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1장에서 마지막 일곱째 나팔을 불게 됩니다. 이것은 마지막 종말의 심판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시면 마지막 심판이 있습니다. 이때는 구원받은 자는 상을 받고 구원받지 못한 자는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성경은 주님의 재림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합니다.
마지막 일곱째 나팔 소리(계 11:15-19)
복음을 전하는 42달과 1260일 삼일 반 동안 두 증인들은 세상의 믿지 않는 자들과 율법주의자들에게 고난과 핍박을 받으며 죽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가진 자들은 고통스럽게 죽었지만 그들은 다시 부활하는 영광을 받았습니다. 구름을 타고 하나님 나라로 올라가게 됩니다. 복음을 전하다 죽은 자들을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십자가의 복음을 가지고 세상에서 빛과 같이 행동해야 합니다. 내가 주님의 복음 때문에 고통을 당하면 이것이 복이라고 했습니다. 잠시 살다가 죽는 육체적인 복을 말씀하시지 않고 영원히 사는 영생의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일곱 번째 나팔을 불고 있습니다. 이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큰 음성이 나오는 소리를 사도 요한은 들었습니다.
15절 카이 호 헤브도모스 앙겔로스 살피조 카이 기노마이 포네 메가스 엔 호 우라노 레구사이 에게논토 하이 바실레이아이 투 코스무 투 퀴리우 헤몬 카이 투 크리스투 아우투 카이 바실류세이 에이스 투스 아이오나스 톤 아이오논
(계 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에 큰 음성이 들리기를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세세토록 왕 노릇 할 것이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소리를 확실하게 들은 것입니다. 일곱째 나팔 소리는 마지막 주님의 강림을 상징합니다. 숫자 7은 휴식, 성령의 임재, 완전,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이 있을 때에 심판주로 오시며 이미 주님 안에서 십자가에 고난당하신 예수님을 믿은 자들을 부르러 오시는 것이고 믿지 않은 자들은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성령의 임재와 안식을 얻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거하게 됩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영화의 몸으로 부활되기 때문입니다.
‘큰 음성들이 나서’에서 ‘나서’라는 헬라어 단어는 (기노마이 1096 VIADP3 동사 직설법 과거 중간디포 복수 3인칭) 나타나다, 생기다, 계시다, 만들어지다, 라는 뜻입니다. 큰 하나님의 음성이 나타났으며 일곱째 나팔소리에 생기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음성으로 계시하시고 있습니다. 이 음성을 통해서 앞으로 되어질 일을 말씀합니다. 이 음성은 직접적으로 있었기 때문에 사도 요한이 들은 것입니다. 과거에 이미 있었던 일이며 이 음성을 통해서 구원받은 백성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와 영원히 왕 노릇하게 되지만 구원받지 못한 백성들은 심판의 자리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음성은 무엇입니까?
‘음성들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포네 5456) 음성, 소리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파오)에서 왔습니다. 빛나다, 비취다, 분명하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 음성은 하나님의 음성이며 확실히 구원을 비추어주시고 구원받은 백성에게 구원의 확신을 확실하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 음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확실하게 가려내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음성은 (콜 6963)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의미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과 연결되고 결합되어 주님의 통치를 받으며 말씀을 배우고 익혀 천국에 소망을 두어 영원히 함께 산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통하여 구원받은 백성은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사는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 음성은 마지막 때에 추수하기 위해서 들리는 음성입니다. 주님께서 마지막 날에 선택받은 주님의 백성들을 추수하러 오시는 것을 말합니다.
14절 카이 에이돈 카이 이두 네펠레 류케 카이 에피 텐 네펠렌 카데메노스 호모이오스 휘오 안드로푸 에콘 에피 테스 케팔레스 아우투 스테파논 크뤼순 카이 엔 테 케이리 아우투 드레파논 옥쉬
15절 카이 알로스 앙겔로스 엑셀덴 에크 투 나우 크라존 엔 메갈렌 포네 토 카데메노 에피 테스 네펠레스 펨프손 토 드레파논 수 카이 데리손 호티 엘덴 소이 헤 호라 투 데리사이 호티 엑세란데 호 데리스모스 테스 게스
(계 14:14-15)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
주님께서 마지막 날에 오셔서 예리한 낫을 가지고 이 땅의 영혼들을 추수할 날이 오게 됩니다. 익어서 거둘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여 주님이 오셔서 빨리 추수할 수 있도록 추수꾼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을 가진 자들의 사명입니다. 이제 주님이 오시면 주님의 나라가 되어 영원한 주님의 통치가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어 함께 왕 노릇하면서 통치하게 됩니다.
