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잠언 1장 히브리어 성경말씀 중에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잠언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받아 잠언을 기록했습니다.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져도 하나님의 지혜가 없으면 소용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는 세상의 것을 추구하면서 살지만 지혜로운 자는 하늘의 것을 구하면서 살게 됩니다. 우리는 구원받았으니 하늘의 것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잠언(잠 1:1-6)
우리가 잠언 서를 대할 때에 지혜의 말씀으로 읽게 됩니다. 지혜가 부족한 자는 지혜를 더하게 되고 명철이 있는 자는 지식을 더한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의 모든 글이 자신에 대하여 쓴 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잠언 서를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를 깨달아야 합니다. 육체의 지혜와 지식만을 아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지식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성경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밝혀내어 구원받게 하는 데 있습니다. 성경에는 영생의 비밀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잠언 서를 통해서도 영생의 비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받아 잠언을 기록했습니다. 우리들은 기록된 잠언 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를 받고 영생의 복을 얻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절 미쉘레 쉘로모 벤 다비드 멜렉크 이스라엘
잠 1:1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잠언 서를 시작하면서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말합니다. 솔로몬이 지은 잠언만 해도 삼천이나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지혜의 시인 잠언을 기록했습니다.
‘잠언이라’이라는 단어는 (마샬 4912) 속담, 격언, 비유담, 이라는 뜻이며 משל(마샬 4911) 속담을 말하다, 비유나 시적인 말로 말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여러 가지 형태로 사용됩니다. 속담이나, 격언을 말할 때에 사용하고 비유적으로 뜻을 내포하여 가르칠 때도 사용합니다.
70인 역은 παροιμια(파로이미아 3942) 격언, 잠언, 현명한 말, 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잠언을 통해서 제자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6절 타우텐 텐 파로이미안 에이펜 아우토이스 호 이에수스 에케이노이 데 우크 에그노산 티나 엔 하 엘랄레이 아우토이스
요 10:6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양의 문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에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잠언은 자신의 뜻을 쉽게 비유적으로 말씀하는 격언의 말입니다. 여기에서 ‘비유로’ 라는 단어가 παροιμια(파로이미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은유적으로 비유를 사용하여 말씀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잠언 서는 하나님의 깊은 진리의 말씀을 은유적으로 기록하여 계시해 주시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 책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성령 하나님이 눈을 열어 주실 때에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2절 라다아트 호크마 우무사르 레하빈 이므레 비나
잠 1:2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잠언 서의 목적은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잠언을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와 주님의 훈계를 알아야 합니다. 명철의 말씀을 깨닫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체험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지혜와’라는 단어는 (호크마 2451) 지혜, 라는 뜻이며 חכם(하캄 2449) 지혜 있다, 지혜롭다, 능숙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지혜는 삶에 대한 지혜도 있지만 영적인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에 미련한 처녀와 슬기로운 처녀가 있습니다. 미련한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않고 슬기로운 처녀는 기름을 준비했습니다. 이런 자가 삶에 능숙한 자이며 지혜로운 자이며 영적으로 깨어 있는 자입니다. 70인 역은 σοφια(소피아 4678) 지혜, 라는 뜻입니다.
30절 엑스 아우투 데 휘메이스 에스테 엔 크리스토 이에수 호스 에게네데 헤민 소피아 아포 데우 디카이오쉬네 테 카이 하기아스모스 카이 아폴뤼트로시스
고전 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아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나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습니다. 여기에서 ‘지혜와’ 라는 단어가 σοφια(소피아)입니다. 우리가 잠언을 읽으면서 지혜를 깨달아야 하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을 아는 지혜가 넘쳐나야 합니다. 세상의 지혜를 얻으려고 잠언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고상한 지혜를 깨닫게 됩니다.
‘훈계를’이라는 단어는 (무사르 4148) 훈계, 징계, 교훈, 이라는 뜻이며 יסר(야사르 3256) 훈련하다, 가르치다, 징벌하다, 훈계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잠언은 잘못된 삶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훈계하고 교훈하며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면 징벌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잠언을 읽어갈 때에 우리가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할 것도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구원받고 나서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의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된 삶을 살아가면 주님은 말씀을 통해서 훈계하시고 계속해서 말을 듣지 않으면 환경과 상황으로 징계하셔서 훈련시킵니다.
