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원문 설교강해 자료

[이사야 히브리어 설교] 올리브(감람) 나무의 숨겨진 구속사(사 11:1)

르호봇 2021. 10. 31. 19:43
반응형

이사야 선지자는 이새의 뿌리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난다고 예언했습니다. 이새의 뿌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나무는 올리브 나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올리브 나무인 감람나무에 숨겨진 구속사적 의미를 파헤쳐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시간은 올리브 나무에 숨겨진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감람(올리브) 나무’ זית(자이트 2132) ελαια(엘라이아 1636)

 

올리브 나무는 수명이 길어서 현재 이스라엘의 겟세마네에 가면 수명이 2000년이나 된 올리브 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올리브 나무를 생각하면 생명력이 긴 나무이기 때문에 올리브 나무는 영원함과 인내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생명력 있게 살아가기 때문에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끊어지지 않고 이 땅에 탄생하실 것을 예표 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나무가 올리브 나무입니다.

올리브 나무는 심은지 40년이 지나야 열매에서 좋은 올리브기름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올리브 나무는 본체를 잘라버려도 잘린 나무에서 다시 싹이 나와 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생명력이 강한 나무가 올리브 나무입니다. 또한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견디면서 살아가는 나무입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탄생부터 고통과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환경 자체가 당나귀 구유에서 태어나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며 태어나서도 헤롯이 죽이려고 하여 결국 애굽으로 도망을 가셔야 하는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생명력 있게 끝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위해 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부활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되셨습니다. 이것이 올리브 나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입니다.

 

올리브 나무의 특징은 생명력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습니다. 식물들에게 최대의 적은 메뚜기 떼입니다. 메뚜기 떼가 지나가면 모든 잎은 초토화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올리브 나무는 메뚜기 떼가 공격을 해 오면 특수한 화학물질을 발산하여 메뚜기 떼가 공격하지 못하도록 방어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냄새가 다른 올리브 나무에게 전달이 되어 다른 올리브 나무도 메뚜기 떼가 공격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올리브 나무도 메뚜기 떼로부터 공격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희생하심으로 선택받은 백성들이 죄를 짓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메뚜기 떼와 같은 사탄들이 공격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구원받은 백성들에게는 절대 공격할 수 없는 강력한 방어 무기를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성령에 이끌리어 40일 동안 사탄의 시험에서 모두 승리하셨기 때문에 구원받은 백성들에게는 이런 사탄의 시험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올리브 나무가 길게 생명을 유지하는 것처럼 영원한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올리브 나무는 신약에 탄생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1절 베아챠 호테르 미게자 이솨이 베네체르 미솨라솨이브 이페레

사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500년 전부터 예언하시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은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오고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와서 구원의 결실을 맺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새’라는 단어는 (이샤이 3448) 이새, 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יש(예쉬 3426) 뛰어나다, 보내다, 수고하다, 감추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새의 줄기에서 나오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입니다. 이 속에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수고하시고 고난당하실 예수님을 감추어 두신 것입니다. 아무나 이새의 뿌리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구원의 속죄를 이루실 예수님은 영육으로 뛰어나신 분입니다. 유일무이(唯一無二) 하신 분인데 육적으로는 성령으로 잉태하셨기 때문에 원죄가 없으시며 영적으로는 부활되셔서 첫 열매가 되어주신 분입니다. 바로 이런 예수님을 하나님께서는 이새의 뿌리를 통하여 보내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한 싹이’라는 단어는 (호테르 2415 NMS 명사, 남성, 단수) 막대기,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חיי(하야이 2425) 살아있다, 생명을 보존하다, 살리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올리브 나무에서 나온 한 싹은 바로 목자들이 가지고 다니는 막대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막대기는 올리브 나무의 가지를 가지고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가지 앞쪽이 두툼하고 뒤로 갈수록 가늘게 됩니다. 두툼한 곳이 무겁기 때문에 목자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만약에 이것이 없다면 자신과 양을 보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목자가 필수 품목으로 가지고 다니는 것이 호테르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곰이나 사자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보통 목자들은 양들을 보호하거나 길을 인도할 때에 사용했습니다. 호테르를 던져서 양들이 가야 할 길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막대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힘과 권능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올리브나무의 가지로 만든 막대기처럼 나를 사탄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생명을 보존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죽었던 나를 십자가의 능력으로 살려주시고 이 생명이 존속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천국의 길을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막대기와 같은 분으로서 항상 지켜주시고 보호하여 주시며 생명을 보존케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님을 내가 믿고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라는 단어는 (네체르 5342 NMS 명사, 남성, 단수) 가지, 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נצר(나차르 5341) 새롭다, 신선하다, 지키다, 감찰하다, 간직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올리브 나무의 가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가지는 올리브나무의 뿌리에서 원을 그리면서 자라나게 됩니다. 여기에서 올라온 가지를 몇 개만 남겨두고 잘라서 목자의 지팡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막대기는 허리에 찼지만 지팡이는 목자들이 손에 들고 다니면서 양들을 인도할 때 사용했습니다. 또한 지팡이는 목자가 양들을 인도할 때에 위험한 곳에서 안전한 곳으로 인도할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팡이로 물과 수렁의 깊이를 재면서 양들이 지나갈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렇다면 목자가 가지고 다니는 지팡이도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양과 같은 나를 이 세상의 위험한 곳에서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영육으로 항상 감찰하시고 새로운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허락하여 주셔서 내 마음속에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간직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항상 신선한 영적인 복음의 꼴로 먹여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막대기와 지팡이로 이 땅에서 치리 하여 주시고 사탄의 무리들로부터 보호해 주시는 분입니다.

