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누가복음 헬라어 설교 중에서 잃어버린 자 삭개오 구원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여리고로 들어가시다가 삭개오를 만나게 됩니다. 무화과나무에 올라가 있는 삭개오를 보시고 내려오라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너의 집에 유숙해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군거립니다. 어떻게 죄인의 집에서 잠을 자겠다고 하는 말인가라고 수군거렸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인자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고 왔다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죄인인 나를 찾아오셔서 삭개오와 같은 나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잃어버린 자 삭개오 구원(눅 19:1-10)
예수님께서는 종을 아들의 반열에 올려주신 분이 아닙니다. 이미 만세 전에 아들이었던 자들을 아들의 권세로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종을 아들로 삼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아들이 아들의 권세를 잃어버리고 죄의 종노릇 한 것을 십자가에서 다시 회복시켜 주셔서 아들의 권세를 찾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도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죄의 종노릇 하던 삭개오를 찾아오셔서 다시 아들의 반열로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도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죄의 종노릇 하던 것들을 깨뜨려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구원받은 자는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절 카이 에이셀돈 디에르케토 텐 히에리코
2절 카이 이두 아네르 오노마티 칼루메노스 자크카이오스 카이 아우토스 엔 아르키텔로네스 카이 후토스 엔 플루시오스
(눅 19:1-2)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고 있습니다. 이곳에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의 직업은 세리장이며 부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왜 여리고로 지나가고 있을까요?
‘여리고’라는 단어는 יריחו(예리호 3405) 향기의 장소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성령의 감동으로 향기의 장소라는 여리고를 향하여 들어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시는 것은 삭개오를 만나러 가는 것입니다. 목적도 없이 가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아들인 삭개오를 찾으러 가시게 되는 것입니다. 여리고에는 삭개오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에 죄인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죄인을 찾아오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찾아오셨기 때문에 내가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3절 카이 에제테이 이데인 톤 이에순 티스 에스틴 카이 우크 에뒤나토 아포 투 오클루 호티 테 헬리키아 미크로스 엔
4절 카이 프로드라몬 엠프로스덴 아네베 에피 쉬코모리안 히나 이데 아우톤 호티 디 에케이네스 에멜렌 디에르케스다이
(눅 19:3-4)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삭개오가 듣고 주님이 어떤 사람이 길래 많은 사람들이 쫓아다니고 병을 고쳐주는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삭개오가 주님을 보고 싶었지만 키가 작고 사람들이 많아 제대로 볼 수가 없어서 돌 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러고 난 후에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달려가’라는 단어는 (프로트레코 4390 VPAANMS 동사 분사 과거 능동태 주격 남성 단수) 앞으로 달려가다, 앞서 달리다, 라는 뜻입니다. 삭개오는 여리고로 들어오시는 주님을 보려고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달려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키가 작기 때문에 돌 무화과나무로 올라가게 됩니다. 삭개오가 달려가는데 여리고 라는 장소가 있고 삭개오는 주님을 향하여 열심히 뛰게 됩니다. 그런데 삭개오가 주님을 보기 위해 이렇게 뛰는 것이 이미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삭개오는 너무나 주님이 궁금하여 자신 스스로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마음이 급하고 궁금함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올라가니’라는 단어는 (아나바이노 305 VIAAS3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단수 3인칭) 올라가다, 오르다, 라는 뜻입니다. 삭개오가 급하게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급한 마음에 올라간 것입니다. 