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헬라어 설교말씀 중에서 달란트 비유의 구속사 비밀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달란트 비유를 많이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달란트 비유를 세 종료의 신앙인으로 접근해 보려고 합니다. 나는 과연 어떤 달란트를 받았으며 지금 현재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처신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달란트 비유의 구속사 비밀”(마 25:14-30)
우리가 오늘은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주님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흔히 달란트 비유를 들을 때 이 세상에서 지식과 재물과 능력을 받아서 열심히 봉사하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제는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서 영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간 나는 어떤 종류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고 내가 잘못된 신앙을 하고 있다면 빨리 회개하여 주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세 사람에게 달란트를 주인이 나누어 주고 타국으로 떠나게 됩니다. 자신의 소유를 맡기고 떠났습니다.
15절 카이 호 멘 에도켄 펜테 탈란타 호 데 뒤오 호 데 헨 헤카스토 카타 텐 이디안 뒤나민 카이 아페데메센 유데오스
마 25: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주인은 각각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습니다.
‘재능대로’라는 단어는 (뒤나미스 1411) 힘, 능력, 역량이라는 뜻입니다. 주인이 재능대로 주셨다는 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역량만큼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나의 역량이 되지 않는데 많은 것을 받으면 활용하지 못하고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재능은 무엇입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주셔서 그것을 잘 활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면 됩니다. 그중에서도 나의 믿음을 하나님은 역량대로 주셨습니다.
‘달란트’라는 단어는 (탈란톤 5007 NANP 명사, 목적격, 중성, 복수) 달란트, 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τλαω(틀라오) 참다, 겪다, 견디다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주인이 각각 주고 떠난 달란트는 주인의 뜻을 정확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이 달란트를 사용할 때는 많은 시련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고통도 따를 수밖에 없고 세상으로부터 질타와 핍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시련을 겪고도 주인의 뜻을 따라서 달란트를 사용해야 합니다. 달란트의 비유를 말씀하시는 이유는 믿음의 달란트를 가지고 세상에서 핍박과 환난이 있다 하더라도 끝까지 인내하면서 주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29절 아페크리데 호 이에수스 카이 에이펜 아우토이스 투토 에스틴 토 에르곤 투 데우 히나 피스튜세테 에이스 혼 아페스테일렌 에케이노스
요 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하나님께서 나에게 달란트를 주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이 달란트를 받으면 반드시 세상으로부터 환난과 핍박과 고통이 따라오게 되어있습니다. 세상은 달란트를 받은 자를 그냥 놔두지 않습니다. 달란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고 육적인 떡을 원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반면에 제자들은 영생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습니다. 똑같이 달란트를 받았지만 누구는 떠나고 누구는 주님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따랐던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많은 핍박과 환난을 당하고 순교하였습니다. 그럼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달란트를 받는 순간 세상으로부터 핍박과 환난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달란트 때문에 손해 보는 일도 있을 것이고 내가 하는 일에 어려운 일도 생길 수 있습니다. 악한 사탄이 예수 그리스도의 달란트 받은 자들을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달란트를 활용하여 남겨야 합니다. 이제 각 달란트를 받은 사람들의 행동을 파악해 보겠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입니다.
16절 포류데이스 데 호 타 펜테 탈란타 라본 에이르가사토 엔 아우토이스 카이 에포이에센 알라 펜테 탈란타
마 25: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바로 가서 이 달란트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이런 사람의 신앙은 어떤 신앙입니까? 신부의 신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혼인하여 하나가 되니 세상에서의 핍박과 고난이 와도 두렵지 않습니다. 세상의 훼방이 있어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과 함께 살아서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신앙입니다.
‘장사하여’라는 단어는 (에르가조마이 2038 VIADS3 동사, 직설법, 과거, 중간디포, 단수, 3인칭) 일하다, 창조하다, 생산하다라는 뜻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신부의 신앙을 가지고 즉시 세상으로 나가 창조적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믿음을 세워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가면 믿음을 버릴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내가 세상적 유익을 위해서 믿음을 포기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부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세상적 유익을 포기하고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세워나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과거 시제를 사용한 것은 이미 내가 받은 달란트가 다섯 달란트임을 말합니다. 이 사람이 다섯 달란트를 받았어도 열심히 장사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열심히 장사하여 주인 앞에 많은 이익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중간디포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달란트를 받았지만 세상에 나가서 믿음 생활을 할 때 세상적 핍박이 오면 조용히 주님을 버릴 수도 있습니다. 나의 육적인 유익에 따라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섯 달란트를 받은 신부의 신앙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대표적인 인물이 고넬료와 바울입니다. 전형적인 율법주의자였지만 주님께 달란트를 받고 인생이 달라진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다섯 달란트를 받은 시기가 언제입니까?
