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사사기 3장 히브리어 설교말씀 중에서 사사 삼갈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성경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사사들도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오늘은 사사 삼갈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성경에 사사 삼갈은 한 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몰이 막대기로 블레셋 600명을 죽였다고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가지고 구속사 관점에서 원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려고 합니다. 사사 삼갈 속에 숨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사 삼갈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삿 3:31)
하나님께서는 광야 2세대를 데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이 백성들을 통해서 영광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가 살아있을 때에는 그나마 하나님을 섬기고 우상을 멀리하는 신앙을 가졌지만, 여호수아가 죽고 나자 이들은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을 인도하던 영적 지도자가 죽자 이들은 하나님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기 위해서 이방민족들을 이스라엘 땅에서 모두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지 우상을 섬기는지 시험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의 전쟁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기 위해서 전쟁을 알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전쟁을 가르쳐 알게 하시려고 이방 민족들을 남겨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방민족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는지 안 하는지를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지금은 6. 25 사변을 겪은 전쟁세대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공산당이 얼마나 무섭고 그의 사상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쟁에 고통당하고 힘들게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습니다. 전쟁을 알지 못하던 세대는 하나님을 떠나 이방민족들의 딸들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자기 딸들을 이방민족의 아들들에게 주면서 이방의 신들을 섬겼습니다. 전쟁을 모르기 때문에 어려움이 무엇인지 고통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대한민국도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들은 모든 것을 쉽게 생각합니다. 북한이라는 존재도 쉽게 생각합니다. 종교 핍박 1위가 북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북한의 주민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핍박받고 죽게 됩니다. 그런데도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들은 북한을 옹호하면서 그의 길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물론 한 민족이라는 차원에서는 얼마든지 도와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상은 대한민국을 적화 통일시켜 공산화시키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북한이 적화통일 한다면 대한민국에는 교회가 사라지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핍박을 받을 것이 뻔한 일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당해봐야 알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인간은 이미 죄의 본성이 있기 때문에 성경에 나와 있는 전쟁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대한민국도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가 하나님보다 인간을 우상화하는 공산당을 찬양해서는 안 됩니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뼈저리게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 대한민국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지 우상을 더 사랑하는지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제 교회에 나오는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가 중요합니다. 세상의 우상을 섬기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려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니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지 않은 이방민족들이 쳐들어와서 고통을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떠나 악을 행하고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니 메소보다미아 왕인 구산 리사다임을 8년 동안 섬기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나타났던 사사가 옷니엘입니다. 옷니엘을 통해서 이스라엘 땅에 40년 동안 평안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일어나니 똑같이 여호와를 떠나고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게 됩니다. 이때에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이때에 사사 에훗을 하나님이 세워서 에글론을 죽이고 모압에서 해방되어 80년 동안 평온하게 됩니다. 사사시대는 이렇게 300년 정도 반복하면서 하나님을 떠나고 돌아오는 과정의 역사입니다. 결국 이런 역사는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하나님을 버리고 악을 행하여 우상을 섬길 때에 전쟁이라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역사를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대한민국도 이런 시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전쟁의 아픔을 겪고 눈부신 발전을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의 폐허에서 이와 같이 발전된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에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기도하고 교회에 나와 열심을 가졌던 신앙의 선배들이 있었고 눈부신 신앙의 부흥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나오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온데간데없고 기도의 열정도 찾아볼 수 없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어떤 아버지가 밥상에서 밥을 먹다가 아들이 밥을 남기니까 아까우니 다 먹으라고 말하면서 아버지는 이 밥도 없어서 먹지 못했다고 말하니까? 아들의 대답이 ‘밥이 없으면 라면 먹으면 되지!’ 무엇이 문제냐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세대 차이가 나는 이야기입니다. 전쟁을 겪었던 사람들은 배고픔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됩니다. 하지만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는 모든 것을 쉽게 생각하게 됩니다. 이 시간 우리들은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들에게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을 가르쳐 우상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도록 다음 세대를 키워내야 합니다. 만약에 다음세대를 제대로 키우지 못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악행을 저지르게 될 것이고, 타락한 인생을 살면서 우상을 따라갈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사사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전쟁의 고통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고 돌아오게 하신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경고하실 때에 빨리 주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교회가 다시 온전히 하나님 앞에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들에게 복음으로 무장시켜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사사 에훗의 뒤를 이어 블레셋 민족들로부터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한 삼갈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의 고통을 당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 사사들을 보내셨습니다. 삼갈은 사사로서 어떻게 활동했는지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한 줄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삼갈을 통해서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에훗의 뒤를 이은 삼갈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교훈을 얻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1절 베아하라이브 하야 샴가르 벤 아나트 바야크 에트 펠리쉐팀 셰쉬 메오트 이쉬 베말마드 하바카르 바요샤 감 후 에트 이스라엘
삿 3:31 에훗 후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우리가 에훗 후에 아낫의 아들 삼갈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인 사건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에훗’이라는 단어는 אהוד(에후드 164) 에훗이며, ‘나는 감사(찬양)하리라’라는 뜻을 가진 사람입니다. 에훗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찬양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 사사로 부름을 받아 에글론을 죽이고 하나님께 찬양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항상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든 것이 편하기 때문에 당연하게 생각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잘 되었을 때에 항상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만이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이 나오게 됩니다. 에훗은 감사하지 못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압에서 구원하여 하나님께 찬양하게 한 사람입니다.