이렇게 삭개오가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간 사실이 실제적으로 있고 이 사건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삭개오가 돌 무화과나무에서 주님을 만나는 이 사건은 이미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이 현재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삭개오가 능동적으로 자신 스스로 올라갔지만 이것은 자신이 한 것 같지만 이미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 이유가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시는 것은 현재시제를 쓰고, 삭개오가 달려와 나무에 올라간 것은 과거 시제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제가 일치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삭개오를 구원하시기 위해 만세전에 택한 것이라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으며 현재에 예수님을 통해 구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5절 카이 호스 엘덴 에피 톤 토폰 아나블렙사스 호 이에수스 에이덴 아우톤 카이 에이펜 프로스 아우톤 자크카이에 스퓨사스 카타베디 세메론 가르 엔 토 오이코 수 데이 메 메이나이
6절 카이 스퓨사스 카테베 카이 휘페덱사토 아우톤 카이론
(눅 19:5-6)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가시다가 돌 무화과나무에 이르러서 삭개오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삭개오를 알고 지나가시다가 부르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는데 어떻게 삭개오만 알겠습니까? 이것이 만세전에 삭개오를 선택해 놓았다는 증거이며 여리고를 찾으신 목적도 삭개오를 만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삭개오’는 זכי(자카이 2140)입니다. 이 단어는 זכך(자카크 2141) 순결하다, 깨끗하게 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삭개오는 세리 장으로서 죄인이며 더러운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돈을 갈취했으며 탐욕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삭개오의 이름 속에는 이미 깨끗하게 되고 순결하다는 뜻이 숨어져 있습니다. 삭개오는 이미 하나님께 택함 받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죄악 가운데 아들의 신분을 잊어버리고 죄의 종노릇 하면서 살았던 인생입니다. 이런 자에게 예수님께서 직접 찾아오셔서 십자가 보혈로 죄를 깨끗하게 씻겨주시고 영혼과 육신을 순결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은 삭개오의 삶이었습니다. 주님이 찾아오시지 않았다면 절대 깨끗한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쳐다보시고’라는 단어는 (아나블레포 308 VPAANMS 동사 분사 과거 능동태 주격 남성 단수) 쳐다보다, 다시보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돌 무화과나무에 있는 삭개오를 지나가시다가 쳐다보게 됩니다. 삭개오를 유심히 보시면서 빨리 내려오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돌 무화과나무라는 장소에서 주님께서 삭개오를 바라보시면서 말씀으로 삭개오를 부르셨는데 이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삭개오를 구원하시려는 계획이 있으며 현재에 주님을 통해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님은 삭개오를 살리시고자 마음에 연민이 있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삭개오를 죄인이라고 만나지도 않았지만 주님은 삭개오를 직접 만나주시고 삭개오의 집에서 함께 머물러야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즐거워하며’라는 단어는 (카이로 5463 VPPANMS 동사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남성 단수) 기뻐하다, 즐거워하다, 라는 뜻입니다. 삭개오는 주님께서 내려오라는 말씀에 너무나 기뻤습니다. 자신을 지금까지 죄인이라고 생각하여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자신이 존경하던 주님이 자신의 집에 머물러야겠다는 말씀에 마음이 기뻤습니다. 삭개오는 돌 무화과나무에서 주님의 말씀을 통해 마음이 기쁘고 즐거웠으며 지금 당장 기뻐서 나무에서 내려오고 있습니다. 삭개오는 어떻게 나무에서 내려온지도 모르게 자발적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삭개오의 마음은 날아갈 듯이 기쁘고 놀라웠습니다. 죄인이 주님을 만나면 이렇게 영육이 기뻐지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만나면 너무나 기뻐서 정신이 없게 됩니다.
‘영접하거늘’이라는 단어는 (휘포데코마이 5264 VIADS3 동사 직설법 과거 중간디포 단수 3인칭) 접대하다, 환영하다, 라는 뜻입니다. 삭개오는 너무나 신이 나서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영접하여 접대하고 환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삭개오의 집에 예수님이 들어간 사실이 실제적 사건으로 있으며 이 사건은 이미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삭개오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현재시제를 쓰지만 영접한 것은 과거 시제를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죄인의 집에 머무르면서 구원의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기쁨으로 자신의 집에 영접하게 됨으로 자신은 구원을 얻게 되고 마음에 기쁨이 넘치며 더 이상 죄인의 삶을 탈피하게 됩니다. 이렇게 주님을 자신의 집에 영접하게 된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됩니다.