3절 엔 데 토 포류에스다이 에게네토 아우톤 엥기제인 테 다마스코 카이 엑사이프네스 페리에스트랍센 아우톤 포스 아포 투 우라누
4절 카이 페손 에피 텐 겐 에쿠센 포넨 레구산 아우토 사울 사울 티 메 디오케이스
행 9:3-4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하늘로부터 빛이 사울을 둘러 비추면서 주님의 음성이 들리게 됩니다. 자신을 왜 박해하느냐고 말씀합니다. 사울은 이때에 다섯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사울이 다섯 달란트를 받고 신부의 신앙으로 바뀌었습니다. 세상으로 따지면 사울을 따라올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신분이 좋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사울은 복음의 달란트를 받고 자신의 율법적인 삶을 버리고 복음적인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세상의 지식과 재물과 권세를 분토처럼 여기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향해 달려 나갔습니다. 그때에 율법주의자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달란트를 받는 순간 세상적 위협이 왔고 생명을 걸어야 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사울은 이런 상황에서도 복음의 달란트를 버리지 않고 세상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리고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통해서 주님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신부가 신랑을 높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신랑의 이름을 높이니 하나님이 충성된 자라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다음은 고넬료가 다섯 달란트를 받았던 때가 언제입니까? 베드로를 자신의 집에서 영접할 때입니다.
25절 호스 데 에게네토 에이셀데인 톤 페트론 쉬난테사스 아우토 호 코르넬리오스 페손 에피 투스 포다스 프로세퀴네센
행 10:25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하나님의 환상을 보고 베드로를 자신의 집에 초청하여 십자가 복음을 듣게 됩니다. 이때에 고넬료와 그의 집안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생명 얻는 회개를 얻게 됩니다. 고넬료가 다섯 달란트를 받고 신부의 신앙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고넬료는 로마의 백부장으로서 율법적인 신앙이 강한 사람입니다. 이런 자가 주님의 복음을 듣고 달란트를 받게 됩니다. 그러면서 생명 얻는 회개가 일어난 후에 세상에서 복음을 전파하면서 자신의 세상적 유익을 위해서 복음과 타협하지 않는 신앙을 갖게 됩니다. 이런 신앙이 신부의 신앙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육적인 유익 때문에 신랑 되신 주님을 버리지 않는 신앙입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세상적 유익을 위해서 내가 받은 복음의 달란트를 버리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다섯 달란트를 받은 신부의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신랑 되신 주님을 높이니 세상에서 다섯 달란트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받는 영광이 무엇입니까?
21절 에페 데 아우토 호 퀴리오스 아우투 유 둘레 아가데 카이 피스테 에피 올리가 에스 피스토스 에피 폴론 세 카타스테소 에이셀데 에이스 텐 카란 투 퀴리우 수
마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주인이 말합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긴다고 말합니다. 또한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고 합니다.
‘충성된’이라는 단어는 (피스토스 4103 AVMS 형용사 호격 남성 단수) 믿을만한, 신실한, 신뢰하는이라는 뜻입니다. 주인이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을 불러서 칭찬하고 있습니다. 호격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충성된 자라는 것은 믿음이 좋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주인이 보기에 믿을만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바울과 고넬료 같은 신부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율법적인 신앙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세상적 유익을 버리고 주님만을 높이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세상에서 다섯 달란트를 남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육적인 삶을 살지 않고 살았던 신부의 신앙인들은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됩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천국에 들어가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됩니다. 우리들도 신부의 신앙을 가지고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복음의 달란트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어떻게 했습니까?
17절 호사우토스 카이 호 타 뒤오 에케르데센 카이 아우토스 알라 뒤오
마 25:17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바로 가서 장사하여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어떤 신앙을 의미합니까? 아들의 신앙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말합니다. 성경에서 아들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누구일까요? 우편 강도입니다.
