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사야 58장 히브리어 주석 강해 중에서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형식적인 금식을 싫어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과 멀어졌는데 금식하면서 형식적으로 신앙이 좋은 척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금식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금식을 하면서 자랑삼아하지 않아야 합니다. 금식은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졌을 때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신앙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금식을 하게 됩니다. 금식은 육신을 죽이고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합니다. 주님도 신랑과 함께 있을 때는 금식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오는데 그때는 금식을 하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을 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사 58:1-9)
1절은 케라 베가론 알 타헤쇼크 카쑈파르 하렘 콜레카 베하게드 레암미 피쉐암 우레베이트 야아코브 하토탐입니다.
사 58:1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
=====58:1
내 백성에게 ... 고하라 - 여기 '백성'이란 선지자 시대의 백성 혹은 바벨론 포로 시대의 백성, 둘 중의 하나이겠다. 우리는 다수 주석가들의 견해에 따라 후자의 견해를 취하고자 한다(Delitzsch, Rosenmuller, J. Watts, Whybray). 그 근거로서 성전, 희생 제사, 므낫세 시대에 유행했던 우상 숭배 따위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을 들 수 있겠다. 백성의 죄를 나팔같이 높여서 알리라고 한다. 룸이라는 동사이다. 히필 사역 능동 명령법을 사용한다. 하나님은 너의 목소리를 크게 높여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알려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2절은 베오티 욤 욤 이드로쓘 베다아트 데라카이 예흐파춘 케고이 아쎄르 체다카 아사 우미쉐파트 엘로하이브 로 아자브 이쉐알루니 미쉐페테이 체데크 키르바트 엘로힘 예흐파춘입니다.
사 58:2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
=====58:2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찾기는 하되 그것은 형식적이요 외면적일 뿐,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는 도리어 자기의 뜻을 구했던 사실에 대한 조롱이 담기 다역설적 표현이다. '그들은 나를 날마다 찾으며, 나의 뜻을 몹시도 알고 싶다면서, 마치 옳은 일을 해 온 백성이기나 하듯이, 자기 신의 법을 어기지 않은 백성이기나 하듯이, 무엇이 옳은 법인지 나에게 묻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고 싶다면서'(공동 번역).
3절은 라마 차메누 베로 라이타 이니누 나페셰누 베로 테다 헨 베욤 초메켐 티메체우 헤페츠 베콜 아체베켐 티네고슈입니다.
사 58:3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느니라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58:3
본절은 이스라엘이 금식의 본래적 목적과 의의를 외면하고 오히려 현실상의 축복을 비는 수단으로, 단지 종교적 자랑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한 사실을 계속 책망하는 내용이다. 본래 금식은 회개와 성결을 위해 제정된 것으로서(느 9:1,2; 시 69:10), 철저한 회개를 통해 자신의 이기적인 뜻과 정욕을 억누르고 자기를 부인케 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편, 금식에 대한 언급은 이른 시기부터 보여진다(삼상 31:13; 삼하 12:11-23; 대하 20:3). 그러나 개인 금식이 경건의 표현으로서 대중화되고 정기적으로 공동 금식이 준행된 것은 포로기 이후의 일이다. 슥 8:19에는 정기 금식의 네 시기가 언급되어 있다. 그중 4월 9일의 금식은 예루살렘 함락을(왕하 25:3-21), 5월 10일의 금식은 성전 파괴를(렘 52:12,13), 7월 2일의 금식은 그달리야 살해를(왕하 25:23-25) 그리고 10월 10일의 금식은 예루살렘이 처음 공략된 것을 각각 기억하는 데에 애초의 목적이 있었다(J. Watts).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 그들의 영혼이 괴로움을 당했다고 자랑하였던 사실이 위선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들은 오히려 금식을 즐기고 있었다.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 여기 '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체브'는 매우 힘들고 고통이 따르는 노동, 땀, 산고 등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용어이며 또한 '시키는도다'에 해당하는 '나가스' 눈 '폭정을 가하다', '강제 징수하다'는 뜻이다. 칼 능동태 미완료를 사용하고 있다. 자신은 먹고 놀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계속해서 일을 하기를 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본 구절은 금식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유익을 챙기기 위해 그 종이나 일꾼에게 가혹한 일을 강요하는 악덕 주인을 고발하는 내용이 되겠다(느 5:1-5).
