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히브리어 설교말씀 중에서 야곱의 벧엘 첫 언약과 새 언약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야곱은 에서의 눈을 피해 밧단아람으로 도망을 칠 때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때가 첫 언약을 받았던 때입니다. 라반의 집에서 20년 동안 생활을 하다가 도망쳐 나와서 세겜에서 살다가 자신의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레위와 시므온이 세겜 사람들을 죽이는 살인 사건이 일어나서 도망을 치듯이 세겜 성을 빠져나와 벧엘로 올라가게 됩니다. 이때가 새 언약을 받는 시점입니다. 첫 언약의 시점은 야곱의 이름이었고 새 언약의 시점은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뀐 시점입니다. 우리도 첫 언약의 때가 있고 새 언약의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 언약을 받고 구원받았습니다.
야곱의 벧엘 첫 언약과 새 언약(창 35:9-15)
우리가 야곱의 삶을 보면 힘들고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고 영적인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늘의 기업을 받은 사람들은 인생에 고된 삶이 있지만 결국은 하나님으로부터 큰 축복을 받게 됩니다. 야곱은 이삭으로부터 하늘의 기업을 배웠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축복 때문에 에서로부터 시기를 받아 밧단아람으로 도망을 쳐야 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야곱이 그릇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리브가의 오빠인 라반의 집에 훈련을 시키기 위하여 야곱을 보내는 것입니다. 라반의 이름의 뜻은 하얗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라반은 절대 하얀 사람이 아닙니다. 야곱의 품삯을 10번이나 바꾼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라반의 집에서 20년 동안 라반을 섬기게 하시고 마침내 복을 주셔서 나오게 합니다.
야곱이 에서의 눈을 피하여 도망을 쳤을 때에 잠을 자던 곳이 벧엘입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께서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현재 네가 누워있는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또한 자손에게도 주시고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자신이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이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라반의 집에 가서 20년 동안 영적 훈련을 받고 큰 복을 받아서 라반과 헤어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가되매 라반과 헤어지게 하셨습니다. 영적훈련이 끝나고 이제는 하나님의 축복을 완성시킬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야곱은 30년이 흐른 후에 하나님께서 다시 벧엘로 올라가라고 명령을 합니다. 이곳에서 에서의 낯을 피하여 갔던 곳에서 제단을 쌓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이 기다리고 있겠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라반과 헤어지고 난 후에 숙곳에 머물면서 인생을 살다가 하몰의 아들 세겜에 의하여 야곱의 딸인 디나가 강간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집인 벧엘로 올라가지 않고 숙곳의 우릿간에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집인 교회로 올라와야 합니다. 숙곳과 같은 세상에 머물러 있으면 세상의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당하여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야곱은 벧엘로 올라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깨닫게 해 주시고 하나님의 집에 올라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땅의 약속을 받습니다. 에서를 피할 때에 받은 약속입니다. 하지만 라반의 집에서는 육적인 축복만 받았습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는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밧단아람에서 생활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첫 언약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율법에 있던 삶은 이 세상에서 육적인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적인 천국의 기업은 아직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세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삶을 살아가니 이 세상에서는 복이 있지만 하나님의 영적인 기업의 복은 없는 것입니다. 야곱이 첫 언약에 있으니 라반과 헤어지고 벧엘로 바로 올라가야 하는데 숙곳에 머무르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문제가 생겼고 결국 하나님께서 다시 벧엘로 올라가라고 지시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벧엘로 다시 올라왔을 때에 새 언약을 받고 영적 기업인 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름도 완전히 바꾸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야곱처럼 실수하면 안 됩니다.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면 바로 순종하여 올라가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9절 바예라 엘로힘 엘 야아코브 오드 베보오 미파단 아람 바예바레크 오토
창 35:9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왔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복을 주고 있습니다. 이 축복은 첫 언약에 있을 때에 주신 축복이 아니라 새 언약에 있을 때에 주신 축복을 말씀합니다.
