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역대하 히브리어 주일설교 중에서 웃시야 왕의 교만한 분향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웃시야 왕이 강성해지니 교만한 마음에 제사장들이 하는 분향을 하려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성전에서 분향하는 일은 제사장들이 하는 일인데 이것을 왕이 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려고 하다가 나병에 걸려 여호와의 진노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구약에서는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 직분을 모두 나누어 주셨습니다. 각자 맡은 직분만을 제대로 하면 됩니다. 왕은 통치를 하면 되고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선포하면 되고 제사장은 성전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잘 드리면 됩니다. 그런데 웃시야 왕은 통치권뿐만 아니라 제사권까지 장악하려고 하다가 하나님께 진노를 받았습니다. 이 모든 직분은 신약에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가 됩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며 천국 복음을 선포하시는 선지자이며 죄 사함을 주시는 제사장 직분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웃시야 왕의 교만한 행동을 통해서 나의 신앙도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항상 겸손하게 주님을 섬기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웃시야 왕의 교만한 분향(대하 26:16-20)
웃시야는 나이가 16세에 왕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아버지 아마샤가 죽고 난 후에 백성들이 웃시야를 왕으로 삼았습니다. ‘웃시야’의 이름은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웃시야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16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52년간 통치를 하게 됩니다. 웃시야는 왕이 되어 모든 행위가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동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찾았고 웃시야가 하나님을 찾는 날 동안에는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찾았을 때는 웃시야의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졌습니다. 이름이 퍼져나가게 된 것은 기이한 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아는 스가랴가 죽고 나서입니다. 율법적 신앙과 믿음은 겉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 같지만 말씀을 전해주는 선지자가 죽고 난 후에는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게 됩니다. 우리들도 율법적 신앙과 믿음 안에 있으면 복음을 전해주는 사람이 있을 때에는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복음이 사라지면 금방 돌아서서 교만해집니다. 이 시간 우리들은 웃시야의 믿음을 통해서 나의 신앙을 점검해야 합니다. 나의 신앙이 율법적 믿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16절 우케헤즈카토 가바흐 리보 아드 레하쉐히트 바이메알 바아도나이 엘로하이브 바야보 엘 헤칼 아도나이 레하케티르 알 미즈바흐 하케토레트
대하 26:16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웃시야가 강성해지면서 그의 마음이 교만해졌습니다. 그는 악을 행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범죄 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했습니다. 율법적 믿음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일까지 하려고 합니다. 웃시야가 강성해졌다는 것은 나라가 부강해지고 권세가 높아졌다는 의미입니다. 율법적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세상의 권세와 재물의 부요함이 있을 때에 교만해집니다. 마음에 교만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주님께 도전하게 됩니다. 율법적 신앙 자들은 교회에서 열심히 주님을 섬기고 봉사하고 헌신하여 복은 받습니다. 하지만 웃시야처럼 여호와 하나님께 도전하는 신앙이 됩니다. 마음에 교만함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현재 누리고 있는 것들이 자신도 모르게 자기가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웃시야가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이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분향하려고 했던 일입니다.
‘분향하려 한지라’라는 단어는 (카타르 6999 P.VHNG 전치사 동사 히필 부정사연계형) 희생제물을 불사르다, 연기로 올려드리다, 향내 풍기다, 라는 뜻입니다. 웃시야는 하나님께서 재물과 권세를 주셔서 큰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더 열심히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지만 마음에 교만함이 생겨서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려고 합니다. 성전에서 분향하는 일은 제사장의 고유권한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을 통해서 희생제물을 불살라 그 향기를 흠향하셨습니다. 이 분향은 두 가지로서 번제 단에서 드리는 제물의 연기를 받으셨고 성소 안에서 분향하여 향기를 받으셨습니다. 히필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웃시야가 스스로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분향을 교만하여 분향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것도 자기 자신을 위하여 하고 있습니다.