 

이 말씀이 신약에서는 어떻게 성취가 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성장하시면서 성취가 되고 있습니다.

23절 카이 엘돈 카토케센 에이스 폴린 레고메넨 나자레트 호포스 플레로데 토 레덴 디아 톤 프로페톤 호티 나조라이오스 클레데세타이

마2:23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예수님께서는 애굽에서 올라오셔서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시게 됩니다. 이것은 선지자 이사야가 말씀한 대로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서입니다. 나사렛은 갈릴리의 한 성읍으로 예루살렘 북쪽 약 90km 지점에 위치해있으며 비옥하지 못한 모래 땅, 주위의 산들로 인해 경제적으로도 빈약한 성읍이었습니다. 또한 나사렛은 유대인들로부터 경멸받았던 장소입니다. 올리브나무가 이런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경멸받는 나사렛에서 요셉의 아들로 성장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나다나엘도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느냐고 경멸했던 것입니다.

 

나사렛’이라는 단어는 (나체리 5341) 나사렛입니다. 이 단어는 (나차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나사렛이라는 동네는 올리브나무의 가지에서 나올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육적으로 고통스럽고 힘든 사생애의 기간을 나사렛에서 보내시면서 공생애의 기간을 준비하시는 시골 마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적으로 막대기와 지팡이가 되어 주셔서 영원한 속죄를 십자가에서 이루어주셨고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신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올리브나무에 숨겨져 있는 의도입니다.

 

올리브나무는 고통당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32절 카이 엘콘타이 에이스 코리온 후 토 오노마 게드세마네 카이 레게이 토이스 마데타이스 아우투 카디사테 호데 헤오스 프로슈크소마이