7절 카이 이돈테스 하판테스 디에공귀존 레곤테스 호티 파라 하마르톨로 안드리 에이셀덴 카탈뤼사이
8절 스타데이스 데 자크카이오스 에이펜 프로스 톤 퀴리온 이두 타 헤미세 톤 휘파르콘톤 무 퀴리에 디도미 토이스 프토코이스 카이 에이 티노스 티 에쉬코판테사 아포디도미 테트라플룬
(눅 19:7-8)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많은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이 죄인의 집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항상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올무에 걸리게 할 것만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세리 장인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항상 죄인을 부르러 오신 분입니다. 죄인인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시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에 정당한 것입니다.
‘내 소유의 절반’ מקור(마코르 4726) 샘, 근원,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קור(쿠르 6979) 파다, 무너뜨리다, 드러내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삭개오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사람을 억울하게 하여 돈을 거두어들인 것을 이제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나누어 주는데 소유의 절반이 아니라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만큼 물질을 아끼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내 자신이 주님 앞에 죄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교만과 오만을 무너뜨려 내가 신처럼 생각했던 물질이 바닥을 드러내기까지 나의 재산을 모두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겠다고 주님께 회개하는 것입니다. 삭개오의 회개는 부자 청년의 태도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부자 청년은 율법을 모두 지켰다고 당당하게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물질을 모두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주님을 따르라고 했을 때에 부자청년은 낯이 어두워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삭개오의 회개는 다릅니다.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물질들이 바닥이 나더라도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있으면 물질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회개를 하나님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었다면 행동도 따라주어야 합니다. 삭개오는 원죄는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회개한 것이고 자범죄는 물질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줌으로 회개한 것입니다.
9절 에이펜 데 프로스 아우톤 호 이에수스 호티 세메론 소테리아 토 오이코 투토 에게네토 카도티 카이 아우토스 휘오스 아브라암 에스틴
10절 엘덴 가르 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 제테사이 카이 소사이 토 아폴롤로스
(눅 19:9-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삭개오의 회개가 끝났을 때에 예수님은 선포합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죄인을 찾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자’라는 단어는 (아폴뤼미 622 VPRAANS 동사 분사 완료 능동태 목적격 중성 단수) 죽임을 당하다, 멸망하다, 죽다, 라는 뜻입니다. 이미 아담 이후로 많은 자들이 죄 때문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모든 영혼이 파괴되어 지옥의 불 못으로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만세전에 택한 하나님의 아들들을 멸망에서 건져주시고 죽음에 처한 자들을 살리려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잃어버린 자들은 아담의 불순종의 결과로 모두 죽었고 하나님의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서 죄를 짓는 자가 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아담의 행동을 통해 현재에도 죽어 있는 자들입니다. 자신 스스로 행동하는 모든 것들이 이미 죽은 행동들입니다. 윤리적으로 선한 행실을 해도 이것은 이미 죽은 행동이며 하나님 앞에 절대 선하지 못한 것입니다. 멸망받은 자들의 목적은 모두가 죄를 짓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이것을 회복시키기 위해 주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멸망 받은 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면 멸망받아 죽은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삭개오가 회개하여 주님을 믿고 구원을 얻은 것처럼 각 개인에게 주님은 찾아오십니다. 내가 오늘 삭개오처럼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죄인이 주님을 만나는 순간 깨끗해지고 순결하여 하나님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만세전에 택함 받은 인생은 반드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하나님을 찾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삭개오가 나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영원히 죄인으로 인생을 살다가 지옥의 불 못으로 던져질 운명이었는데 주님이 직접 찾아오셔서 죄인과 함께 하여 구원의 은혜를 주신 것처럼 나도 주님을 만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보혈을 이제는 헛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원죄가 해결된 인생이 되었다면 자범죄를 회개하여 나의 행동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행동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로마서 9장 헬라어 설교말씀] 율법주의자가 부딪칠 돌 예수(롬 9: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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