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로마서 7장 설교말씀 중에서 맑은 양심의 빛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 시대는 좋은 양심 있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장사하는 자들이 저울을 속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장사하면서 저울을 속여서는 안 되겠습니다.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양심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는 어렵습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깨끗한 양심을 갖고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맑은 양심의 빛(롬 7:24-25)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어떤 목사님의 말씀이다. 새벽 기도를 마치고 예배당 문을 나서니 어떤 젊은 청년이 층계 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이유는 이러하였다. 만주 어떤 곳이든 농사나 지어먹을 수 있게 소개를 해달라는 것이다. 27세의 독신 청년으로 더욱이나 건강자로 어디선들 밥이 없어 하필 만주 땅으로 갈 것이 무엇이냐고 반문하였다. 그는 한참 동안이나 대답이 없이 주저하다가 나의 독촉에 마지못하여 이러한 대답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어떤 친구의 도움으로 고물 쇳조각을 촌으로 다니며 모아 오는 장사를 몇 달 동안 해보았는데 손해를 적지 않게 보았고 또한 앞날에서 이익이 생길 여망조차 보이지 아니한다고 처음에는 자기 영업이 손해 나는 이유조차 알지 못하였는데 차츰 지나며 알고 보니 분명히 할 노릇이 못 되는 것을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다른 동업자들은 많은 이익을 얻어 때를 만났다고 좋아하는 판인데 이 젊은 사람만이 홀로 손해를 보는 까닭은 오직 한 가지에만 부족함이 있는 것이었으니 그것은 저울을 속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동업자들의 솔직한 고백은 저울 눈을 속일 수 없거든 장사를 그만두라는 것이다. 아무리 자본이 넉넉해도 부지런해서 물건을 많이 모아 와도 또 절용 절식해도 저울로 속이는 일이 없다고 하면 그는 손해 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익을 얻어서 밥을 먹자니 양심을 속여야겠고 양심을 속이지 아니하자니 밥을 굶게 되니 부득불 이 사회에서 쫓김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장에 굶어서 죽는 한이 있어도 양심을 속일 수는 없고 부득이 업을 달리 고쳐야 할 터인데 자연을 대상하고 노력하는 농업이 날까 하여 땅이 흔하다는 만주로 가서 땅이나 파먹겠다는 것이다. 만일에 만주에 가서 땅을 파는 일에도 양심을 그대로 깨끗이 가지고 죽는 일이 마땅하지 않아 차마 양심을 속이고 배를 불리는 일은 감히 할 수 없다는 사정이다.
이 비장스럽고도 힘찬 용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나의 가슴속 깊은 곳에는 대포알을 맞은 듯 찌르르한 아픔이 생겨짐을 경험하였다. 양심을 속이고야 만 밥을 먹을 수 있는 이 사회 현상도 기가 막히게 한심한 일이거니와 나 자신의 생활이 얼마나 가련한 생활이었던가. 깨끗한 양심을 그대로 네가 지키었느냐. 스스로 나를 향해 물어볼 때 나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거짓의 아들이었던 것을 자복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형제를 속여 양심을 팔아먹는 이 거짓된 암흑의 세상도 장내가 큰 야단이거니와 이러한 세상에서 살아 보려는 우리들의 장내가 더욱 암담하다. 양심을 속여 팔아먹는 일도 차마 못할 일이거니와 양심을 곱게 지켜 굶어 죽는 일도 실상 어려운 일이다. 두 어려움 틈에 끼운 우리 신자들에게 어찌 괴로움이 없으랴.
"오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 누가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하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노라."(롬 7:24-25)
사도 바울께서도 자기의 힘만으로는 이 세상의 모든 죄악을 이기지 못하고 실패를 거듭하다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승리의 생활을 맛보고 시원한 가슴을 헤치고 담대하게 외친 말씀이다. 맑은 양심을 무참하게도 밟고 비벼서 팔아먹는 우리의 생활을 당연히 고칠 때가 왔다.
어느 때 인들 맑은 양심을 그대로 곱게 지켜 살라는 것이 인간 생활의 원칙이 아녔으리오마는 현재 오늘에 있어서 더욱 부르짖고 싶다. 일종 궤변을 늘어놓은 이야기 같지만 오늘에 있어서 맑은 참 양심을 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 같다. 다시 말하면 맑은 양심의 종자까지도 잃어버린 듯한 감이 없지 아니하다. 물론 양심이란 표준이 각각 다를 수도 있고 표준이 다른 관계로 서로 합치되지 아니할 것도 사실이니 내가 옳다고 보는 점에 내가 그르다고 볼 점도 있을 것이며 내가 아니라고 보는 일에 내가 옳다고 볼 수 있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양심의 근본 문제를 가지고 운운 함이 아니다. 각자마다 자기중심에 떨어지는 양심의 호령 소리 그대로 들어 순종하는 생활이 있느냐고 하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다른 이들에게 떨어지는 양심의 지시를 말하지 말고 나 자신의 중심에 떨어지는 양심의 지시를 그대로 들어서 순종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냐 하는 말이다.
맑은 양심을 만나보기 어려운 이 암흑한 세상에 누가 맑은 양심 그대로의 밝은 빛을 높이 들고 십자가상에 날아갈 것인고!! 이 일은 오직 십자가를 각오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절대의 순종으로 생명을 삼는 자에게만 있을 일이다. 오! 나의 주여, 맑은 양심 그대로의 생활이 한없이 그립습니다. 어서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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