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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히브리어 성경말씀] 느헤미야 성벽재건 구속사 비밀(느 3:1-32)

르호봇 2021. 8. 2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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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느헤미야 히브리어 성경말씀 중에서 느헤미야 성벽 재건 구속사 비밀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기도하면서 회개를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를 가지고 예루살렘 성벽과 문을 재건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과 문의 이름을 통해서 구속사 비밀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벽의 문 이름에는 하나님의 영적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럼 나는 어떤 문을 통과하여 하나님의 신앙을 하고 있는지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느헤미야 성벽재건 구속사 비밀(느 3:1-32)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 살게 되므로 예루살렘의 성전이 무너지고 백성들은 이방 땅에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70년이 지난 후에 스룹바벨과 에스라가 다시 백성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전은 무너졌고 성벽의 성문은 불탄 채로 남아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느헤미야가 듣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하고 아닥사스다 왕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무너진 성벽을 건축할 수 있도록 재가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면 항상 사탄의 방해가 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가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성벽이 재건되는 것을 사탄이 제일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느헤미야에게 힘을 주어 52일 만에 성벽을 재건하게 됩니다. 52의 숫자는 50 + 2인데 50은 기쁨, 구원, 안식, 성령, 이라는 의미이며 2는 분할, 증인, 연합, 성자, 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성벽을 재건했는데 52일 만에 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성벽 재건을 기뻐하시고 성령의 도우심과 함께 성벽을 재건한 자들에게는 기쁨이 있고 구원과 안식이 있으면서 성벽을 통하여 어둠의 자녀와 빛의 자녀가 나누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벽을 재건한 자들은 성자 예수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주님을 온 세상에 증거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성벽 재건에 힘을 쏟은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숫자가 31명입니다. 31의 숫자적 의미는 하나님의 자손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 같은 자들은 버림받은 자손이라면 성벽 재건에 힘을 쏟은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원을 받고 안식을 얻게 되며 하나님께서 기념 책에 기록해 놓으시고 큰 상급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도 무너진 나의 신앙을 세워야 합니다. 무너진 믿음을 다시 세워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로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무너지고 성벽이 불탄 모습을 보고 우리도 가슴 아파하면서 세워나가야 합니다. 교회에 어려움이 있는 것을 보고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한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닙니다. 재정이 어려우면 재정으로 보태고 일손이 부족하면 열심히 일하여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성벽의 재건과 문을 세우는 것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을 어떻게 세워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영적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첫 번째, 양문

1절 바야콤 엘르야쉬브 하코헨 하가돌 베에하이브 하코하님 바이브누 에트 샤아르 하촌 헴마 케드슈후 바야아미두 달르토타이브 베아드 미그달 마메아 키드슈후 아드 미그달 하나느엘

느3:1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첫 번째 문은 양문입니다. 양문을 건축한 사람은 대제사장 엘리아십입니다. 제사장들이 양문을 건축하여 문짝을 달았습니다. 이 양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문입니다.

 

’이라는 단어는 (6629) , 목자, 목축하는 자,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양이라는 뜻과 목자라는 뜻이 함께 쓰이고 있습니다. 이 양은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29절 테 에파우리온 블레페이 호 이오안네스 톤 이에순 에르코메논 프로스 아우톤 카이 레게이 이데 호 암노스 투 데우 호 아이론 텐 하마르티안 투 코스무

요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증거 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양의 문을 건축하고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문을 통과해야 구원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양문 곁에 베데스다 연못이 있었습니다. 38년 된 병자가 성전에 들어가고 싶어서 물이 동할 때에 병 고침을 받고 양의 문을 통과하여 성전에 들어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양문을 건축한 자들은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입니다. 이것은 대제사장의 사역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건축한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자들이 성전에 들어가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이라는 단어는 (샤아르 8179) 성문, ,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שער(샤아르 8176) 쪼개다, 떼어놓다, 값을 매기다, 평가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문입니다. 이 문을 통과하는 자만이 구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문을 통하여 세상의 사람과 하나님의 사람이 나누어지게 됩니다. 신약시대에는 양의 문에서 성전에 쓰일 양을 팔았던 장소입니다. 이곳에서 흠이 있는 것들은 값을 매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흠이 없는 양은 성전에서 제물로 드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나누고 따로 구분 지었던 곳이 양의 문입니다. 사람들이 흠이 있는 양을 가지고 오면 성전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양이 평가를 받았던 장소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1절 아멘 아멘 레고 휘민 호 메 에이셀코메노스 디아 테스 뒤라스 에이스 텐 아울렌 톤 프로바톤 알라 아나바이논 알라코덴 에케이노스 클레프테스 에스틴 카이 레스테스

