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사야 주석 강해 설교말씀 중에서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의 심판 예언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구원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습니다. 시내 광야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율법과 성막이라는 복음을 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기면 하나님이 심판하셔서 멸망시켜 버린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계약을 했음에도 불고하고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안식을 얻으니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섬긴 왕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남 유다도 마찬가지로 선왕이 나올 때는 여호와를 섬겼지만 악한 왕이 나올 때는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을 따랐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죄가 되어 하나님은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를 심판 하려고 합니다.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면 안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섬겨야 합니다.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의 심판 예언(사 1:1-31)
1-9절, 하나님을 거역한 백성
[1절]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 . . .
본문은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異像)이라”고 말한다. 이사야는 주전 740년부터 680년 사이에 남쪽 유다 나라에서 사역한 선지자이었다. 그는 신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선지자이며 다른 선지자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이 인용되었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도구로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전달하였다. 그들이 전한 내용은 모세의 율법과 일치하며 그 율법을 적용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전한 내용의 요지는 죄의 책망과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 또한 회복의 예언들이며 그 회복의 예언들 중에는 메시아 예언도 포함된다.
[2-3절]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 . . .
이사야는 말한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악 됨을 지적하셨고,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그 지적을 전달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배반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고 배려하고 양육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불효 막심하고 배은망덕한 자식같이 하나님을 거역했다. ‘거역하다’는 원어(파솨)는 ‘배반하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반한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수없이 많이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알지 못하였다. 그들이 하나님을 바로 알았더라면 하나님께 순종했을 것이다. 그들은 짐승보다도 못한 자들이었다. 소와 나귀가 그 정도 사랑을 받았다면 그것들은 주인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4-9절]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 . . .
이사야는 말한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이스라엘 백성은 범죄한 나라이며 허물 진 백성이며 행악의 종자이었고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렸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배이신데, 이스라엘 백성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모하고 귀히 여겨야 할 그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버렸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매를 맞으면서도 더욱 패역하였다. ‘패역하다’는 원어(사라)는 ‘거역하다, 변절하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은 배교하며 변절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하였고 패역했다. 그것은 인간 본성 속에 있는 치료 불가능한 죄성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17:9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말한다. ‘심히 부패했다’는 원어(아누쉬)는 ‘절망적이게 악하다’(KJV), ‘치료 불가능하다’(NIV)는 뜻이다.
이사야는 또 말한다.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같이 황무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같이, 원두밭의 상직 막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신 징벌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평안을 빼앗으셨다.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었다. 하나님의 징벌은 이스라엘의 높은 지도자들로부터 비천한 평민들까지 미쳤고, 그것은 육신적 질병과 정신적 피곤을 포함하였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치료와 회복의 처방을 주지 않으셨다. 그들은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중한 병에 걸렸으나 의사의 치료를 받지 못하고 적절하고 좋은 약의 처방을 받지 못한 환자와 같았다. 이스라엘 백성이 치료와 회복의 처방을 받지 못한 것 자체가 하나님의 징벌이었다. 또 이스라엘 땅은 황무하였고 성읍들은 불에 탔고 토지는 이방인에게 삼키웠다. 하나님의 징벌은 사회적, 경제적 재앙으로 임했다.
그러나 이러한 징벌 속에서도 하나님의 긍휼이 있었다.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같이, 원두밭(오이밭--KJV, NASB)의 상직 막[원두막]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그들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긍휼로 조금 남겨 두셨다. 이사야서에는 ‘남은 자,’ ‘남는 자,’ ‘남아 있는 자’ 등의 말이 약 13번 나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그를 배반하지 말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많이 받고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효 막심한 자식 같고 배은망덕한 자같이 하나님을 배반하였고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짐승보다 못한 자들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세상에서 가장 큰 보배이신 하나님을 버렸고 매를 맞으면서도 더욱 거역하며 변절하였다. 그것은 인간의 치료 불가능한 죄성을 증거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그를 배반하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징벌을 두려워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해 엄하게 징벌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육신적 건강과 정신적 평안을 빼앗으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치료와 회복의 처방을 주지 않으셨다. 그는 또 그들에게서 사회적 평안과 경제적 평안도 빼앗으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벌을 두려워하자.
셋째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말미암음을 알자. 하나님께서는 징벌 중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조금 남겨두셨다. 그것은 포도원의 망대 같고 오이밭의 원두막 같았다. 하나님께서 만일 조금 남겨두지 않으셨으면 이스라엘은 옛날 소돔과 고모라 성같이 완전히 멸망했을 것이다. 우리의 구원도 그러하다. 구원의 본질은 의(義)의 회복이다. 우리에게 의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메시아 곧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우리가 그를 믿음으로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셨다. 사도 바울은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말했다(롬 3:21-24).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아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과 그의 의(義)만 믿고 의지하자.
