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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히브리어 설교] 솔로몬 성전 건축과 교회 건축의 관계(왕상 6:7)

르호봇 2021. 6. 2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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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열왕기상 히브리어 설교 중에서 솔로몬 성전 건축과 교회 건축의 관계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고 했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건축을 할 수 있는 재료들을 준비했고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게 됩니다. 성전을 건축할 때 잡음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 교회를 건축할 때도 잡음이 없어야 합니다. 교회를 건축할 때 잡음이 나오기 시작하면 교회를 건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은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한 것을 통해서 교회 건축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이며 성도의 삶이 어떠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솔로몬 성전 건축과 교회 건축의 관계(왕상 6:7)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할 때에 모세를 통해서 가나안 땅에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영적 지도자로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유월절을 시작으로 가나안 땅까지 가는 대 여정을 시작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생활하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 것인지를 공부했습니다. 광야 1세대는 불순종함으로 광야에서 다 죽고 광야 2세대들이 여호수아가 영적 지도자로 세워진 가운데 인도함을 받아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왔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가나안의 신인 바알과 아세라를 더 신뢰하고 믿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주변에 있는 강대국을 통해서 채찍 삼아 고통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을 깨닫고 우상을 버리고 주님께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왔지만 여호와의 법궤는 아직 성막에 있습니다. 다윗은 이것을 가슴아파했습니다. 자신은 잘 건축된 왕궁에 거주하고 있는데 여호와의 법궤는 아직 천막에 있는 것이 속상했습니다. 그때에 다윗은 자신이 여호와의 성전을 짓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은 받았지만 너는 나를 위해 성전을 짓지 못하고 너의 아들이 지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지을 수 있는 모든 재료들을 준비했고 솔로몬이 성전을 짓게 됩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짓기 시작한 때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6절 바예히 비쉐모님 솨나 베아르바 메오트 솨나 레체트 베네 이스라엘 메에레츠 미츠라임 바솨나 호르비이트 베호데쉬 지브 후 하호데쉬 하셰니 리멜로크 쉘로모 알 이스라엘 바이벤 하바이트 라아도나이

왕상 6: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 년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성경은 기록하기를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480년이라고 말합니다.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4년 시브월(2)입니다.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왜 성전 건축한 날을 애굽 땅에서 나온 후부터 기록하고 있을까요? 이와 같이 기록한 영적 의미가 무엇일까요? 애굽에서는 노예 생활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했습니다. 여호와의 신을 섬기지도 못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인도하신 목적이 함께 하고 싶어서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천막에 여호와의 법궤는 있습니다. 천막은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전은 완전한 건물로 건축되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습니다. 애굽에서 죄악 가운데 나온 자들이 가나안 땅에서는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들도 애굽과 같은 원죄의 생활을 세상에서 했습니다. 죄악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상관없는 생활을 했고 바로와 같은 사탄의 통치를 받으면서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를 애굽과 같은 원죄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광야와 같은 교회에서 신앙과 믿음이 정착하지 못하고 여호와의 법궤가 천막에 있는 것처럼 방황하는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들어와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환경에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교회 생활을 하면서 구원의 확신을 갖고 나의 성전이 건축되었습니다. 원죄에서 해방되어 완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성전이 건축되어야 만이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새 예루살렘을 소망하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시작한 것을 통해서 나의 성전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성전을 건축해 나가야 할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7절 베하바이트 베히바노토 에벤 쉘레마 마사 니브나 우마카보트 베하가르젠 콜 켈리 바르젤 로 니쉐마 바바이트 베히바노토

왕상 6:7 이 성전은 건축할 때에 돌을 그 뜨는 곳에서 다듬고 가져다가 건축하였으므로 건축하는 동안에 성전 속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는데 돌을 그 뜨는 곳에서 다듬고 가져다가 건축하고 있습니다. 건축하는 동안에는 성전 속에서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데 잡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들도 교회를 건축할 때에 하나님의 소리가 아닌 인간의 소리들이 들려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생각과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소리가 아니면 나의 소리를 닫아야 합니다.