43절 카이 에이펜 아우토 호 이에수스 아멘 레고 소이 세메론 메트 에무 에세 엔 토 파라데이소
눅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두 강도도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처음에는 둘 다 예수님을 욕합니다. 하지만 우편에 있는 강도가 회개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운명하시기 전에 우편 강도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즉시 가서 장사를 하여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신앙이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같은 신앙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우편 강도는 세상에서 강도짓만 하다가 십자가에 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게 됩니다. 주님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됩니다. 두 달란트를 받고 세상에 갔지만 온전하게 신랑과 신부로서의 신앙생활은 아니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집을 나가서 아버지 마음을 상하게 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평생 강도짓만 했던 사람의 신앙이 이와 같은 신앙입니다. 물론 이 사람도 구원은 받고 천국에서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됩니다.
23절 에페 아우토 호 퀴리오스 아우투 유 둘레 아가데 카이 피스테 에피 올리가 에스 피스토스 에피 폴론 세 카타스테소 에이셀데 에이스 텐 카란 투 퀴리우 수
마 25: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를 받았던 종에게도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말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충성한 것입니다. 주인은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복음의 달란트를 받으면 내가 손해 볼 것이 많다고 했습니다. 고통과 핍박이 오게 됩니다. 그때에 세상에서 잠시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세상에 빠져 살다가 죽을 때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는 신앙이 두 달란트 받은 자와 같은 신앙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것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신부의 신앙인이 되어 신랑 되신 주님을 섬기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행동은 어떠했습니까? 즉시 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돈을 감추었습니다. 이런 자의 신앙은 종의 신앙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주인과 종의 관계로서 두려워하는 신앙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가룟 유다입니다. 한 달란트를 받았는데 예수님을 입맞춤으로 팔아버렸습니다.
18절 호 데 토 헨 라본 아펠돈 오뤽센 엔 테 게 카이 아페크륍센 토 아르귀리온 투 퀴리우 아우투
마 25: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을 파고 주인의 돈을 감추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달란트를 받으면 고통이 오게 됩니다. 달란트 때문에 나의 유익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에 묻어 두었다가 다시 돌려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자의 신앙이 어떤 자들입니까? 율법주의 신앙인들입니다. 율법주의 신앙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면 손해 보는 일이 많기 때문에 세상에서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땅에 파묻어 둡니다. 나를 내세워야 하는데 신랑 되신 주님을 내세우니 싫습니다.
‘감추어 두었더니’라는 단어는 (크륍토 2928 VIAAS3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단수, 3인칭) 감추다, 숨기다, 비밀로 하다라는 뜻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즉시 땅에 묻어 감추었습니다. 이것을 숨겨 놓고 혼자만 알려고 비밀로 했습니다. 이 사람은 달란트를 주인으로부터 받았다고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기가 싫었습니다. 주인을 높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시제를 사용한 것은 달란트를 감추어 아무도 모르게 하겠다고 다짐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자들의 신앙이 율법주의 신앙입니다. 복음의 달란트를 받고서도 주님을 높이기 싫어서 아무도 알지 못하도록 땅에 파묻어 버립니다. 달란트를 주인에게 받았다고 말하면 자신이 종이라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때문에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라고 하면 자신의 행위의 의는 사라지기 때문에 절대 복음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가룟 유다가 달란트를 땅에 파묻은 때가 언제입니까?
2절 카이 데이프누 게노메누 투 디아볼루 에데 베블레코토스 에이스 텐 카르디안 이우다 시모노스 이스카리오투 히나 아우톤 파라도
요 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사탄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 생각을 집어넣었습니다. 이때가 가룟 유다가 달란트를 땅에 파묻은 때입니다. 가룟 유다는 제자를 선택을 받은 순간 한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그가 복음의 달란트를 세상의 유익을 위해서 은 30에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버렸습니다. 주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뜻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주님을 팔지 않았습니다.
