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원문 설교강해 자료

[여호수아 히브리어 설교] 여호수아의 선포 여리고성을 세우지 말라(수 6:26-27)

르호봇 2021. 6. 16. 19:43
반응형

안녕하세요. 오늘은 여호수아 히브리어 설교 중에서 여호수아의 선포 여리고성을 세우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을 점령하고 나서 선포합니다. 누구든지 여리고성을 다시 쌓으면 여호와 하나님께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저주받은 성이기 때문에 다시 쌓으면 안 됩니다. 여리고성의 기초를 쌓을 때 맏아들을 잃을 것이고 여리고성의 문을 세울 때 막내아들을 잃게 될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영적인 의미를 묵상해 보겠습니다.

여호수아의 선포 여리고성을 세우지 말라(수 6:26-27)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길갈에서 진을 치고 이제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하여 첫 관문인 여리고성을 쳐야 합니다. 여리고성은 난공불락의 성으로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정복할 수 없는 성입니다. 이 성을 여호수아 군대가 쳐들어가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을 정복했던 것입니다.

 

이때에 기생 라합은 정탐꾼들을 보호해 주고 자신들의 집을 멸망시키지 말아 달라고 맹세를 받아 내어 여리고성이 무너질 때에 라합의 집은 건재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라합의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이끌어 내고 나머지는 모두 멸망시켰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기생 라합은 붉은 줄을 매달아 구원의 증표가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 여리고성이 무너질 때에 자신들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마지막 심판의 날에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영원한 멸망에서 피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심판과 죽음에서 구원을 받을 길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신 주님 밖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깨닫고 오직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마지막 심판의 날에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생 라합의 집을 구원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 여리고성을 여호수아가 무너뜨린 후에 오늘 본문의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입니까? 기생 라합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여리고성을 다시 세우는 사람은 율법을 다시 세우는 자들을 의미하는데 이런 자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나를 위해 모든 저주를 십자가에서 가져가셨습니다. 나의 원죄와 자 범죄를 해결해 주시고 율법을 완성하셔서 오직 하나님의 의로 구원을 얻게 해 주셨습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졌다는 것은 바로 나의 모든 저주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무너뜨려 주신 것을 상징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다시 세워서 자신의 의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은 반드시 저주가 임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저주를 가져간 사건을 기억하시고 다시는 율법의 의를 세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의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것을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 철저히 오직 주님의 의로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6절 바야쉐바 예호슈아 바에트 하히 레모르 아루르 하이쉬 리프네 아도나이 아쎄르 야쿰 우바나 에트 하이르 하조트 에트 예리호 비베코로 예야세데나 우비츠이로 야치브 델라테이하

6:26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을 정복한 후에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면서 누구든지 여리고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께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무너진 여리고성의 기초를 쌓을 때에 맏아들을 잃을 것이고 여리고성의 문을 세울 때에 막내아들을 잃을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라는 단어는 (예호슈아 3091) 여호수아,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יהוה(아도나이 3068) 여호와, 라는 뜻과 ישע(야샤 3467) 구원하다, 건져내다, 보호하다,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여호수아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정복하여 선택받은 기생 라합의 가족들을 구원하시고 멸망에서 건져내어 보호해 준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여리고성과 같은 죄악 되고 멸망된 장소에서 건져내어 구원해 주시고 영원히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여호수아가 맹세하여 선포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일어나서 여리고성을 건축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무너뜨려 주시고 구원하여 주셨는데 율법을 세워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0절 호테 운 엘라벤 토 옥소스 호 이에수스 에이펜 테텔레스타이 카이 클리나스 텐 케팔렌 파레도켄 토 프뉴마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선택받은 모든 자들의 죄를 몸소 짊어지시고 다 이루었다는 공포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떠나가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함락하고 선포하는 것의 성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상을 섬기던 여리고성을 무너뜨려주시고 생명의 삶을 주신 것을 다시는 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의를 세워주신 것을 인간의 의로 다시 세우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3절 아그노운테스 가르 텐 투 데우 디카이오쉬넨 카이 텐 이디안 디카이오쉬넨 제툰테스 스테사이 테 디카이오쉬네 투 데우 우크 휘페타게산