10-20절, 헛된 종교의식
[10절]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옛날 멸망당한 소돔의 관원들과 고모라의 백성과 다를 바 없었다. 옛날 소돔과 고모라는 물질적 풍요를 누렸던 성들이었지만, 심히 죄악되었고 불경건하고 음란했고 이웃 사랑이 없었다(창 13:13; 18:20; 19:1-13; 겔 16:49-50). 이와 같이,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경건한 도덕적 사회를 세우는 데 무관심하고 해이하고 안이하고 부도덕했던 자들이었다. 여호와께서는 이제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11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 . . .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불경건하고 부도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형식적인 종교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수히 많은 제물들을 하나님께 드렸다. 그들은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을 드렸고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드렸다. 오늘날 말로 하면, 그들은 하나님께 형식적인 예배들을 드렸고 헌금들을 바쳤다. 그러나 그런 예배와 그런 제물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였다.
[12절]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고 말씀하셨다. ‘밟는다’는 원어(라마스)는 ‘짓밟는다’는 뜻이다(BDB, NASB).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는 말씀은 형식적으로 성전을 드나들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을 짓밟고 멸시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속임수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며 하나님을 멸시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보이러 오라고 그들에게 요구한 적이 없으셨다.
[13절]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 . . .
하나님께서는 또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많은 제물들을 ‘헛된 제물’이라고 표현하셨다. 그것은 마음에 없는 것들, 즉 형식적인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제물들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분향과 월삭과 안식일과 정한 절기들의 모임들을 가증한 것이라고 표현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미워하셨다. 왜 그러하셨는가? 그것은 그들이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지 종교의식이 아니고 그들이 악을 떠나는 것이었다. 악을 버리지 않고 악을 행하면서 형식적인 종교의식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헛된 일이며 가증한 일이었다. 오늘날도 우리는 악을 버리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겨야 하며, 그렇지 않은 형식적 예배나 기도나 헌금, 형식적 예배회들과 기도회들은 헛된 일이며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이다.
[14절]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 . . .
하나님께서는 또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의 정기 집회들은 헛된 일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싫어하시는 일이며 그에게 무거운 짐이 되는 일이며 그가 지시기에 곤비한 일이었다. 그런 형식적 종교의식은 결코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를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우리는 제발 그런 예배, 그런 헌금, 그런 기도, 그런 찬양은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려는 자는 참된 경건과 순종심으로 그를 섬겨야 한다.
[15절]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는 응답을 받을 때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하는 기도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많이 기도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들의 기도는 왜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이었는가? 그것은 그들의 손에 피가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손에 가득한 피는 살인의 피이며 미움의 피이었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성경은 말한다(요일 3:15). 그들에게 미움과 살인이 가득한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겠는가?
[16-17절]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 . . .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대책을 가르쳐주셨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그 대책은 한마디로 회개하라는 것이다. 모든 악을 버리고 선과 의를 실천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고 고아와 과부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에서 표현된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은 단순하고 분명하다. 그것은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 구주를 믿고 착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예수 믿고 구원받고 의와 선과 사랑을 실천하는 것, 그것이 성경의 요점이다. 우리는 악을 버리고 의와 선을 행하는가?
[18-20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 . .
여호와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많은 죄를 씻는 길은 한마디로 회개 곧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키는 것 곧 마음의 순종이다. 전에는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행하였지만, 이제는 그의 뜻에 즐거이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고 말했다(행 2:38).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우선, 우리는 형식적 교회생활을 하지 말자. 형식적 교회생활이란 악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모양만 가지고 교회에 드나드는 생활이다. 형식적인 교인에게는 진실한 마음, 진지한 마음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예배, 그런 기도, 그런 헌금, 그런 집회들을 헛되고 가증하며 그가 지기에 곤비한 짐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형식적 교회생활을 하지 말자. 하나님을 향한 진실함과 진지함이 없이, 하나님께서 악이라고 지적하신 바를 회개함이 없이, 하나님께 예배드리거나 기도하거나 헌금하거나 봉사하는 자가 되지 말자.
바른 교회생활은 악을 버리고 계명을 순종하면서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악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이다. 우리는 십계명에 어긋나는 모든 악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진실하게 섬기지 않은 악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부모를 공경치 않은 악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마음으로라도 남을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음란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도적질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거짓말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탐심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계명을 순종해야 한다. 계명의 내용은 의와 선이며 사랑이다. 우리는 범사에 올바르게 살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는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동정하고 돕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웃에 대해 선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21-31절, 예루살렘의 타락과 회복
[21-23절]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거기 충만하였고 의리가 그 가운데 거하였었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었도다.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도다.”
이사야는 예루살렘 성의 타락한 현실을 지적한다. 예루살렘 성은 본래 ‘신실하던 성읍’이었으나, 지금은 육신적 음행과 영적 음행 즉 우상숭배가 있다. 공평과 의가 충만했던 그 성은 지금 살인자들이 가득하다. 거기에는 의에 대한 이성과 양심의 판단이 없다. 경건의 변질은 도덕적 부패를 가져온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악을 떠난다(잠 16:6). 선지자는 또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고 말한다. 찌끼가 섞인 은이 가치가 떨어지며 물이 섞인 포도주가 맛이 떨어지듯이, 그 성은 무가치하여졌고 더 이상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주지 못하였다.