‘나타나사’라는 단어는 (라아 7200 CW.VNIMZS 와우접속사. 동사, 닢알,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보다, 감찰하다, 준비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야곱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그의 심령을 감찰하면서 숙곳에서 있었던 야곱을 벧엘로 불러서 복을 주시기 위하여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을 때에 하나님이 즉시 나타나셔서 야곱을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타나신 것은 하나님의 때에 야곱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사람의 의지에 의하여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주권에 의하여 모든 것을 이루어나가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주실 축복을 미리 준비해 두시고 벧엘로 부르셔서 영적인 기업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야곱처럼 첫 언약에 있으면 숙곳과 같은 우릿간에 머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장소에 있다가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생겨서 어쩔 수없이 벧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라반과 헤어지고 바로 하나님의 집인 벧엘로 올라가야 합니다. 이곳에서 첫 언약이 아닌 새 언약의 약속과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10절 바요메르 로 엘로힘 쉬므카 야아코브 로 이카레 쉬므카 오드 야아코브 키 임 이스라엘 이흐예 쉐메카 바이크라 에트 쉐모 이스라엘
창 35:10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서 말씀합니다. 네 이름이 야곱이지만 이제부터는 네 이름을 야곱이라 부르지 않고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야곱의 이름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새 이름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과 씨름하고 나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지만 야곱은 깨닫지 못하고 벧엘로 올라오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 야곱은 첫 언약의 이름을 버리고 새 언약의 이름인 이스라엘을 받았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언약인 율법아래에 있으면 야곱과 같은 인생을 살게 됩니다. 세상에서 고통스럽게 살고 영적으로도 죄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마음이 항상 괴롭고 안식이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항상 사망의 생각만 하게 되고 세상의 정욕만 생각하다가 결국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받았지만 누리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새 언약의 이스라엘의 이름을 받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통하여 구원의 확신을 얻고 평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합하는 자가 되어 생각하는 것이 생명과 평안의 생각만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삶은 영적인 기업을 약속받은 것을 내 것으로 누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영원한 천국을 기업으로 받았으니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주님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율법의 아래에 있는 야곱이 아니라 새 언약의 주님이신 복음 아래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11절 바요메르 로 엘로힘 아니 엘 샤다이 페레 우레베 고이 우케할 고임 이흐예 미메카 우멜라킴 메할라체이카 예체우
창 35:11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고 나서 받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너에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온다고 말씀합니다. 야곱으로 있을 때에는 총회가 나오지 않았고 왕들이 나오는 약속은 못 받았습니다.
‘네 허리에서’라는 단어는 (할라츠 2504) 허리, 라는 뜻이며 חלץ(할라츠 2502) 끌어내다, 빼내다, 구원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야곱의 삶에서 이스라엘의 삶이 되니 허리에서 많은 왕들을 끌어내어 구원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허리에서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선택받은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야곱이 새 언약 아래에 있으니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키는 약속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들도 첫 언약인 율법 아래에 있으면 모든 것이 죽음입니다. 생각과 삶 자체가 사망의 생각에서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소망도 없이 인생을 살다가 영원한 지옥의 불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새 언약인 예수 그리스도 아래에 있으니 많은 생명들을 탄생시키게 됩니다. 많은 일들을 하는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주님 안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모든 일들이 생명의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누리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율법 아래에 있으면 유언만 받은 약속입니다. 아버지로부터 유언장은 받았지만 아직까지 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었을 때에 유언장은 효력을 내어 내 것으로 상속이 되는 것입니다. 새 언약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유언을 상속으로 효력 있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내가 첫 언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새 언약 아래에 있기 때문에 나는 이미 하나님의 약속을 상속받은 자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기업을 받아서 누리는 삶을 사시면 됩니다. 주님 안에서 마음껏 누려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자유 함이 있습니다. 원죄에서 자유롭게 되었고 하늘의 기업을 상속받은 축복의 사람입니다.
12절 베에트 하아레츠 아쎄르 나타티 레아브라함 우레이차하크 레카 에트네나 우레자르아카 아하레이카 에텐 에트 하아레츠
창 35:12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이스라엘에게도 주고 너의 후손에게도 이 땅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삶은 천국의 기업을 받아 누리는 약속입니다. 또한 후손에게도 동일한 축복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우리들의 후손에게도 새 언약의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 안에서 동일한 축복을 받게 해야 합니다. 열심히 전도도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새 언약의 복음을 선포하여 천국의 기업을 함께 나누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14절 바야체브 야아코브 마체바 바마콤 아쎄르 디베르 이토 마체베트 아벤 바야세크 알레이하 네세크 바이초크 알레이하 솨멘
15절 바이크라 야아코브 에트 솀 하마콤 아쎄르 디베르 이토 솸 엘로힘 베이트 엘
창 35:14-15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야곱은 하나님과 말씀하시던 곳에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이곳을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야곱은 30년 전에도 이와 같이 했습니다. 이때는 첫 언약 아래에 있었을 때입니다. 율법 아래에 있을 때는 자신의 생각대로 인생을 살았다면 30년이 지난 지금은 이스라엘의 새 언약 아래에 있습니다. 야곱은 이제 앞으로 새 언약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야곱과 같이 율법 아래에 있으면 매일같이 하나님과 대적하는 일만 하게 됩니다.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악의 일만 생각하다가 끝나고 하나님의 일은 하지 못하고 육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새 언약 아래에 있으면 모든 생각과 행동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 됩니다. 원죄에서 벗어나 자유자의 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율법의 삶에서 복음의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복음의 삶은 누리는 삶입니다. 이 땅에서도 누리지만 내세에서도 누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율법의 삶은 항상 마음이 괴롭고 쫓기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마음에 구원의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새 언약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원죄가 사라졌기 때문에 마음에 평안이 있고 안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벧엘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 주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중심 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늘의 기업을 약속받은 자들은 더 이상 사생애의 삶을 살지 않습니다. 주님과 같이 공생애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들은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인 새 언약 아래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늘 마음에 평안과 안식이 넘치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레미야 주석 설교말씀] 예레미야 소명과 살구나무 환상(렘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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