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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히브리어 설교문]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온 자(느 13:1-3)

르호봇 2021. 10. 26.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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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있습니다. 그 책에 기록하기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선택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지 않은 민족이기 때문에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율법주의 신앙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만이 천국의 총회에 들어올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온 자(느 13:1-3)

 

느헤미야는 먼 타국인 페르시아에서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 아파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이 불탔다는 소식을 접하고 하나님께 금식하면서 슬퍼함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지킬 수 있는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이 불타니 이방 백성들이 함부로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예루살렘으로 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게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주변의 이방 백성들이 성벽을 건축하고 성문을 세우는데 방해를 했지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52일 만에 성벽을 완공했습니다. 성벽을 완공한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성벽을 봉헌하고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렸습니다.

그다음에 느헤미야가 했던 일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개혁입니다. 현재 예루살렘은 혼합된 신앙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방인들과 통혼하여 우상과 여호와 하나님을 함께 섬기고 있었습니다. 온전한 여호와의 신앙은 사라지고 세상의 우상도 받아들여 이방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던 때입니다. 현재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율법주의와 복음이 함께 섞여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가 복음을 전한다고 하지만 율법의 의를 전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혼합된 신앙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런 신앙은 하나님이 토해 버리는 신앙이 됩니다. 지금은 인간적인 생각으로 성경을 해석하여 복음과 율법을 함께 전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얻는데 믿음으로 얻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행위도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오직 믿음으로 만이 구원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들은 마지막 때를 살아가면서 혼합된 신앙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15절 오이다 수 타 에르가 호티 우테 프쉬크로스 에이 우테 제스토스 오펠론 프쉬크로스 에이에스 에 제스토스

16절 후토스 호티 클리아로스 에이 카이 우테 프쉬크로스 우테 제스토스 멜로 세 에메사이 에크 투 스토마토스 무

계3:15-16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하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으니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고 주님은 말씀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겠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네가 복음에 굳건히 서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나서 행위를 주장하면서 행위를 해야 만이 구원이 있다고 말하며 그렇지 않으면 구원이 취소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런 신앙을 버리라고 주님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에 굳건히 서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우리가 신앙을 세워야 합니다. 율법주의에 빠지면 안 됩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방인들과 통혼하면서 우상을 섬기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종교 개혁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말씀으로 개혁하기로 마음을 먹고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1절 바욤 하후 니크라 베세페르 모쎄 베오즈네 하암 베니므차 카투브 보 아쎄르 로 야보 암모니 우모아비 비케할 하엘로힘 아드 올람

느13:1 그 날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는데 그 책에 기록하기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느헤미야는 성벽을 봉헌하면서 그날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율법 책에는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모압과 암몬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들입니다. 아브라함과 연관이 있는 족속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들은 절대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낭독하여’라는 단어는 (카라 7121 VNPPMS 동사, 닢알(수동태), 분사수동, 남성, 단수) 소환하다, 선포하다, 큰 소리로 읽다, 라는 뜻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사람들은 70년 동안 율법의 말씀을 접하지를 못했습니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모두 바벨론으로 끌려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니 타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몰라서 그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지한 것도 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몰라서 망하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소환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큰 소리로 율법의 말씀을 읽으면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율법의 말씀을 낭독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말씀을 가르칠 수밖에 없는 환경과 상황에 있었고 하나님의 깊은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낭독했습니다. 그 이유가 닢알, 단순수동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이 시대에 느헤미야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직도 복음을 모르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싶은 강한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복음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영혼은 복음을 듣지 않으면 죽습니다.