2절 호 데 에이셀코메노스 디아 테스 뒤라스 포이멘 에스틴 톤 프로바톤

요10: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양의 문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양의 문을 통과하지 않고 다른 데로 가는 자들은 절도며 강도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흠이 없는 양을 가지고 오지 않고 더럽고 추한 양을 가지고 와서 양의 문을 통과하려고 하는 자들은 구원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쪼개짐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밖에서 울며 이를 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먼저는 예수그리스도의 문을 통과하여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두 번째, 어문

3절 베에트 샤아르 하다김 바누 베네 하세나아 헴마 케루후 바야아미두 달르토타이브 마느울라이브 우베리하이브

느3:3 어문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두 번째 문은 고기의 문입니다. 이곳에서 생선을 파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갈릴리에서 잡아온 생선을 이곳에서 판매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어문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양의 문을 통과하여 들어온 자들은 많은 고기를 잡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어문’이라는 단어는 (다그 1709) 물고기,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דגה(다가 1711) 수가 늘어나다, 번식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어문을 통하여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성전으로 들어가 구원을 받을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많은 물고기는 하나님의 아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잡았던 그물 속에 153마리의 물고기가 있었습니다.

19절 카이 레게이 아우토이스 듀테 오피소 무 카이 포이에소 휘마스 할리에이스 안드로폰

마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지금은 네가 갈릴리에서 고기를 낚고 있지만 앞으로는 고기 대신에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베드로가 성령을 받고 난 후에는 설교를 통하여 삼천 명 오천 명의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구원받은 백성들도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아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데 쓰임 받아야 합니다. 이제부터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절 베하마세킬림 야제히루 케조하르 하라키아 우마체디케 하라빔 카코카빔 레올람 바에드

단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양의 문을 통과하여 구원받은 자들은 지혜로운 자들입니다. 이제부터 많은 세상의 물고기들을 잡아서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데 하나님의 나라에서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복음의 그물을 가지고 세상의 바다로 나가 많은 고기들을 잡아오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옛 문

6절 베에트 샤아르 하예솨나 헤헤지쿠 요야다 벤 파세아흐 우메슐람 벤 베소드야 헴마 케루후 바야아미두 달르토타이브 우마느울라이브 우베리하이브

느3:6 옛 문은 바세아의 아들 요야다와 브소드야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세 번째 건축하는 문은 옛 문입니다. 이 문은 제일 처음에 세워진 문입니다. 가장 오래된 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문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옛적에 믿음의 선진들이 걸어갔던 그 길을 기억하라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현대의 빠른 과학기술에 물들어 있어서 옛것은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옛것이 없으면 지금의 것도 없는 것입니다. 온고지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옛것을 알아서 새로운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옛것을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옛 문을 통하여 우리는 믿음의 선진들이 갔던 길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옛 문’이라는 단어는 (야샨 3465) 낡은, 묽은, 오래된, 이라는 뜻입니다. 옛날의 오래된 선진들의 믿음을 기억하여 무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르호보암 왕은 옛날의 오래된 경험이 풍부한 장로들의 말을 듣지 않고 신세대 젊은이들의 말을 들어 실패한 왕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의 말을 듣고 믿음을 세워나가라는 것입니다.

