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히브리어강해 설교

[창세기 25장 히브리어 설교말씀]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창 25:1)

르호봇 2021. 4. 4. 17:11
반응형

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25장 히브리어 설교말씀 중에서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이 큰 민족을 이루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도 후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겠다고 했더니 하나님이 그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네 씨에 나오는 자가 상속자가 된다고 하시면서 하늘의 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다가 사래의 여종인 하갈과 동침하여 이스마엘을 낳게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 이후로 하나님께서 사라를 통해서 이삭을 주셨습니다. 이삭은 약속의 씨가 되어 아브라함의 후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큰 민족은 아닙니다. 그 당시 두 민족밖에 안 됩니다. 이스마엘과 이삭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장가보내 놓고 후처를 얻게 됩니다. 그두라를 통해서 6명의 자녀를 더 얻게 됩니다. 이 자녀들이 한 민족씩을 만들게 됩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도 약속하신 것들이 있다면 반드시 이루어주십니다. 우리는 성격이 급해서 참지 못하는 것뿐이지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약속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응답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창 25:1)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구속사의 출발점으로 선택하셔서 복의 근원이 되게 하여 주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뽑았습니다. 그래서 갈대아 우르에서 1차로 부르시고 하란 땅에서 2차로 부르셔서 가나안 땅에 이르게 됩니다. 가나안 땅에서도 많은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애굽에 내려갔다가 돌아오면서 롯과 헤어지고 헤브론에서 하나님과 연합하여 신앙을 지키게 됩니다. 사라를 통해서 아이가 없자 사라는 자신의 종인 하갈을 통해서 아이를 얻고자 하여 아브라함에게 주게 됩니다. 그렇게 낳은 아들이 이스마엘입니다.

 

이스마엘을 낳고 13년 동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침묵하시고 계시다가 99세에 나타나셔서 이삭을 약속하시고 100세에 언약의 씨인 이삭을 사라가 낳게 되는 것입니다. 사라는 127세를 살다가 하나님의 품으로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가 죽고 난 후에 외롭게 있는 이삭을 위해 밧단 아람에 있는 나홀의 집에 가서 아내를 데리고 오라고 엘리에셀에게 명령을 하여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를 데리고 오게 되었고 이삭과 리브가가 결혼을 한 후에 이삭은 자신의 어머니인 사라가 죽은 후에 리브가를 통해서 위로를 받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짝을 만나게 해 주고 자신도 결혼을 하게 됩니다. 사라가 죽은 후에 정식부인으로 그두라의 여인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럼 아브라함의 나이 140세에 혼자 살아도 되는데 후처로 정식 부인을 맞이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언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해 준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스마엘과 이삭밖에는 아브라함의 자녀가 없습니다. 이것으로는 큰 민족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고대근동에서는 자신의 이름 자체가 한 나라를 이루게 됩니다. 많은 종족이 퍼져나가 자신이 씨족이 되어 한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삭의 후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된 것처럼 이스마엘의 후예들도 한 나라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아직 부족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큰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육적으로 더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통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것은 식언치 아니하시고 반드시 이루어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럼 나에게 약속하신 것들도 당세에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140세에 자녀를 낳을 수도 없습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쉽지가 않습니다. 사라의 고백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나이 99세에 늙었고 자신은 생리가 끊어져서 아이를 낳을 수가 없다고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조건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나이 140세에 자녀를 낳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럼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기 위하여 그두라를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이 땅에서 살면서 내가 전혀 할 수 없는 상황과 환경이 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언약하신 것을 이루기 위하여 이끌어 가시면 아브라함이 생명을 낳는 것처럼 된다는 것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두라를 통해서 우리가 영적으로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절 바요세프 아브라함 바이카흐 이솨 우쉐마흐 케투라

25:1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라

 

아브라함이 이삭이 결혼한 후에 자신도 후처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고 있습니다. 이 여인의 이름은 그두라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한 것은 자신의 정욕의 욕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전혀 소생 불가능한 일도 하나님이 하시니 되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문제가 있습니까? 내가 하려고 해도 전혀 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면 이 시간 그두라와 같은 사람을 보내주셔서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대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생명을 낳을 수 없는 중에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라는 단어는 (아브라함 85) 아브라함이며 많은 무리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사라가 있을 때에는 자녀를 이삭만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름이 개인의 아버지에서 열국의 아버지로 바꾸어 주신 후에 그두라를 허락하여 주시고 있습니다. 그두라의 소생들은 6명의 자녀를 낳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열국의 아버지로 만들어 주시기 위하여 아브라함 나이 140세에 그두라를 정식 부인으로 허락해 주셨습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에서 큰 민족을 이루어 주시고 열국의 아버지가 된다고 하셨는데 사라도 죽고 나이도 많아서 죽을 날만 남았는데 어떻게 큰 민족의 아버지가 된다는 말인가?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그두라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식언치 아니하시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약속하신 것들을 붙잡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소생은 8명입니다.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고 사라를 통해서 이삭을 낳고 그두라를 통해서 6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숫자로 8은 새로운 언약, 거듭남, 새로운 출발, 이라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이루고 평안히 잠이 들어 부활의 소망을 꿈꾸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천국에 대한 새로운 언약을 통해 현재는 육적인 백성들을 주셨지만 앞으로는 영적인 아브라함의 구원받은 백성들을 주심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육적인 민족의 아버지가 되시고 영적인 민족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을 말씀합니다.

