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8장에서 하나님은 애굽에 세 번째 재앙인 이로 애굽을 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합니다.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들어 땅의 티끌을 치라고 명령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애굽의 온 땅에서 이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아론이 지팡이를 잡고 땅의 티끌을 쳤더니 애굽 온 땅의 티끌이 이가 되어 사람과 가축을 괴롭혔습니다. 애굽의 마술사들도 똑같이 행하여 이를 만들려고 했지만 못했습니다. 지금도 거짓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흉내를 내면서 인간이 하나님이라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이고 구원자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흉내 내지만 그들은 구원자도 아니고 하나님도 아닙니다. 죄인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지 못했기 때문에 애굽의 마술사처럼 하나님의 일을 흉내 내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자들의 말에 미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을 하나님으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아야 합니다. 오늘도 예수님만을 섬기는 크리스천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흉내 내는 애굽의 마술사(출 8:16-19)
인간이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는 마음은 교만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인간들은 하나님의 권위를 뛰어넘으려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마음속에 이미 그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명령하셨는데, 결국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게 됩니다. 인간의 속성은 이미 죄악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는 순간 인간은 모두가 죽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이미 욕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사단이 그 마음을 파고들어 와 미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불순종하게 하여 하나님과 멀어지게 했으며, 인간들은 죄책감에 시달리며 영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인간은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 나갈 자가 한 명도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들의 한계입니다. 죄악 된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홍수 심판을 당해 노아의 8 가족만 살아남아서 다시 시작했지만, 인간들의 죄악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께 대항하는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하나님께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벨탑을 무너뜨리시고 인간들을 흩으셨습니다.
현재 우리의 마음에도 하나님께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들이 날이 가면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과학과 문명이 발달하면서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동물을 복제하고, 더 나아가 인간까지도 복제하려고 합니다.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 있는 것인데, 인간들이 하나님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습니다. 애굽의 마술사처럼 하나님의 따라 하려고 하다가 심판받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들입니다.
또한 동성애자들을 옹호하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결혼 질서를 깨뜨리고 동성끼리 결혼하는 것을 인정하는 행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이 시대의 불순종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잘못된 행위들을 끝까지 보고만 있지 않습니다.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때에 모든 것을 주님이 판단하십니다. 우리는 이제 영적으로 깨어서 말씀에 서야 합니다. 복음의 말씀에 서지 않으면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세 번째 재앙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은 선택한 백성을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한 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약속을 후대에 와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인데 이런 은혜를 주고 입습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목이 곧은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우상만 섬기던 자들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참으시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 속에도 나를 선택하신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 의로움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이 있고,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선택받았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선택받은 자들을 책임지신 것처럼, 우리의 앞길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불가항력적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거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면서 땅의 티끌을 치라고 말씀합니다.
출 8: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들어 땅의 티끌을 치라 하라 그것이 애굽 온 땅에서 이가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티끌을 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치라’는 히브리어로 (나카)입니다. 치다, 때리다, 죽이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히필, 명령형을 사용하면서 너는 가서 티끌을 치라고 했습니다. 그다음은 하나님께서 행하시겠다고 약속합니다. 이가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하지만 때리는 것은 인간이 해야 되는 몫입니다. 히필 사역 능동형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강권적으로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명령법을 사용했으니 반드시 가서 티끌을 지팡이로 쳐야 합니다. 그러면 역사는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행동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다음은 책임을 지십니다. 만약에 아론이 지팡이로 땅을 티끌을 때리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다른 방법으로 행동에 옮기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계획을 바꾸는 법이 없습니다. 아론이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사용하셔서 라도 꼭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이루십니다.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있다는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아니더라도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내가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반드시 다른 사람을 준비하셔서 사용합니다. 이 세상에 내가 아니면 안 된다. 라는 법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됩니다. 하라고 하면 되고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하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종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두려워하는 종이 아니라 순종하는 종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교만해져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나를 떠날 것입니다. 삼손도 하나님의 신이 떠났을 때 힘이 빠졌습니다. 삼손 자신이 힘이 있고 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이 있었기 때문에 힘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나는 반드시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능력도 나오고, 지혜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출 8:17 그들이 그대로 행할새 아론이 지팡이를 잡고 손을 들어 땅의 티끌을 치매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어 사람과 가축에게 오르니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지팡이를 잡고 손을 들어 땅의 티끌을 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티끌을 쳤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쳤습니다.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즉시로 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 기적은 나타납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인간적인 방법이 나오지만,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이 들면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때에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출 8:18 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로 그같이 행하여 이를 생기게 하려 하였으나 못 하였고 이가 사람과 가축에게 생긴지라
애굽의 마술사들도 티끌을 치면서 이를 생기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적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인간들의 한계성입니다. 피와 개구리의 기적은 힘들게 되었지만 이의 재앙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애굽의 요술사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을 동원하여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을 만들어 보려고 온갖 애를 썼지만 되지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인간들이 따라올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존재이지 하나님을 조종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들은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현명한 방법입니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출 8:19 요술사가 바로에게 말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였으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요술사들은 바로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렇게 되었다.라고 보고합니다.
‘권능이니이다’는 히브리어로 (에츠바)입니다. 손가락, 발가락, 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손가락만 까닥하셔도 능력을 나타내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은 일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못하실 일이 없는 분입니다.
‘에츠바’의 히브리적 의미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선택받은 자들을 낚아채어 구원을 주시고 계시하면서 경험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애굽에서 10가지 재앙을 내리면서 권능을 나타내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선택받은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는 마음을 더욱더 강퍅하게 먹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주지 않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악 된 근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한계가 느껴집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재앙을 내려도 나는 버틸 수 있다.라는 자만과, 교만입니다.
인간은 반드시 한계에 부딪히게 되어 있습니다. 전능하지 못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약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강한 척만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어떠한 태도가 있습니까? 나는 하나님 앞에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능력이 많다고 생각하여 내 멋대로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면서 하나님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보다 더 높아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이런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인생을 살다 보면 반드시 후회할 때가 옵니다. 바로는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우리의 최고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자랑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교만해지면 하나님을 자랑하지 않고 나를 자랑하게 됩니다. 마치 내가 능력이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무선 조종을 하는 비행기가 있습니다. 자신이 능력이 있어서 하늘 높이 날아오른 줄 알고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주인은 싫어합니다. 몇 번을 원하는 데로 방향을 틀었는데 반대로 가면 이것은 고장입니다. 그러면 바로 주인이 소환하여 바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순종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느끼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순종할 때에 하나님이 즐거워하시고 기뻐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나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없이는 절대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를 위해 피 흘리시고, 성령으로 구원을 인 쳐 주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한 주간을 힘차게 살아가시는 크리스천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사기 12장 복음 설교말씀] 에브라임 사람 발음 쉽볼렛과 십볼렛(삿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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