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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헬라어 설교말씀] 예수님과 강도 바라바의 관계(막 15:6-15)

르호봇 2021. 7. 1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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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마가복음 헬라어 설교말씀 중에서 예수님과 강도 바라바의 관계라는 성경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바라바는 죄인 중에서 가장 악질인 괴수입니다. 그런데 유월절에 바라바가 죽어야 하는데 바라바 대신에 예수님이 대신 죽게 됩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바로 내가 바라바와 같은 죄인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라바가 살아난 것은 나 대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내가 살아난 것을 상징합니다. 오늘도 바라바를 육적인 것으로 생각하면서 죄인이었네 하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죄인 중의 괴수인 바라바였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바라바 속에 숨겨진 영적인 비밀을 깨닫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과 강도 바라바의 관계(막 15:6-15)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 땅에 오셔서 선택받은 죄인들의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시는 것이 뜻입니다.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하여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언이 성취되는 순간이 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죽어야 합니다. 애굽에서 빠져나올 때에도 유월절에 어린양을 잡아서 고기를 먹고 피는 문설주에 발랐습니다. 하나님이 애굽에 장자 재앙을 내릴 때에 문설주의 어린양의 피를 보시고 뛰어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어린양의 피가 없으면 장자 재앙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유월절의 어린 양의 피가 이제는 실제로 유월절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넘겨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면 창세전에 선택받은 자들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도 애굽과 같은 사탄의 굴레에서 원죄 가운데 고통을 당하면서 살았던 인생입니다. 원죄의 고통을 당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했던 것처럼 인생 자체가 괴롭고 힘든 인생이었습니다. 전혀 소망이 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유월절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처럼 나도 원죄의 고통에서 해방되는 역사가 유월절의 어린양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이런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와 바라바입니다. 성경에 죄인의 이름을 기록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민란을 일으키고 강도짓을 했던 바라바의 이름을 기록했다는 것은 원죄의 죄인들의 예표로서 나를 상징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나와의 관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바라바는 사형집행을 앞두고 있었던 죄인입니다. 이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십자가에서 사형을 당하시고 바라바는 유월절에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바라바와 같은 원죄의 죄인인 내가 영원한 심판인 불 못에 떨어져 죽어야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나의 죄 값을 십자가에서 치르시고 죽으신 것을 예표 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내가 바라바였다는 것을 깨닫고 주님 앞에 감사하는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6절 카타 데 헤오르텐 아펠뤼엔 아우토이스 헤나 데스미온 혼페르 에툰토 

15:6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더니

 

예수님 당시에 유월절 명절이 되면 죄수를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보면 대통령이 사면권을 가지고 광복절 특사로 죄수들을 석방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했던 이유는 백성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서 죄수를 놓아주었습니다. 현재 바라바는 로마에 대항하여 민란을 일으킨 죄인으로 사형을 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7절 엔 데 호 레고메노스 바랍바스 메타 톤 쉬스타시아스톤 데데메노스 호이티네스 엔 테 스타세이 포논 페포이에케이산

15:7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 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바라바는 민란을 꾸미고 민란 중에 살인하여 로마 병사들에게 체포되어 사형을 기다리고 있는 죄인의 신분입니다.

 

민란을 꾸미고’라는 단어는 (스타시아스테스 4714) 반역자, 혁명가,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στασιαζω(스타시아조) 반역하다, 폭동을 일으키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바라바가 민란을 꾸몄다는 것은 반역자이며, 혁명가로서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던 강도라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선동하여 폭동을 일으킨 사람입니다. 영적으로 보자면, 이런 자들은 율법주의자로서 자신의 의를 강조하여 다른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부인하게 만드는 반역자이며 혁명가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율법주의자는 하나님 앞에서 폭동을 일으킨 자요, 반역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부인하게 만들어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입니다.

 

이 단어를 신약 히브리어로 보면 מרד(마라드 4775) 반역하다, 반항하다, 반란을 일으키다, 라는 뜻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자신의 행위를 주장하여 그리스도를 부인하여 반역하고 반항하여 자기의 의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반란을 일으킨 자들입니다.