70인 역은 παιδεια(파이데이아 3809) 교육, 양육, 훈련, 이라는 뜻이며 παιδευω(파이듀오 3811) 훈련시키다, 교육하다, 징벌하다, 교정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신약에서도 훈계는 잘못된 삶을 살 때에 교육하고 징벌하여 교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16절 파사 그라페 데오프뉴스토스 카이 오델리모스 프로스 디다스칼리안 프로스 엘렝콘 프로스 에파노르도신 프로스 파이데이안 텐 엔 디카이오쉬네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여기에서 ‘교육하기에’ 라는 단어가 παιδεια(파이데이아)입니다. 우리가 잠언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책망과 가르침과 올바르게 사는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잠언은 구원받은 성도가 잘못된 삶을 살면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말씀으로 교육하고 책망하여 올바르게 살게 하는 책입니다.
‘명철’이라는 단어는 (비나 998) 이해, 이해력, 통찰력, 이라는 뜻이며 בין(빈 995) 밝히 알다, 깨닫다, 분별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구원받은 자는 영적인 통찰력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식을 깨닫고 거짓 복음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영적 이해력이 떨어지면 거짓 복음을 분별하지 못하고 이단 사설을 따라가다가 영혼이 죽게 됩니다. 영적인 통찰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말씀을 듣고 분별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똑똑한 척하면서 살지만 영적인 통찰력이 없으면 율법주의에 빠져 영원한 지옥의 불 못으로 던져지게 됩니다. 잠언은 우리에게 영적인 이해력과 통찰력을 키워줍니다.
70인 역은 φρονησις(프로네시스 5428) 생각, 사고방식, 지능, 이해력, 이라는 뜻이며 φρονεω(프로네오 5426) 생각하다, 판단하다, 전념하다, ~에 마음을 두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명철은 하나님의 말씀에 전념하게 만들고 예수 그리스도의 지식을 마음에 두어 깨닫게 합니다. 잠언을 읽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생각나게 하고 사고방식이 세상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사고방식으로 바뀌게 됩니다.
8절 헤스 에페릿슈센 에이스 헤마스 엔 파세 소피아 카이 프로네세이
엡 1: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지혜와 총명을 나에게 넘치게 부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속량을 받은 나는 잠언을 읽을 때에 지혜와 총명을 주시는데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 여기에서 ‘총명을’ 이라는 단어가 φρονησις(프로네시스)입니다. 이제 우리가 잠언을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총명을 받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자는 주님께서 영적인 분별력을 허락하여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잠언 서를 통해서 깨닫게 해주십니다.
3절 라카하트 무사르 하세켈 체데크 우미쉐파트 우메솨림
잠 1:3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잠언은 지혜롭게 하고, 공의롭게 하며, 정의롭고, 정직하게, 행동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하게 됩니다. 내가 잠언을 읽으면서 깨달을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와, 공의와, 정의와, 정직을 알 때에 나도 주님과 같이 행동하면서 성화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지혜롭게’라는 단어는 (사칼 7919 VHNA 동사, 히필, 부정사 절대형) 지혜롭게 행하다, 총명하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주님은 자신 스스로 모든 것을 판단하지 않았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지혜롭게 행동하셨습니다. 내가 잠언을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에 관하여 깨달아야 합니다. 그 이유가 히필형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잠언 책을 읽을 때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를 깨닫게 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공의롭게’라는 단어는 (미쉬파트 4941) 심판, 재판, 공의, 라는 뜻이며 שפט(샤파트 8199) 재판하다, 다스리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우리가 잠언을 읽으면서 알아야 할 것은 공의로운 재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은 눈으로 보는 대로 심판하지 않습니다. 재판을 하여 판결을 내려도 주님은 공의롭게 하십니다.
16절 카이 에안 크리노 데 에고 헤 크리시스 헤 에메 알레데스 에스틴 호티 모노스 우크 에이미 알르 에고 카이 호 펨프사스 메 파테르
요 8:16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주님은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다고 했습니다.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공의를 깨닫고 나도 함부로 남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외모를 보고 판단하지 말고 판단을 해도 주님 안에서 판단해야 합니다.
‘정의롭게’라는 단어는 (체데크 6664) 올바름, 공의, 의로움, 이라는 뜻이며 צדק(차다크 6663) 의롭다, 정결하다, 의롭게 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우리는 잠언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배워야 합니다. 주님은 아무 죄도 없으신 공의로운 분이며 정결하신 분입니다. 주님의 모든 행동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행동이었습니다. 잠언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깨닫고 나도 그와 같이 구원받고 의로운 행동을 해야 합니다.