16절 코 아마르 아도나이 이메두 알 데라킴 우레우 베샤알루 리네티보트 올람 에 제 데레크 하토브 우레쿠 바흐 우미츠우 마르고아 레나페쉐켐 바요메루 로 넬레크

렘6:1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 하였으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길에 서서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를 알아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심령에 평강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하신 길을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다가 고통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옛적 신앙의 길을 제시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의 말을 들은 르호보암처럼 나라가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29절 아라테 톤 쥐곤 무 에프 휘마스 카이 마데테 아프 에무 호티 프라오스 에이미 카이 타페이노스 테 카르디아 카이 휴레세테 아나파우신 타이스 프쉬카이스 휘몬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믿음의 선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쉼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고통의 삶에서 생명의 삶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옛적 길입니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이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길을 무시하고 가다가 결국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길을 가시렵니까? 옛적에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구원의 길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가시렵니까? 그러면 결국은 영원한 지옥의 불 못으로 던져지고 고통의 삶을 이 세상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 골짜기 문

13절 에트 샤아르 하가예 헤헤지크 하눈 베요쉐베 자노아흐 헴마 바누후 바야아미두 달르토타이브 마느울라이브 우베리하이브 베엘레프 암마 바호마 아드 샤아르 하샤포트

느3:13 골짜기 문은 하눈과 사노아 주민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분문까지 성벽 천 규빗을 중수하였고

 

이 골짜기 문은 유다 왕 웃시야 왕 때에는 망대를 세웠던 곳이고 힌놈의 골짜기로 통하는 문입니다.

 

골짜기 문’이라는 단어는 (가예 1516) 골짜기,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גוה(게바 1466) 교만함, 오만, 높임, 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골짜기 문은 교만했던 것들이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겸손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오만함과 스스로 자랑하여 교만한 생각과 행동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으로 낮아지는 것입니다.

3절 콜 코레 바미드바르 파누 데레크 아도나이 야쉐루 바아라바 메실라 렐로헤누

4절 콜 계아나세 베콜 하르 베기브아 이쉐팔루 베하야 헤아코브 레미쇼르 베호르카심 레비크아

사40:3-4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이 외쳤던 말씀으로 성취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라고 복음을 외치는 것입니다. 이때에 골짜기는 돋우어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골짜기는 교만하고 오만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으로 깨지고 자아가 부서지고 인격이 하나님의 인격으로 변하여 겸손한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도 이와 같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오만방자하게 굴었다면 골짜기 문을 통과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배우고 겸손하게 되어야 합니다.

5절 호모이오스 네오테로이 휘포타게테 프레스뷔테로이스 판테스 데 알렐로이스 휘포탓소메노이 텐 파테이노프로쉬넨 엥콤보사스데 호티 호 데오스 휘페레파노이스 안티탓세타이 타페이노이스 데 디도신 카린

6절 타페이노데테 운 휘포 텐 크라타이안 케이라 투 데우 히나 휘마스 휩소세 엔 카이로

벧전5:5-6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은 겸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며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라고 말씀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높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교만하거나 오만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는 더 철저하게 겸손해야 합니다. 그럼 오만하거나 교만한 것이 무엇입니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무시하고 거부하여 우습게 보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교만입니다. 이렇게 교만 떨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가 심판을 받았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일 때에 사람 앞에서도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분문

14절 베에트 샤아르 하아쉐포트 헤헤지크 말키야 벤 레카브 사르 펠레크 베이트 하카렘 후 이브네누 베야아미드 달르토타이브 마느울라이브 우베리하이브

느3:14 분문은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분문은 성전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처리하던 문입니다. 이 문은 똥 문이라고 하여 더럽고 추한 것들을 처리하던 장소입니다. 이곳에서 나병환자들과 거지들이 구걸하던 장소입니다. 이렇게 거름더미에 있던 자들을 귀족의 반열에 세워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습니다.

 

분문’이라는 단어는 (아쉬포트 830) 똥 더미, 거름더미,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שפה(샤파 8192) 발가벗겨 버리다, 드러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분문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죄악 가운데 있었던 가장 추악하고 똥과 같은 존재들이 발가벗겨지듯이 완전하게 추악한 삶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병환자와 거지들은 사람들에게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모든 수치가 드러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이 똥 문을 통과하여 들어왔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하게 죄가 씻겨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원죄가 완전하게 사라진 것입니다.