 

맞이’라는 단어는 (라카흐 3947 CW.VQIMZS 와우접속사 동사 칼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취하다, 택하다, 빼어나다, 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결혼을 한 후에 즉시로 그두라를 취하여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 여인은 하나님께 선택된 자로서 아브라함의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볼 때도 눈에 빼어난 용모를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이 보실 때에도 마음에 꼭 드는 여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와우접속사를 사용한 것은 아브라함은 그두라를 보는 순간 즉시 마음이 끌렸습니다.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할 필요가 없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배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그두라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를 위해 그두라처럼 쓰임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면 그두라는 성도의 예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두라와 같은 자가 되어 교회에서 주님께 헌신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두라가 하나님의 언약을 위해 쓰임 받는 것처럼 나도 선택되어 주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였으니’라는 단어는 (야샤프 3254 CW.VHIMZS 와우접속사 동사 히필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더하다, 크게 하다, 전무후무하다, 많아지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두라를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셔서 약속했던 큰 민족을 이루어주시는데 전무후무한 일을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라를 통해서는 이삭 한 명만 주셨지만 그두라를 통해서는 6명의 자녀를 주셔서 크게 번성하고 많아지게 하셨습니다. 사라가 죽은 후에 이와 같은 엄청난 축복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입니다.

 

와우접속사 해석은 이것은 아브라함이 되려고 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즉시로 허락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히필형은 하나님이 직접 역사하셔서 아브라함에게 그두라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됩니다. 전에 힘들고 어려웠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때가 되매 하나님이 그두라와 같은 축복을 허락하셔서 이전보다 더 크게 번창하고 전무후무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생각에는 아무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역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에 하나님은 역사하셔서 복을 주시고 번성하게 됩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할 때는 하나님은 절대 움직이지 않습니다. 할 수 없을 때에 하나님은 움직이시고 역사하셔서 전보다 더 큰 번성의 축복으로 허락하시는 주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두라’라는 단어는 (케투라 6989) 그두라,이며 이 단어는 קטר(카타르 6999) 분향하다, 불사르다, 향내 풍기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두라는 짙은 향연이라는 의미를 가진 여인입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그두라는 아브라함을 만나 자신의 몸을 분향하고 불사르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육적으로는 나이가 들어 전혀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소망이 없는 사람에게 자신의 몸을 불사르면서 생명을 잉태하고 낳게 된 헌신적인 삶을 산 사람입니다.

1절 베하멜렉크 다비드 자켄 바 바야밈 바예카쑤후 바베가딤 베로 이함 로

2절 바요메루 로 아바다이브 예바케쓔 라도니 하멜렉크 나아라 베툴라 베아메다 리페네 하멜렉크 우테히 로 소케네트 베쑈크바 베헤케카 베함 라도니 하멜렉크

3절 바예바케쓔 나아라 야파 베콜 게불 이스라엘 바이메체우 에트 아비샤그 하쓔나미트 바야비우 오타흐 라멜렉크

왕상 1:1-3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그의 시종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그로 왕을 받들어 모시게 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 하고 이스라엘 사방 영토 내에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던 중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왔으니

 

다윗도 나이가 들어 늙었을 때에 몸이 따뜻하지 아니함으로 아비삭이라는 젊은 처녀를 구하여 왕을 시중들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던 중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서 다윗을 시중들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고대 근동에서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젊은 처녀를 통해서 원기를 회복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아비삭’이라는 단어는 (아비샤그 49) 아비삭,이며 이 단어는 אב(아브 1) 아버지와 שגה(샤가 7686) 잘못되다, 미련하다, 미혹되다,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아비삭은 외형적으로는 아름다웠지만 영적으로는 죄인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여 미련한 자이며 영적으로 미혹을 당하여 고통을 당하던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그렇다면 아비삭은 성도의 예표입니다. 이런 자들이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 죄 사함 받아 섬기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비삭은 다윗을 지극정성으로 섬겼습니다. 자신의 힘을 다해서 다윗을 보필하고 있습니다. 아비삭도 정식 부인으로서 다윗과 함께 했던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그두라가 낳은 자녀들을 통해서 영적으로 깨달아 보겠습니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할 때에 생명을 잉태하여 낳을 수가 있습니다.