33절 카이 톤 이아코본 카이 이오안넨 메드 헤아우투 카이 에륵사토 에크담베이스다이 카이 아데모네인

34절 카이 레게이 아우토이스 페릴뤼포스 에스틴 헤 프쉬케 무 헤오스 다나투 메이나테 호데 카이 그레고레이테

35절 카이 프로엘돈 미크론 에페센 에피 테스 게스 카이 프로세위케토 히나 에이 뒤나톤 에스틴 파렐데 아프 아우투 헤 호라

36절 카이 엘레겐 압바 호 파테르 판타 뒤나타 소이 파레넹케 토 포테리온 아프 에무 투토 알르 우 티 에고 델로 알라 티 쉬

막14:32-36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라는 곳에 도착하셔서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시려고 올라가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시는데 심히 놀라 슬퍼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여기서 깨어 주님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에게 이 잔을 옮기시는데 자신의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님이 왜 겟세마네에 가셔서 마지막 십자가 사건을 놓고 기도하시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짊어지기 싫어서 예수님이 이렇게 기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민을 하시면서 기도하시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외면당하시는 것이 유대인들에게는 가장 큰 고통이요, 슬픔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외면당하시고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이 고통이 겟세마네에서 있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겟세마네에는 엄청나게 많은 올리브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장소입니다. 이 장소에서 예수님은 번뇌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영적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신약 히브리어 성경에 ‘겟세마네(가트 셰마네이) 겟세마네입니다. 이 단어는 (가트 1660) 포도즙 틀, 이라는 뜻과 (셰멘 8081) 기름, 감람, 이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겟세마네는 올리브기름을 짜는 틀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영적 진리는 예수님은 십자가 사건을 위해 올리브가 즙 틀에 들어간 것처럼 고통 가운데 생명의 기름을 짜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이런 생명력 있는 고통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살아났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렇게 기도하고 있을 때에 제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외면당하고 있는데 육신이 피곤하여 잠을 자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고민하시고 기도하시는데 나는 영적인 잠을 자고 있지는 않습니까? 영적으로 깨어 주님과 함께 기도하기를 원하고 계시는데 나는 세상에 정신이 팔려 주님의 기도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에 그렇다면 빨리 영적으로 깨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겟세마네에서 주님과 함께 올리브 즙 틀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의 심정을 알 수가 없습니다. 이제부터 겟세마네와 같은 주님의 십자가 고난의 틀 속에 나도 들어가 주님과 함께 고난에 동참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올리브기름을 만들기 위해서는 올리브 즙 틀에 올리브가 들어가야 합니다. 올리브기름을 짜기 위해서는 먼저 올리브 열매를 부셔 뜨려야 합니다. 이렇게 부서진 올리브 열매를 즙 틀 속에 넣고 무거운 추로 위에서 눌러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올리브기름을 짜는데도 순서가 있습니다.

 

맨 처음에 기름을 짜기 위해서는 가장 가벼운 돌을 올려놓게 됩니다. 이렇게 가벼운 추를 올려놓았는데도 나오는 기름은 최상급 올리브기름입니다. 이 기름은 성전에서 사용하던 기름입니다.

20절 베아타 테차베 에트 베네 이스라엘 베이케후 엘레이카 쎄멘 자이트 자크 카티트 라마오르 레하알로트 네르 타미드

출27:20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올리브기름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사용하라고 명령하시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기름이 바로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이 고뇌하시면서 기도하시는 모습으로 만들어진 기름이라는 것을 의미해 주고 있습니다.

 

’이라는 단어는 (카티드 3795) 찢어낸, 빻아낸,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카타트 3807) 부수다, 분쇄하다, 산산이 부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금 등대에서 빛이 나오기 위해서는 올리브 열매가 완전히 부수어져야 합니다. 산산이 부수어져서 분쇄되어 가루가 되듯이 될 때에 순결한 기름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에서 가룟 유다에게 팔려 고난당하시고 죽으심으로 주님의 몸이 십자가에서 완전히 산산 조각나듯이 고통을 당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빛이 발산된 것을 의미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올리브 열매는 빻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엄청난 고통이 올리브기름에게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이와 같이 겟세마네에서 고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도 똑같이 겟세마네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주님의 고통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영적으로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영적으로 잠을 자고 있으면 겟세마네에 있다 하더라도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교회에 있지만 어떤 사람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여 구원의 기쁨을 누리지만 어떤 사람은 주님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지 못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순수한 기름을’이라는 단어는 (자크 2134) 순결한, 순수한, 청결한, 이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자카크 2141) 순결하다, 깨끗하다, 빛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수하고 깨끗한 올리브기름을 성막으로 가져오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죄가 전혀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성막에서 금 등대를 통하여 깨끗한 빛이 나가서 구원받은 백성들을 죄에서 깨끗하게 하고 순결하게 만들어 빛나는 존재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된 자가 누구입니까? 신약에 삭개오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세리 장으로서 죄인입니다.

