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열왕기상 히브리어 설교말씀 중에서 이세벨이 나봇을 죽인 구속사적 의미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세벨은 구속사 관점에서 음녀입니다. 거짓 복음을 전파하는 자입니다. 거짓 그리스도를 표상하고 있습니다. 나봇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억울하게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포도원을 지키다가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무런 죄가 없는데 유대인들의 농간에 주님이 십자가에서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이세벨이 나봇을 죽이는 사건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상고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이세벨과 같은 자들이 교회에 침투하여 성도를 죽이려고 합니다. 우리는 포도원을 지키다가 순교한 나봇의 사건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나를 살리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없었다면 나는 절대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 때문에 내가 살았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만을 섬기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세벨이 나봇을 죽인 구속사적 의미(왕상 21:1-10)
아람과 이스라엘에는 항상 전쟁이 있었습니다. 아람은 북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점령하려고 벤하닷이 군사를 끌고 1차로 쳐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아합 왕에게 패하게 되고 다시 한번 공격을 하게 됩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선지자는 아합 왕에게 아람 왕이 다시 공격을 할 것이니 준비하라고 말씀합니다. 아람의 벤하닷이 다시 쳐들어 왔지만 하나님께서 아합과 함께 하여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그런데 아합은 벤하닷의 목숨을 살려주게 되고 하나님은 벤하닷을 죽이는 것이 뜻이었지만 아합은 사람의 생각으로 살려주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지자가 벤하닷의 목숨을 아합 왕의 목숨으로 대신하겠다고 하나님의 예언을 선포할 때에 아합은 근심하여 사마리아의 자신의 왕궁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오늘 본문의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아합은 자신의 왕궁 옆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이 욕심이 나서 빼앗으려고 합니다. 북이스라엘의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면서도 작은 나봇의 포도원을 갖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포도원을 없애버리고 채소밭을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나봇의 사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해 보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유산을 지키고 소중하게 간직해야 합니다. 이 시간 나봇의 사건이 나에게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닫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럼 나봇은 어떠한 사람일까요? 나봇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을 점거해 보아야 합니다.
첫째, 나봇은 이스르엘 사람입니다.
1절 바예히 아하르 하데바림 하엘레 케렘 하야 레나보트 하이즈르엘리 아쎄르 베이즈르엘 에첼 헤칼 아하아브 멜렉크 쇼므론
왕상 21: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왕궁에서 가깝더니
나봇은 이스르엘 사람으로서 아합의 왕궁 가까운 곳에 포도원을 소유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나봇’이라는 단어는 (나보트 5022) 나봇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נבא(나바 5012) 예언하다, 신령한 노래를 하다, 장래 일을 말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나봇은 신약에서 나타나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예언대로 이 땅에 오신 분이며 그의 입에서는 신령한 말씀들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이 가르치는 교훈과는 전혀 다른 율법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바로 신령한 말씀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고 장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예언하셨던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봇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나보트’의 히브리적 의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영혼들을 위해 진리의 사역하고 생명의 씨앗으로 죽어 죄악에서 구원하여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나봇은 이미 이름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 사람은 이스르엘 사람입니다.
‘이스르엘’이라는 단어는 (이즈레엘리 3158) 이스르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זרע(자라 2232) 파종하다, 심다, 밭 갈다, 임신하다, 씨 뿌리다, 라는 뜻과 אל(엘 410) 하나님이라는 뜻의 합성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봇이 이스르엘 사람인 것은 바로 성부 하나님을 통해서 이 땅으로 보냄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으며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죄악 가운데 있었던 율법의 묵은 심령의 밭들을 갈아엎으시고 새로운 십자가 복음의 말씀으로 씨를 뿌리고 파종하여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늘로부터 새롭게 탄생한 자들은 심령의 땅이 오랫동안 묵혀 있었기 때문에 자신 스스로는 곡식이 자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하여 새롭게 마음의 밭을 기경하여 십자가 복음의 씨앗이 떨어져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결실을 얻게 된 것입니다. 나봇이 가지고 있었던 땅이 바로 포도원입니다.
‘포도원’이라는 단어는 (케렘 3754) 고귀하다, 귀한 식물을 가꾸는 정원, 이라는 뜻입니다. 나봇이 포도원을 열심히 가꾸었는데 귀한 식물을 가꾸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나봇의 포도원에는 고귀하며 귀한 포도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치리 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1절 호모이아 가르 에스틴 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 안드로포 오이코데스포테 호스티스 엑셀덴 하마 프로이 미스도사스다이 에르가타스 에이스 톤 암펠로나 아우투
마 20: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예수님께서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는 집 주인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포도원은 천국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게 됩니다.