그럼 우리가 에훗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까? 원죄에 빠져 죽었던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고 고통당하면서 살 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나 대신에 죽으심으로 모압과 같은 사탄의 압박에서 해방시켜주시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한 것을 깨닫게 됩니다.
21절 디오티 그논테스 톤 데온 우크 호스 데온 에독사산 에 유카리스테산 알르 에마타이오데산 엔 토이스 디아로기스모이스 아우톤 카이 이스코티스데 헤 아쉬네토스 아우톤 카르디아
롬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우리가 구원을 받기 전에는 하나님을 안다고 했지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했고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내 자신을 드러내는 신앙을 하다 보니 이 생각들이 허망하여 미련한 마음에 어두워져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고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인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에훗이 있을 때에는 80년 동안 평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에훗이 죽고 나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게 되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이런 신앙생활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결국 이것은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들이 등장하면서부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다음 세대를 신앙적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말씀하는 이유입니다. 에훗 이후에 나타난 사사는 누구입니까? 삼갈입니다. 삼갈은 누구의 아들입니까? 아낫입니다.
‘아낫’이라는 단어는 (아나트 6067) 아낫이며, 이 단어는 ענה(아나 6030) 응답하다, 부르짖다, 대답하다, 찬양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아낫의 이름은 ‘응답’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에 의하여 고통을 당하니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전쟁의 고통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육체의 고통이 있으니 하나님을 찾게 되고 찬양하게 됩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응답으로 아낫의 아들 삼갈을 사사로 보내주시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셔서 대답한 것이 바로 삼갈입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유대인들도 로마의 압제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메시아를 보내달라고 외쳤습니다. 자신들의 압제에서 건져내줄 다윗과 같은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은 유대인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셔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21절 텍세타이 데 휘온 카이 칼레세이스 토 오노마 아우투 이에순 아우토스 가르 소세이 톤 라온 아우투 아포 톤 하마르티온 아우톤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유대인들이 육체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마리아를 통해서 아들을 낳게 되는데 바로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로 보내주셨습니다. 원죄의 고통에서 죽어있는 자들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께 고통을 호소하면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악의 고통에서 건져내 주시고 육체의 고통에서 구원하여 주십니다.
‘삼갈’이라는 단어는 (샴가르 8044) 삼갈이며, 칼, 검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삼갈은 칼과 검을 가지고 블레셋 민족 600명을 죽였습니다. 소모는 막대기가 바로 칼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그럼 삼갈과 같은 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에서 칼은 복음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사탄과 싸울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싸워서 이겼습니다.
마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복음의 검을 주러 오신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라는 것을 가르쳐 주신 분입니다. 삼갈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쟁을 모르고 살고 있는 시대에 에훗 이후로 80년 동안 태평성대를 이루니 마음과 신앙이 헤이 해져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칼을 주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재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칼이 있습니까? 신약 히브리어로 칼은 헤레브입니다. 유대인들의 칼의 개념은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선과 악을 나누러 오신 분이고 의인과 악인을 알곡과 가라지를 나누러 오신 분입니다.
17절 카이 텐 페리케팔라이안 투 소테리우 덱사스데 카이 텐 마카이란 투 프뉴마토스 호 에스틴 레마 데우
엡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구원받은 우리들은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인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소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의 말씀이 있어야 사탄과 싸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노력과 힘으로는 사탄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사탄의 머리를 짓밟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으로 이길 수가 있습니다.