21절 뉘니 데 코리스 노무 디카이오쉬네 데우 페파네로타이 마르튀루메네 휘포 투 노무 카이 톤 프로페톤
롬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잠언 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드러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70인 역은 δικαιοσυνη(디카이오쉬네 1343) 의로움, 의, 라는 뜻을 사용합니다. 여기에서 ‘한 의가’ 라는 단어가 δικαιοσυνη(디카이오쉬네)입니다. 우리는 잠언에 나타나고 있는 한 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율법과 선지자들에 의해서 증거를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잠언에도 녹아져 있습니다.
‘정직하게’라는 단어는 (메샤르 4339) 공평, 정직함, 평탄함, 이라는 뜻이며 ישר(야샤르 3474) 평탄하다, 곧다, 똑바르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정직하다는 것은 진리의 말씀을 따라 곧바로 걸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소신을 갖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비 복음과 타협하지 않는 신앙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 땅에 오셨고 구원의 평탄한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으실 때까지 비 진리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원하시는 십자가만 바라보고 똑바로 걸어가셨습니다. 우리들도 이와 같이 구원받았다면 예수 그리스도만을 향하여 똑바로 걸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정직한 신앙생활입니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어둠과 섞이면서 사는 것은 정직한 것이 아닙니다.
70인 역은 αληθης(알레데스 227) 진실한, 진짜의, 신실한, 이라는 뜻이며 ληθω(레도) 남의 눈을 피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것은 문자적으로 진리의 말씀을 숨기지 않고 신실하게 보여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55절 헤 가르 사르크스 무 알레도스 에스틴 브로시스 카이 토 하이마 무 알레도스 에스틴 포시스
요 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주님의 살은 참된 양식이며 주님의 피는 참된 음료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합니다. 여기에서 ‘참된’ 이라는 단어가 αληθης(알레데스)입니다. 주님의 살은 확실히 참된 양식이 되며 주님의 피는 진짜로 참된 음료가 됩니다. 영원히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는 양식입니다. 우리는 잠언 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양식과 음료를 발견하여 먹고 마셔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입니다.
4절 라테트 리프타임 오르마 레나아르 다아트 우메지마
잠 1:4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잠언 서는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고 젊은 자에게는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해서 기록했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복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합니다. 젊은 자들은 자신의 힘만 믿고 교만하기 때문에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무시합니다. 이런 자들에게 슬기와 근신을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주십니다.
‘슬기롭게 하며’라는 단어는 (오르마 6195) 교활함, 간교함, 슬기로움, 이라는 뜻이며, ערם(아람 6191) 발가벗기다, 간계를 꾀하다, 지혜롭게 행동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어리석은 자가 슬기롭게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인간이 죄가 들어온 것은 뱀의 간교함과 교활함에 넘어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명령했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뱀은 하와에게 접근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게 만들고 에덴에서 옷을 벗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끄럽거나 수치스럽지 않았는데 이것을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원죄의 죄인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25절 바이헤이우 쉐네헴 아루밈 하아담 베이쉐토 베로 이트보솨슈
창 2: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이때는 간교한 뱀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았을 때입니다. 원죄의 죄인이 된 후에는 서로 부끄러워 무화과나무의 잎으로 옷을 지어 입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리석은 자는 원죄 가운데 빠져 뱀의 간교에 놀아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고 지혜로운 자로 만들어 주님을 깨닫고 원죄에서 해방시켜주십니다. 잠언 서는 원죄에 빠져 죽었던 인생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여 더 이상 죄 때문에 부끄럽거나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 주십니다. 잠언 서를 통해서 주님의 복음의 지혜의 말씀으로 원죄에서 해방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근신함을’이라는 단어는 (마짐마 4209) 음모, 근신함, 악한 생각, 이라는 뜻이며 זמם(자맘 2161) 악을 꾀하다, 도모하다, 작정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젊은 자들에게는 지식과 근신함을 준다고 했습니다. 젊은 자들은 혈기가 왕성하여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영적으로 보면 율법의 행위 주의자를 의미합니다. 이런 자들은 율법의 악한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도모합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바라보지 않고 주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힘이 세다고 생각하여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마음에 작정한 자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잠언 서를 통해서 철저하게 율법의 행위의 의를 깨부수어 주십니다. 우리들은 잠언 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깨닫고 주님을 아는 지식과 지혜가 충만해져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근신함입니다.