 

건축할 때에’라는 단어는 (바나 1129 P.VNNG.MZS 전치사. 동사, 닢알, 부정사연계형. 남성, 3인칭, 단수) 건축하다, 만들다, 세우다, 라는 뜻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있습니다. 이 성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임재해야 하는 곳이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고 세우기 위해서 많은 재료와, 물자들과, 인력들을 투입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ב() ~안에, 라는 전치사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성전을 건축할 동안에 그 안에 많은 물자와, 인력과, 재료들을 투자하여 하나님이 거주하실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우리들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많은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물질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맨 입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쉽게 교회를 떠나고 주님도 떠납니다. 하지만 나의 시간과, 봉사와, 물질을 투자한 사람은 쉽게 주님을 떠나지 못합니다. 나의 마음이 주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한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에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닢알, 수동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교회를 건축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를 건축하는 것은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교회를 건축하는데 동참하게 되었다면 큰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또한 나의 몸을 거룩한 성전으로 건축해 나가는 것도 나의 의지로 되지 않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인도와 감동이 있어야 만이 가능합니다. 이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무엇을 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아직도 주님의 사람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오는 소리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께서 나에게 힘을 주시고 주님이 허락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나의 몸 된 성전이 주님이 임하시는 거룩한 성전으로 세워져 나갈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 뜨는 곳에서’라는 단어는 (맛사 4551) 채석장, , 이라는 뜻이며 נסע(나사 5265) 운반하다, 옮겨 놓다, 빼내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면서 돌을 뜨는 장소인 채석장에서 돌을 떠다가 성전을 건축하는 곳에 운반하여 옮겨 놓게 했습니다. 채석장에서 돌을 다듬었기 때문에 먼지도 나지 않고 돌을 깨는 소리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럼 돌을 뜨는 곳이 주는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돌을 뜨는 곳은 신약에서는 십자가에 달리셔서 고통당하신 골고다를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골고다에서 채찍에 맞으시고 옆구리를 창에 찔리심으로 나의 모든 원죄와 자 범죄를 자신에게로 옮겨갔습니다. 나를 사망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운반하여 놓아주셨습니다. 전에는 원죄의 고통에서 죽음만 기다리던 자였는데 이제는 생명의 아들의 나라로 나를 빼내 주셨습니다. 이 돌이 성전의 머릿돌이 되기 위해서는 조각나야 합니다. 많은 정과 망치를 맞아야 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전이 건축됩니다. 율법주의자들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제사장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돌을 인정하지 않았고 버렸습니다.

11절 후토스 에스틴 호 리도스 호 엑수데네데이스 휘프 휘몬 톤 오이코도문톤 호 게노메노스 에이스 케팔렌 고니아스

4: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베드로가 대제사장 앞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할 때에 한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버렸습니다. 하지만 병자와, 죄인과, 세리와, 어부와, 창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여 머릿돌이 되었습니다. 이 시간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머릿돌이 되셔서 나를 주관하시고 나의 모든 원죄와 자 범죄를 가져가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시고 나의 모든 죄를 가져가시고 나를 하나님의 나라에 옮겨주셨습니다.

26절 마시게후 헤레브 벨리 타쿰 하니트 마사 베쉬르야

41:26 칼이 그에게 꽂혀도 소용이 없고 창이나 투창이나 화살촉도 꽂히지 못하는구나

 

성경에 채석장이라는 단어인 מסע(맛사)투창이라는 단어로도 번역이 되었습니다. 욥기 서에 나오는 투창이라는 단어가 מסע(맛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대못에 박히시고 옆구리를 창에 찔리셨습니다. 이런 고통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영원한 죽음에서 살아났습니다.

 

다듬고’라는 단어는 (샬렘 8003) 완전한, 완성한, 안전한, 이라는 뜻이며 שלם(샬람 7999) 성취하다, 갚아주다, 배상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서는 돌이 필요합니다. 돌을 뜨는 곳에서 석공들이 돌을 열심히 다듬었습니다. 돌 입장에서는 많은 고통이 따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할수록 나는 구원이 완성되고 완전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 한 분만으로 구원은 만족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안에 있으면 나의 영혼은 안전합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모든 원죄의 고통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돌을 계속해서 다듬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오전 9시에 달리셔서 오후 3시에 운명하시기까지 고통당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통은 선택받은 자들의 죄를 대신 갚아주시고 배상하신 것을 말합니다. 내가 원죄가 사라진 것은 주님이 나의 원죄를 갚아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으로 주님은 내가 모든 것을 이루었다 선언하시고 십자가에서 선택받은 자들의 구원을 성취하셨습니다. 이것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서 돌을 뜨는 곳에서 돌을 다듬은 것을 의미합니다.