1절 에고 에이미 헤 암펠로스 헤 알레디네 카이 호 파테르 무 호 게오르고스 에스틴
요 15:1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참 포도나무로 비유하시고 하나님은 농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봇이 포도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국에 들어갈 하나님의 백성들을 관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상징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자들은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포도원에서 치리 받는 자들이 이 시간 되어야 합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나봇은 포도원을 가꾸고 소유하고 있는데 아합은 이 포도원을 탐내어 채소밭을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2절 바예다베르 아흐아브 엘 나보트 레모르 테나 리 에트 카르므카 비히 리 레간 야라크 키 후 카로브 에첼 베이티 베에트나 레카 타흐타이브 케렘 토브 미메누 임 토브 베에네이카 에트나 레카 케세프 메히르 제
왕상 21:2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아합은 나봇에게 말하여 자신의 포도원을 자신에게 달라고 합니다. 나봇의 포도원을 달라고 하는 이유는 채소밭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채소밭’이라는 단어는 (야라크 3419) 채소, 나물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ירק(야라크 3417) 토하다, 침을 뱉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아합은 나봇의 아름답게 꾸며진 포도밭에 시기심이 들어가 구역질을 내고 침을 뱉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의 포도원 밭을 아름답게 꾸며놓았는데 거짓된 비 복음 자들이 아름다운 포도원이 탐이 나고 시기가 나서 구역질을 내고 더럽게 만들기 위해 침을 뱉는 것입니다. 바로 비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죽이고 깨끗한 교회들을 이단의 교회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아합이 나봇의 아름다운 포도원을 채소밭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처럼 이 시대도 하나님의 온전한 포도원을 채소밭으로 만들어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교회로 만드는 자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데 세상의 말로 강단을 물들어 놓고 있다면 현재 우리는 채소밭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이 사라진 교회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구역질 나는 교회이며 강단에서 침만 뱉는 이런 더러운 것들만 나오는 아합 왕이 만들려는 채소밭만 가꾸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만 전파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포도원만 가꾸어야 합니다. 매일같이 십자가 복음이 사라지지 않고 예수님만 전해지는 아름다운 포도원 하나님이 직접 역사하시고 농사를 지시는 포도원 그곳에 포도나무는 예수님이 되고 성도들은 가지가 되는 이런 교회를 하나님은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나봇은 조상에게 받은 유산을 지켰던 사람입니다.
3절 바요메르 나보트 엘 아흐아브 할릴라 리 메아도나이 미티티 에트 나할라트 아보타이 라크
왕상 21:3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아합은 나봇에게 많은 돈을 줄 테니 포도원을 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봇은 조상이 자신에게 주신 유산이기 때문에 아무리 왕이라 할지라도 팔 수 없으며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봇의 신앙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23절 베하아레츠 로 티마케르 리츠미투트 키 리 하아레츠 키 게림 베토솨빔 아템 임마디
레 25:23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땅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팔지 말라고 하나님은 명령하고 있습니다. 나봇은 이것을 알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들을 맡겨 주셨을 때에 절대 다른 곳으로 팔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선한 목자이기 때문에 끝까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양을 지키셨습니다.
9절 히나 플레로데 호 로고스 혼 에이펜 호티 후스 데도카스 모이 우크 아폴레사 엑스 아우톤 우데나
요 18: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유대인들에게 붙잡혀 가시기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자 중에 하나도 잃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봇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다른 사람에게 팔지 않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맡겨주신 한 영혼을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지키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십자가 복음을 절대 비 복음과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 것과 바꾸어서도 안 됩니다. 나봇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하나님이 주신 유업을 지켰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천국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아합 왕과 같은 비 복음주의 자들의 공갈협박에도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천국의 유업을 지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들도 천국을 이렇게 지켜나가야 합니다.
셋째, 나봇은 하나님이 주신 포도원을 지키다가 죽음을 맞이한 사람입니다.
10절 베호쉬부 쉐나임 아나쉼 베네 벨리야알 네게도 비이두후 레모르 베라케타 엘로힘 바멜렉크 베호치우후 베시켈루후 베야모트
왕상 21:10 불량자 두 사람을 그의 앞에 마주 앉히고 그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고 곧 그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라 하였더라
아합은 나봇이 포도원을 주지 않겠다고 하자 왕궁에서 근심하면서 음식도 먹지 않고 있자 아내인 이세벨이 아합의 고민을 알고 자신이 해결해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스르엘에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편지를 써 보내 나봇을 죽이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불량자’라는 단어는 (벨리야알 1100) 무익함, 무가치함, 비열함, 이라는 뜻입니다. 나봇은 무익하며 무가치한 자들에 의해 순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 죄도 없이 하나님께서 주신 유업을 지키다가 이세벨의 꼬임으로 인해 죽게 됩니다. 이것을 볼 때에 나봇의 죽음은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묵상하게 됩니다. 오직 나의 생명을 잃지 않게 하시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에서 바치셨던 것입니다. 이세벨과 같은 자들에 의해서 주님께서는 십자가 수난을 당하셨습니다. 악하고 무가치한 유대인들에 의해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 의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대못이 박히시고 옆구리에 창이 찔린 것입니다. 이 죽음은 바로 나를 거짓 그리스도에게 빼앗기지 않으시고 사탄으로부터 보호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나봇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나봇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유업을 지키려고 하다가 순교당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예수님께 맡겨주셨는데 나를 사탄이 빼앗아 가려고 하니 나를 지키시기 위해서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며 묵상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도 나봇처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어느 순간에서도 부인하지 말고 끝까지 지키면서 마지막 순교의 현장까지 갈 수 있는 신앙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앞으로 신앙생활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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