 

느헤미야가 율법의 말씀을 낭독하면서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3절 로 야보 마므제르 비케할 아도나이 감 도르 아시리 로 야보 로 비케할 아도나이

신23: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나님은 율법의 말씀에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이들은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말씀을 인용하여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이 예루살렘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들이 함께 섞여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총회에’라는 단어는 (카할 6951) 모임, 집회, 회중, 이라는 뜻이며 קהל(카할 6950) 모으다, 소집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총회에 모압과 암몬 족속들은 영원히 소집되거나 집회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이지만 하나님은 이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공격했기 때문에 저주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신약의 개념에서 총회는 무엇입니까? 교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카할)이라는 단어가 신약에서는 교회의 단어인 εκκλησια(에클레시아 1577)이기 때문입니다. 암몬과 모압과 같은 자들은 교회에서 율법에 빠진 자들을 상징합니다.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들인 것처럼 율법주의자들도 교회 안에는 들어오지만 천국에는 영원히 들어가지 못합니다. 우리들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모압과 암몬 족속들처럼 율법의 의에 빠진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신앙생활을 한다면 하나님과는 전혀 무관한 이방인들과 같습니다.

2절 키 로 키드무 에트 베네 이스라엘 바레헴 우바마임 바이세코르 알라이브 에트 빌암 레칼렐로 바야하포크 엘로헤누 하켈랄라 리베라카

느13:2 이는 그들이 양식과 물로 이스라엘 자손을 영접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그 저주를 돌이켜 복이 되게 하셨다 하였는지라

 

느헤미야는 계속해서 율법의 말씀을 낭독합니다. 모압과 암몬 족속들이 양식과 물로 이스라엘 자손을 영접하지 않고 도리어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저주하면 하나님은 그 저주를 도리어 축복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입니다.

 

영접하지’라는 단어는 (카담, 6923 VPACZP 동사, 피엘(강조능동), 완료, 공성, 3인칭, 복수) 만나다, 대면하다, 이르다, 라는 뜻입니다. 모압과 암몬 족속들은 이스라엘과 형제지간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지만 아들과 같이 생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에 있는데 이들은 양식과 물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돈을 주고 사 먹으려고 했지만 이들은 대접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발람을 불러 저주를 하려고 했습니다.

 

이들은 같은 형제 족속임에도 불구하고 광야에서 죽도록 물과 양식을 주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화친을 하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저주하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피엘, 강조능동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절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물과 양식을 하나도 주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완료 시제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교회 안에서 모압과 암몬 족속들처럼 형제를 공격하고 저주하면 안 됩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과 권력을 가지고 광야에서 힘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한 것처럼 공격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약자인 자들을 도와주기 원하고 주님은 사회적 약자들을 지켜주기를 원합니다. 율법의 의로 복음을 가진 자들을 핍박하고 괴롭히면 하나님은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합니다. 우리들은 영원한 진리의 복음을 가지고 주님과 함께 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와야 합니다.

 

저주하게 하였음이라’라는 단어는 (칼랄 7043 P.VPNG.MZS 전치사. 동사, 피엘(강조능동), 부정사연계형. 남성, 3인칭, 단수) 하찮다, 보잘것없다, 가볍다, 라는 뜻입니다. 암몬과 모압 족속들은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발람을 불러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라고 뇌물을 주었습니다. 같은 형제 족속들에게는 물과 양식을 주지 않고 발람에게는 뇌물을 주어 저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레)라는 ~을 위하여라는 전치사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는 저주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럼 저주가 무엇입니까? 남을 자신보다 하찮게 보는 것이 저주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다른 사람을 보면서 속으로 나보다 못난 것이 까분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것도 저주한 것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는데 이 말씀을 가볍게 보는 것도 저주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너무나 하찮게 보았고 예수님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저주한 것과 같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따르지 않고 거짓된 발람의 길을 따라가는 것도 주님을 저주한 것과 같습니다. 이런 자들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14절 알르 에코 카타 수 올리가 호티 에케이스 에케이 크라툰타스 텐 디다켄 발라암 호스 에디다스켄 엔 토 발라크 발레인 스칸달론 에노피온 톤 휘온 이스라엘 파게인 에이돌로뒤타 카이 포르뉴사이

