언니인 라헬보다 외모가 더 아름답습니다. 레아는 동생보다 더 못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라헬은 레아를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레아를 더 사랑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지만 하나님은 레아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레아에게 자녀를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라헬은 아이를 낳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라헬은 레아에게 시기를 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르우벤이 합환채를 발견하고 그것을 레아에게 주었습니다. 라헬은 언니의 합환채를 빼앗고 야곱을 레아에게 보냈습니다. 합환채를 가지고 있지만 남편이 없는데 아이를 낳을 수가 없습니다. 레아는 합환채로 야곱과 동침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녀를 낳게 되었습니다. 육적인 합환채가 아무리 많아도 남편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신랑이신 예수님이 없으면 생명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라헬의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은 라헬에게도 자녀를 허락하게 됩니다.

“레아의 합환채를 빼앗은 라헬”(창 30:22-24)

 

레아와 라헬은 합환채로 인해 서로 다툼이 있었습니다. 레아는 과감하게 합환채를 포기하고 신랑인 야곱을 맞이하게 되었고 라헬은 합환채를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라헬은 육적인 합환채만 있으면 아들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만의 생각이었습니다. 레아는 육적인 합환채를 포기한 대가로 하나님께서 잇사갈과 스불론과 디나를 주셨습니다.

 

레아는 겉으로 볼 때는 미련하고 지혜가 부족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신앙 면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랑을 사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도 태의 문이 닫혀 합환채가 필요한데 신랑인 야곱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신앙입니다. 우리가 합환채를 끌어안고 세상의 방법으로 생명을 얻고자 한다면 절대 얻을 수가 없습니다.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레아처럼 합환채를 포기하고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한다면 하나님께서 기쁨을 주시고 신랑과 함께 즐거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레아가 아이를 세명 낳은 것처럼 신랑과 기뻐하며 열매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는 라헬의 신앙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라헬은 육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성도들의 예표입니다. 라헬은 합환채를 가지고 왔지만 결국 아이를 낳지 못하고 있습니다. 레아가 아이를 낳는 동안 많은 고통 중에 있었습니다. 레아가 세 명의 아이를 낳았다는 것은 연년생으로 낳아도 3년의 시간이 필요하고 2년의 텀이 있다면 6년의 시간이 흘러간 것입니다. 이 시간 동안 라헬은 육적인 합환채를 가지고 있었지만 생명은 없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우리는 라헬의 신앙이 어떻게 변화가 되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럼 우리가 라헬은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영적 진리가 무엇입니까?

15절 바토메르 라흐 하메아트 카흐테크 에트 이쉬 베라카하트 감 에트 두다에 베니 바토메르 라헬 라켄 이쉐카브 임마크 하라옐라 타하트 두다에 베네크

30:15 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라헬이 이르되 그러면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 밤에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 하니라

라헬의 신앙은 현재 신랑이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뻐하지 않습니다. 라헬의 시선은 신랑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레아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레아는 아이를 낳았는데 자신은 아이를 낳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기 때문에 결과론적인 것만 가지고 자신을 판단했기 때문에 생명의 근원인 신랑이 있어도 기쁘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현재 교회에서 신랑 되신 주님과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자신이 없는 것만 생각하여 불평하고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자들의 입술에는 악평만 있습니다. 모든 것을 신랑의 탓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랑이 떠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야곱은 라헬을 떠나 레아에게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라헬이 합환채를 가지고 온 것에 대하여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신랑이 떠난 사이에 합환채를 통하여 회개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영적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합환채’라는 단어는 (두다이 1736 NMP 명사 남성 복수) 합환채,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דוד(도드 1730) 사랑하는 자, 연애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어근에는 흐뜨러뜨리다, 뒤흔들다, 뒤섞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헬은 신랑 대신에 합환채를 선택하였습니다. 합환채만 있으면 자신이 원하는 아들을 낳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에 빠진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은 생각하지 않고 도구에만 마음을 쏟아부은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의 마음은 뒤죽박죽 되었고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 짜증만 올라오는 것입니다.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도 짜증이 나고 불평만 있었는데 이제는 더 분노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레아가 자녀를 낳았을 때에 더 시기와 질투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라헬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삶이 잘못된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을 영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신랑을 포기한 대가가 이렇게 크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합환채를 통하여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 합환채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자에게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해주는 효력이 있습니다. 또한 사랑이 식은 자들에게 사랑을 회복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11절 레카 도디 네체 하사데 날리나 바케파림

