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 헬라어 설교말씀 중에서 핍박을 받은 자라는 성경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천국이 저희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을 위해서 고통당하는 것은 영혼에 유익이 없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당하는 고통은 영혼에 유익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살아갈 때 환난이 온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핍박을 받은 자(마 5:10)
예수님께서 팔복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마지막 복에 대해서는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팔복의 화룡정점(火龍定點)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말씀입니다. 그럼 팔복의 핵심은 바로 박해와 고난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만 믿으면 육신의 복을 받고 편안하게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쉽게 교회에 들어왔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신앙의 어려움을 겪고 예수님 믿는 것을 포기하는 자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믿음과 신앙을 잘못 배웠고 이해하였기 때문에 오는 신앙의 폐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라가는 것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핍박과 고난이 반드시 동반되게 되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면서 고난을 피한다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안목과 정욕에 빠져 축복만을 생각하고 있다면 더더욱 잘못된 신앙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이 있는 사람은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들도 복의 개념에 관하여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정욕적인 것을 받는다고 복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 받고 핍박을 받으면 이것이 복이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늘에서 받을 상급이 많다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마지막 팔복을 핍박받는 자에게 맞추고 있는 의도는 무엇일까요? 앞에서 말씀하셨던 내용들의 핵심이 마지막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대하여 핍박받는 자에게 모두 들어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마지막 팔복의 핵심인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이 복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들도 이와 같은 복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10절 마카리오이 호이 데디오크메노이 헤네켄 디카이오쉬네스 호티 아우톤 에스틴 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
마 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예수님께서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는데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팔복의 핵심입니다. 그럼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지 않으면 복이 없다는 것을 상대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으면 천국이 나의 것이 되지만 의를 위하여 핍박을 피하고 세상으로 돌아가면 천국은 나의 복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의’라는 단어는 (디카이오쉬네 1343 NGFS 명사 소유격 여성 단수) 의로움, 의,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δικαιος(디카이오스 1342) 공의로운, 무죄한, 의로운, 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있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아무 죄도 없으시고 공의로우시며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따르는 자들이 핍박이 있는 것입니다.
4절 베샤파트 베체데크 달림 베호키아흐 베미쇼르 레아네베 아레츠 베히카 에레츠 베세베트 피브 우베루아흐 세파타이브 야미트 라샤
5절 베하야 체데크 에조르 모트나이브 베하에무나 에조르 할라차이브
사 11:4-5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예수님에 관하여 이사야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하시고 예수님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허리띠를 삼고 성실로 몸의 띠를 삼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죄한 분이시며 의로운 자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따라가야 할 것을 주님은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에는 무엇이 소유되어 있습니까? 주님의 의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째, 천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위하여 사는 자들은 천국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은 주님의 의를 위하여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천국이 나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내세의 상급이 소유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의를 위하여 사는 자들은 하나님께 받을 상급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만을 위하여 사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모두 받아서 하나님께 받을 상급이 없지만 예수님의 의를 위하여 사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받을 상급이 아주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물질이 부족하다고 실망할 것이 없고 명예가 없다고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사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내세에서 큰 상급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핍박도 함께 소유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의를 위하여 사는 자들은 세상의 흑암들로부터 핍박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 핍박이 없다면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없는 자들입니다. 내가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있다면 어둠들은 반드시 나를 공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받을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주님의 이름 때문에 당하는 핍박을 버릴 것이 아니라 순응하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상급 받을 기회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박해를 받은’이라는 단어는 (디오코 1377 VPRPNMP 동사 분사 완료 수동태 주격 남성 복수) 박해를 받다, 추적하다, 몰아내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를 추적하여 따르는 자들은 반드시 박해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 박해를 받는다고 해도 두려워할 것도 없고 실망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큰 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어둠의 자손들은 빛의 자손들을 몰아내기 위하여 핍박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영역에 침범하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입니다. 어둠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싫어합니다. 그런데 내가 주님의 빛을 소유하고 있으니 어둠의 자손들이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핍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복음의 말씀대로 살 때에는 박해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둠을 향하여 빛을 발산하기 때문입니다. 이 빛이 완전하게 발산되기 때문에 박해도 완전하게 나에게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박해가 올 것은 선택받은 자에게는 당연한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하나님께 선택받지 못한 자라면 이런 박해가 나에게는 절대 없습니다. 내가 빛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박해는 내가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내가 숨는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빛은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충만하게 있다면 세상에서도 빛을 발산하게 되어있습니다. 이 빛이 나가면 어둠들은 당연히 나를 공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8절 엔 판티 들리보메노이 알르 우 스테노코루메노이 아포루메노이 알르 우크 엑사포루메노이
9절 디오코메노이 알르 우크 엥카탈레이포메노이 카타발로메노이 알르 우크 아폴뤼메노이
고후 4:8-9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박해를 받아도 라는 단어가 διωκω(디오코)라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의 의 때문에 우리에게 이런 환난이 있지만 절대 낙심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런 자에게는 무엇이 있다고 했습니까? 상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큰 상이 있는 것입니다.
12절 우크 호티 에데 엘라본 에 에데 테텔레이오마이 디오코 데 에이 카탈라보 에프 호 카이 카텔렘프덴 휘포 투 크리스투 이에수
13절 아델포이 에고 에마우톤 우 로기조마이 카테일레페나이 헨 데 타 멘 오피소 에필란다노메노스 토이스 데 엠프로스덴 에페크테이노메노스
14절 카타 스코폰 디오코 에피 토 브라베이온 테스 아노 클레세오스 투 데우 엔 크리스토 이에수
빌 3:12-14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사도바울은 주님의 의를 위하여 열심히 핍박받고 고난을 받으면서도 상을 위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고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께 잡힌 바 되어 상을 잡으려고 달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말고 오직 한 일에 대하여는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달려가는데 바로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달려가노라’는 단어가 διωκω(디오코)라는 단어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실 상급을 향하여 끝까지 달려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사도바울은 깨달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큰 상이 있다고 했는데 이 상급을 위하여 자신은 부지런히 노력을 하면서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나는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따라가면서 핍박이 있다고 도망치려고 하고 있습니까? 조그만 어려움에 낙심하여 포기하려고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실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십시오. 하나님의 주실 상급을 생각하면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시작할 힘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의를 위하여 함께 고난당한 자들은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것임이라’라는 단어는 (에이미 1510 VIPAS3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단수 3인칭) 나는 ~이다, 내가 있다, 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여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사는 자가 됩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 실제로 일어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지 않으면 천국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들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의 때문에 환난과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천국을 소유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우리에게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외부의 영향으로 주님의 이름 때문에 핍박을 받고 있지만 마음이 평안하다면 내 안에 천국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사는 역사가 일어났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두 천국을 소유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선택한 자들이 주님의 나라를 소유할 수가 있습니다. 그중에 바로 내가 선택되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고백하여 믿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들은 복이 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와 같이 살라는 지상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면 주님의 가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이 길을 걸어갔습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발전하면서 내세의 복보다는 현세의 복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도들도 눈에 보이는 것이 더 크게 보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의 고난이 있으면 모두가 포기하고 세상으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커졌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어려움이 오면 슬금슬금 회피하려고 하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고 신앙을 지키려고 하는 일들이 점차적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때에 우리만이라도 주님의 말씀처럼 십자가의 의를 따라가면서 받는 핍박을 피하지 말고 하나님께 큰 상급을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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