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포도나무와 포도주는 많이 나옵니다. 우리가 성경 식물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주님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포도나무가 중요합니다. 포도주를 얻기 때문입니다. 건기 막바지가 되면 물이 떨어지기 때문에 포도나무 열매를 따서 포도주로 만들어 마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포도나무가 중요합니다. 포도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하면 불에 들어가는 것밖에 없습니다. 다른 것으로 쓸 수 있는 나무가 아닙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좋은 신앙의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포도나무’ (게펜 1612) (케렘 3754) "(암펠로스 288)
이스라엘에서 포도나무는 아주 중요한 식물 중에 하나입니다. 이스라엘 땅은 기후가 건기와 우기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건기 때에는 비가 전혀 내리지 않게 됩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으로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물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겨울인 우기에 비가 아무리 많이 내려도 봄이 시작하는 건기가 되면 비가 전혀 내리지를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땅의 샘과 강들이 말라버리고 우물과 웅덩이에 있던 물도 모두 바닥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때에 유대인들은 초막 절기가 되면 포도를 수확하게 됩니다. 건기의 막바지가 되는 때입니다. 모든 물은 바닥이 나서 마실 수가 없고 갈증이 최고조로 올라왔을 때에 포도를 수확하여 즙 틀에 넣고 밟아서 포도주를 만들어 마시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마시지 못했던 물을 대신하여 포도주를 마시면서 갈증을 해소하는 것입니다. 이때의 기분은 아무도 모릅니다. 갈증을 해소한 사람만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포도주를 대할 때에 기쁨과 즐거움을 상징하는 나무가 된 것입니다.
기쁨을 표현하는 포도주는 안식일에는 한 잔을 마시고 결혼식에는 두 잔을 마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 하는 유월절에는 넉 잔을 마시게 됩니다. 이렇게 기쁨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유월절은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사생애의 기간을 마치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제일 먼저 이적을 베푸신 사건이 무엇입니까? 포도주 사건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예수님의 가나의 혼인잔치의 기적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알리시면서 자신의 때가 되지도 않았음에도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의도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포도주는 기쁨과 즐거움을 상징하는 것인데 혼인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현재 혼인집에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1절 카이 테 헤메라 테 트리테 가모스 에게네토 엔 카나 테스 갈릴라이아스 카이 엔 헤 메테르 투 이에수 에케이
2절 에클레데 데 카이 호 이에수스 카이 호이 마데타이 아우투 에이스 톤 가몬
3절 카이 휘스테레산토스 오이누 레게이 헤 메테르 투 이에수 프로스 아우톤 오이논 우크 에쿠신
요2:1-3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요한은 이 사건이 확실히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사흘째 되던 날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서 초청을 받아 가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마리아의 동생 살로메의 결혼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혼례식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마리아에게도 큰 수치를 안겨주었을 것입니다.
고대 근동의 유대인들은 명예와 수치의 개념이 최고의 가치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명예가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자녀들을 엄하게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수치를 당하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수치당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친척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마리아에게도 큰 수치거리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첫 번째 이적 사건이 갈릴리 가나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가 영적으로 깨달아보겠습니다.
‘갈릴리’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갈릴 1551) 갈릴리이며 이 단어는 (갈랄 1556) 옮기다, 떠나가다, 굴리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의 혼인집에 참석한 것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생애의 기간은 이제 끝났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공생애의 기간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렇다면 혼인집은 기쁨과 즐거움이 있어야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준비한 포도주는 떨어졌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율법의 의로 구원을 받는 것은 이제 끝이 났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육적인 자신의 의로는 절대 구원을 얻을 수가 없고 구원의 기쁨과 즐거움은 사라졌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로 말미암아 원죄에 있던 자들을 생명의 자리로 옮겨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의 힘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것들을 굴려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로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준비한 포도주가 모두 떨어진 것처럼 인간의 의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것들은 모두 떠나가고 사라진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갈릴리에서 예수님이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의도입니다.
‘가나’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카나 7071) 가나이며 이 단어는 (카네 7070) 갈대, 줄기, 저울대,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가나는 갈대와 저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동네입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예식 집에서 포도주의 기적을 베푸신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성경에서 갈대는 측량자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측량 자는 복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가나에서 예수님이 포도주의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은 복음의 말씀으로 모든 원죄를 사라지게 하고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적인 의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은 저울에 달아보았더니 부족하여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만 믿는 자들은 모든 죄가 사라지고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얻을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갈릴리 가나에서의 주님의 기적이 가르쳐주시는 영적인 교훈입니다.