13절 헴마 하이우 베모르데 오르 로 히키루 데라카이브 베로 야쉐부 비네티보타이브

24:13 또 광명을 배반하는 사람들은 이러하니 그들은 그 도리를 알지 못하며 그 길에 머물지 아니하는 자라

 

바라바와 같이 민란을 꾸미고 살인한 자들은 영적으로 누구입니까? 광명을 배반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빛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빛을 배반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리를 알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에 머물지도 않습니다. 여기에서 광명을 배반했다고 했는데 ‘배반하는’이라는 단어가 מרד(마라드)입니다. 원죄에 빠져서 행위를 주장하여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은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혁명가요, 배반자라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자신은 자신의 거룩한 성화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자체가 교만이요,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입니다.

 

체포된 자’라는 단어는 (데오 1210 VPRPNMS 동사, 분사, 완료, 수동태, 주격, 남성, 단수) 묶다, 매다, 라는 뜻입니다. 바라바는 로마에 대항하여 폭동을 일으키고 살인을 하다가 로마의 병사들에게 붙잡혀 묶여서 체포되었습니다. 감옥에 들어와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바라바는 폭동가로서 죄인의 괴수입니다. 우리나라도 신출귀몰하게 도망 다녔던 신창원이라는 죄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이처럼 바라바도 열심히 로마에 대항하면서 도망 다녔지만 더 이상 도망치지 못하고 붙잡혔습니다. 그 이유가 완료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체포되어 감옥에 들어와 빠져나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에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라바는 자신이 열심히 도망 다녔지만 결국에는 붙잡힐 운명이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수동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로마 병사들에게 결국에는 붙잡힐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 우리는 바라바가 로마 병사에 의해서 붙잡히고 체포되어 사형을 앞두고 있는 모습을 통해서 나의 모습을 생각해야 합니다. 나도 하나님 앞에서 바라바처럼 배반하고 폭동을 일으켜 살인죄와 같은 원죄의 죄악의 괴수가 되었습니다. 나는 거룩한 것처럼 살았던 것 같지만 바라바와 별반 차이가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이렇게 원죄의 감옥에 갇혀 고통스럽게 사형을 기다리는 죄인의 신분으로 판결만 기다리고 있는 처지였습니다. 나의 힘으로 원죄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바라바는 자신의 힘으로 사형을 면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죽어야 할 운명입니다. 이처럼 나도 원죄에서 벗어날 힘과, 능력이 없습니다. 마지막 심판대에서 영원한 지옥의 불 못으로 떨어질 것이 확실합니다. 그때에 유월절의 어린양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고 바라바가 살아나게 됩니다.

 

우리들도 바라바처럼 원죄의 죄인이며 괴수였는데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죽고 대신 내가 살아났습니다. 나의 힘으로는 영원한 지옥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나의 의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나 대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원죄의 감옥에서 풀려났습니다. 그럼 바라바가 누구이기에 유월절에 사형집행을 당하지 않고 풀려나게 되었을까요? 영적으로 우리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라바’라는 단어는 (바랍바스 912) 바라바, 라는 뜻입니다. 헬라어로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신약 히브리어로 보면 בר-אבא(바르 아바)입니다. 바라바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바라바는 죄인 중에 아주 악독한 죄인입니다. 이런 죄인의 이름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이름에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정체성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악독한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선택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바라바처럼 주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배반했던 바라바와 같은 자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거룩한 모습도 없습니다. 죄만 짓고 하나님 앞에 똑바로 살았던 기억이 없는 그런 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창세전에 선택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해주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바라바는 절대 자신 혼자서는 십자가 사형을 피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이처럼 나도 원죄의 죄인이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전무합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 대신 십자가에 매달으시고 죽이셨습니다. 내가 마땅히 죽어야 하는데 그 자리에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아 죽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게 놓아준 날이 유월절 명절입니다. 어린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려주심으로 나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명절에 놓아주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아무 죄도 없으신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죄인의 괴수인 바라바를 놓아주기를 원했습니다.

9절 호 데 필라토스 아페크리데 아우토이스 레곤 델레테 아폴뤼소 휘민 톤 바실레아 톤 이우다이온

15:9 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빌라도는 유대인의 왕인 예수 그리스도를 놓아주기를 원했습니다.

놓아주기를’이라는 단어는 (아폴뤼오 630 VSAAS1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태, 단수, 1인칭) 석방하다, 풀어놓다, 용서하다, 라는 뜻입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죄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용서하여 석방시켜서 풀어 놓아주기를 원했습니다. 이 당시에 십자가 사형 집행권을 가지고 있었던 곳은 로마입니다. 유대인의 최고 의결기구인 산헤드린에서 사형을 언도할 수 있지만 집행을 할 수는 없습니다. 로마에 승인을 받아서 사형 집행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의 법정에서 기각할 수도 있습니다. 가정법을 사용했다는 것은 놓아줄 수도 있고 사형을 언도하여 집행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빌라도는 주님을 놓아주기를 원했습니다. 그 이유가 과거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마음에 예수님을 놓아줄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유월절에 폭동을 일으킬 것을 감안하여 차마 놓아주지를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를 치게 됩니다.