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여리고성을 다시 쌓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무시하고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하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대적하는 율법의 사람들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로 모든 저주를 짊어지신 것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으니 다시는 율법의 자신의 의를 세우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합니다. 복종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문법이 직설법 과거 수동태입니다. 이것은 복종하려고 해도 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복종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으려고 해도 믿지 못하고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합니다. 과거에 이미 그리스도 밖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이 믿어집니다. 과거에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건축하는 자는’이라는 단어는 (바나 1129 VQAMZS 동사 칼(능동태) 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쌓다, 건축하다, 세우다, 증축하다, 라는 뜻입니다. 여호수아는 무너진 여리고성을 다시 쌓거나 건축하여 세우는 자들은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께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의 터에 있는 것들 위에 증축하는 자들도 저주를 받게 됩니다. 칼 능동태 완료를 여리고성을 건축하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됩니다. 완전히 무너진 것을 다시 원래로 다시 세우려고 하면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여리고성이 무너진 것은 원죄의 고통에 빠져 죽었던 자들을 예수님께서 직접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시고 구원해 주신 것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저주받은 곳에 자신의 의를 나타내서 율법을 세운다면 반드시 하나님께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증축을 하듯이 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의를 합쳐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신인 협동설과 같은 이런 자들도 하나님께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리고’라는 단어는 (예리호 3405) 여리고, 라는 뜻이며 ירח(야레아흐 3394) , , 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여리고는 달의 신을 섬기던 장소이며 우상을 섬김으로 타락했던 도시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런 타락한 도시를 무너뜨리고 정복한 것입니다. 그럼 여리고와 같은 장소가 어디입니까? 신약에서는 바로 골고다입니다. 신약 히브리어 성경으로 보겠습니다.

27:33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장소가 골고다입니다. 이 장소는 죽은 자들의 뼈가 많이 있는 곳으로 부정한 장소였습니다. 이곳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저주를 받으시고 죄를 정복하신 것입니다.

 

골고다’라는 단어는 (굴골레트 1538) 두개골, 머리, 머리수, 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גלל(갈랄 1556) 옮기다, 떠나가다, 굴리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골고다에서 예수님이 죽으시고 선택받은 모든 자들의 죄가 예수님께로 굴려졌습니다. 나의 모든 원죄가 예수님께로 옮겨져서 주님이 모두 가져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제부터 죄에서 떠난 인생이 되어 전에는 해골처럼 죽었던 인생이 생명의 자리로 옮겨진 것입니다. 이것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계수했던 것처럼 나도 하나님으로부터 머리수가 세어져서 구원을 받은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내가 인정하지 않고 나의 의를 주장하여 율법과 하나님의 의를 함께 증축하려고 여리고성을 쌓으면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100%의 자신의 의로 만이 구원을 얻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의는 0%입니다. 이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부정한 골고다에서 영원한 속죄를 단 번에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 기초를 쌓을 때에’라는 단어는 (야싸드 3245 VPIMZS.FZS 동사 피엘(강조능동)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여성 3인칭 단수) 세우다, 건설하다, 창조하다, 꾀하다, 라는 뜻입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의 기초를 다시 세우고 건설하는 자들은 장자를 잃을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반드시 저주를 받는데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장자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피엘 강조능동 미완료를 사용했다는 것은 여리고성의 기초를 쌓지 말아야 하는데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쌓은 자는 결국 저주받아 죽게 된다는 말입니다. 여성 3인칭 단수는 여리고성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여리고성의 기초를 세운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하나님의 의를 모두 거두어 내고 율법의 의로 기초를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신 스스로 창조한 인간의 말씀을 기초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들의 의를 꾀하여 기초를 세우는 자들은 장자를 잃어버리는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장자는 천국의 상속의 기업을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아닌 자신의 의로 기초를 쌓은 자들은 장자에게 유산을 상속해 주는데 이 상속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14절 에이 가르 호이 에크 노무 클레로노모이 케케노타이 헤 피스티스 카이 카테르게타이 헤 에팡겔리아

