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산상수훈 팔복 헬라어 설교말씀 중에서 화평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서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화평하게 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화평의 복음을 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복을 받게 됩니다. 세상의 싸움이 있는 곳에 복음이 전파되어 싸움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있는 주변에 싸움이 사라지고 화평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의 은혜를 받았으니 산상수훈을 통해서 올바른 성도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화평하게 하는 사람”(마 5:9)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산상수훈을 말씀하시고 그 처음 단계가 팔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주님과 같이 살아야 만이 앞으로 말씀하실 것들을 이해하고 그대로 지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기 전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는데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도가 무엇일까요? 마음이 깨끗하게 청소되고 수리되었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그 안에 들어오기 때문에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심령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자들은 세상에서도 화평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화평의 삶을 살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욕보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에 화평하지 못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주님이 화평케 하는 자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는 의도를 깨달아야 합니다. 무엇이 화평한 것인지를 알 때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름을 받게 되는 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화평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화평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화평의 개념에 관하여 말씀을 통하여 깨달아 보겠습니다.
9절 마카리오이 호이 에이레노포이오이 호티 아우토이 휘오이 데우 클레데손타이
마 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예수님께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라는 단어는 (에이레노포이오스 1518) 평화를 만드는, 화평을 이룩한,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ειρηνη(에이레네 1515) 평안, 화평, 평강, 화해, 라는 뜻과 ποιεω(포이에오 4160) 실행하다, 만들다, 남기다,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성경에서 화평케 하는 자라는 단어가 단 한 번 쓰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화평케 하는 자를 강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화평케 하는 자를 말씀하시는 것은 평화를 만드는 자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싸움이 있는 곳에 평화를 만들고 전쟁에 있는 곳에 화평을 이룩하여 서로가 화해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화평케 하는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스스로 화평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싸움을 멈추게 할 수도 없습니다. 내 안에 화평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화평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들도 아닙니다. 우리 자체도 죄인의 모습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화평의 삶을 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럼 화평은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화평케 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십자가에 달리셔서 모든 백성들의 화평을 위해 죽으실 것입니다. 이런 죽음을 너희들도 믿고 주님과 함께 해달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4절 아우토스 가르 에스틴 헤 에이레네 헤몬 호 포이에사스 타 암포테라 헨 카이 토 메소토이콘 투 프라그무 뤼사스
15절 텐 에크드란 엔 테 사르키 아우투 톤 노몬 톤 엔톨론 엔 도그마신 카타르게사스 히나 투스 뒤오 크티세 엔 헤아우토 에이스 헤나 카이논 안드로폰 포이온 에이레넨
엡 2:14-15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예수님께서 팔복을 통하여 교훈하시고 있는 화평케 하는 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있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화평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을 하나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들을 주님이 직접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중간에 막힌 담을 자신의 육체로 허물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의 계명으로 구원을 이루려고 하는 것을 폐하시고 하나님과 나의 사이에서 중보 하셔서 둘을 하나로 만들어 화평하게 하신 것입니다.
‘육체로 허시고’라는 단어는 (뤼오 3089 VPAANMS 동사 분사 과거 능동태 주격 남성 단수) 헐다, 깨어지다, 풀어지다, 멸하다, 폐지하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원죄 가운데 있었을 때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자들입니다. 하나님께 나가려고 해도 도저히 나갈 수도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죄 때문에 중간에 막힌 담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율법이었습니다. 이 율법으로는 하나님과 화평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직접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몸이 깨어지고 부서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혔던 담을 완전하게 무너뜨려 헐어버리신 것입니다. 이렇게 됨으로 선택받은 나는 더 이상 죄악 가운데 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으며 율법의 조문 아래에서 죽어있지 않아도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이심으로 율법의 조문은 폐지되었으며 영원한 죽음도 함께 소멸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죽으실 때에 나의 모든 죄들과 사망도 폐지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의 육체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평케 될 것을 하나님은 이미 계획하셨습니다. 과거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재 내가 주님을 믿음으로 고백하게 되므로 하나님과 화평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직접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셔서 마지막 하나님이 원하시는 죽음으로 모든 죽음을 닫아버리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은 자들은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는 법조문인 율법이 폐하게 되었습니다. 폐하셨다는 것은 없애버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구원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의 조문으로 구원받지 않도록 무효화시켰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화평케 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거듭남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님을 통하여 새롭게 거듭난 것이 화평케 된 자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0절 카이 디 아우투 아포카탈락사이 타 판타 에이스 아우톤 에이레노포이에사스 디아 투 하이마토스 투 스타우루 아우투 디 아우투 에이테 타 에피 테스 게스 에이테 타 엔 토이스 우라노이스
골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우리가 화평케 하는 자가 된 것이 무엇 때문입니까?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피 때문에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만물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화목하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전해주지 않으면 절대 화평케 하는 자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육적인 고민만 풀어주고 싸움이 있는 곳에 싸움만 멈추게 했다고 해서 화평한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화평케 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선포하여 그들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영광 돌리게 하는 자가 진정 화평케 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교회에서나 세상에서나 나는 마음이 온순하여 나만 가면 싸우던 자들도 중재를 잘해서 싸우지 않고 화평이 있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생각의 화평입니다. 이런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려지지 않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화평케 하는 자는 앞으로 내가 너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여 죽을 것인데 이 죽음은 지금까지 너희들이 하나님과 화평하지 못하고 원수로 살았던 것을 허무는 죽음이 될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도 이와 같이 세상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선포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자들의 막힌 담을 허물어 주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이야 말로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입니다. 주님이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데도 내가 화평케 하는 자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면 이것은 직무유기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만약 계속해서 우리가 이와 같은 삶을 살게 된다면 하나님은 직위 해제시키고 다른 사람을 들어 세울 것입니다. 이 시간 주님이 원하시는 화평의 사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어로 화평케 하는 자는 שלום(샬롬 7965) 평안한, 화목한, 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에서 평안이라고 하는 단어는 제사와 연관이 있습니다. 이 단어는 화목제와 연관이 있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서 제사 제도를 주셔서 죄인들을 구제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화목 제사입니다.