11절 호이 데 아르키에레이스 아네세이산 톤 오클론 히나 말론 톤 바랍반 아폴뤼세 아우토이스

15:11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대제사장들은 빌라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놓아줄 것 같으니까 무리들을 충동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돌려서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소리칠 것을 요구했습니다. 바라바는 죽어야 할 운명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죄도 없는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말하고 바라바는 유월절 전례에 따라 놓아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바라바는 절대 살아날 수 없습니다. 나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나를 바라바처럼 살려주셨습니다.

15절 호 데 필라토스 불로메노스 토 오클로 토 히카논 포이에사이 아펠뤼센 아우토이스 톤 바랍반 카이 파레도켄 톤 이에순 프라겔로사스 히나 스타우로데

15: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빌라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죄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만족을 주고자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 그리스도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넘겨주었습니다.

 

‘놓아주고’라는 단어는 (아폴뤼오 630 VIAAS3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단수, 3인칭) 석방하다, 풀어놓다, 용서하다, 라는 뜻입니다. 빌라도는 사형을 기다리던 바라바를 유월절에 죄를 용서해 주고 석방시켜 자유의 몸으로 풀어 놓아주었습니다. 바라바 입장에서는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자신은 이제 죽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석방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라바는 죽어야 될 입장에서 생명을 얻는 자가 되었습니다. 직설법을 사용한 것은 빌라도가 바라바를 유월절에 놓아준 사실이 실제로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빌라도가 놓아주는 시점은 지금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시제를 사용해야 하는데 과거 시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악독한 죄인인 바라바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죽지 않고 살기로 작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바라바처럼 원죄에 빠져 영원한 지옥의 불 못에 들어가기 위해서 심판만 기다리고 있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죽으시고 나는 원죄에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이 날이 바로 내가 거듭난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듣고 주님을 믿음으로 영접한 날이 바로 바라바가 석방된 날과 같은 구원의 은혜를 받은 날입니다.

 

넘겨 주니라’라는 단어는 (파라디도미 3860 VIAAS3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단수, 3인칭) 전달하다, 전하다, 라는 뜻입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사형하도록 전달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도록 전했습니다. 로마 법정에서 사형을 집행하도록 언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실제로 로마 법정에서 빌라도에 의하여 사형이 집행되는 판결을 받은 사실이 있습니다. 직설법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빌라도는 지금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라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현재 시제를 사용하지 않고 과거 시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빌라도가 넘겨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약에 예언하신 대로, 계획하신 대로 성취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죽이기로 계획하셨습니다.

바라바가 이 땅에서는 죄인의 괴수이지만 이미 하나님은 창세전에 하나님의 아들로 선택하셨습니다. 이 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셨습니다. 피 흘려 죽게 하셔서 바라바를 살려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나도 바라바와 같은 인생이었습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었는데 유월절을 기점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13절 호스 에르뤼사토 헤마스 에크 테스 엑수시아스 투 스코투스 카이 메테스테센 에이스 텐 바실레이안 투 휘우 테스 아가페스 아우투

14절 엔 호 에코멘 텐 아폴뤼트로신 디아 투 하이마토스 아우투 텐 아페신 톤 하마르티온

1:13-14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우리가 바라바와 같은 원죄의 죄인이었습니다. 흑암의 권세에서 살았던 인생입니다. 이런 나를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나를 원죄의 흑암에서 건져내어 주셨습니다. 또한 주님의 나라로 나를 옮겨주셔서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 내가 속량 곧 죄 사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 번 구원받은 자는 영원히 구원이 취소가 되지 않습니다. 바라바가 유월절 날에 사면을 받고 다시 감옥에 들어갔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사면을 받으면 더 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이 땅에 아담의 후손으로 와서 원죄의 죄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유월절의 어린양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원죄가 사라졌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의를 믿음으로 모든 죄는 사라졌습니다. 이제 바라바처럼 해방되었으니 오직 예수 그리스도 주님만을 섬기면서 신앙생활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핍박을 받은 자(마 5:10)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 헬라어 설교말씀] 핍박을 받은 자(마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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