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구약성경 말씀

[화장 장례 설교말씀] 유가족들이 믿지 않는 경우 장례식 설교말씀

르호봇 2022. 4. 23. 12:18
반응형

우리가 화장 장례를 드릴 때 유가족들이 믿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기회를 삼아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람은 한 번 태어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라고 했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복음을 전하여 믿지 않는 유가족들에게 복음이 들어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유가족들이 믿지 않는 경우

찬송: 257, 545

성경 말씀: 욘 4: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쬐매 요나가 혼곤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인간은 나름대로 주관이 있고, 자기의 이권에 대한 강한 집착이 있습니다. 요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동족에 대한 강한 집착이 있었고, 대적 국인 앗수르에 대한 강한 반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 성을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람들은 사랑의 대상을 제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한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반응하는 사람이면 그렇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요나는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고집을 악착같이 붙잡고 있는 요나를 훈련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셨습니다. 요나가 니느웨 성 동편에 초막을 만들고 그 그늘 아래 앉아서 그 성이 어떻게 되는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니느웨 성이 불 심판이라도 받았으면 하는 심정입니. 어그러진 감정을 가지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바라보고 있는 요나에게 하나님은 박 넝쿨 그늘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서 벌레가 박 넝쿨을 씹어서 그늘을 빼앗아 갔습니다. 게다가 아라비아 사막에서 불어오는 열풍이 초목을 시들게 했습니다. 요나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무더운 날씨 때문에 하나님을 향해 원망을 합니다. 그는 태워 죽여 달라고 항변합니다. 그러한 요나를 향해 하나님은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서 가르침을 줍니다. 요나는 비록 잠시 동안의 안락을 주는 박 넝쿨에 관심이 있지만, 하나님은 영혼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박 넝쿨을 아끼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은 영혼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요나는 대적자들의 영혼은 아까운 줄을 몰랐습니다. 그 정도로 자기 이권에 강한 선지자였습니다.

 

당신의 의지 처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박 넝쿨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박 넝쿨이 무엇입니까? 그 박 넝쿨이 당신을 얼마나 편하게 만들어 줍니까? 제까지 당신을 안전하게 해 줄 수 있다고 믿습니까? 당신이 그것을 너무 사랑하여 정작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 박 넝쿨이 중요합니까? 사람이 중요합니까? 이 세상에 있는 박 넝쿨이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중요합니까? 당신이 아끼고 있는 박 넝쿨은 "뜨거운 동풍' 앞에 무색케 될 것입니다. 뜨거운 동풍은 당신의 안주함을 빼앗아 갑니다. 당신이 아끼고 있는 박 넝쿨을 빼앗아 갑니다.

 

하나님의 심판인 뜨거운 동풍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훈과 경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박 넝쿨에 관심을 기울이고, 자기 고집을 주장하는 사람은 고통하는 날이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자신의 박 넝쿨이 소중하다고 주장할 때 하나님은 불못의 고통을 통해 당신의 소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너무 늦었습니다. 너무 늦기 전에 불 못에서 당하는 신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박 넝쿨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길로 들어설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문

이방 니느웨 성에 있는 사람들을 아끼사 불순종하는 요나를 파송하신 하나님! 

박 넝쿨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눈이 떠져서 사람들을 아낄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해 주소서. 거운 동풍 때문에 괴로워하는 요나의 모습 속에서 불 못의 고통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소서. 나를 아끼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은총에 참여할 수 있는 저희들로 삼아 주옵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창세기 히브리어 설교말씀] 아브람과 아브라함 이름의 차이점(창 17:5)

 

[창세기 히브리어 설교말씀] 아브람과 아브라함 이름의 차이점(창 17:5)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고쳐주십니다. 성경에서 이름이 바뀌는 것은 정체성이 바뀐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람은 사생애의 기간을 상징하고 아브라함은 공생애

rhb-bible.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