또 유다의 방백들은 패역하였다. ‘패역하다’는 원어(사라르)는 ‘완고하고 반항적이다’라는 뜻이다. 방백들 즉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향해 완고하고 반항적이었다. 그들은 도둑들을 처벌하기는커녕 도둑들과 단짝이 되었다. 그들은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좋아하였다. 그들은 고아나 과부 같은 소외 계층의 사람들의 억울한 송사를 정당하고 의롭게 처리하려 하지 않았다. 이처럼 당시 구약 교회는 교리적으로, 윤리적으로 심히 부패해 있었다.
[24-27절]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아비르)[권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케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수하겠으며 내가 또 나의 손을 네게 돌려 너의 찌끼를 온전히 청결하여 버리며 너의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내가 너의 사사들을 처음과 같이, 너의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칭함이 되리라 하셨나니 시온은 공평으로 구속(救贖)이 되고 그 귀정(歸正)한 자는 의로 구속이 되리라.”
선지자는 자기의 말과 하나님의 계시의 내용을 구별한다. 물론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감동 속에서 자신과 하나님을 동일시하며 말씀을 선포할 때도 있다. 이처럼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선포하는 자이었다. 이사야는 타락한 예루살렘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을 함께 전한다. 그것은 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의 마음을 함께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예루살렘 성을 징벌하시고 깨끗게 하시고 이전과 같이 회복시키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24, 25, 26절에서 ‘내가,’ ‘내가,’ ‘내가’라고 반복해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실 것이다. 심판과 구원이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자이시며 또한 구원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심판과 구원을 행하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는 것인가? 그는 악인들을 제거하심으로써 그렇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대적과 원수는 바벨론 사람들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중 악인들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유다를 포로로 삼은 바벨론 나라를 징벌하실 것이며 그것이 이스라엘의 회복의 기회가 될 것이지만, 그는 또한 이스라엘 중의 모든 악인들도 공의로 징벌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찌끼와 혼잡물을 온전히 제하여 버리실 것이며 그들의 지도자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시키실 것이다. 한 사회가 바르게 되려면 그 사회의 지식인들과 지도자들이 바르게 되어야 할 것이다. 천국에는 악인들이 없을 것이다. 참된 교회 안에도 드러나게 죄를 짓는 악인들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 후에, 예루살렘은 다시 경건하고 의로운 성이 될 것이다. 이것은 참 교회와 천국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죄인들은 회개하고 구원을 받을 것이다. 구원은 의의 회복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의로 사람을 구원하시고 의인 되게 하시며(롬 1:17; 3:21-26) 또 실제로 의와 거룩을 행케 하실 것이다. 구원받고 회복된 새 세계는 의의 세계가 될 것이다. 우리는 참된 교회와 천국에서 그것을 볼 것이다.
[28-31절]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 너희가 너희의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너희의 택한 동산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며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으리라.”
이사야는 악인들에 대한 심판을 말한다.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계명을 거슬러 행한 자들은 다 멸망할 것이다. 그들이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인해 부끄러움을 당하고 그들이 택한 동산으로 인해 수치를 당할 것이라는 말은 그들이 거기서 행했던 우상숭배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라는 뜻이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높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몸을 굽혀 행음하도다”라고 말했고(렘 2:20), 호세아는, “저희가 산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 위에서 분향하되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서 하니 이는 그 나무 그늘이 아름다움이라. 이러므로 너희 딸들이 행음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을 행하는도다”라고 말했다(호 4:13). 그들은 그 우상숭배 때문에 멸망할 것이다. 그들은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며 물 없는 동산 같을 것이다.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악인들은 물 없는 동산에 잎사귀가 마른 상수리나무같이 완전히 불타서 멸망할 것이다. 하나님의 철저한 공의의 심판은 다 이루어질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과거의 잘한 점을 자랑하지 말고 현재의 부족을 살피자. 예루살렘 성은 신실하고 공평이 충만하며 의가 있는 성이었고 은과 같이 가치가 있고 포도주같이 맛이 있고 즐거움을 주는 도시이었으나, 지금은 도덕적으로 타락하였고, 찌끼가 섞인 은 같고, 물이 섞여 맛이 떨어진 포도주같이 되었다. 과거의 잘한 것은 잘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현재가 어떠한지 물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현재의 상태와 부족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구주 하나님만 의지하자. 하나님의 옛 백성 이스라엘은 심히 부패하고 타락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들 가운데서 찌끼를 청결케 하고 그들을 회복시키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구주이시다! 그는 우리의 구원을 시작하시고 완성하시는 분이시다. 그는 실제로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받은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인 줄 바로 깨닫고, 사람을 자랑치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감사하고 찬송하며 항상 구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자.
셋째로, 우리는 실제로 거룩하고 의롭게 살자.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와 방향은 의와 거룩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를 이루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법적으로 이미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실제 삶에서도 의롭고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불경건하고 불의하고 불결한 자들은 결국 멸망하고 말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현실 속에서 실제로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가자.
[시편 1편 주석강해 설교말씀] 복 있는 사람(시편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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