12절 나쉐키마 라케라밈 니르에 임 파르하 하게펜 피타흐 하세마다르 헤네추 하리모님 솸 에텐 에트 도다이 라크

13절 하두다임 나트누 레아흐 베알 페타헤누 콜 메가딤 하다쉼 감 예솨님 도디 차파네티 라크

7:11-13 내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꽃 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에서 내가 내 사랑을 네게 주리라 합환채가 향기를 뿜어내고 우리의 문 앞에는 여러 가지 귀한 열매가 새 것, 묵은 것으로 마련되었구나 내가 내 사랑하는 자 너를 위하여 쌓아 둔 것이로다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향하여 노래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신랑이 신부의 모습을 보고 반하여 신랑이 신부와 함께 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부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신랑이 신부를 보고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신부가 신랑을 위하여 단장을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는 것입니다. 또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함께 보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신랑이 자신의 사랑을 신부에게 마음껏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때에 합환채가 향기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지금까지 식었던 신부와 신랑의 사랑이 무르익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랑과 신부가 하나가 되니 신랑이 신부를 위하여 귀한 열매를 새것과 묵은 것으로 준비하여 두었습니다. 이것은 사랑하는 자 신부를 위하여 신랑이 준비한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라헬의 신앙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신랑을 포기하고 합환채를 가지고 왔지만 이 합환채를 통하여 회개의 삶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생명의 주관자이신 신랑을 간절히 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철저하게 합환채를 통하여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합환채를 육적인 것으로 보았다면 이제는 이 합환채가 식었던 사랑을 회복시켜주는 명약이 되는 것입니다.

눅 16: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청지기가 일을 지혜롭게 했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들에게도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 할 처소로 영접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귀라는 말씀의 의도입니다. 그러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영원한 처소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라헬은 육적인 합환채를 가지고 왔지만 생명의 역사는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육적인 것들로 친구를 사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라헬이 회개하고 있음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합환채의 재물이 없어지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신랑을 사귀니 영원한 천국의 처소로 영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15:14-15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그럼 라헬과 같은 자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합니까? 육적인 합환채를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귀어야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세상의 명예와 권력과 재물을 가지고 자신을 높이는 데 사용할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데 사용하고 예수님을 더 확실하게 높이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는 신부의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신부의 준비가 끝나니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주님의 친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종이라 부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지만 신부는 다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의 스펙이 좋다고 자랑하지 말고 이것을 가지고 신랑 되신 예수님과 사귀어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의 삶을 살면서 주님과 가까운 신부가 신랑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라헬은 야곱이 떠난 다음에 고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레아는 밤마다 깨가 쏟아지는 인생을 살고 있는데 라헬은 이것을 바라보면서 시기와 질투를 할 수밖에 없는 삶으로 전락되었습니다. 하지만 라헬은 자신의 합환채를 가지고 신랑을 다시 모시기 위하여 최선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어떠한 역사가 라헬에게 일어났습니까?