2절 바텔레드 로 에트 지므란 베에트 요크솬 베에트 메단 베에트 미드얀 베에트 이쉐바크 베에트 쓔아흐

창 25:2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고

시므란’이라는 단어는 (지므란 2175) 시므란,이며 이 단어는 זמר(자마르 2167) 찬양하다, 노래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회에서 주님께 헌신하여 찬양하고 노래하는 찬양대를 키워야 합니다. 이런 아들들을 많이 배출하여 주님께 헌신하게 하고 영광을 돌려드리는 시므란과 같은 아들을 낳아야 합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에게 기쁨과 즐거움이 되는 것처럼 예수님께 기쁨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는 것입니다.

 

욕산’이라는 단어는 (요크샨 3370) 욕산,이며 이 단어는 יקש(야코쉬 3369) 사냥하다, 올무를 놓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사탄만 올무를 놓고 영혼을 잡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복음의 올무를 쳐 놓고 선택된 자들을 붙잡아야 합니다. 이것은 교회에서 전도대원을 키워야 함을 말씀합니다. 욕산과 같은 사냥꾼을 길러내어 이단들과 싸울 수 있는 능력 있는 복음의 전도대원들을 길러내는 것입니다. 이단들도 포교 대원들이 있는데 우리들도 욕산과 같은 복음의 전도대원들을 탄생해야 할 것입니다.

 

므단’이라는 단어는 (메단 4091) 므단,이며 מדן(메단 4090) 다툼, 싸움, 이간하는 자,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것은 교회에서 싸움과 다툼이 일어날 때에 분쟁위원회를 조성하여 다툼과 분쟁과 싸움과 이간하는 일들이 없도록 조정하는 조정위원들을 탄생시켜야 합니다. 현재 교회가 성도들과 목사들 간에 분쟁과 다툼 때문에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박살 나고 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세상 법정에 가서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기 전에 교회 안에서 므단과 같은 자들이 문제가 생겼을 때에 먼저 솔선수범하여 조정위원으로서 타협점을 찾아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에 교회는 안정화가 되고 싸움과 분쟁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므단과 같은 자들을 교회에서 키워내야 합니다.

 

미디안’이라는 단어는 (미드얀 4080) 미디안,이며 이 단어는 דין(1777) 억울함을 풀다, 신원하다, 공정하게 하다, 심판을 내리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미디안과 같은 자들은 교회에서 힘이 없어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신원하는 자들에게 힘을 주고 도와주는 변호인단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 힘이 없어서 꼼짝없이 힘 있는 자들에게 당하는 사람입니다. 힘이 없으니 피해자가 어느 날 갑자기 가해자가 되어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는 자들을 위해서 자신의 능력으로 변호해 주고 억울함을 풀어주는 이런 자들을 배출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주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가 될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이스박’이라는 단어는 (이스바크 3435) 이스박,이며 이 단어는 שבק(셰바크 7662) 남겨두다, 떠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박은 해방을 의미하는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죄와 경제의 고통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이스박과 같은 사람들은 어려움을 알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힘든 자들에게는 위로와 기도와 권면을 해 주는 것이고 육신적으로 힘들면 물질로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교회에서 길러 내야 합니다. 교회에서 이런 자들이 장로나 권사의 직분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런 사역을 하라고 장로와 권사를 세운 것입니다. 그럴 때에 교회가 안정이 되고 주님께 기쁨이 되며 목사들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할 수가 있습니다.

 

수아’라는 단어는 (슈아흐 7744) 수아,이며 이 단어는 שוח(슈아흐 7743) 가라앉다, 잠기다, 낙심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수아는 부유라는 의미를 가진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물질적으로 부유한 자들은 주변에서 물질로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서 헌신하는 자입니다. 마음으로 낙심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고 사업을 하다가 망하여 가세가 기울어졌을 때에 성심껏 도와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자들을 교회에서 길러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그두라의 헌신을 통해서 영적으로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교회에서 그두라와 같은 헌신과 봉사를 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면서 나의 육신을 불태운다면 하나님은 그두라의 소생을 통해서 복을 주심과 같이 나에게도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려면 주님과 하나가 되고 연합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신부가 되지 않으면 생명을 낳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도 그두라의 6명의 아들들을 통해서 영적으로 깨달은 것처럼 우리들도 이런 자들을 키워내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가 주님과 연합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님과 연합이 되어 있지 않으면 매일 다툼과 싸움밖에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그두라처럼 양보하고 헌신하여 주님의 생명을 잉태하고 낳는데 최선을 다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13장 헬라어 주일설교] “예수님을 은 30에 팔은 가룟 유다”(요 13:21-30)

 

[요한복음 13장 헬라어 주일설교] “예수님을 은 30에 팔은 가룟 유다”(요 13:21-30)

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복음 13장 헬라어 주일설교 중에서 예수님을 은 30에 팔은 가룟 유다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구약에서 팔릴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rhb-bible.tistory.com

[창세기 15장 히브리어 강해] 횃불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창 15:12-21)

 

[창세기 15장 히브리어 강해] 횃불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창 15:12-21)

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15장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횃불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횃불 언약을 받으면서 자신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

rhb-bible.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