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히브리어 강해설교

[출애굽기 3장 히브리어성경말씀] 모세의 소명(출3:2-5)

르호봇 2021. 1. 23.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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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출애굽기 3장 히브리어 성경말씀 중에서 모세의 소명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모세는 40년 전에 자신의 왕좌의 권한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방법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미디안으로 쫓겨나게 되었고 미디안 광야에서 이드로의 양을 치면서 40년을 훈련받게 됩니다. 이제 때가 되매 하나님은 모세를 떨기나무에서 부르게 됩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소명을 줍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 하는 사명입니다.

 

모세의 소명(출 3:2-5)

 

출 3: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출 3: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때에

출 3: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출 3: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애굽기를 히브리어 원어성경으로 보겠습니다. 아래 히브리어 버전은 오리지널입니다. 

2절은 바예라 말아크 아도나이 엘라이브 베라바트 에쉬 미토크 하쎄네 바야르 베힌네 하쎄네 보에르 바에쉬 에네누 우콜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서 나오고 있다. 불꽃 안에서 모세에게 나타났다. 모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지만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3:2

여호와의 사자(말라크 예호와) - 여기서 '말라크''견하다'란 의미의 어근에서 유래하였다. 따라서 이 말은 일반적으로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파송된 '특사'(왕하 5:10),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선지자'(36:15), '천사'(148:2)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소위 신현현(Theophanic Angel)으로서 삼위일체의 제2위이신 성육신하시기 전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Calvin,Pulpit Commentary). 자세한 내용은 창 16:7 주석을 참조하라.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에 나타났다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모두 호렙산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부 하나님은 모세를 불렀다. 여호와의 사자는 성부 하나님을 의미한다. 불꽃은 성령 하나님의 의미한다. 우리에게 소명을 주시는 분은 삼위일체 하나님이다.

떨기나무 - 하쎄네는 학명은 '아카시아 닐로티카' 곧 시내 광야에서 흔히 발견되는 일종의 '가시덤불'(thron bush)을 가리킨다. 이 나무는 주위의 고상하고 당당한 나무들과는 대조적으로 앙상하고 아주 볼품없이 생기 나무로써 곧 노예로 전락하여 곤핍하고 메마른 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의 현재 생활을 상징해 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나무에 거룩,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임재하신 것은 이스라엘 위에 머물러 있던 모든 고통의 멍에를 끊고 해방과 기쁨을 제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를 반영하는 계시한 사건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임재 사건은 후일 죄 중에 신음하던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육화(Incarnation)하셨던 예수의 임마누엘 사건을 예표한다(마 1:21-23; 1:14).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성육신 하셔서 십자가에서 선택받은 죄인들의 원죄를 대속하셨다.

불꽃(벨라바트-에쉬) - '창끝'을 뜻하는 '레하바'에 ''의미하는 '에쉬'가 결합된 형태이다. 이는 모든 불의한 세력을 태워 멸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성을 상징한다(Kurtz,Keil, 사 10:17). 특히 이 불꽃이 떨기나무로부터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과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임을 암시한다. 성령 하나님은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떠나지 않는다. 우리 안에 지금도 임재하고 있다.

나타나시니라(라아) -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나님의 때에 나타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이 주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 나타났다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은 '주목하다', '제시하다'(보이다)란 의미도 내포한다. 모세는 낙심 가운데서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항상 그를 지켜보고 계셨으며, 이제 때가 차매 그에게 위대한 비전을 계시하시기 위해 초자연적 현상 가운데 모세의 시선을 '주목시키시면서' 나타나신 것이다. 우리에게 하나님도 수동태로 나타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에 있는 것이고 구원도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3절은 바요메르 모쎄 아쑤라 나 베에르에 에트 하마르에 하가돌 하제 마두아 로 이브아르 하쎄네입니다.

모세는 스스로 말했다.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볼 것이다.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않는지가 궁금했다. 

===================================3:3

돌이켜 가서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수르'는 '다시 부르다'란 의미도 지닌다. 즉 모든 양 떼들을 다시 돌이키게 할 정도로 대단한 관심을 유발했음을 암시한다. 아마 모세는 사라지지 않는 불꽃으로부터 어떤 초자연적 전능을 감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 문맥상 미완료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보다 원문에 가깝게 해석하면 '떨기나무가 왜 불타서 없어지지 않고 여전히 있는고'가 된다. 한편 원문에서는 '떨기나무'란 말이 계속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당시 모세가 떨기나무에서 일어난 현상에 대해 얼마나 놀랐는지를 그러한 중복 강조를 통해 잘 표현했던 것이다. 떨기나무에 불은 계속해서 타고 있었다. 

4절은 바야르 아도나이 키 싸르 리르오트 바이크라 엘라이브 엘로힘 미토크 하쎄네 바요메르 모쎄 모쎄 바요메르 힌네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셨다.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를 불렀다.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여기있나이다라고 대답했다.