 

방망이나’라는 단어는 (마카바 4717) 방망이, 망치, 라는 뜻이며 נקב(나카브 5344) 찔리다, 저주받다, 뚫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성전을 건축하는 동안에는 성전 속에서 방망이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어떤 영적 의미가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저주받고 자신의 몸에 대못이 박혔고 옆구리에 창에 찔려 살이 뚫어졌습니다. 이런 기초 위에 세워진 곳이 교회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이미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믿음으로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더 이상 방망이와 망치와 같은 소리가 교회에서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럼 망치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6절 카이 파라페손타스 팔린 아나카이니제인 에이스 메타노이안 아나스타우룬타스 헤아우토이스 톤 휘온 투 데우 카이 파라데이그마티존타스

6: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교회에서 타락한 자들은 내세의 맛을 보고 빛을 받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못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새롭게 다시 회개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모욕하는 자들입니다. 성전에 망치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들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다시 못 박아 욕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교회에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함으로 다시 못 박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나를 위해 자신의 몸을 찔리셨고 저주받았습니다. 주님 외에 나의 의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타락한 자이며 주님을 다시 못 박는 자입니다. 이런 자들은 성전 안에서 계속해서 망치 소리가 들리게 하는 자입니다.

 

도끼나’라는 단어는 (가르젠 1631) 도끼, 라는 뜻이며 גרז(가라즈 1629) 잘라내다, 분리시키다, 끊어지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성전을 지을 동안에 성전 안에서는 도끼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어떤 영적 의미가 있을까요? 이 도끼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선택받은 자와 선택받지 못한 자를 분리시킵니다. 양과 염소를 가르시고 알곡은 천국 창고에 쌓아두시고 쭉정이는 잘라내어 불에 던져버립니다. 선택받지 못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구원의 자리에서 끊어지게 됩니다. 세례 요한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10절 에데 데 카이 헤 악시네 프로스 텐 헤리잔 톤 덴드론 케이타이 판 운 덴드론 메 포이운 카르폰 칼론 에크코프테타이 카이 에이스 퓌르 발레타이

3:10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세례 요한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선포했습니다.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신약 히브리어 성경에는 여기에서 ‘도끼가’라는 단어가 גרזן(가르젠)입니다. 주님이 구름 타고 이 땅에 재림하시면 율법주의자들은 모두 좋은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에 찍혀서 불에 던져지게 됩니다. 성전에서 도끼 소리가 나지 않았다는 것은 구원받은 백성들은 구름 타고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내가 구원받았다고 하면서도 구름타고 오실 주님은 못 믿겠다고 한다면 이것은 교회에서 도끼 소리가 열심히 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라는 단어는 (바르젤 1270) , 쇠도끼, 라는 뜻이며 꿰뚫다, 찌르다, 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에 대못이 찔렸습니다. 창이 옆구리를 꿰뚫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물과 피를 모두 나를 위해 쏟아주셨습니다. 성전을 지을 때에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나를 위해 이 땅에 성령으로 잉태하여 초림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것을 말합니다. 앞으로 태어날 모든 자들도 초림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것을 믿지 못하고 나의 행위가 의로워야 만이 구원이 완성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성전에서 철 연장 소리가 열심히 들리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이것을 믿지 못하고 나의 의를 주장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성전을 건축하면서 철 연장 소리를 열심히 내는 것과 같습니다.

18절 이누 바케벨 라겔라이브 바르젤 바아 나페쇼

105:18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기 전에 요셉을 애굽으로 보냈습니다.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요셉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여 고통을 당했습니다. 여기에서 ‘쇠사슬에’라는 단어가 (바르젤)이라는 단어입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고통을 당하고 가나안 땅에 있는 아버지와 형제들이 가뭄에서 평안하게 산 것처럼, 초림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찔리시고 고통당함으로 내가 평안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내가 쇠사슬과 같은 원죄의 사슬을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끊어주셨습니다. 이것을 오직 믿는 것이 성전에서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하면서 성전에는 어떠한 도구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교회를 건축할 때에 인간의 잡음이 들어가면 안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된 말만 나와야 합니다. 또한 나의 몸이 거룩한 성전이 되어가기 위해서는 첫째, 돌을 다듬듯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시인해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의 확신입니다. 둘째, 방망이 소리가 나면 안 됩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을 이루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주님 한 분만으로 구원은 차고도 넘칩니다. 나의 의가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셋째, 도끼 소리가 나서는 안 됩니다. 내가 구원받았으니 구름 타고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어떻게 구름을 타고 올 수 있느냐고 말하면 안 됩니다. 주님은 그 이상도 할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넷째, 철 연장 소리가 나서는 안 됩니다. 초림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고 고통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한다면 나는 원죄의 쇠사슬에 매여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구원이 완성이 되었고 십자가에서 성취가 되었음을 믿고 선포하시며 나의 몸이 주님이 임하실 수 있는 거룩한 성전이 되기 위하여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사 삼갈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삿 3:31)

 

[사사기 3장 히브리어 설교말씀] 사사 삼갈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삿 3:31)

안녕하세요. 오늘은 사사기 3장 히브리어 설교말씀 중에서 사사 삼갈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성경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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