‘떨어진지라’라는 헬라어 단어는 (휘스테레오 5302 VPAAGMS 동사, 분사, 과거, 능동, 소유격, 남성, 단수) 부족하다, 궁핍하다, 떨어지다, 모자라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휘스테로스 5306) 후일에, 장차, 그 후에,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현재 혼주가 준비한 모든 포도주는 끝이 났습니다. 완전히 떨어져 손님들에게 대접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당황하여 예수님께 찾아와 자신들이 준비한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럼 이것은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인간이 준비한 율법의 의로는 더 이상 은혜를 끼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기쁨과 즐거움을 더 이상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는 궁핍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장차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훗날에 영원한 포도주를 주셔서 영적인 기쁨과 즐거움을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포도주가 떨어진 것은 이미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야만 예수님께서 영적인 포도주를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율법으로는 절대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포도주가 떨어진 것은 기쁨과 즐거움도 같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율법적인 의를 소유하고 있는 자들은 결국 영적으로는 곤핍하고 은혜가 부족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유격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면 영적으로 갈증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의 포도주는 결국 진노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포도주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4절 레게이 아우테 호 이에수스 티 에모이 카이 소이 귀나이 우포 헤케이 헤 호라 무
요2: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말씀하시기를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도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현재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단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적인 것을 채워주시기 위하여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것을 채워주시고 구원의 은혜를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런데도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내시는 것은 자신이 이와 같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영원한 속죄의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7절 카이 라본 토 포테리온 카이 유카리스테사스 에도켄 아우토이스 레곤 피에테 엑스 아우투 판테스
28절 투토 가르 에스틴 토 하이마 무 토 테스 카이네스 디아데케스 토 페리 폴론 에크퀴노메논 에이스 아페신 하마르티온
마26:27-28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만찬에서 포도주 잔을 가지시고 이것을 마시라고 말씀하시면서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심으로 인하여 영혼의 포도주를 나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 3년이라는 공생애의 기간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직 자신의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약’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디아데케 1242) 언약, 유언, 이라는 뜻입니다. (디아티데미 1303) 정리하다, 유언에 따라 처분하다, 세우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만찬에 포도주를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피를 상징하고 있으며 새 언약의 피입니다. 이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언입니다. 주님은 마지막 유언이 주님의 피를 마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마시지 않으면 절대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유언은 살아있으면 효력이 없습니다. 유언한 자가 죽을 때에 효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새 언약을 나와 체결하시면서 유언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예수님의 유언대로 십자가에 나를 위해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피를 마심으로 주님의 유언대로 나는 죽지 않고 주님이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유언의 처분대로 천국을 내가 기업으로 상속받게 된 것입니다. 유언자가 죽을 때에 자녀가 상속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만찬을 통하여 모든 것을 정리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으며 예정대로 삼일 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포도주를 마심으로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하게 되었으며 신랑과 신부가 하나가 되는 혼인잔치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포도나무와 연관이 있는 사람 중에 노아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술에 취하여 노망(老妄)이 걸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기독교인들 중에 거의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옷을 벗고 잠을 자서 성적으로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추론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술에 취한 사건을 우리는 노망(老妄) 난 할아버지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구속사적으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20절 바야헬 노아흐 이쉬 하아다마 바이타 카렘
창9:20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노아는 방주에서 나와 처음으로 농사를 지은 것이 포도나무를 재배했습니다.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곡식을 재배해야 합니다. 곡식을 재배하여 먹고살아야 하는데 왜 하필이면 포도나무를 심고 있습니까? 포도나무는 식량이 될 수 없습니다. 보리나 밀을 심어서 식량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리와 밀을 재배 했습니다. 그런데 방주에서 나와 처음으로 농사를 시작했는데 포도나무를 심고 있습니다.