4: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하나님의 의를 믿은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율법을 통해서 자신의 의의 기초를 세우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상속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장자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이 천국의 기업을 받지 못하는 자가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리고성의 기초를 세우는 자들은 자신의 힘으로 온 정성을 다해 세우는 것입니다. 도저히 세울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노력으로 무너진 여리고성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자신의 힘으로 여리고성을 세우는 자들은 반드시 장자를 잃게 되는 저주가 임하게 된다는 것을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저주당하신 사건을 믿음으로 천국의 기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이 시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라는 단어는 (차이르 6810) 어린, 막내아들, 이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צער(차아르 6819) 비천하게 되다, 비천하여지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여리고성의 문을 세우는 자들은 막내아들을 잃게 될 것이라고 여호수아가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시는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모든 저주를 다시 세우고 문을 만드는 자들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비천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신의 의를 세우는 자들은 율법 안에서 저주를 받아 천국의 기업도 상속받지 못하고 결국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의 불 못으로 던져지게 됨으로 비천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여리고성의 기초를 세울 때에 장자를 잃고 여리고성의 문을 세울 때에 막내를 잃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시작과 끝이고 처음과 나중이며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십자가의 의로 시작하여 십자가의 의로 끝을 맺으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의로 시작하여 자신의 의로 끝나는 자들은 천국을 상속받지 못하고 결국 비천한 삶으로 끝날 것을 교훈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여호수아의 말씀을 어기고 여리고성의 기초를 세우고 문을 세워서 저주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34절 베야마이브 바나 히엘 베이트 하엘리 에트 예리호 바아비람 베코로 이세다흐 우비세기브 체이로 히치브 델라테이하 키드바르 아도나이 아쎄르 디베르 베야드 예호슈아 빈 눈

왕상 16:34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그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아합 왕 시대에 벧엘의 히엘이라는 사람이 여리고성을 건축하고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아들을 잃게 됨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하게 성취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신의 의를 드러내면 이렇게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교훈해 주시는 것입니다.

 

히엘’이라는 단어는 (히엘 2419) 히엘이며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뜻의 이름입니다. 히엘은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여리고성을 건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 미련하고 멍청한 짓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은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고 불려 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지 못하는 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설마 내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장자와 막내가 죽을 것이냐!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한 자의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설마 내가 복음 안에 있는데 내 의를 나타낸다고 해서 저주를 받겠는가?라는 이런 미련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오직 십자가의 의로만이 내가 구원을 얻고 천국을 상속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비람’이라는 단어는 (아비람 48) 아비람이며 이름의 뜻은 나의 아버지는 고귀하신 분이다, 라는 뜻입니다. 장자의 이름은 하나님 아버지는 고귀하시고 존경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했는데 이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여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하나님의 고귀하심을 믿고 오직 하나님의 의를 따라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십자가에 이루어주신 주님의 의를 무시하고 다시 나의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한다면 결국 아비람이 죽음과 같이 나도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스굽’이라는 단어는 (세구브 7687) 스굽이며 이 단어는 שגב(사가브 7682) 높임을 받다, 높이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막내아들인 스굽은 하나님을 높이고 십자가의 의를 높여서 구원받은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것을 교훈해 주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여리고성의 문을 세울 때에 막내아들인 스굽을 잃게 됩니다. 히엘은 문을 세움으로 자신을 높였고 하나님을 높이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신을 높이니 결국 저주를 받아 죽는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높이는 행위입니다. 자신의 의로는 절대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어떠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셔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시고 나의 모든 원죄와 자 범죄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믿기만 하면 구원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에 관하여는 네가 할 것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여리고성을 완전히 무너뜨리시고 정복해 주신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마음에 걸려 나의 행위를 주장하려고 하는 자들은 여리고성을 다시 쌓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나의 원죄를 모두 해결해 주신 것을 믿지 못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율법으로 다시 돌아가서 자신의 의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의를 믿고 구원을 얻는 자들은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십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자들은 무너진 여리고성을 절대 다시 쌓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로 구원을 얻은 자들은 다시는 율법의 의를 주장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들은 주님의 의로 구원을 얻어 천국을 상속받았다는 것을 100% 믿으시고 신앙생활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부스러기 은혜(막 7:24-30)

 

[마가복음 헬라어 설교] 수로보니게 여인의 부스러기 은혜(막 7:24-30)

안녕하세요. 오늘은 마가복음 헬라어 설교 중에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부스러기 은혜라는 성경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시돈 지방으로 피신했을 때 그곳에서 수로보니게 여인을

rhb-bible.tistory.com

 

반응형