17절 호스테 에이 티스 엔 크리스토 카이네 크티시스 타 아르카이아 파렐덴 이두 게고넨 카이나 타 판타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전에는 오물 쓰레기 같은 존재였습니다. 거지와 같은 추악한 삶을 살고 있었던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 보혈이 나를 완전하게 깨끗하게 씻겨주셨고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추악한 더러운 거지의 삶은 사라졌습니다. 이제부터는 귀족의 삶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7절 메키미 메아파르 달 메아쉐포트 야림 에브욘

8절 레호쉬비 임 네디빔 임 네디베 암모

시113:7-8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세워 지도자들 곧 그의 백성의 지도자들과 함께 세우시며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고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세워주셔서 지도자의 반열에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똥 문 곁에서 살아야 할 나의 인생을 주님께서 대신 똥 문이 되어주시고 나는 귀족으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8절 메킴 메아파르 달 메아쉐포트 야림 에브욘 레호쉬브 임 네디빔 베키세 카보드 야네힐렘 키 라아도나이 메추케 에레츠 바야쎄트 알레헴 테벨

삼상2: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고 빈궁한 자를 똥물이 튀기는 곳에서 올려주셔서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해 주셨습니다. ‘거름더미라는 단어가 אשפת(아쉬포트)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리고 영광의 자리에 앉게 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면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귀족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더 이상 추악하고 더러운 똥 문의 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죄악의 삶을 살지 말아야 합니다.

1절 타우타스 운 에콘테스 타스 에팡겔리아스 아가페토이 카다리소멘 헤아우투스 아포 판토스 몰뤼스무 사르코스 카이 프뉴마토스 에피텔룬테스 하기오쉬넨 엔 포보 데우

고후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이제 똥 문에서 나왔다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아버지를 존경하며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다시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의 영과 육이 더러운 똥 문의 삶에서 벗어나 항상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는 구원받기 전의 생활은 기억도 하지 마십시오. 거지 같은 꼴은 상상도 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모두 청산하여 주셨습니다. 이제 깨끗한 세마포만 입고 다니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섯 번째, 샘 문

15절 베에트 샤아르 하아인 헤헤지크 샬룬 벤 콜 호제 사르 펠레크 하미츠파 후 이브네누 비탈렐레누 베야아미두 베야아미두 달르토타이브 마느울라이브 우베리하이브 베에트 호마트 베레카트 하쎌라흐 레간 하멜렉크 베아드 하마알로트 하요르도트 메이르 다비드

느3:15 샘문은 미스바 지방을 다스리는 골호세의 아들 살룬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고 덮었으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왕의 동산 근처 셀라 못 가의 성벽을 중수하여 다윗 성에서 내려오는 층계까지 이르렀고

 

이 문은 다윗 성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분문에서 약간 북쪽에 있는 곳입니다. 샘 문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생수가 터져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이 충만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샘 문’이라는 단어는 (아인 5869) , , 목전, 주목하다, 흘러나오다, 라는 뜻입니다. 샘 문을 통하여 흘러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수를 마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생수를 마지않으면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 생수를 마심으로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38절 호 피스튜온 에이스 에메 카도스 에이펜 헤 그라페 포타모이 에크 테스 코일리아스 아우투 류수신 휘다토스 존토스

39절 투토 데 에이펜 페리 투 프뉴마토스 후 에멜론 람바네인 호이 피스튜온테스 에이스 아우톤 우포 가르 엔 프뉴마 하기온 호티 호 이에수스 우데포 에독사스데

요7:38-39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까? 성령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지 않았기 때문에 성령이 아직 제자들에게 계시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백성들은 성령의 임재가 있는 것이고 영원한 생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들음으로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눈에 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하나님께서 주목하여 보시는 것입니다. 늘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을 하나님은 주목하여 보고 있습니다.