5절 이쉐마 하캄 베요세프 레카흐 베나본 타흐불로트 이크네
잠 1:5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을 것이라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하게 되고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게 됩니다. 세상에서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지혜로운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이 잠언 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식과 학식이 쌓여 갑니다. 복음을 들을 때에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학식이’라는 단어는 (레카흐 3948) 가르침, 교훈, 학식, 이라는 뜻이며 לקח(라카흐 3947) 취하다, 받다, 청종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교회에 나오지만 세상의 전문분야에서 지혜가 출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에는 무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자신이 세상에서 전문가이지 성경에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이 겸손히 교회에서 십자가 복음을 배우고 청종하여 자신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문분야의 지식으로 성경의 복음을 깨달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2절 야아로프 카마타르 리크히 티잘 카탈 이므라티 키세이림 알레 데쎄 베키르비빔 알레 에세브
신 32:2 내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 내 말은 이슬처럼 맺히나니 연한 풀 위의 가는 비 같고 채소 위의 단비 같도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 주님의 말씀은 이슬처럼 맺힙니다. 연한 풀 위의 가는 비 같고 채소 위의 단비 같습니다. 전문가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들을 때에 영혼이 구원을 받아 이슬과 비처럼 은혜를 받게 됩니다.
여기에서 ‘내 교훈은’ 이라는 단어가 לקח(레카흐)입니다. 세상에서 한 분야에 교수, 박사, 석사, 기능장이라 하더라도 교회에서는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겸손히 배워야 합니다. 주님의 교훈을 통해서 구속의 예수 그리스도의 학식이 더하여 가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전문분야는 영혼을 구원시킬 수 없습니다. 복음만이 영혼을 구원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언의 말씀을 통해서 구속의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가는데 도움이 됩니다.
‘지략을’이라는 단어는 (타흐불라 8458) 지략, 전략, 도모, 라는 뜻이며 חבל(하발 2254) 단단히 감다, 휘감다, 묶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명철한 자는 영적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영의 일을 분별하는 자는 잠언 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지략과 전략을 깨닫게 됩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에 묶여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파하고 주님과 함께 복음의 말씀에 휘감겨 단단히 묶여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영적 지도자들이 지략을 받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목사라고 하면서도 강단에서 율법의 의만 전하고 있다면 지략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구원자이며 믿음으로 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선포하는 자가 하나님의 지략을 받은 사람입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지략을 받은 사람은 오직 주님만을 높이고 찬양하며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주님과 함께 묶여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지략이 부족하다면 잠언 서를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더 가까워지고 묶이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6절 레하빈 마솰 우멜리차 디브레 하카밈 베히도탐
잠 1:6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우리는 잠언 서에 기록되어 있는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아야 합니다. 잠언은 비유적으로 되었기 때문에 오묘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잠언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오묘한 말을’이라는 단어는(히다 2420) 수수께끼, 알기 어려운 말이나 문제, 라는 뜻이며 חוד(후드 2330) 매듭을 묶다, 수수께끼를 내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우리가 잠언 서를 통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요? 옛적부터 감추어졌던 수수께끼와 같은 알기 어려운 영생의 복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영생은 아무에게나 열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받은 자들에게 열어주시지 않으면 절대 열리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매듭을 묶어 놓듯이 꽁꽁 숨겨 놓았기 때문입니다.
2절 에프테하 베마솰 피 아비아 히도트 미니 케뎀
시 78:2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며 예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려 하니
하나님은 입을 열어 비유로 말씀하시고 예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십니다. 이것이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감추어졌던 복음을 열어주십니다. 여기에서 ‘감추어졌던 것을’ 이라는 단어가 חידה(히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에 수수께끼처럼 감추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자는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70인 역은 αινιγμα(아이니그마 135) 수수께끼, 희미함, 이라는 뜻입니다.
12절 블레포멘 가르 아르티 디 에소프트루 엔 아이니그마티 토테 데 프로소폰 프로스 프로소폰 아르티 기노스코 에크 메루스 토테 데 에피그노소마이 카도스 카이 에페그노스덴
고전 13: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우리가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지만 십자가 복음을 깨닫고 나면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는 것처럼 확실합니다. 지금은 내가 성경을 부분적으로 알지만 복음을 깨닫고 나면 성경을 통해서 주님을 확실하게 알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희미하나’ 라는 단어가 αινιγμα(아이니그마)입니다. 지금은 왜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할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해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수수께끼와 같은 영생의 비밀을 잠언 서를 통해서 파헤쳐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오묘한 영생의 비밀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주님을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게 보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자는 얼굴을 대면하여 보는 것처럼 성경을 읽을 때도 확실하게 구속의 주님을 보게 됩니다. 잠언 서는 ‘야차르’의 육체의 지혜와 지식을 주는 책이 아니라 ‘바라’의 몸인 속 사람이 영생의 주님을 확실하게 보고 깨닫게 하는 지혜의 책입니다. 이제부터 잠언 서를 읽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체험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느헤미야 히브리어 성경말씀] 느헤미야 성벽 재건 구속사 비밀(느 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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