‘시작하여’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할랄 2490 CW.VHIMZS 와우계속, 동사, 히필(사역능동),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수치를 당하다, 더럽히다, 부정하게 하다, 시작하다, 라는 뜻입니다. 노아가 처음으로 농사를 시작한 것이 포도나무 재배입니다. 이 농사를 처음으로 지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홍수 심판으로 모든 세상은 끝났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땅과 하늘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려면 반드시 의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원하시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수치가 있거나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자들은 부정하여 절대 천국에서 살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의 옷을 입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노아는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는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 옷을 입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아무 옷도 입지 않았지만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죄를 짓기 전이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아무런 옷을 입지 않아도 당당하게 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죄를 짓고 나니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나갈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모습이 너무 추악하고 더럽고 부끄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지 않으면 절대 나갈 수가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6절 디오 카이 페리에케이 엔 테 그라페 이두 티데미 엔 시온 리돈 아크로고니아이온 에클레크톤 엔티몬 카이 호 피스튜온 에프 아우토 우 메 카타이스쉰데
벧전2:6 성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예수님을 믿는 자는 절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홍수 심판으로 모든 사람들이 죽었고 이제는 에덴동산의 회복을 위하여 옷을 입지 않은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개념에 포도주는 기쁨과 환희의 개념이 있습니다.
‘포도나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케렘 3754 NMS 명사, 남성, 단수) 고귀하다, 귀한 식물을 가꾸는 정원, 이라는 뜻입니다.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은 것은 자신의 양식을 위해서 심은 것이 아닙니다. 포도나무를 단수로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 포도나무를 심었다면 복수로 많이 심어야 합니다. 하지만 노아는 한 그루의 나무를 심은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1절 에고 에이미 헤 암펠로스 헤 알레디네 카이 호 파테르 무 호 게오르고스 에스틴
요15:1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포도나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자신을 가꾸는 농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원한 천국에서의 양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포도나무를 단수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참 포도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자신이 포도나무라고 말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그 나무는 참 포도를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들 포도나무이기 때문입니다. 맛이 없고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들입니다. 이런 포도들은 모두가 가짜입니다. 참 포도나무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 대속 물로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은 것처럼 우리도 참 포도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산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21절 바예쉬티 민 하야인 바이쉬카르 바이티갈 비토크 아할로
창9: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노아는 포도나무를 재배하여 첫 수확을 하고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벗고 잠을 잤습니다. 이 사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노아가 술을 마시고 추태를 부려 성적으로 문란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노아가 성적으로 문란하다고 기록한 것이 없습니다. 성적으로 문란하다면 다른 여자와 함께 누워서 잠을 자야 하는데 노아는 혼자 누워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것을 기록하신 의도와 목적을 파악해야 합니다. 노아가 포도주를 마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포도주’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야인 3196 D.NMS 관사, 명사, 남성, 단수) 포도주, 잔치, 라는 뜻입니다. 노아가 포도주를 마셨는데 노아는 아무 포도주를 마신 것이 아닙니다. 그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참 포도주를 마셨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또한 단수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포도주 한 잔을 마셨다는 것을 의미해 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포도주의 의미는 기쁨과 즐거움의 의미가 있습니다. 가장 목마를 때에 처음으로 먹는 것이 포도를 수확하고 나서 먹기 때문입니다. 모든 갈증에서 해갈시켜주었다는 의미를 유대인들은 가지고 있습니다.
21절 우바누 바팀 비야샤부 비나티우 키라밈 비아킬루 피리얌
사65:21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 안에 살겠고 포도나무를 심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이 말씀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신 것을 말씀하고 있는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이 안에 들어온 자들은 포도나무를 심어 그 열매를 먹을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노아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와 예수 그리스도의 참 포도나무를 심고 그에 합당한 열매인 포도주를 마신 것입니다. 이것을 먹지 않으면 주님과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노아가 포도주를 마신 사건은 술 취하기 위해 먹은 것이 아니라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새로운 포도주를 마시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의 언약의 포도주를 노아가 주님과 함께 먹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노아의 포도주 사건을 통해 천국에 가면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되어 새로운 포도주를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새 언약의 피를 마시면서 기쁘고 즐거운 혼인잔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는 이미 그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포도주를 마셨던 것입니다.
‘취하여’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샤카르 7937 CW.VQIMZS 와우계속, 동사, 칼(능동태),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취하다, 마시다, 라는 뜻입니다.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술 취한 것에 사용하는 것도 맞지만 잔치의 향연에서 즐기는 것으로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혼인잔치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노아는 신랑 되시는 주님과 신부인 자신이 흥겹고 즐겁게 기뻐하며 잔치가 일어나서 즐겼다는 것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것이 술에 취한 것으로만 본다면 계시록에는 음녀가 음행의 포도주에 취한 사건이 나옵니다.