שלם(쎌렘 8002) 화목제, 감사 제물, 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화목 제사를 드리라고 하시는 말씀은 죄인이 제물을 가지고 왔을 때에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목 제사만큼은 세 명이 만족하는 제사입니다. 먼저는 하나님께 제물을 드림으로 하나님이 만족이 되는 제사요, 두 번째는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들도 몫을 받기 때문에 제사장도 만족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제물을 가지고 온 자들도 이 제물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죄인들도 만족하는 제사가 화목 제사입니다.
25절 혼 프로에데토 호 데오스 힐라스테리온 디아 테스 피스테오스 엔 토 아우투 하이마티 에이스 엔데익신 테스 디카이오쉬네스 아우투 디아 텐 파레신 톤 프로게고노톤 하마르테마톤
롬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이것을 만족하게 이루신 분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죄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음으로 만족하신 제사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제사장의 직분을 가지시고 감당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만족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이심으로 말미암아 만세전에 선택했던 자들이 살아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에 하나님도 만족하는 제사가 된 것입니다.
‘화목 제물로’라는 단어는 (힐라스테리온 2435 AANS 형용사 목적격 중성 단수) 속죄소, 속죄하는 것,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ιλασκομαι(힐라스코마이 2433) 진정시키다, 속량하다, 화해시키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화목 제물로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을 골고다 십자가에 세우신 것은 구약에서는 대 속죄일에 지성소의 속죄소 위에 동물의 피를 뿌리는 곳을 상징합니다. 이것은 만세전에 선택한 백성들이 죄 가운데 죽었기 때문에 불쌍히 여기사 긍휼을 베풀어 주시려고 예수님을 죽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해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화목 제물로 세우신 직접적인 목적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것을 화해시키기 위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세운 것입니다.
이런 화평이 내 안에 있다면 나는 반드시 세상에 나가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너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을 선포해야 합니다. 이것이 화평이 있는 자입니다. 육의 문제만 해결할 것이 아니라 영원히 죽어있는 자들을 위해 주님을 가르쳐 주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화평케 하는 자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내가 나의 죄를 사해주시고 하나님과 화평케 해주신 주님을 믿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일컬음을 받을’이라는 단어는 (칼레오 2564 VIFPP3 동사 직설법 미래 수동태 복수 3인칭) 부르다, 청하다, 일컬음을 받다, 부르심을 입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화평케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걸어가는 자들은 죄악에서 부름을 받아 소환된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하여 죄에서 부르심을 입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이 화목제물로 십자가에서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화평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들이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속죄가 일어나야 만이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입지 못하면 화평의 아들이 안되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름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면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까? 죄악의 모습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 있는 자들은 반드시 앞으로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려 지기를 원해도 하나님이 불러주시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29절 호티 후스 프로에그노 카이 프로오리센 쉼모르푸스 테스 에이코노스 투 휘우 아우투 에이스 토 에이나이 아우톤 프로토토콘 엔 폴로이스 아델포이스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예정하시고 아신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선택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선택받은 백성들의 맏아들이 되게 하시기 위하여 구원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우리의 맏아들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럼 우리도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하나님의 맏아들이라면 나도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미리 정하시고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지 않으면 절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있어야 만이 확실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러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공부를 잘해서입니까? 아니면 사업을 잘해서 입니까? 아니면 성격이 온순하고 좋아서 입니까? 이런 것들로는 절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름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속죄의 역사를 믿고 고백함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화평케 하는 자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신 자체가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이 없다면 그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영원한 생명을 소유했다면 이 생명을 세상에 나가 전해주라는 것입니다. 흑암에 싸여 죽어있는 자들에게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여 주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자들이 바로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이라고 칭찬하시며 많은 축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아직도 내 안에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하고 나가야 합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선포하는 화평의 사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셔서 화평의 사도가 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르호봇 원문 설교강해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복음 헬라어 설교말씀] 세례요한의 고백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22-30) (0) | 2021.07.07 |
---|---|
[요한복음 헬라어 주일설교말씀] 오병이어 기적 체험 사건(요 6:14-15) (0) | 2021.07.07 |
[마태복음 헬라어 설교말씀] 달란트 비유의 구속사 비밀(마 25:14-30) (0) | 2021.07.07 |
[마태복음 헬라어 설교말씀] 말세에 나타날 재림의 징조(마 24:3-14) (0) | 2021.07.07 |
[에스겔 48장 히브리어 설교말씀] 교회에 계시는 여호와 삼마(겔 48:35) (0) | 2021.07.04 |
[아가서 히브리어 설교말씀]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아 2:15) (0) | 2021.07.04 |
[잠언 히브리어 설교말씀] 재물보다 여호와를 선택하는 신앙(잠 22:1-5) (0) | 2021.07.04 |
[시편 2편 히브리어 설교말씀] 시온 산에 세워진 왕 예수(시편 2:1-6) (0) | 2021.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