22절 바이제코르 엘로힘 에트 라헬 바이쉐마 엘레이하 엘로힘 바이프타흐 에트 라헤마흐

30:22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라헬이 하나님 앞에서 회개의 삶을 살게 되니 그때서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라헬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생각하신지라’라는 단어는 (자카르 2142 CW.VQIMZS 와우접속사 동사 칼(능동태)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기억하다, 잊지 않다, 생각나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라헬은 합환채를 통하여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으며 이 합환채를 통하여 신랑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의 단계를 거치게 되는 것입니다. 신랑이 떠난 후에 지금까지 감사하지 못했던 것을 철저하게 회개하면서 감사의 삶을 살고 자신만 높였던 삶을 신랑만을 높이는 삶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마음을 준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라헬을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신 것입니다. 또한 신랑이 라헬을 버리지 않고 생각이 난 것입니다. 그래서 아가서에 나오는 것처럼 신랑이 신부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단계까지 올라오게 된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즉시로 라헬의 마음과 상황과 환경을 기억하시고 야곱을 보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면 라헬은 아들을 낳을 수가 없습니다. 전에는 자신의 방법으로 아들을 낳으려고 했는데도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한 방에 자신의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철저한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교훈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도 내가 가지고 있는 합환채를 가지고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신부의 수업을 받으면서 세상의 물질과 명예와 권세를 가지고 신랑을 맞이하는 신부의 준비를 철저하게 한다면 신랑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눈에 보기에는 아름다운 꽃이지만 향이 없으니 벌들이 날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벌이나 나비가 날아오지 않으니 열매는 맺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카시아 꽃은 색깔도 예쁘지만 향내가 있습니다. 그러니 벌들이 멀리에서도 찾아와서 꿀을 따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열매를 맺힐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랑이 오셔야 만이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 신랑이 나를 찾아올 수 있도록 향기 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고후 2:15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그렇다면 우리가 신부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우리의 삶은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멸망받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것은 구약에서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의 향기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죽을 때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살 때에 꽃에 많은 벌들과 나비들이 몰려오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 풍기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통해서 먼저는 주님이 나를 찾아오시고 그다음에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고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니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 것이며 좋은 일들이 나를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라헬이 회개의 삶을 살았더니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아이를 낳지 못한 수치를 깨끗하게 씻겨주셨습니다.

23절 바타하르 바텔레드 벤 바토메르 아사프 엘로힘 에트 헤르파티

30:23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하나님께서 라헬의 소원을 들으시고 즉시로 임신하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떠났던 신랑인 야곱이 돌아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라헬이 신랑을 맞이할 준비가 끝나자 하나님께서 야곱을 라헬에게 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즉시로 임신하게 해 주셨습니다. 라헬이 소원했던 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얼마나 라헬이 기뻐했겠습니까? 자신이 평생 원했던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고 자신의 부끄러움을 씻겨주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 부끄러움을’이라는 단어는 (헤르파 2781) 부끄러움, 모욕거리, 치욕거리,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חרף(하라프 2778) 겨울을 지내다,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다, 정혼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라헬은 지금까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수치의 삶을 살았습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아이를 갖지 못하면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부끄럽고 모욕적이며 모든 치욕을 당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이때에 라헬은 합환채를 통하여 회개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라헬이 신랑이 없는 시간을 보내면서 영적으로는 차디찬 겨울의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이것을 라헬이 깨닫고 목숨을 아끼지 않으면서 오직 신랑을 만나기 위하여 최선의 삶을 산다는 것을 교훈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정혼한 상태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현재 신랑은 없지만 이미 정혼한 상태이기 때문에 신랑은 반드시 오게 되는 것입니다. 신랑이 없는 이 추운 겨울을 보내기 위하여 합환채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믿음으로 시간을 보냈더니 혹독한 겨울은 가고 따뜻한 봄날이 찾아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수치를 씻겨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라헬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육적인 합환채를 가지고 왔지만 이것을 통하여 회개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도구에 마음을 두지 않고 이 도구를 가지고 신랑이 자신에게 올 수 있도록 활용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합환채를 가지고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올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향기 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향기 나는 제물이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현재 나에게 신랑이 없어 혹독한 영적 겨울을 보내고 있다면 신랑이 오실 수 있도록 열심히 말씀과 기도와 세상에서의 삶이 거룩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교회에 나온다고 하면서도 나의 삶이 지저분하고 추악한 삶을 살고 있다면 신랑이 오고 싶어도 올 수가 없습니다. 신랑을 무시하고 신랑을 의지하지 않고 신랑의 말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신랑 되신 예수님이 나에게 찾아올 수가 없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매일 같이 회개의 삶을 살면서 율법적인 신앙에 갇혀 사는 인생이 아니라 복음의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태복음 24장 히브리어 설교말씀] “종말 때 재림 징조”(마 24: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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