1절 카이 엘덴 헤이스 에크 톤 헤프타 앙겔론 톤 에콘톤 타스 헤프타 피알라스 카이 엘랄레센 메트 에무 레곤 모이 듀로 데익소 소이 토 크리마 테스 포르네스 테스 메갈레스 테스 카데메네스 에피 톤 휘다톤 톤 폴론
2절 메드 헤스 에포르뉴산 호이 바실레이스 테스 게스 카이 에메뒤스데산 에크 투 오이누 테스 포르네이아스 아우테스 호이 카토이쿤테스 텐 겐
계17:1-2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계시록에서는 음녀가 음행의 포도주에 취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도 취했다는 단어를 신약히브리어에서도 (샤카르) 라는 똑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거짓 교회와 교인들은 음행의 포도주로 취했다고 했는데 진짜 포도주를 마신 것이 아니라 거짓된 복음의 포도주를 마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한 사건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노아가 포도주를 마신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 포도나무에서 나오는 진리의 복음의 말씀을 먹고 취한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 우리는 참 포도나무에서 나오는 진리의 복음 말씀을 마셔야 합니다. 참 포도주에 취하지 않으면 우리는 거짓된 음행의 포도주에 취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영원한 심판의 불 못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벌거벗은지라’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갈라 1540 CW.VTIMZS 와우계속, 동사, 히트파엘(강조재귀),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밝혀지다, 드러나다, 알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노아는 자신의 장막에서 포도주를 마시고 벌거벗은 채로 있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노아가 성적으로 문란하고 술에 취해 타락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깊은 하나님의 영적인 의도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창조하시고 아담과 함께 영원한 천국을 이루기 위해 에덴동산을 다시 창설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담과 하나님은 함께 지내게 됩니다. 그런데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순간 불순종함으로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남을 당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담은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죄에 대한 회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절대 구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가죽옷을 직접 지어 입히셨습니다. 이것을 통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고 알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천국을 상징하는 에덴동산에서는 옷을 입지 않아도 죄를 알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죄가 없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노아는 이것을 깨닫고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복음인 언약의 피를 마시고 더 이상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노아의 행동이 에덴동산의 회복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의 눈을 열어주셔서 영원한 천국은 죄가 없는 곳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노아가 자신의 옷을 벗었다는 것은 이제 죄악 된 모든 것이 사라지고 더 이상 죄가 없는 곳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즉시로 죄악의 옷을 벗어던진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자신은 죄가 없는 상태로 영원히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주님과 거주하면서 사는 에덴동산의 회복을 이룬 것입니다. 노아는 복음을 깨달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미 보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약에서도 이미 새 하늘과 새 땅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옷을 벗은 것은 성적인 추태를 부리려고 한 것이 아니라 구속사 관점에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죄악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건입니다. 천국은 이 세상의 추악한 죄의 옷은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의 옷만 필요합니다. 혼인 예복을 입어야만이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노아는 이미 혼인잔치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포도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나무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표현할 때에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나도 하나님 앞에서는 극상품 포도나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우상을 섬기게 되면 들 포도나무가 되어 상품가치가 없는 포도만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2절 바이아지케후 바이사킬레후 바이타에후 소레크 바이벤 미기달 비토코 비감 예케브 하체브 보 바이카브 라아쇼트 아나빔 바야아스 비이쉼
사5: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었도다
하나님께서는 포도원에 땅을 파고 돌을 제하여 버리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이 포도를 지키기 위하여 여우나 도둑들이 극상품 포도를 따가지 못하도록 망대를 만들어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좋은 포도 맺기를 원하셨는데 들 포도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을 섬기면서 타락하여 들 포도를 맺게 되었습니다.