17절 호 에콘 우스 아쿠사토 티 토 프뉴마 레게이 타이스 에클레시아이스 토 니콘티 도소 아우토 파게인 아포 투 만나 투 케크륌메누 카이 도소 아우토 프세폰 류켄 카이 에피 텐 프세폰 오노마 카이논 게그람메논 호 우데이스 에그노 에이 메 호 람바논
계 2: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주님이 버가모 교회에 하신 말씀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말합니다. 복음의 달란트를 받고 세상으로부터 이기는 자는 주님이 감추었던 만나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감추었던’이라는 단어가 κρυπτω(크륍토)입니다. 주님은 생명의 복음을 나타내기를 원하는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생명의 복음을 땅에 파묻어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에 주인의 뜻에 합당하지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가 주인을 오해했던 것이 무엇입니까?
24절 프로셀돈 데 카이 호 토 헨 탈란톤 에일레포스 에이펜 퀴리에 에그논 세 호티 스클레로스 에이 안드로포스 데리존 호푸 우크 에스페이라스 카이 쉬나곤 호덴 우 디에스코르피사스
마 25: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주인이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착각했습니다.
‘굳은’이라는 단어는 (스클레로스 4642) 굳은, 거치른이라는 뜻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이 거친 사람으로 알았습니다. 욕심이 많기 때문에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혼자 생각했습니다. 이런 자들이 누구입니까? 가룟 유다와 같은 율법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60절 폴로이 운 아쿠산테스 에크 톤 마데톤 아우투 에이폰 스클레로스 에스틴 후토스 호 로고스 티스 뒤나타이 아우투 아쿠에인
요 6: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예수님이 자신을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어렵도다’라는 단어가 σκληρος(스클레로스)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님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말하면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의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로 구원을 얻어야 하는데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니 복음의 달란트를 땅에 파묻어 둘 수밖에 없습니다. 절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말하지 않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의 최후가 어떻게 됩니까? 있는 것도 빼앗기고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게 됩니다.
28절 아라테 운 아프 아우투 토 탈란톤 카이 도테 토 에콘티 타 데카 탈란타
마 25: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주인은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에게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행위 주의자들은 복음이 필요 없다는 의미입니다. 율법주의자들에게 복음이 있어도 복음이 수치를 당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빼앗아 버립니다.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율법을 주장하는 자들은 종의 신앙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운 존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심판받을 것만 같고 자신이 행위를 잘하면 구원받은 것 같아서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는 신앙입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복음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30절 카이 톤 아크레이온 둘론 에크발레테 에이스 토 스코토스 토 엑소테론 에케이 에스타이 호 클라우드모스 카이 호 브뤼그모스 톤 오돈톤
마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무익한 종입니다. 주인이 볼 때 아무런 쓸모가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자는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아 거기서 슬피 울면서 이를 갈게 됩니다. 이런 표현은 지옥의 불 못에 들어갈 때 하시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과의 신앙적 관계가 종의 신앙에 머물러 있으면 주님 앞에서는 무익한 사람입니다. 복음의 달란트를 주었는데도 땅에 파묻어 놓고 다른 사람에게 절대 말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복음을 가지고 있으면 세상적 고통과 자신의 유익이 사라질까 봐! 복음을 철저하게 감추어 놓은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전혀 없고 자신만을 나타내면서 교만과 오만에 빠져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처럼 사는 인생입니다. 이런 자들이 평생 신앙생활을 했지만 복음의 달란트가 없기 때문에 마지막 날에 심판받아 지옥 어두운 불 못에 던져지게 됩니다.
현재 우리는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와 한 달란트 받은 자의 신앙을 숙고해 보았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신부의 신앙으로 저 세상에서도 받을 것이 많습니다. 구원받고 이 세상에서 오직 주님에 대한 충성된 믿음을 가지고 세상의 유익이 없어도 절대 신앙을 버리지 않고 살았던 신부의 신앙입니다. 두 달란트 받은 자는 세상에서 열심히 살기는 했지만 아들의 신앙을 가지고 구원은 받았지만 삶 자체가 주님이 원하는 삶을 제대로 살지는 못한 사람입니다. 저 세상에 갔을 때는 주님의 즐거움에는 참여하지만 영광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종의 신앙을 가진 자로서 복음을 땅에 묻어 두었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고 자신의 행위만 나타내다가 마지막 지옥의 불 못에 던져져 고통당하는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는 오직 신부의 신앙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고통과 환난과 핍박이 올지라도 복음의 달란트를 버리지 말고 다섯 달란트를 남긴다면 하나님이 마지막 날에 칭찬해 주십니다. 내가 하는 일에 복음을 버려야 하는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절대 버리지 않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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