==============================3:4

여호와...하나님(예호와...엘로힘) - '자존자' '영원한 자'를 뜻하나 '예호와'(야웨)라는 이름과 '전능자'나 또는 '위엄을 가지신 자'를 뜻하는 '엘로힘'이 동시에 사용되었다. 이는 모세에게 계시된 신이 절대 유일하신 분임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다. 유대인들은 여호와라는 단어를 아도나이로 고쳐서 읽는다. 여호와의 이름이 너무나 신성하기 때문에 주라는 아도나이로 바꾸어서 불렀다.

보려고(라아) - '면밀히 관찰하다', '깊은 주의를 기울이다'란 뜻이. 그런데 이 말이 명사로 쓰이면 '맹금'(독수리)을 뜻하는데 이는 예리한 관찰력에서 유래한 듯하다. 한편 (하나님이)'보신지라'에 해당하는 본절의 히브리어도 이와 동일함에 유의하라.

불러 - 바이크라는 '명하다', '초대하다', '선포하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에 참여케 하시기 위해 일꾼을 불러 소명(召命)을 부여하심을 가리키는 말이다(삼상 3:6). 특히 이 말속에는 일꾼을 택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와 일꾼으로 부름 받은 자의 고귀한 특권이 암시되어 있다.

모세야 모세야 - 모세의 이름이 거듭 불려짐으로써 상황의 긴박성과 사명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삼상 3:10). 성부 하나님은 떨기나무에서 모세를 불렀다. 불꽃으로 임한 성령 하나님은 모세에게 감동을 주셨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 초자연적 불꽃 가운데서 들리는 음성을 듣고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직감했을 것이다. 따라서 본절의 대답은 지극히 초라한 자신에 대한 고백과 겸양을 내포하고 있다 하겠다(비교, 3:10;삼상 3:10).

 

5절은 바요메르 알 티크라브 할롬 샬 네알레카 메알 라겔레카 키 하마콤 아쎄르 아타 오메드 알라이브 아드마트 코데쉬 후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했다. 

=================================3:5

가까이...말라 - 티크라브 이 말은 죄악 된 인간과 거룩하신 하나님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간격이 있음을 암시한다.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가까이하지 말라는 의미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 서면 죽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하나님께 설 수 있다. 에덴 범죄 이전, 인간은 하나님과 대면하며 교제할 수 있었으나 범죄 이후 인간은 자력으로는 하나님께 감히 가까이 갈 수 없는 열악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3:24).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간격을 좁히시기 위해 구약 시대에는 예표적 의식으로서 피 흘림 있는 제사 제도를 제정하셨고 신약 시대에는 그 제사의 절정이요 완성으로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희생제물로 내어 주셨다(요일 4:10).

거룩한 땅(코데쉬-아다마) - '코데쉬'는 '성별 된', '결한'이란 뜻이고, '아다마''붉다'란 뜻의 '아담'에서 유래한 말로 이는 팔레스틴 지경의 땅이 대체로 붉은색을 띰을 반영한다. 한편 언약 백성이 정주했던 가나안 , 예루살렘, 혹은 하나님의 성전이 각각 성지, 성도(聖都), 성소 등으로 불렸거니와(느 11:1;18:2; 슥 2:12), 본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바로 그곳은 어디나 거룩한 땅이라 하겠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 하나님은 명령법을 사용하고 있다. 반드시 신발을 벗어야 함을 의미한다. 여호수아에게도 반복된 명령으로(5:15) 여기서 신(Sandals)은 인간의 타락된 품성과 행위를 상징한다. 즉 죄악 된 장소를 두루 다니고, 죄악 된 행위를 하느라 더러워진 신에는 온갖 냄새나는 더러운 먼지나 때가 끼여 있는 법이다. 따라서 그러한 신을 신은 채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거룩한 땅을 밟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상의 의미를 좀 더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1) 허물과 죄로 오염된 인간은 감히 하나님의 거룩한 존전에 설 수 없으며 그의 일꾼으로 쓰임 받기 위해서는 속 사람이 강건하게 무장되어야 한다는 뜻이다(3:15) (2) 인간 스스로의 재능, 자존심 등을 과감히 버리고 겸손히 순복 하는 자세를 지니라는 뜻이다-고대에 노예는 신발을 신지 않았다(눅 15:22). (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고난도 각오하라는 뜻이다(8:17) (4) 거룩하신 하나님께 마땅히 경외와 경배를 드려야 한다는 뜻이다. (5) 부패한 인간은 중보자의 피가 없이는 감히 거룩한 하나님과 동거할 수 없다는 뜻이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불순종한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절대 구원받을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다. 우리의 더러운 신발을 벗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복음의 신을 신어야 한다. 이 신을 신지 않고 하나님께 나가면 진노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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