‘땅을 파서’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아자크 5823 CW.VPIMZS.MZS 와우계속, 동사, 피엘(강조능동),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남성, 3인칭, 단수) 땅을 파다, 개간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령의 밭을 개간하여 땅을 팠습니다. 도저히 밭 같지 않은 밭을 완전히 뒤집어엎어서 좋은 밭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것도 즉시 심령을 갈아서 밭 같지 않은 밭을 하나님께서 기름진 밭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중에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것을 말씀합니다. 그 이유가 피엘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해당됩니다. 우리의 길가 밭과 같은 심령을 완전히 갈아서 기경하여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죄악의 상태였는데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기름진 땅으로 만들어 주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돌을 제하고’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싸칼 5619 CW.VPIMZS.MZS 와우계속, 동사, 피엘(강조능동),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남성, 3인칭, 단수) 돌을 던지다, 돌을 제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갈밭과 같은 심령들을 완전히 역사하셔서 돌을 모두 빼내 주신 것입니다. 죄악의 돌들을 모두 용서하여 주시고 제하여 버려서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을 수 있도록 옥토 밭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자갈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뽑아내어 좋은 밭을 만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피엘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죄로 죽었던 우리들의 심령에 죄악의 돌들을 모두 빼내 주셔서 구원의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반드시 극상품 포도나무가 심겼기 때문에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상을 따르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극상품 포도나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소레크 8321 NMS 명사, 남성, 단수) 정선한 상품 포도나무, 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샤라크 8319) 비웃다, 피리를 불다, 휘파람을 불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심령에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비웃고 있는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은 나의 무능함을 비웃고 있는 것입니다. 내 주제에 무슨 극상품 포도나무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냐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으면 극상품 포도나무를 맺힐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아들이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든지 상을 받아오면 아버지는 기뻐서 저절로 휘파람을 불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들이 영적으로 극상품 포도열매를 맺히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들 포도를 맺게 되면 사탄은 기뻐서 나팔을 불게 됩니다. 우리는 사탄을 기분 좋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주님과 연결되어 있으면 극상품 포도나무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과 연결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들 포도를 맺어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성경에서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들 포도를 맺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삼손입니다. 블레셋의 들릴라를 만나게 됨으로 들 포도를 맺게 된 것입니다.
4절 바이히 아하레 켄 바예에하브 이샤 비나할 소레크 우쉬마흐 딜릴라
삿16:4 이 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삼손은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를 사랑하여 머리가 밀리게 되고 하나님의 신이 떠나갔으며 결국 눈이 빠지게 되고 블레셋으로부터 수치를 당하게 되는 들 포도를 맺은 사람입니다. 삼손의 태생은 나실 인으로서 극상품 포도나무와 같은 자였습니다. 그런데 여인을 잘못 만나게 됨으로 타락의 들 포도를 맺은 것입니다.
‘소렉’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소레크 7796) 소렉, 이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소레크 8321 NMS 명사, 남성, 단수) 정선한 상품 포도나무, 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샤라크 8319) 비웃다, 피리를 불다, 휘파람을 불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소렉 골짜기에 있는 들릴라는 삼손을 극상품 포도나무에서 들 포도나무로 만들어 버린 존재입니다. 음녀가 바로 들릴라입니다. 이런 소렉이 바로 극상품 포도나무라는 뜻입니다. 들릴라와 같은 음녀들은 극상품 포도나무인 성도들에게 접근하여 들 포도나무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비 복음을 전파하여 영혼을 죽이는 자들이 바로 들릴라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들릴라’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딜릴라 1807) 들릴라, 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달랄 1809) 가련하게 되다, 비천하다, 쇠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들릴라의 이름의 의미는 ‘매달아 둔 먹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는 극상품 포도나무들을 유혹하여 들 포도를 맺게 하는 여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심어 놓은 극상품 포도나무를 유혹하여 비천한 상태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에 있는 것처럼 삼손을 자신의 먹잇감으로 생각하여 가련하고 쇠약하게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이 시대도 들릴라와 같은 존재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극상품 포도나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율법의 들 포도나무로 바꾸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소렉의 들릴라를 영적으로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이들은 음녀들로서 영혼을 죽이는 것입니다. 삼손을 영적으로 죽이고 나실 인의 비밀을 캐내어 머리를 밀어버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신은 삼손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극상품 포도나무로써 사상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상이었는데 들릴라와 같은 음녀를 만나면 율법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거짓된 사상에 물이 들어 들 포도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런 자들은 영적으로 비천하게 되고 힘을 잃어 영적으로 쇠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상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의로 구원을 얻는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어 놓았습니다. 그렇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사상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율법의 의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런 생각들은 들 포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포도나무를 통해서 깨달은 영적 진리가 무엇입니까? 포도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나무입니다. 말씀으로 기쁨과 즐거움을 허락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백성이라면 이제부터는 포도나무와 연합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포도나무의 줄기를 통해서 영양분을 먹고 좋은 극상품 포도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포도나무는 안식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어 있으면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는 저와 여러분들은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 포도주를 마음껏 드시고 기쁘고 즐거운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헬라어 원어 요한계시록 설교말씀] 마지막 일곱째 나팔 소리(계 11: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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