웃시야가 이렇게 하려고 했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정치와 종교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습니다. 이방 나라들은 왕들이 종교권을 가지고 이방신에게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왕의 권세도 큰데 제사장의 권한까지 가지려고 합니다. 구약에는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를 하나님께서 분리시켰습니다. 한 명에게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 모든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결국 웃시야는 주님의 자리까지 올라가려고 했던 것을 의미합니다. 웃시야의 율법적 믿음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제사장의 직분까지 올라가서 자신의 능력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했던 것을 말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십자가에서 왕의 직분과, 제사장 직분과, 선지자 직분을 모두 이루셨습니다. 인간은 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각각 나누어서 직분을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을 가지려고 하는 것은 교만이고 오만입니다.
17절 바야보 아하라이브 아자르야후 하코헨 베임모 코하님 라아도나이 쉐모님 베네 하일
대하 26:17 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용맹한 제사장 팔십 명을 데리고 그의 뒤를 따가 들어가서
그 당시 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용맹한 제사장 80명을 데리고 웃시야의 뒤를 따라 들어갔습니다.
‘용맹한’이라는 단어는 (하일 2428) 힘, 능력, 부, 재산, 이라는 뜻이며 חול(훌 2342) 고통을 당하다, 괴로워하다, 견고하다, 강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용맹한 제사장 80명은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시고 괴로워하신 주님을 통하여 구원받아 믿음이 강성하고 견고한 자를 의미합니다. 웃시야는 율법적 믿음을 통하여 강성하게 된 사람이라면 제사장 80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를 믿음으로 강성하게 된 자를 말합니다. 용맹한 제사장 80명도 재산과 부와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입니다. 웃시야만 권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적 믿음 안에 있는 사람만 세상의 복을 받고 권세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적 신앙과 믿음을 가진 자들도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재산과 부와 명예와 능력을 강성하게 해 주시고 힘을 주십니다.
용맹한 제사장 80명이 웃시야의 뒤를 따라 들어가서 웃시야 왕의 권세에 맞서 싸우게 됩니다. 웃시야 왕은 세상의 권세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제사장은 하나님의 권세와 권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들도 구원받았으니 하나님의 권세와 권력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율법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아무리 힘이 크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권세를 가진 자들을 당해내지는 못합니다.
18절 바야아메두 알 우지야후 하멜렉크 바요메루 로 로 레카 우지야후 레하케티르 라아도나이 키 라코하님 베네 아하론 하메쿠다쉼 레하케티르 체 민 하미크다쉬 키 마알레타 베로 레카 레카보드 메아도나이 엘로힘
대하 26:18 웃시야 왕 곁에 서서 그에게 이르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용맹한 제사장 80명은 웃시야 왕 곁에 서서 말합니다.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분향하는 일은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 것이니 성소에서 나가라고 말합니다. 왕이 범죄 하였으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구별함을 받은’이라는 단어는 (카다쉬 6942 D.VUPPMP 정관사 동사 푸알 분사수동 남성 복수) 거룩하다, 성별하다, 봉헌하다, 라는 뜻입니다. 제사장들이 말하는데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거룩하게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럼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은 누구를 의미할까요? 십자가에 달리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분향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원죄를 회복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없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인간도 십자가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분향할 수 없습니다. 원죄의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구별함을 받았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분향하기로 처음부터 구별되어 봉헌될 자로 따로 떼어 놓았다는 의미입니다. 푸알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구별함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무런 흠과 점도 없이 하나님이 직접 거룩하게 성별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분사수동은 하나님이 선택한 이 사람은 부정에 노출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고 성별된 삶을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에 점도 흠도 없는 분이 누구입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없습니다.
웃시야가 여호와 하나님께 범죄를 저지른 것이 무엇입니까? 분향을 하려고 했던 일입니다. 물론, 한 번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회개하고 안 하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웃시야 왕에게 분노를 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원죄를 담당하실 분은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는데 그 일을 원죄의 죄인이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세상의 권력이 생기면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려고 합니다. 자신이 신이 된 것처럼 이 세상을 호령하려고 합니다. 웃시야도 율법적 믿음을 가지고 원죄를 자신이 해결하려고 했던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행위로는 절대 원죄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분향을 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 분향을 흠향하시지 않습니다. 인간의 의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은 절대 흠향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분향만 여호와 하나님은 받습니다.