삼갈이 블레셋 민족 600명을 무엇으로 죽였습니까? 소몰이 막대기로 죽였습니다. 그 당시 블레셋 민족은 철기를 다루던 민족입니다. 그래서 철병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들은 아직 철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시대입니다. 이때에 삼갈은 블레셋 민족을 죽임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소모는 막대기’라는 단어는 (말마드 4451) 소모는 막대기, 라는 뜻이며 למד(라마드 3925) 배우다, 가르치다, 교훈을 받다, 훈련시키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소모는 막대기는 그 당시에 농경사회이기 때문에 쟁기를 모는 소들을 교훈하고 훈련시키기 위해서 사용하던 기구입니다. 이것은 막대기가 2.4m로서 앞에는 뾰족한 쇠를 박아서 쟁기를 몰고 가는 소가 엉뚱한 길로 가면 농부가 뒤에서 엉덩이를 찔렀습니다. 정신을 차리게 하는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평상시에는 소를 교훈하고 가르치는 데 사용했지만 전쟁 시에는 무기로 사용했습니다. 삼갈은 이 도구를 가지고 블레셋 민족 600명을 죽였던 것입니다.
전쟁을 모르고 교만하고 자만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교육시키는 용도로 블레셋 민족 600명을 소모는 막대기로 죽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삼갈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교육시키고 있습니다. 이들을 신앙의 훈련을 통해서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붙잡지 않고 다른 길로 가면 하나님은 소모는 막대기로 나를 힘차게 찔러버립니다. 이것이 징계가 되는 것입니다.
70인 역에는 αροτρον(아르트론 723) 쟁기, 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αροω(아로오) 밭을 갈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단어가 신약에서는 한 번 사용되고 있습니다.
62절 에이펜 데 프로스 아우톤 호 이에수스 우데이스 에피발론 텐 케이라 아우투 에프 아로트론 카이 블레폰 에이스 타 오피소 유데토스 에스틴 에이스 텐 바실레이안 투 데우
눅 9: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손에 쟁기를 잡은 농부가 뒤를 돌아보게 되면 제대로 고랑을 낼 수가 없기 때문에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고 천국에 소망을 두지 않으면 하나님은 소모는 막대기로 찔러서 정신을 차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소몰이 막대기에 찔림을 받아 정신을 차린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울입니다.
14절 판톤 데 카타페손톤 헤몬 에이스 텐 겐 에쿠사 포넨 랄루산 프로스 메 카이 레구산 테 헤브라이디 디알레크토 사울 사울 티 메 디오케이스 스클레론 소이 프로스 켄트라 라크티제인
행 26: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려고 할 때에 주님이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주셨습니다. 사울은 이때를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시채’가 무엇일까요?
‘가시채’라는 단어는 (켄트론 2759) 소몰이 막대기, 찌르는 것, 쏘는 것이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κεντεω(켄테오) 따금 하게 찌르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바울은 선택받은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소몰이 막대기로 따끔하게 찔러서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징계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죄를 지었다고 내동댕이치는 것이 아니라 징계하셔서 말씀으로 교훈하고 정신을 못 차리면 때리고 찔러서 주님의 길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삼갈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깨달았습니다. 삼갈이 소몰이 막대기로 블레셋 600명을 죽인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교훈하시려는 목적이 있고 세상 백성들에게는 따끔하게 벌을 주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들은 만사가 형통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습니다.
우리들도 전쟁을 당해서 고생스럽게 살면 주님을 찾고 부르짖다가 복을 받아 전쟁을 모르면 하나님을 금방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항상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 복음을 배우고 들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같이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읽고 배워야 합니다. 복음은 한 번 들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 번 배웠다고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 죽을 때까지 내가 배워야 할 공부입니다. 목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는 성도이기 때문에 항상 복음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고 읽어야 합니다. 말씀을 항상 가까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회에서도 전쟁이 날 것입니다. 현재 전쟁이 없다고 태평하면 안 됩니다. 태평할 때에 더 준비하고 말씀에 열정을 다해 연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회에서 인생에서 전쟁이 터져 결국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우리 집안에는 전쟁이 없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교회에 더 열심히 나와서 부르짖으십시오.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더 배우고 들으십시오. 전쟁이 없다는 것은 전쟁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모든 것이 유비무환이라고 했습니다. 문제가 터진 후에 준비하면 때는 늦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태평성대를 주셨다면 빨리 준비하시고 우상을 따라가지 마십시오. 전쟁을 모르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빨리 준비할 때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재림의 신앙을 가지고 주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전쟁이 터져 결국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쟁을 준비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소몰이 막대기로 찌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복음의 말씀으로 나를 찌르고 있다면 이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관심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도 아무런 찔림이 없다면 빨리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양심에 화인 맞았기 때문에 감각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돌아오지 않으면 그때는 전쟁이 터져 영육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에 항상 찔림 받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사 기드온의 소명 확신 시험 사건(삿 6:3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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