16절 카이 호이 에이코시 카이 텟사레스 프레스뷔테로이 호이 에노피온 투 데우 카데메노이 에피 투스 드로누스 아우톤 에페산 에피 타 프로소파 아우톤 카이 프로세퀴네산 토 데오
(계 11:16)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있습니다. 얼굴을 땅에 댄다는 것은 그분에 대한 강력한 존경심을 의미합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전쟁에서 패배한 왕이 승리한 왕에게 얼굴을 발에 묻고 절을 했습니다. 이것은 그 왕에 대한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며 앞으로 섬기겠다고 하는 다짐을 의미합니다. 이십사 장로들은 구원받은 백성들을 상징합니다. 이십사 장로는 구약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입니다. 다윗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데 제사장들을 24반차로 나누었습니다.
하나님 보좌에 있다는 것은 하늘나라의 성전을 의미합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바로 구원받은 백성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나도 구원을 받았다면 오직 주님만 섬겨야 합니다. 또한 주님만을 경배해야 합니다.
‘앉아 있던’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카데마이 2521 VPPNNMP 동사 분사 현재 중수디포 주격 남성 복수) 머물다, 주저앉다, 눌러앉다, 라는 뜻입니다. 이십사 장로들은 이미 하나님의 보좌에 머문 사람이며 주저앉고 눌러앉은 자들입니다. 완전한 구원을 받은 백성들만 하나님의 보좌에 들어가 앉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현재도 계속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고 있으며 이 세상에서는 구원받은 내게 하나님을 계속 섬겨야 한다는 것을 현재형을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있는 것은 자신들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앉게 하셔서 앉은 것이며 이들은 죄 사함을 받은 은혜가 있고 천국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을 받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바로 나도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셔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며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을 맡은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나도 목숨을 바쳐 주님을 섬기며 주님의 통치함을 받아야 합니다.
17절 레곤테스 유카리스투멘 소이 퀴리에 호 데오스 호 판토크라토르 호 온 카이 호 엔 카이 호 에르코메노스 호티 에일레파스 텐 뒤나민 수 텐 메갈렌 카이 에바실류사스
(계 11:17)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이십사 장로들이 경배하면서 고백하고 있는 것은 바로 주님께서 큰 권능을 잡고 왕 노릇하시라고 말합니다. 장로들은 먼저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자신들이 구원받고 주님을 섬기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나도 먼저 내 삶에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에 대한 감사 영혼구원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감사하옵나니’라는 헬라어 단어는 (유카리스테오 2168 VIPAP1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복수 1인칭) 감사하다, 라는 뜻입니다. 장로들이 감사하는 일이 실제로 있었으며 이 감사는 현재형을 쓰므로 계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 감사는 자발적인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1인칭을 쓰면서 바로 개인적으로 주님께 감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도 개인적인 감사가 능동적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하기 싫은 것 억지로 다른 사람에 의해서 하면 주님은 그 감사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감사는 아주 기뻐하는 것이며 주님이 나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 좋은 소식에 대한 감사입니다.