8절 베노아흐 마차 헨 베에네 아도나이

창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모든 세상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의 뜻대로 살아갈 때에 노아만큼은 성령의 충만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서 홍수로 심판하신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라는 단어가 עין(아인)입니다. 노아는 여호와의 눈에 발견되었습니다. 노아의 삶이 성령님이 이끄시는 데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노아를 주목하여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18절 카이 메 메뒤스케스데 오이노 엔 호 에스틴 아소티아 알라 플레루스데 엔 프뉴마티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이제부터 세상의 우상의 술을 마시지 말고 방탕한 삶을 살지 말며 오직 성령님으로 인하여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똥 문 다음에 샘 문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똥 문과 같은 삶에서 구원을 얻은 백성들은 이제부터 샘 문과 같은 성화의 삶을 살아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부터는 샘 문과 같은 곳으로 통과하여 거룩하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에 대하여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곱 번째, 수문

26절 베하네티님 하이우 요쉐빔 바오펠 아드 네게드 샤아르 하마임 라미즈라 베하미그달 하요체

느3:26 (그 때에 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주하여 동쪽 수문과 마주 대한 곳에서부터 내민 망대까지 이르렀느니라)

 

수문은 기혼 샘의 바로 서쪽에 있었습니다. 이 문을 통과하여 성전에 쓰일 물을 길러 다니게 된 것입니다.

 

수문’이라는 단어는 (마임 4325) , 샘물, 원천, 이라는 뜻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수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이 없으면 사람은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받고 나면 끊임없이 생수를 마셔야 하는 것입니다.

7절 베하야 하솨라브 라아감 베치마온 레마부에 마임 비네베 타님 리브차흐 하치르 레카네 바고메

사35:7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연못과 같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되는데 물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전에는 뜨거운 사막처럼 황폐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물이 솟구쳐 올라오는 분천과 같은 존재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생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면 메마른 땅도 광야도 옥토로 변하는 것입니다. 생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믿은 자들은 옥토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1절 바예오스푸 콜 하암 케이쉬 에하드 엘 호르호브 아쎄르 리프네 샤아르 하마임 바요메루 레에즈라 하소페르 레하비 에트 세페르 토라트 모쎄 아쎄르 치바 아도나이 에트 이스라엘

느8:1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수문 앞 광장에서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 책을 낭독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성벽이 재건되지 않아 완전하게 무너져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벽이 재건되고 나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전에는 예수님에 관하여 가르쳐 준 사람이 없었는데 지금 에스라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에스라’라는 단어는 (에즈라 5830) 에스라,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עזר(아자르 5826) 돕다, 도와주다, 도움을 얻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에스라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에스라는 율법의 말씀을 통하여 백성들의 영적인 눈을 열어주고 있는 인물입니다. 지금까지 영적인 눈이 어두워 구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에스라는 새로운 눈을 열어주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말씀을 새로운 각도에서 해석하심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놀랬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도움을 받아 구원을 얻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지금 이 일을 하게 하는 사람이 바로 에스라입니다.

8절 바이크르우 바세페르 베토라트 하엘로힘 메포라쉬 베숌 쎄켈 바야비누 바미크라

9절 바요메르 네헤므야 후 하티르솨타 베에즈라 하코헨 하소페르 베하레비임 하메비님 에트 하암 레콜 하암 하욤 카도쉬 후 라아도나이 엘로헤켐 알 티트아벨루 베알 티브쿠 키 보킴 콜 하암 케쇼므암 에트 디브레 하토라 

10절 바요메르 라헴 레쿠 이켈루 마쉐마님 우쉐투 마므타킴 베쉴르후 마노트 레에인 나콘 로 키 카도쉬 하욤 라아도네누 베알 테아체부 키 헤드바트 아도나이 히 마우제켐

느8:8-10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에스라가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백성들이 모두 깨닫고 우는 것입니다.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음의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들의 마음이 찔림을 받아 울게 되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울지 말라고 말하면서 지금은 여호와의 성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날은 거룩한 성일인데 종교 달력으로는 나팔 절기에 해당하는 날입니다. 나팔 절기는 민간 달력으로는 새해의 시작입니다. 에스라는 율법 책을 낭독하여 주고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날은 일곱째 달 초하루입니다. 지금까지 죄악 가운데 갇혀있던 자들이 나팔을 불어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을 주님께서는 재림하셔서 임하게 되는데 나팔을 불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문은 구원받은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먹고 마심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샘물처럼 솟구쳐 나오는 것입니다.