4절은 헨 레리브 우마차 타추무 우레하코트 베에게로프 레샤 로 타추무 카욤 레하쉐미아 바마롬 콜르켐입니다.
사 58:4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58:4
다투며 싸우며 - 물론 이스라엘 백성이 다투고 싸우는 것을 금식의 목적으로 삼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금식하는 중에조차 그러한 이욕(利慾)적인 혈기를 부릴 정도로, 그들은 금식의 목적 자체에 대해 무지하였음을 보여준다(Whybray). 금식한다는 단어가 춤이라는 동사다. 칼 능동태 미완료이다. 자신들은 계속해서 금식한다고 말하면서 다투고 싸우는 것을 말한다. 이런 모습을 하나님은 보기 싫어하신다.
5절은 하카제 이흐예 촘 에베하레후 욤 아노트 아담 나페쑈 할라코프 케아게몬 로쑈 베사크 바에페르 야치아 하라제 티크라 촘 베욤 라촌 라아도나이입니다.
사 58:5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58:5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 여기 '기뻐하는'의 원문적 의미는 '선택한'이다. 말하자면, 너희들이 취하는 형태의 금식은 하나님이 택하신 곧 하나님이 인정하고 명령하신 금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 재를 펴는 것 - 이는 극도의 겸손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러나 형식적 모양만 갖춘다고 하여 다된 걸로 생각하는 것은 위선일 뿐이다.
본절의 요지는 금식의 방법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금식의 정신이 결여되었다는 것이다. 금식의 참정신이 6절 이하에서 전개되는 바, 그것은 결국 경건의 모양과 능력을 동시에 갖추는 것이다(마 6:16-18).
6절은 할로 제 촘 에베하레후 파테아흐 하레추보트 레샤 하테르 아구도트 모타 베샬라흐 레추침 하페쉼 베콜 모타 테나테쿠입니다.
사58: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58:6
흉악의 결박(하레추보트) - 문자적인 뜻은 '악의 띠'로 불의하고 잔혹한 권위를 가지고 타인의 권리나 유익을 억압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결박을 풀어주는데 파타흐라는 동사다. 피엘 강조 능동을 사용하였다. 문을 열어준다는 의미다. 흉악의 결박에서 놓임을 받게 하는데 아무리 단단하게 묶여 있는 것도 반드시 풀어주는 것을 말한다.
명에의 줄을 끌러 주며 - 여기 '멍에'는 억압 혹은 강제적인 노동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용어로, 여기서도 그런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 여기 거론되고 있는 상대는 문자 그대로는 '상한 자'이며 폭력, 압제 등의 '부당한 대우를 받고 하는 자'이다. 그러나 이 사람의 실체를 결정적으로 밝혀주는 단서는 '자유케 하며'로 번역된 '하페쉼'이다. 이 용어는 한번 노예가 되었다가 자유를 얻은 자를 묘사할 때 주로 사용되는 용어이다(신 15:12; 욥 3:19 등). 이 단서에 근거할 때 본 구절이 서술하려는 존재는 의심의 여지없이 '노예'라고 볼 수 있다.
7절은 할로 파로스 라라에브 라헤메카 바아니임 메루딤 타비 바이트 키 티르에 아롬 베키시토 우미베사르카 로 티트알람입니다.
사 58:7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58:7
주린 자에게 ... 나눠 주며 - 이것은 한 아비가 그 자녀에게 그렇게 하듯이 가진 자가 그 소유를 필요로 하는 자에게 공급하는 것을 가리킨다. 대체로 이 행실은 신앙인의 필수적 의무로 간주되었는데, 고난의 사람 욥은 이러한 선행의 모범을 아름답게 서술한 바 있다(욥 31:16-22).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 - 원문 직역은 '너 자신의 살(육체)로부터 너 자신을 숨기지 않는 것'이다. 여기 '살(육신)'은 '바사르'로서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를 뼈 중의 뼈 그리고 '살 중의 살'이라 칭할 때(창 2:23), 그리고 라반이 야곱을 그의 '골육'이라 칭할 때(창 29:14), 각각 사용하던 용어이다.