히브리어로 감사는 (토다 8426) 감사, 찬송, 고백이라는 뜻입니다. 감사는 먼저 자신의 모든 것을 고백하는 것이 감사입니다. 나쁜 일이건, 좋은 일이건 하나님께 먼저 고백해야 합니다. ‘토다’의 의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되어 생명을 얻었고 진리를 내 마음 속에 개방하여 영원히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을 산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 때문입니다. 죄인인 내가 어떻게 감히 하나님 앞에 나가 죄를 고백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대신 내 죄를 갚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감사에는 영원히 주님께 영광 돌리며 예배드린다는 뜻이 있습니다. 내가 예배에 잘 참석하는 것도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에 참석하지 않으면 영원히 왕 노릇하시는 주님께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감사에는 이미 찬송과 고백이 있기 때문이고 예배를 드린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장로들은 주님께서 영원히 세상을 통치하시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주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주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에 주님이 나를 통치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통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주님이 나를 통치해야 합니다. 통치를 인정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대대로 영원히 나를 다스리시고 만왕의 왕이 되어 내 마음에 견고하게 함께 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18절 카이 타 에드네 오르기스데산 카이 엘덴 헤 오르게 수 카이 호 카이로스 톤 네크론 크리데나이 카이 두나이 톤 미스돈 토이스 둘로이스 수 토이스 프로페타이스 카이 토이스 하기오이스 카이 토이스 포뷔메노이스 토 오노마 수 토이스 미크로이스 카이 토이스 메갈로이스 카이 디아프데이라이 투스 디아프데이론타스 텐 겐
(계 11: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하나님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들이 말하기를 이방들이 분노하며 두 증인을 죽인 자들을 심판하시고 복음을 전하다가 죽은 선지자들과 성도들에게 상을 주시라고 말합니다. 두 증인은 복음을 전하다 고난을 당하고 죽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상을 베풀어 주시며 고난을 주었던 자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 나도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복음 때문에 고난을 당하면 엄청난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다 죽으면 아무런 영광이 없을 것 같지만 주님은 너무나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만약에 나의 육체적 유익만을 위해 인생을 산다면 주님 앞에 상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방들이 분노하매’에서 ‘분노하매’라는 헬라어 단어는 (오르기조 3710 VIAOP3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디포 복수 3인칭) 노하다, 분노하다, 열망하다, 간절히 바라다, 라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이방인들은 두 증인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두 증인이 복음을 전할 때에 분노하고 죽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주님께서 심판을 하실 때 이들은 간절히 바라면서 불 못에 던져지지 않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주의 심판이 있을 때에 더 분노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들이 실제적으로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구원받지 못하고 분노하는 자가 과거에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들은 능동적으로 주님께 대들면서 분노하며 주님을 모욕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반드시 주님의 심판을 받아야 하고 불 못에 떨어질 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구원받지 못한 백성들입니다.
반면에 두 증인들은 복음을 전하다 핍박을 받고 고난 받아 죽었지만 주님께서 상을 베풀어 주시고 있습니다.
‘경외하는’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포베오 5399 VPPNDMP 동사 분사 현재 중수디포 여격 남성 복수) 무서워하다, 두려워하다, 놀라다, 존경하다, 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능력과 권능에 두려워하며 놀라고 존경하는 자들은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자들이 주님을 존경하는 때가 있는데 그때가 바로 지금 현재라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지금 현재 주님을 경외하고 존경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이미 상급을 받기로 작정되어 있고 구원받은 자들임을 말합니다. 이런 자들에게 돌아오는 것이 있는데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상급과 은혜를 무조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잘 경외하고 섬겨야 하는데 이것을 자발적으로 직접 자신이 교회에 충성하고 주님께 헌신하고 봉사했을 때 주님께서 상급을 돌려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온 마음과 뜻과 목숨을 바쳐 주님을 경외하고 존경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복음을 증거 하다 죽으면 끝이 날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끝까지 책임을 지시기 때문입니다. 율법주의자들에게 죽었던 기독교를 주님께서는 종교개혁이라는 복음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교회가 핍박을 받고 죽는 것 같지만 주님의 교회는 영원히 든든하게 세워져 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19절 카이 에노이게 호 나오스 투 데우 엔 토 우라노 카이 오프데 헤 키보토스 테스 디아데케스 아우투 엔 토 나오 아우투 카이 에게논토 아스트라파이 카이 포나이 카이 브론타이 카이 세이스모스 카이 칼라자 메갈레