50절 후토스 에스틴 호 아르토스 호 에크 투 우라누 카타바이논 히나 티스 엑스 아우투 파게 카이 메 아포다네

51절 에고 에이미 호 아르토스 호 존 호 에크 투 우라누 카타바스 에안 티스 파게 에크 투투 투 아르투 제세타이 에이스 톤 아이오나 카이 호 아르토스 데 혼 에고 도소 헤 사르크스 무 에스틴 헨 에고 도소 휘페르 테스 투 코스무 조에스

요6:50-51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오신 떡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떡을 먹으면 굶주리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살을 먹는 자들은 영원히 주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 복음입니다.

53절 에이펜 운 아우토이스 호 이에수스 아멘 아멘 레고 휘민 에안 메 파게테 텐 사르카 투 휘우 투 안드로푸 카이 피에테 아우투 토 하이마 우크 에케테 조엔 엔 헤아우토이스 

54절 호 트로곤 무 텐 사르카 카이 피논 무 토 하이마 에케이 조엔 아이오니온 카이 에코 아나스테소 아우톤 테 에스카테 헤메라

55절 헤 가르 사르크스 무 알레도스 에스틴 브로시스 카이 토 하이마 무 알레도스 에스틴 포시스

요6:53-5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우리 안에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시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되며 마지막 날에 주님이 다시 부활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주님의 참된 양식인 살과 참된 음료인 피를 마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덟 번째, 마문

28절 메알 샤아르 하수심 헤헤지쿠 하코하님 이쉬 레네게드 베이토

느3:28 마문 위로부터는 제사장들이 각각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마 문은 예루살렘의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문입니다. 이 문은 수문과 양문 사이에 있는 곳입니다. 과거에 마 문은 말이 통과하던 문입니다.

 

마문’이라는 단어는 (수스 5483) , 이라는 뜻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말은 힘과 전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권능과 권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전쟁에 나갈 때에 말을 타고 가서 승리하기 때문에 성경에서 말은 전쟁과 능력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16절 카이 호 아리드모스 스트라튜마톤 투 히프피쿠 뒤오 뮈리아데스 뮈리아돈 카이 에쿠사 톤 아리드몬 아우톤

계9:16 마병대의 수는 이만 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거짓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수를 이만 만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마병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거짓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힘이 세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마 문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성령의 능력을 받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군사로 탄생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절 쉬 운 카코파데손 호스 칼로스 스트라티오테스 이에수 크리수투

 4절 우데이스 스트라튜오메노스 엠플레케타이 타이스 투 비우 프라크마테이아이스 히나 토 스트라톨로게산티 아레세

딤후2:3-4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은 백성들이 되었다면 이제는 예수님의 좋은 병사로 탄생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고난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병사로 복무하는 자들은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세상에 얽매이지 않고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는데 세상의 일에 얽매여 못한다고 한다면 그리스도의 병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우선순위에 두고 사는 인생이 그리스도의 군사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가 된 사람들은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벽의 마 문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유다의 아하시야 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달랴가 유다의 왕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그때에 왕의 자손들을 모두 죽이게 됩니다. 그리고 아달랴의 폭정이 6년 동안 이루어지고 이때에 바알의 우상이 들어오고 여호와 신앙은 사라지게 됩니다. 7년째에 여호야다라는 인물이 나타나 아달랴를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15절 바예차브 예호야다 하코헨 에트 사레 하메오트 페쿠데 하하일 바요메르 알레헴 호치우 오타흐 엘 미베이트 라세데로트 베하바 아하레이하 하메트 베하레브 키 아마르 하코헨 알 투마트 베이트 아도나이 

16절 바야시무 라흐 야다임 바타보 데레크 메보 하수심 베이트 하멜렉크 바투마트 솸

왕하11:15-16 제사장 여호야다가 군대를 거느린 백부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를 대열 밖으로 몰아내라 그를 따르는 자는 모두 칼로 죽이라 하니 제사장의 이 말은 여호와의 성전에서는 그를 죽이지 말라 함이라 이에 그의 길을 열어 주매 그가 왕궁의 말이 다니는 길로 가다가 거기서 죽임을 당하였더라

 