2절 카이 이두 아네르 오노마티 칼루메노스 자크카이오스 카이 아우토스 엔 아르키텔로네스 카이 후토스 엔 플루시오스

눅19: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삭개오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죄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예수님께서는 여리고로 만나주시러 찾아오는 것입니다. 죄인이 예수님을 만나니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삭개오의 이름이 (자카크 2141) 순결하다, 깨끗하다, 빛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삭개오는 죄인인데 이미 하나님께 만세전에 선택함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죄가 깨끗하게 사라지고 영적으로 순결한 자가 되어 그의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빛이 나는 자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모든 유대인들은 죄인이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이 사람을 찾아가서 구원의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순수한 올리브기름을 통해서 메노라의 금 등대에서 빛이 나감으로 삭개오와 같은 죄인들이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중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첫 번째 성막이나 성전의 기름으로 사용하는 올리브기름이 나오면 더 무거운 추를 올려 기름을 짜게 됩니다. 이렇게 나온 기름은 가정에서 빵을 찍어 먹는 기름으로 사용했습니다. 올리브기름은 중풍이나 심근경색과 같은 혈관에 관한 병을 억제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와 같은 발병률이 대체적으로 낮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7절 바타보 바타게드 레이쉬 하엘로힘 바요메르 레키 미케리 에트 하쎄멘 베샬르미 에트 니쉐예키 베아트 베네키 티흐이 바노타르

왕하4:7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말하니 그가 이르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

 

엘리사는 선지 생도의 아내에게 기적을 베풀어 기름을 주게 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이렇게 올리브기름이 생활필수품이었기 때문에 항상 음식을 먹을 때에 기름과 함께 먹게 됩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하나님의 기적으로 얻은 기름을 팔아서 빚을 갚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올리브기름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것을 팔아 빚을 갚고 두 아들과 생활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더 무거운 추를 올려놓고 기름을 짜게 됩니다. 이 기름은 가정에서 등불을 켜는 데 사용하게 됩니다.

8절 하이 데 모라이 타이스 프로니모이스 에이폰 도테 헤민 에크 투 엘라이우 휘몬 호티 하이 람파데스 헤몬 스벤뉜타이

마25: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미련한 자들은 기름을 준비하지 않아서 신랑이 올 때에 기름이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슬기로운 자들은 기름을 준비하여 신랑이 올 때에 등불이 꺼지지 않고 신랑을 맞이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신약시대에 올리브기름을 가정에서 활용했던 것입니다. 미련한 자들은 올리브기름을 준비하지 않아서 신랑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의 기름을 준비하지 않아서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기름은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가 없습니다. 믿음은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나의 믿음으로 나만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믿음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부모나 형제나 자녀에게 나누어 주어서 구원을 얻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는 믿음의 기름을 확보해야 합니다. 이 기름은 바로 구원에 대한 확신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입니다. 구원은 한 번 받으면 절대 취소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다면 이것은 믿음의 기름을 준비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다면 이 사람은 미련한 처녀처럼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거운 추를 올려 기름을 짜게 됩니다. 이 기름은 잿물을 부어 몸을 씻는 비누로 만들어 활용했습니다. 이렇게 올리브 열매는 다 방면에 버릴 것이 없는 아주 중요한 열매입니다. 올리브기름을 짜고 난 찌꺼기도 버리는 법이 없습니다. 이 찌꺼기는 즙 틀을 빌려준 주인에게 사용료로 주었습니다. 이렇게 올리브 열매는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여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해주는 식물입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신 영적인 의미를 우리가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올리브나무가 많은 이곳에서 올리브기름을 얻기 위하여 열매가 짓이겨져 즙 틀에 들어가서 무거운 추로 고통을 당할 때에 순수한 기름이 나오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의 즙 틀에 들어가셔서 영육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와 같은 고통의 순간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44절 카이 게노메노스 엔 아고니아 에크테네스테론 프로세위케토 에게네토 데 호 히드로스 아우투 호세이 드롬보이 하이마토스 카타바이논테스 에피 텐 겐