그런 점을 고려할 때 본 용어는 혈육상 밀접한 관계에 있는 상대를 지칭하는 용어로 보면 되겠는데, 그런 의미에서 개역 성경의 번역 '골육'은 적절하다. 골육, 곧 친척에게서 자신을 숨기는 경우란 그 친척의 사회적 신분이 낮거나 재물이 없을 때 혹은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는 일을 꺼려할 때이다.
참 신앙인이라면 골육 친척이 어떤 신분이나 처지에 있든 간에 친절과 애정을 갖고 그와 친교를 나누고 그의 필요를 공급하는 데 힘을 써야 함이 마땅하다. 성경은 친척, 곧 가족을 돌보지 않는 믿는 자는 믿지 않는 자보다 더 약하다고 경고하고 있다(딤전 5:8).
8절은 아즈 이바카 카샤하르 오레카 바아구코트카 메헤라 티체마흐 베할라크 레파네이카 치드케카 케보드 아도나이 야아세페카입니다.
사 58:8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58:8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 올바른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서 금식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풍성한 번영의 축복을 주신다는 뜻이다. 성경에서 '번영'은 흔히 아침에 비치는 찬란한 빛에 비유되고 있다(욥 11:17). 바카라는 동사이며 닢알 수동태 미완료를 사용했다. 올바른 금식은 새벽같이 빛이 비치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한다. 미완료는 계속해서 빛과 영광이 퍼져나가게 될 것을 말한다. 금식을 하면서 주린 자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고 빈민 자를 집에 들이고 헐벗은 자를 입히면 이렇게 하나님이 해 주신다는 의미다.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 원문 직역은 '네 상처는 빨리 치료될 것이다'이다. 여기 '치료'의 본래 뜻은 상처를 치료할 때 사용되는 '긴 붕대'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오랫동안의 정신적, 육체적 상처, 곧 전인적인 상처를 전제로 한다고 볼 수 있다.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 말하자면 하나님의 율법에의 순응은 행복, 번영, 평화의 길로 이끄는 선봉장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뜻이다.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 이것은 이스라엘과 그들을 분리하기 위하여 그 사이를 가로막고 섰었던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연상케 한다(출 14:19, 20). 아사프라는 동사이다. 칼 능동태 미완료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계속해서 호위하는 것을 말한다. 아사프는 저장하다는 뜻이다. 항상 여호와의 영광이 함께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9절은 아즈 티크라 바아도나이 야아네 테샤바 베요마르 힌네니 임 타시르 미토케카 모타 쉘라흐 에체바 베다베르 아벤입니다.
사 58: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58:9
손가락질 - 문자적인 뜻은 '손가락을 뻗치는 것'이다. 이것은 남을 경멸하고 조롱하기 위하여 손가락질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법적 기소(起訴)를 암시하는 말로 쓰였다고 볼 수도 있겠다(Whybray).
허망할 말(다베르 아웬) - 이는 무(無), 헛됨, 텅 빈 것(41:29; 슥 10:2), 거짓, 속임수(시 36:4; 잠 17:4), 무가치한 것, 사악함 , 죄악(1:13; 욥 36:21) 등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용어인데, 결국 여기서는 당시 사회에 만연하였던 온갖 종류의 거짓, 거친 행동 그리고 불의한 언사 등을 의미하는 것 같다.
네가 부를 짖을 때에는 - 샤바라는 동사를 사용했다. 소리 높여 부르짖는 것을 말한다. 피엘 강조 능동 미완료를 사용했다. 이것은 보통 크기의 부르짖음이 아니다. 온 힘을 다해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겠다는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금식을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을 하고 부르짖으면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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