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기독교 교회사 성경공부 중에서 십자군 전쟁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중세교회는 영적으로 부패되어 있었습니다. 로마교회는 이미 부패될 대로 부패되어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십자군 전쟁은 기독교 교회사에 세상 사람들로부터 지탄받을 수밖에 없는 전쟁입니다. 많은 사람을 거룩한 전쟁이라고 하여 죽였습니다. 자신의 배만 채우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 배만 채우는데 열심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순수하게 시작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정욕적으로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항상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이 세상 정욕을 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중세사에 있었던 십자가 전쟁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 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십자군 전쟁
오늘은 역사적으로 중세 봉건제도의 몰락을 재촉시켰으며 기독교적으로도 중세 가톨릭 교회의 타락을 부채질하여 종교개혁의 발판을 만들었던 중세의 십자군 전쟁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십자군 전쟁은 원래 성지 예루살렘을 이교도 즉 회교도들의 손으로부터 탈환하여 성도를 회복하려는 운동이었습니다.
주후 1074년 이교도의 군대에게 성도인 예루살렘을 빼앗긴후 거의 한 세기 동안 이교도들의 손에 점령되어 있었는데 이로 인하여 기독교인들의 성지순례가 막대한 장벽 앞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 유물들을 존경도 하지 않았고 또 순례자들이 그 땅에 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클루니 수도원의 경건운동은 종교적 경건을 육성하여 성지 탈환의 분위기가 고조되었습니다.
황제 알렉시스 콤베머스는 이교도들이 동로마제국의 영토를 서서히 점령하자 교황 우르반 2세에게 원조 해줄 것을 청원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르반은 희랍 제국의 잃어버린 지방들을 회복할 원조 군을 모집할 생각은 하지 않고 성지의 회복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연합을 위한 노력을 지휘하려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군 원정 발생의 동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외에 또 다른 동기들도 있었습니다.
왕들은 커다란 세력을 확보하고 있는 지방 영주 즉 귀족들이 필요 이상으로 가지고 있는 군대를 성전(聖戰)에 내보냄으로 말미암아 그 세력을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관심을 십자군 전쟁으로 돌리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으며 여기에 기사들은 이교도들을 싸워 멸하고 그리고 십자군들의 세계를 보고 싶어 하였고 또 싸워서 개인의 영광을 쟁취하고 싶어 하였습니다. 제1차 십자군 운동은 교황 우르반 2세가 1095년 클레몬트의 회의에서 설교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이 회의에는 주로 프랑스 감독들이 출석하였으며 유명한 연설에서 우르반은 귀족들과 교직자들에게 그리스도가 그들을 위하여 돌아가신 그 땅에서 죽는 것은 좋은 일일 것이며, 소유에 대한 사랑이 그들을 사로잡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십자군이므로 그들은 원수들을 물리치고 승리를 얻고 돌아와야 할 것이며 만일 그렇지 않으면 싸움에서 죽어서 영원한 상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설교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신다”라고 큰소리를 지르며 독려하였고 대중은 십자군 지원의 서약을 하려 몰려들었고 십자군의 휘장 곧 교황이 공급한 하얀 삼베 십자가를 어깨에 걸쳐 메었습니다.
1097년에 이 십자군은 니케야를 점령하고 1099년에는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습니다. 제2차 십자군은 이슬람의 세력이 극도로 쇠약하였을 때 그것을 구하여준 사라센 지배자들 때문에 동로마와 성도가 갑자기 위태하게 되었을 때 필요하여 모집된 것입니다.
교황 유겐니어스 3세와 성 버나드는 프랑스의 왕 루이 7세와 서방 황제 콘라드 3세를 선동하여 십자군을 모집하게 하였는데 이 십자군은 1147년에 출발하였으나 그들의 여행은 다메섹을 점령하지 못한 채 십자군은 붕괴되었습니다.
세번째 십자군은 1187년에 예루살렘을 빼앗겨 조직되었습니다. 살라딘은 처음에 다메섹에서 세력을 가지고 있던 봉신이었는데, 그 지역의 모든 땅을 정복하는 데 성공하었으며 이슬람교를 다시 강화하고 사라센의 세력을 다시 견고하게 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1186년에 그는 성전을 선언하였고, 1187년 11월 1일에 예루살렘은 다시 사라센의 손에 들어갔으며 성지의 라틴왕국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습니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프레데릭 바바로싸와 영국의 왕 리처드 1세와 프랑스와 필립 어거스터스가 1189년에 예루살렘의 재 점령을 위하여 진군하였으나 바바로싸는 소아시아에서 물에 빠져 죽고, 필립어거스터는 본국으로 돌아가고 리차드는 에이커를 오랫동안 포위한 후에 점령하여 다시 요새지를 만드는 데 성공하였을 뿐 살라딘과 휴전을 하였습니다.
제4차 십자군은 유명한 설교자들이 선동하고 소국의 군주들이 인솔하고 교황 인노센트 3세가 지도하여 애굽을 공격하기 위하여 1201년에 모였으나 십자군 전쟁의 열심도 이제는 지나간 일이었고 그 군대의 사용도 다른 데로 전용하여서 1203년에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그곳을 약탈하였습니다. 이렇게 십자군 전쟁은 회를 거듭할수록 그 원래 취지에서 벗어나 약탈을 일삼는 난잡한 노략 전쟁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여러 번의 십자군 원정이 있었으나 결국에는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십자군 운동은 이미 그 실패가 예견된 원정이었습니다. 원래의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열정들은 이내 식어 버리고 인간적인 이익을 위하여 노략질을 하는 전쟁이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인간의 욕심을 채우는 일에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있던 지원자들을 무수히 죽여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십자군 운동 기간에 면죄부 배부가 더 늘었고 그리고 이것은 교황청의 세력을 더 보태는 것이었으며, 영구 면죄부는 교황만이 발부할 수 있었는데 최초의 영구 면죄부는 최초의 십자군 모병 시에 전사할 염려를 가진 지원병들을 대상으로 발부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계기가 되어 교황청은 자신들의 재산을 늘리기 위해 영구 면죄부를 수 없이 남발하는 과오를 저질렀습니다.
십자군 전쟁이 교회에 준 악영향은 이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십자군 원정으로 말미암아 동방교회에 있던 여러 가지 이단설이 유럽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십자군 전쟁은 그 원래의 뜻을 잃어버리고 타락의 나락으로 거침없이 빠져들었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가톨릭 교회로부터 개혁해 나오려는 반발세력이 커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 역시 처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열정으로 시작되었으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꾸 잘못된 방향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중세의 십자군 전쟁을 되새기며 자신의 믿음을 한번 더 경책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는 믿음은 로마 가톨릭 같이 결국 하나님의 외면을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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