눅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에서 힘쓰고 애쓰시면서 더욱 간절히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때에 땀이 땅에 떨어지는데 핏방울 같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 히브리어 성경에 ‘애써’라는 단어는 (헤벨리 마베트)인데 이 단어는(헤벨 2256) 괴로움, 고통, 슬픔, 이라는 뜻과 (마베트 4194) 죽음, 사망, 주검, 이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그럼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이미 죽음과 같은 고통 속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는 고통보다 하나님 아버지에게 버림받는 고통이 더 컸으며 이것이 죽음과 같은 슬픔이었으며 괴로움이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 힘쓰고 애써서 기도하고 있지만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에 하나님은 묵묵부답(黙黙不答)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고통이 예수님은 더 큰 괴로움으로 부딪혔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자들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제자들은 육신이 피곤하여 주님과 함께 이와 같은 고통에 동참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들은 반드시 영적으로 깨어 주님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올리브기름의 찌꺼기까지도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해 준 것처럼 예수님은 이와 같이 십자가에서 모든 땀과 피를 쏟아주시고 주님의 몸까지 나에게 주셨습니다. 이런 고통이 없었다면 나는 절대 구원을 받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올리브 즙 틀 속에 들어가 계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부터 영적으로 깨어 주님이 나의 기도를 원하실 때에 언제든지 함께 기도할 수 있는 믿음과 신앙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올리브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11절 바타보 엘라이브 하요나 레에트 에레브 베힌네 알레 자이트 타라프 베피하 바예다 노아흐 키 칼루 하마임 메알 하아레츠

창8:11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줄어든 줄을 알았으며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시고 모두 쓸어버릴 때에 노아는 방주 안에서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방주가 아라랏 산에 멈추었고 물이 빠져나가고 있을 때에 노아는 비둘기를 날려 보내 이 비둘기가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물고 온 것을 보고 땅에 물이 줄어든 것을 감지했습니다.

’라는 단어는 (타라프 2965 AMS 형용사, 남성, 단수) 신선한, 새로운, 이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타라프 2963) 갈기갈기 찢기다, 끌려가다, 물어뜯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비둘기가 새 올리브나무 잎사귀를 물고 온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십자가에서 주님의 몸이 갈기갈기 찢겨 고난을 당하시고 율법주의자들인 유대인들에게 물어 뜯겨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고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삼일 만에 새롭고 신선한 영화의 몸으로 부활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비둘기가 물고 온 새 올리브 나뭇잎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잎사귀’라는 단어는 (알레 5929 NMSG 명사, 남성, 단수, 연계형) 잎사귀, 나뭇잎, 이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알라 5927) 높아지다, 승천하다, 초월하다, 기록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비둘기가 물고 온 올리브 잎사귀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은 영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분으로 하나님의 생명 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을 데리러 이 땅에 오실 주님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부활하신 주님과 같이 마지막 날에 부활하게 됩니다.

 

우리가 올리브나무를 통해서 영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올리브 잎사귀는 유대인들에게는 평화와 화해를 상징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리브나무는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인내하면서 자라는 식물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힘들고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끝내는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메뚜기 떼가 공격을 해도 자신은 피해를 볼 수 있지만 화학물질을 발산하여 다른 나무들은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나무입니다.

 

이와 같이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을 받은 백성이라면 사탄의 공격이 왔을 때에 다른 사람들에게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여 사탄으로부터 방어하고 공격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순교의 삶입니다. 성도가 자신만 살면 된다고 하면서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통해서 구원의 은혜를 받고 주님의 품 안으로 들어오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올리브나무는 생명력이 긴 것처럼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영원한 죽음에서 살아나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나에게는 절대 영원한 생명이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이 올리브 산인 겟세마네에서 고통을 당하시면서 기도하심으로 인하여 내가 살아난 것입니다. 그래서 올리브나무는 영원함과 인내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올리브나무는 많은 열매를 맺어 자신을 헌신합니다. 즙 틀에 들어가 모든 기름을 주고 나머지 찌꺼기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헌신하는 것이 올리브입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았다면 하나님을 위하여, 주님을 위하여, 형제를 위하여, 헌신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교회에서 헌신하면서 나를 나타내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헌신의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나의 신앙을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들은 올리브나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헌신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니엘 1장 히브리어 설교말씀] 다니엘의 뜻을 정한 신앙(단 1:8-21)

 

[다니엘 1장 히브리어 설교말씀] 다니엘의 뜻을 정한 신앙(단 1:8-21)

다니엘과 세 친구는 바벨론에 끌려 와서 이름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이름에서 우상을 섬기는 이름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나라를 잃은 슬픔이며 서러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rhb-bible.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