여호야다가 백부장들에게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아댤랴와 그의 무리를 죽이는데 여호와의 성전에서는 죽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곳에서 더러운 피를 흘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길을 열어주었는데 아달랴가 왕궁의 말이 다니는 길로 가다가 거기서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곳이 바로 마 문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여호야다와 같은 복음의 진리 말씀으로 무장한 자들은 아달랴와 같은 거짓된 복음을 전하는 우상숭배자들을 처단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아달랴가 죽은 곳이 마 문입니다. 심판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6년 동안 우상을 섬기게 했지만 결국은 구원받은 여호야다와 같은 자들에 의하여 힘과 권능의 상징인 마 문에서 심판을 받아 죽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복음의 말씀이 있는 자들은 거짓된 비 복음을 전하는 이단들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 떨 것이 없습니다. 이들은 반드시 십자가 복음의 말씀으로 처단하기 때문입니다.

 

아홉 번째, 동문

29절 아하라이브 헤헤지크 차도크 벤 임메르 네게드 베이토 베아하라이브 헤헤지크 쉐마에야 벤 쉐카느야 쇼메르 샤아르 하미즈라

느3:29 그 다음은 임멜의 아들 사독이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동문지기 스가냐의 아들 스마야가 중수하였고

 

아홉 번째 문이 동문입니다. 이 문은 동쪽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광명한 새벽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문이기도 합니다.

 

동문’이라는 단어는 (미즈라흐 4217) 동쪽, 해 뜨는 쪽,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זרח(자라흐 2224) 임하다, 비치다, 떠오르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동쪽은 해가 비치는 쪽입니다. 어둡고 탁한 세상을 진리의 빛으로 밝혀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빛이 임하여 영원한 죽음에 있던 자들에게 빛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이 빛을 받은 자들은 모두가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지 못한 자들은 결국 어둠에 싸여 죽게 되는 것입니다.

2절 베조르하 라켐 이르에 쉐미 쎄메쉬 체다카 우마르페 비케나페이하 비차템 우피쉐템 케에겔레 마르베크

말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오르게 됩니다. 여기에서 ‘떠올라서’ 라는 단어가 זרח(자라흐)입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치료하는 광선이 비추게 되는데 영원히 아담의 원죄로 인하여 죽었던 영혼들이 빛을 받아 치료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옥 같은 죄악의 삶에서 나와 송아지처럼 기뻐서 뛰게 되는 것입니다.

16절 에고 이에수스 에펨프사 톤 앙겔론 무 마르튀레사이 휘민 타우타 에피 타이스 에클레시아이스 에고 에이미 헤 리자 카이 토 게노스 투 다비드 호 아스테르 호 람프로스 카이 호르드리노스

계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예수 그리스도는 동쪽에서 떠오르는 광명한 새벽 별과 같은 존재입니다. 가장 어두울 때에 함께하셔서 빛을 주시는 태양처럼 이 세상에 임하신 것입니다. 나도 태양의 빛을 받았기 때문에 살아났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태양의 빛이 나에게 임하여 추하고 더러운 모든 죄들이 사라졌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빛 때문에 나의 모든 원죄가 사라지고 영원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12절 키르호크 미즈라 미마아라브 히르히크 미메누 에트 페솨에누

시103: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시편기자는 동이 서에서 먼 것과 같이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겨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해 뜨는 동쪽에서 태양이 떠서 나의 모든 더러운 죄를 씻겨주시고 서쪽으로 물러가게 해주신 것입니다. 해가 지면 어둡게 되지만 이제부터 구원받은 백성들에게는 어둠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항상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2절 팔린 운 호 이에수스 아우토이스 엘랄레센 레곤 에고 에이미 토 포스 투 코스무 호 아콜루돈 에모이 우 메 페리파테세이 엔 테 스코티아 알르 헥세이 토 포스 테스 조에스

요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기 때문에 나를 따르는 자들은 절대 어둠에 다니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예수님은 생명의 빛이기 때문에 다시는 죄악으로 인하여 죽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에 거하기 때문에 죄악의 자리에 있지 않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더 이상 구원이 취소되지 않고 어둠에 있지 않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열 번째, 밉갓문