계2: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발람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만들고 하나님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저주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현재 한국교회가 버가모 교회처럼 발람의 우상의 제물을 먹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 복음은 사라지고 율법의 우상의 제물만 먹는 교회가 되면 교회는 망하게 됩니다. 율법주의자들의 교회가 더 흥왕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죽은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이 넘쳐나야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3절 바예히 케쇼므암 에트 하토라 바야베딜루 콜 에레브 미이스라엘

느13:3 백성이 이 율법을 듣고 곧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모두 분리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율법의 말씀을 느헤미야로부터 듣고 자신들과 섞여 사는 자들을 모두 분리시켰습니다. 개혁의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성도들의 마음을 변화시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섞여 있는 무리가 무엇일까요? 암몬과 모압의 족속들과 같은 거짓된 우상들이 무엇인지 우리는 생각하고 마음에서 분리해야 합니다.

 

섞인 무리를’이라는 단어는 (에레브 6154) 혼합된 무리, , 라는 뜻이며 ערב(아라브 6148) 보증하다, 저당 잡히다, 교환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항상 이스라엘에 섞인 무리가 문제였습니다. 섞인 무리들은 인생을 저당 잡아 놓고 약점을 이용하여 인생을 망가지게 합니다. 거짓 복음을 소유한 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교리를 교환하여 나누어 가지자고 합니다. 이런 자들에게 잡히면 영혼이 망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도 잡족들이 있었습니다.

38절 베감 에레브 라브 알라 이탐 베촌 우바카르 미크네 카베드 메오드

출12:38 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

 

수많은 잡족들이 이스라엘에 섞여서 광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불평불만을 토로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물들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에서 ‘잡족과’라는 단어가 (에레브 6154)입니다. 우리는 현재 무엇과 섞여 살고 있습니까? 현재 교회에 잡족들이 들어왔다면 우리는 그 잡족들을 분리시켜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사상의 잡족들이 내 안에 들어왔다면 이 시간 우리는 완전하게 분리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축복하기 전에 잡족과 분리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분리하였느니라’라는 단어는 (바달 914 CW.VHIMZP 와우접속사. 동사, 히필(사역능동), 미완료, 남성, 3인칭, 복수) 나누다, 분리하다, 구별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느헤미야의 율법 낭독을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70년 동안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현재 모압과 암몬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율법의 말씀을 듣고 나니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큰 죄라는 것을 깨닫고 즉시 이들이 섞여 사는 무리들을 분리시키고 그들과 구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스스로 이방 사람들과 구별하려고 하고 자신의 집에서도 분리시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이유가 히필, 사역능동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이 들어가 마음에 변화를 받아 즉시 행동에 옮긴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이 시간 마음속에 있는 잡족의 생각들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율법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우상을 의지했던 것들을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어둠과 결별해야 합니다.

4절 바야르 엘로힘 에트 하오르 키 토브 바야베델 엘로힘 벤 하오르 우벤 하호쎄크

창1:4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빛이 있으라고 했습니다. 이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이 빛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의미합니다. 이 빛이 들어오니 빛과 어둠이 나누어지게 됩니다. 여기에서 ‘나누사’라는 단어가 (바달 914)입니다.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내 안에 들어오면 어둠은 사라지게 됩니다.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온 자들은 빛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창세전에 그리스도와 함께 있었던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 우리는 교회에서 잡족들을 몰아내고 내 마음에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짓된 잡족들을 몰아내야 합니다. 다시는 이들과 함께 손을 잡고 일을 해서도 안 됩니다. 율법의 행위의 의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과 분리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다른 어떤 것과도 타협할 수 없습니다. 복음은 세상 것과 타협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부터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온 저와 여러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만 생각하고 의만 전파하고 의만 나타내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무엘상 히브리어 설교말씀] 벧세메스로 향하는 암소의 숨겨진 구속사(삼상 6:10-16)

 

[사무엘상 히브리어 설교말씀] 벧세메스로 향하는 암소의 숨겨진 구속사(삼상 6:10-16)

사무엘상에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법궤를 블레셋 민족에게 빼앗겼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블레셋 민족을 심판하셨습니다. 법궤가 가는 곳마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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