(계 11: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마지막 주님이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난 후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렸습니다. 성전 안에 있는 언약궤가 보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언약궤가 보였다는 것은 바로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운명하실 때에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찢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는 지성소 언약궤가 있는 곳에 누구든지 예수님을 통하여 들어가게 됩니다. 초림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휘장은 자신의 육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절 헨 에네카이니센 헤민 호돈 프로스파톤 카이 조산 디아 투 카타페타스마토스 투테스틴 테스 사르코스 아우투
(히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성전에 언약궤가 보인다는 것은 재림하시는 주님께서 완전하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 놓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처음과 나중이고 시작과 끝입니다. 예수님이 초림으로 오셔서 고난당하시고 구원을 주셨다면 마지막 주님이 재림하셔서 종지부를 찍어야 합니다. 선택한 백성들을 데리러 오셔서 영원한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1절 메 타랏세스도 휘몬 헤 카르디아 피스튜에테 에이스 톤 데온 카이 에이스 에메 피스튜에테
2절 엔 테 오이키아 투 파트로스 무 모나이 폴라이 에이신 에이 데 메 에이폰 안 휘민 포류오마이 토폰 휘민
3절 카이 에안 포류도 카이 헤토이마소 휘민 토폰 팔린 에르코마이 카이 파랄렙소마이 휘마스 프로스 에마우톤 히나 호푸 에이미 에고 카이 휘메이스 에테
(요 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거처를 준비하시고 나를 데리러 오시는데 마지막 날에 오십니다. 이것을 주님께서 완전하게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언약궤로 나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의 보혈 외에는 없습니다. 언약궤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십계명이 그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전이 열리니’에서 ‘열리니’라는 헬라어 단어는 (아노이고 455 VIAPS3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단수 3인칭) 열리다, 밝아지다, 떠지다, 라는 뜻입니다. 하늘에 있는 성전이 열리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밝히 보여주시는 것이고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보고 영적인 눈이 열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성전이 열리는 것이 실제적으로 있었으며 이것은 이미 예수님을 통해서 성전이 열릴 것이 예비되어 있었던 것이며 사람에 의해서 열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열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전 문은 절대 밖에서 열 수가 없습니다. 안에서만 열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열지 않으면 이 문은 절대 열리지 않습니다. 이 성전이 열리지 않으면 구원받은 백성들도 하나님 앞으로 갈 수 없습니다. 이 성전 문은 바로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나도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 나라의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언약궤가 보이며’에서 ‘보이며’라는 헬라어 단어는 (호라오 3708 VIAPS3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단수 3인칭) 보이다, 알리다, 주의하다, 라는 뜻입니다. 휘장이 찢어지고 지성소에 언약궤가 바로 보이고 있습니다. 이 땅의 성전에 지성소도 주님께서 죽으심으로 보인 것이고 하늘의 성전에 지성소도 주님을 통해서 보이고 있습니다. 수동태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언약궤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데 아무나 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보혈을 믿고 의지하며 택함 받아 구원받은 자들에게 보여지는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절대 나도 하늘의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신의 능력과 믿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주님의 능력과 공로로만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곳에는 번개와 음성과 우레와 지진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능과 말씀을 상징합니다. 이것을 통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 복음을 전하다가 죽은 자들이 주님께서 부활시켜 주시고 영원히 사는 자가 되어 많은 상급을 받았으며 주님이 통치하실 때에 같이 통치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나도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구원받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세상에 잘 나타내야 합니다. 십자가의 도를 나를 통해 잘 전파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은 받았지만 주님께서 주시는 상급은 절대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순입니다. 나는 구원받고 천국에 가니 인생 막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제대로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구원을 받았다면 열심히 복음을 전하면서 삶에 모범이 되면 주님께서 마지막 날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시면서 상급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나는 주님의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 종말도 있지만 나에게는 개인의 종말도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종말은 언제 올지 알 수 없지만 개인 종말은 바로 눈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일이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야 합니다. 이것이 인생이기 때문에 주님 앞에 가서 온전한 상급을 받기를 원한다면 지금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하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히브리어 원어 다니엘 설교말씀] 다니엘에게 계시를 보여주시는 하나님(단 2:2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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