31절 아하레 아하라이브 헤헤지크 말키야 벤 하초르피 아드 베이트 하네티님 베호로켈림 네게드 샤아르 하미프카드 베아드 알리야트 하핀나

느3:31 그 다음은 금장색 말기야가 함밉갓 문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여 느디님 사람과 상인들의 집에서부터 성 모퉁이 성루에 이르렀고

 

열 번째 문인 밉갓 문은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문입니다. 이 문은 양문으로 연결되는 곳이고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는 곳에 있습니다. 이것은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밉갓문’이라는 단어는 (미프카드 4663) 함밉갓,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פקד(파카드 6485) 살피다, 벌을 주다, 심판하다, 권징하다, 징벌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밉갓 문은 지정된 장소로서 장로들이 모여 사건을 재판하던 장소입니다. 우리가 밉갓 문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영적 진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임명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임명하여 주셨습니까? 성도의 직분입니다. 이 직분을 소홀히 하여 아직도 세상에서 정신 못 차리고 살면 하나님은 심판대 앞에 세워 징벌하여 형벌을 주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어 있습니다.

27절 카이 카드 호손 아포케이타이 토이스 안드로포이스 하팍스 아포다네인 메타 데 투토 크리시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사람이 태어나서 한번 죽는 것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육신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로부터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거듭난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도 두렵지 않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거나 떨지 않아도 됩니다. 성도의 신분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20절 헤몬 가르 토 폴리튜마 엔 우라노이스 휘파르케이 엑스 후 카이 소테라 아페크데코메다 퀴리온 에에순 크리스톤

빌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고 있지만 이미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자로서 살아가기 때문에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소망을 두는 사람은 세상의 사람이지만 하늘의 소망을 두는 사람은 하늘의 시민권자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3절 카이 판 카타나데마 우크 에스타이 에티 카이 호 드로노스 투 데우 카이 투 아르니우 엔 아우테 에스타이 카이 호이 둘로이 아우투 라트류수신 아우토

4절 카이 옵손타이 토 프로소폰 아우투 카이 토 오노마 아우투 에피 톤 메토폰 아우톤

5절 카이 뉙스 우크 에스타이 에케이 카이 크레이안 우크 에쿠신 뤼크누 카이 포토스 헬리우 호티 퀴리오스 호 데오스 포티제이 아우투스 카이 바실류수신 에이스 투스 아이오나스 톤 아이오논

계22:3-5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하늘의 시민권자들은 천국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임명하신 것입니다. 이곳은 밤이 없습니다. 항상 여호와 하나님의 빛이 있기 때문입니다. 등불과 태양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빛이 항상 나에게 비추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는 영원히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할 것이 준비되어 있고 임명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살라고 성도의 직분을 나에게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는 모습을 통하여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고 성전을 세우고 문을 만드는 것을 통하여 나의 신앙도 재건해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의 신앙이 무너져 황폐해져 있다면 빨리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양문을 통과하여 들어오는 것입니다. 또한 구원을 받은 확신이 있다면 항상 샘 문과 수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와 성화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충성하기 위해서는 어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전도의 문입니다. 많은 백성들을 하나님 앞에 오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려면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받으려면 항상 마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말이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잠을 자지 않으려면 골짜기 문과 옛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옛 문을 통하여 믿음의 선진들의 말씀을 잘 듣고 골짜기 문을 통하여 겸손하게 주님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오만불손하게 교만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만해지지 않으려면 똥 문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장 추악했던 삶을 기억하여 다시는 그곳으로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똥 문을 기억하면 나의 현재의 삶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문을 통과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고 밋갑문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천국의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천국에서 살아갈 것이 확정되어 있는 성도들입니다. 이제부터 성벽의 문을 통과하여 항상 주님과 하나가 되어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에스라 1장 성경말씀] 바사왕 고레스의 바벨론 포로 귀환 칙령(스 1:1-11)

 

[에스라 1장 성경말씀] 바사왕 고레스의 바벨론 포로 귀환 칙령(스 1:1-11)

안녕하세요. 오늘은 에스라 1장 성경말씀 중에서 바사 왕 고레스의 바벨론 포로 귀환 칙령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서 70년이 차면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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