이 시간 우리들도 세상에서 복을 받아 누려도 웃시야처럼 마음에 교만해지면 안 됩니다. 마음에 교만함이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적인 일에 도전하면 안 됩니다. 자신의 의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자체가 교만입니다. 이런 자는 죽어도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잘못된 분향을 하나님께 드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분향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주님의 의로 하나님께 나갈 때에 구원이 있습니다. 이런 자는 복음적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19절 바이즈아프 우지야후 우베야도 미크테레트 레하케티르 우베자에포 임 하코하님 베하차라아트 조르하 베미츠호 리프네 하코하님 베베이트 아도나이 메알 레미즈바흐 하케토레트
대하 26:19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
웃시야는 자신의 왕권을 가지고 고집을 피우면서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분향하려고 할 때에 저지한 제사장 80명을 향해 화를 냅니다. 웃시야가 제사장들에게 화를 낼 때에 이마에 나병이 생겼습니다. 웃시야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다는 것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마는 성경에서 사상을 상징합니다.
38절 베하야 알 메차흐 아하론 베나사 아하론 에트 아온 하코다쉼 아쎄르 야케디슈 베네 이스라엘 레콜 마테노트 코드셰헴 베하야 알 미츠호 타미드 레라촌 라헴 리프네 아도나이
출 28:38 이 패를 아론의 이마에 두어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과 관련된 죄책을 담당하게 하라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늘 있으므로 그 성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시게 되리라
대제사장 아론의 이마에는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패가 붙어져 있습니다. 아론은 하나님께 성별 된 사람이며 구별된 사람이라는 표시가 이마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웃시야의 이마에 나병이 생기게 한 것은 율법적 믿음을 가지고 구원을 얻으려고 하나님께 도전한 자에게 주는 저주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들도 이마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이마에 주님의 사상이 있습니다.
20절 바이펜 엘라이브 아자르야후 코헨 하로쉬 베콜 하코하님 베힌네 후 메초라 베미츠호 바야베힐루후 미솸 베감 후 니드하프 라체트 키 니게오 아도나이
대하 26:20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음을 보고 성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
대제사장 아사랴와 용맹한 제사장 80명이 웃시야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음을 보고 성전에서 쫓아버렸습니다. 나병이 생겼다는 것은 부정한 자가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마에 부정한 거짓 복음의 사상이 있는 사람들은 여호와의 성전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나병이 생겼음을’이라는 단어는 (차라 6879 VUPPMS 동사 푸알 분사수동 남성 단수) 나병에 걸리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웃시야의 이마에 나병이 걸리게 했습니다. 자기의 의로 분향하려고 하니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습니다. 율법적 믿음은 결국 교만하여 하나님의 자리에 도전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에 스스로 올라가려고 했기 때문에 저주를 받습니다. 이런 자들은 겉으로는 신앙과 믿음이 좋은 것 같지만 어느 때가 되면 교만하여 자신의 율법적 행위의 의로 구원을 얻으려고 합니다. 나병이 생겼다는 것은 원죄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푸알형은 자신이 나병에 걸리기 싫었는데도 어쩔 수없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원죄를 해결하려 했지만 해결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들도 나의 의로 원죄를 해결하려고 하면 해결할 수 없습니다. 복음적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십자가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원죄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웃시야 왕이 얼마나 교만한 행동을 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죄를 지었는지를 알았습니다. 자신이 받은 복을 가지고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다가 결국은 나병에 걸려 죽게 됩니다. 이것은 자신의 의지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다가 결국은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의 불 못으로 던져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복음적 신앙을 가졌던 제사장 80명처럼 주님 앞에서 오직 십자가의 복음으로 분향하여 구원을 얻고 영원한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주님과 왕 노릇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도 복음적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부와 재산과 권세를 허락하여 주셔서 누리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복음적 신앙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마음에 교만하지 않습니다. 항상 감사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마음에 교만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이며 내가 나 된 것은 주님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적 신앙 안에 있는 자들은 이 땅에서 누리는 복을 받습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누리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이제 우리는 율법적 믿음을 소유하지 말고 복음적 믿음을 소유하여 주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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